퀵바

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8,255
추천수 :
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1.03.09 17:24
조회
51
추천
1
글자
10쪽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DUMMY

“의장님!”

주변에 인간들이 있었음에도 엘제어는 큰 소리로 아르센의 공화국 직책명을 외쳐야했다.

그도 그럴것이 동족들이 상품처럼 나열된 거리를 묵묵히 거닐던 그가 소아성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 앞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마법을 시전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저희 목적이 무엇인지 잊으셨습니까!”


그러나 엘제어는 그렇게 외치는 것 말고 그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형편없는 엘제어의 마법 실력에 비해 아르센은 공화국내 최고 실력자였기 때문이었고, 그렇게 무혼의 대표자는 어떤 방해도 없이 자신의 분노를 욕정의 거리에 쏟아 낼수 있었다.


골목을 따라 무차별적으로 터지는 기폭 마법과 귀를 가득 메우는 폭음.


기폭 충격에 유리 진열장은 박살이 났고, 파편들은 이어지는 마법에 화살처럼 빗발쳐 사람들에게 쏟아졌다.


그렇게 거리는 순식간에 인간들의 비명과 핏비린내가 가득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그 참담한 모습에 연민을 느껴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다만, 유포레아스 공화국의 수장이란 자가 적진 한가운데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벌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르센은 그 감당못할 소동을 일으키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돌연 칼을 빼들고 거리로 뛰어들더니 진열장 안에 묵여있는 인형들의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의장님!”


분노라는 감정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엘제어는 아르센에게 다가가 거칠게 그의 어깨를 잡아 끌었다.


“이건 저희 목적과 전혀 관계없는 일입니다! 도대체 왜 계획에도 없는 일을..”


‘아니, 정말로 그가 이럴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나?’


동시에 떠오른 그 물음과 함께 아르센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 엘제어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분노와 절망.

그리고 연민과 슬픔의 뒤섞인 눈동자.


수많은 학습과 경험을 통해 무엇인지 짐작할 수는 있어도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아르센의 눈동자 속에 녹아있던 것이었다.


“내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를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 이질성에 엘제어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아르센은 고함을 버럭 지르고서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인형의 상태를 살폈다.

그렇게 그가 허벅지에 박힌 유리조각을 뽑아주고 이어서 족쇄까지 풀어줬으나, 그 인형은 어떤 반응도 없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정신차리십시요, 의장님! 겨울 씨앗이지 않습니까... 이들 때문에 공화국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되는게 말이나 됩니까!”


봄이 되어야 발화 여부를 알 수 있는 겨울 씨앗.


아직 스스로의 목적은 커녕, 공화국의 집합 목적을 위해 행동할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존재.


즉,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인형이었던 것이고, 그 처지가 안타깝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르센은 무용을 넘어 만용을 부리려 했다.


“가능하다면 이들과 함께 도시를 벗어나겠어. 그걸 도와달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 대신..”


“이들과 함께?! 그 미친 계획의 타당성은 둘째치더라도, 어떻게요? 방법이 있습니까?”


인간의 명령만 따를 뿐인 겨울 씨앗을 강제로 움직일 방법은 없었기에 그렇게 되물었으나 아르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넌 아까 그 정보원을 찾아서 정확한 내용이나 파악해!”


그 명령에도 꼼짝하지 않은 것은 이어진 아르센의 행동 때문이었다.

자신의 무릎 앞에 소녀 인형을 앉힌 그가 곧이어 손으로 목을 조르려는 자세를 취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르센의 손은 그 이상의 짓은 벌이지 않았고, 대신 그의 손에서 별아간 빛이 쏟아져 나와 엘제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빛에 감싸져 있던 소녀 인형 경추 부분에 가시나무가 얽혀 있는 듯한 마법진이 새겨지더니 그에 반응하는 듯 넝마처럼 늘어져 있던 인형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윽고 세상에 버림받았던 어떤 존재 깨어나듯, 여리했던 소녀의 얼굴이 한껏 찌푸려지며 고통에 가득찬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뭐해! 빨리 안가고!”


그 처절한 소리와 난생 처음보는 기괴한 장면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엘제어는 아르센의 외침을 명령처럼 받들었다.

아니, 어쩌면 목격해서는 안될 장면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충실했던 것일수도 있었다.


그렇게 아르센이 다음 겨울 씨앗을 향하는 모습을 뒤로 한 채, 엘제어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내달렸기에 순식간에 욕정의 거리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좀처럼 비명소리는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고, 때문에 관련된 의문 하나를 품게 되었다.


‘우리 동족에게도 선험이란게 있는가?’


만들어진 자의 어쩔수 없는 부정


‘그렇다면 자아 없이 쌓아온 경험들이 고통과 분노로 가득찬 것임을 어떤 계기로 판단할수 있는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열어서는 안될 문앞에 서 있는 느낌을 받은 그였다.


그래서인지 뒷쪽에서 울려퍼지는 또 다른 비명소리는 마치 그 문 넘어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


미드갈은 십수년간 이어온 용병질로 다져진 자신의 감을 믿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월영군 최고 단장과 관계있는 월영시 탈영병.

그런 그와 함께하는 정체 불명의 마법사 소녀.


사실 그 특이한 조합에도, 그리고 신향구 일 때문에 두사람과 대치한 적 있던 마법사들이 소녀가 엄청난 마법사라 언질 해줬을 때도 크게 개이치 않았던 미드갈이었다.


그러나 조금씩 들려오는 월영시의 반란소식과 벨로나 단장에 대한 이야기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였다.

여기에 도저히 같은 부류라고 볼 수 없는 의뢰인이 나타나 벨로나와 마법사 소녀에 대해 묻는 순간, 두 사람이 심상치 않은 일에 휘말려 있음을 확신했다.


“허미.. 또 인형 시체나 찾으러 가자고 불렀거니 했더만..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그러게 이건 나도 생각 못한 전개인데.”


그 말대로였다.


인형 영업소까지 의뢰인들을 안내한 뒤, 자신의 직감에 따라 『카르미나 부라나』 단원들을 소집한 그였으나, 전혀 예상치 못하게 비명소리가 가득한 폭발 현장을 맞닿뜨린 것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 룩스는 나와 함께 현장을 둘러보도록 하고, 나머지 두사람은 각각 용병 사무소랑 치안대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려.”


점차 자신의 직감에 날이서는 느낌을 받은 미드갈이 그렇게 외쳤고, 평소와 다른 그 진지한 모습에 단원들 또한 군말없이 명령에 따랐다.


그렇게 피투성이가 된채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드갈과 룩스가 전투 채비를 할 무렵, 결이 다른 처절한 비명소리가 수 차례 울려퍼져와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것이었다.


“어떤 미친 마법사가 이딴 일을 벌이는거지?”


“글쎄...”


그렇게 얼버무린 미드갈이었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이 의뢰인들과 관계 있을거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곱상한 도려님이 마법사였다는 점은 둘째치더라도 이런 난동을 피울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기에 자신의 예감이 이번에는 틀린 것이 아닌가 했을 때였다.


“미드갈 토르!”


인형 영업소 거리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막아선 뜻밖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미드갈은 의뢰인의 정보원, 밀러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것을 보았다.


“아니.. 뭐. 정보를 파는 입장에서 비밀엄수가 철칙이긴 하지만.. 이거 말하고 나니 영 꺼림칙해서...”


쉴새 없이 뛰어왔는지 밀러는 그렇게 서론을 말한 뒤, 숨을 길게 골랐다.


“그.. 자네 의뢰인이 물어본 여자 있지 않은가.”


“여기에 머물고 있는지 알아내셨나보군?”


시치미을 뚝 땐체 되물은 미드갈의 말.


“아니.. 그것도 알아냈긴 하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나도 긴가민가 하긴한데..”


횡설수설하는 밀러의 말에 갑갑함을 느끼던 찰나, 그가 이내 다짐했다는 듯 숨을 크게 들여쉬었다.


“내가 어디서 많이봤다 했어. 그 초상화를 들고 다른 정보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 글쎄.. 한 놈이 대륙의 공적 얼굴이라고 말하는거 아닌가!”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 정도의 강한 충격.


“대장! 이게 뭔소리야? 대륙의 공적? 누가?”


옆에서 놀라서 소리치는 룩스의 말을 무시한 채, 미드갈은 다짜고짜 밀러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대륙의 공적은 이미 처형되었지 않은가! 그런 말도 안되는.. 아니.. 그건 둘째치고, 의뢰인은? 의뢰인이 찾아왔던가?”


“둘중 한명만 왔던데? 그래서 난 그녀가 이 도시에 있다는 것만 말해줬지. 그랬더니 불이나케 뛰어가 버리더라고.”


그 순간이었다.


도망칠 사람들은 다 도망쳐서 마치 멸망해버린 도시의 가장 후진 골목처럼 보이는 인형 영업소 골목에서 두건을 둘러쓴 한무리가 슬며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르는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악몽속 존재들.


그랬다.

무혼 반란의 발화지인 자신의 고향 유스틴리츠에서도 저런 존재들이 황폐한 거리를 거닐고 다녔었다.


그렇게 아내와 딸의 죽음이 점칠 된 그 악몽에 허우적거리면서도 미드갈은 그 당시에는 그다지 날카롭지 못했던 감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같은 부류라 생각되지 않는 의뢰인.

의뢰인이 들어간뒤 발생한 정체불명의 폭발.

그리고 그 의뢰인이 찾고 있던 존재, 대륙의 공적.


그 결과 저도 모르게 두건을 쓴 무리를 따라 내달리게 만드는 단어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인형..!”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깊은 상흔의 잔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5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21.05.17 38 0 8쪽
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123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2) 21.04.30 43 0 7쪽
122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21.04.28 41 0 9쪽
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2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119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3 1 10쪽
11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60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5 1 12쪽
116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1 1 9쪽
»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2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3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5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6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4 2 9쪽
110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3 2 10쪽
109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4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1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6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9 2 7쪽
102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8 2 8쪽
101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5) +1 20.12.02 52 2 11쪽
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99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2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97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4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