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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8,248
추천수 :
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0.11.11 11:02
조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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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DUMMY

상대 전력을 파악하는데 있어 마력 감지는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에 불과했다.


하나의 마력 기운을 감지했을 때, 그곳에 한명의 마법사와 수만의 보병이 있을 수도 있었고, 정말 마법사 단 한 명만이 있더라도 그의 마법실력이 어떨지는 결코 몰랐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가장 기본 전술대형에 따라 카니엘이 전방에서 보병의 움직임을 살피고, 후방에서는 벨리안느가 마력의 움직임을 주시한 채 이동을 하던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달빛과 별빛이 만연한 칼빈 초원은 그림자 하나 숨을 곳 없었고,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수록 보병들의 매복이나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카니엘!”


그 상황에서 벨리안느는 감지하던 마력에 이상 징후가 보이자 다급히 카니엘을 불렀다.


“왜 그래?”


“신체향상 해. 도망치려는 것 같아.”


그 어느때보다 명확한 벨리안느의 말에 카니엘은 주저없이 신체향상 구슬을 깨트려 몸에 흡입시켰다.

그리고는 이미 신체향상을 한 채 질주하는 벨리안느의 뒤를 다급히 쫓았고, 그렇게 두 사람의 그림자는 칼빈 초원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려 한다니?”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해. 아무튼 가보자.”


확실히 상대는 벨리안느의 마력을 감지한 후, 반대 방향으로 멀어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도주라고 하기에는 그 속도가 일반 걸음 속도보다 느렸고, 분명 돌격하는 자신의 마력을 감지 했을텐데도 마법 준비를 하는 등, 저항의 움직임 또한 없었다.


“벨로나와 함께 있을 수도 있다는 그 사제.. 신체 향상이랑 고등 마법도 사용 할수 있지?”


“당연하지. 월연방국 최고의 전투 사제니까.”


“....”


그 말에 의구심이 더욱 커진 벨리안느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일단 자신의 마력을 감지하고 물러섰다는 점에서 아르센의 정찰대가 아닌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투 마법사 곁에 반드시 함께 편제되는 보병들이 없으니 도시 연합 정규군일 가능성도 없었다.

또한 신체 향상을 할 수 있는 벨로나 일행이 구태여 느릿한 속도로 도망칠 이유는 없어보였고, 그와 마찬가지 이유로 단지 여행중인 마법사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이렇게 정체를 추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벨리안느가 추격을 결심 할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벨로나 일행이 아닐 가능성이라 높았기 때문임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이기적이구나...나라는 사람은.’


마법 연계의 심각성을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벨로나를 만나도 모자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큰 사명감을 지닌채 세상에 나서기보단, 카니엘과의 소소한 여정이 이어지길 바랬던 것이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혐워스러웠던 벨리안느는 부정적인 감정을 지워버리기 위해 더욱더 속도를 올려서 초원을 내달렸다.


그 덕분이었을까?


벨리안느는 예상보다 빨리 마법 기운을 따라잡을 수 있었고, 다만, 전방에 위치한 둔덕에 가려 눈으로 확인이 안되는 듯했다.


“저것만 넘으면 보일 것 같아.”


마력을 감지할 수 없는 카니엘을 위해 그렇게 설명해준 뒤, 그렇게 벨리안느는 긴장된 마음으로 둔덕의 정상까지 단박에 뛰어올랐다.


밤바다를 출렁이는 부표물이 초원까지 밀려온 것일까?


마침내 시야에 들어온 그 두 물체는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큰 폭으로 절뚝거리며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어서 어딘가 심각한 부상을 당했는지 서로를 부축하고 있다는 것과 그 때문에 도주 속도가 느렸다는 것을 이해한 벨리안느였다.

그러나 그 모든 정보들이 그들의 정체까지 밝혀주지는 못했기에 어떻게 접근을 해야할지 고민을 할 때였다.


“아!...”


갑자기 도망치던 그들 중 하나가 벨리안느를 향해 뒤돌아보았고, 달빛에 드러난 그 외형에 짧은 단말마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있어야 할 공간이 텅 비어있어 달빛만이 외로이 비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떠오른 먼 옛날 아르센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팔다리를 왜 짤라냈냐고? 노동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반항을 하기 때문이지.’


오직 인간들의 순간적인 유희를 위해 존재들로서 신체 일부가 강제로 도려내진 인형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들.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뒤로 한채, 저들이 근처 도시에서, 가장 가능성 높다면 노빌리크스에서 도망쳐 나온 인형들이라 추측했고 동시에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벨로나 일행이 아니라는 안도감 아닌 안도감.

그리고 눈앞에 인형들에 대한 연민과 도움을 줘야 하는지에 대한 갈등 등.


그러나 자신의 처지에서는 그들을 못본척 떠나가 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곧바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카니엘.. 벨로나 일행이 아냐. 돌아가자.”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한 뒤, 벨리안느는 다시 왔던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그런 그녀와 달리 무슨 일 때문인지 카니엘은 동상처럼 우두커니 선채로 꼼짝하지 않았다.


“카니..엘?”


여러 생각에 사로잡혀 카니엘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벨리안느였다.


때문에 그녀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 뒤였고, 그렇게 그녀는 카니엘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둔덕 아래로 질주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카니엘!!”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뒤를 쫓아가기 시작한 벨리안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턱이 없었다.

다만, 인형들을 향해 질주하는 카니엘의 뒷모습에 어마어마한 살기가 씌여있어 결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란 예감만 들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떻게 된 일인지 순수 마법으로 발현되는 자신의 신체향상 속도로도 카니엘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벨리안느는 그가 인형들 머리 위로 도약하는 모습에 비명을 내질렀다.


“안돼!!”


달빛을 받아 날이 시퍼렇게 선 월첨검.

그 검의 사냥물이 된 저항의 움직임조차 없는 두개의 무혼(無魂).


그 모습이 뇌리에 박히려는 순간, 폭포수가 떨어지듯 모든 장면이 쏜살같이 흘러갔고, 곧이어 살을 가르는 끔찍한 소리가 주변을 압도했다.


뒤이어 찾아온 것은 완벽한 침묵과 시간이 멈춘듯한 현실이었다.


순식간에 인형 2기를 파기한 카니엘은 검을 부여쥔 채 쓰러진 인형들을 내려다 볼뿐 미동도 하지 않았고, 벨리안느는 처분된 인형의 모습에 그대로 주저 앉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이유를 알수 없었지만, 주저 앉은 벨리안느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그렇게 그 눈물만이 멈춘 현실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


제정신으로 돌아온 카니엘은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칼에 묻은 인형들의 피를 닦아내었다.

이후 숨을 깊게 들여쉬며, 하늘 위의 달을 눈에 한번 담고서는 이내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피로 흥건히 젖은 풀위에 널부러진 인형의 시체.

익숙하다면 익숙했기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정도로 불편한 장면은 아니었다.

다만, 그 옆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익숙하지 않아 거북할 뿐이었다.


인형을 대하는 이자벨의 태도가 자신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은 이전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인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눈물을 흩뿌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악몽은 되살아나지 않았고, 카니엘에게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왜?”


따라서 카니엘은 벨리안느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인류의 적을, 인간 말살이란 목적 이외 살아갈 가치가 없는 존재가 사라진 것이 이토록 슬퍼할 일인지 알수 없었다.


“.. 몰라... 나도..”


하지만 벨리안느 또한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자신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수많은 인형들을 처분해왔기 때문에 이들 또한 그들과 똑같이 취급할 수 있을터였다.


“단지..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었을 텐데..”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이들이 매춘을 위한 인형들임을, 그 때문에 그 지옥 같았을 현실에서 벗어나 오직 살아남겠다는 목적으로 떠돌았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자 동질감을 느낀 것이리라..


단번에 벨리안느의 말을 이해 못한 카니엘은 뒤늦게서야 자신이 처분한 인형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린내 없는 피웅덩이와 널부러진 팔다리에서 풍겨오는 역겨움 이외에도 다른 의미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흔적들이 인형들에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헐벗다 시피한 차림새와 그 사이에 보이는 화려한 속옷들.

단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무슨 용도로 쓰였을지 단번에 알수 있는 그 흔적들에 카니엘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안..”


알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카니엘은 대상이 모호한 사과의 말을 건넸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누구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지는 몰랐으나 무엇보다 이자벨을 진정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었다.


“카니엘.. 단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이..”


그러나 눈 앞에서 고개를 떨군 소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그칠 기색이 없었다.


“유의미한 목적 없는 유한한 삶이... 목적만이 가득한 무한한 삶보다 가치가 없는것이 아닐까?”


인형들을 처분하면서 떠오른 악몽의 후유증 때문에 카니엘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대신 그 악몽 속에서 형에 대한 그리움을 강하게 느껴서인지, 눈앞의 소녀가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목적이 없었더라도.. 남은 유한한 삶 속에서 어떤 의미라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채, 카니엘은 어둠 속으로 증발하는 소녀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언제든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소녀를 붙잡고 싶었다.


오직 그 생각만으로 몸을 기울인 카니엘은 그는 그렇게 주저 앉아있는 벨리안느를 살며시 껴안았다.


언제 느껴봤던 것이었을까?


유한한 삶이 흐르는 뜨거운 맥박들이 그녀를 감싸자, 벨리안느는 마치 세상을 처음 마주한 아기와 같이 큰 울음을 터트렸다.


작가의말

업데이트가 많이 늦었습니다..ㅜㅜ 그러나 다시 불같이 써내려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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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3화_ 변화의 틀(1) 21.05.17 38 0 8쪽
124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3) 21.05.06 36 0 11쪽
123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2) 21.04.30 43 0 7쪽
122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2화_ 카릿치오스 (1) 21.04.28 41 0 9쪽
121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2) 21.04.22 41 0 12쪽
120 [3권] 10장. 미지(未知)에서_ 1화_ 필멸지 (1) 21.04.19 58 0 9쪽
119 [2권. 끝]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끝) 21.04.13 53 1 10쪽
11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7) 21.04.01 60 1 7쪽
11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6) 21.03.26 55 1 12쪽
116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5) 21.03.16 51 1 9쪽
115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4) 21.03.09 51 1 10쪽
114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3) 21.02.24 113 1 8쪽
113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2) 21.02.09 55 1 7쪽
112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3화_재회(1) +1 21.01.26 56 2 8쪽
111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5) +1 21.01.22 94 2 9쪽
110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4) +1 21.01.22 53 2 10쪽
109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3) +1 21.01.22 64 2 7쪽
108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2) +1 21.01.22 64 2 8쪽
107 [2권] 9장_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2화_얽힘(1) +1 20.12.28 51 2 7쪽
106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5) +1 20.12.17 61 2 7쪽
105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4) +1 20.12.16 53 2 9쪽
104 [2권] 9장-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3) +1 20.12.14 55 2 10쪽
103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2) +1 20.12.08 58 2 7쪽
102 [2권] 9장 -자유, 도시 그리고 재회_ 1화_클레이 루트 (1) +1 20.12.08 48 2 8쪽
101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5) +1 20.12.02 50 2 11쪽
100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4) +2 20.11.20 57 3 7쪽
»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3) +2 20.11.11 62 3 10쪽
98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2) +2 20.10.28 58 3 8쪽
97 [2권] 8장 -여정_ 4화_죄인의 바램 (1) +1 20.10.26 53 1 9쪽
96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3) +1 20.10.21 57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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