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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일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이고 싶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이백일
작품등록일 :
2021.08.28 15:22
최근연재일 :
2021.10.09 19:0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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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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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수 :
140,448

작성
21.09.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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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이무기의 노래 (2)

DUMMY

묵직하고도 강렬한 금속음.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히는 소리.

그러나 무기의 대화는 아니었다.


“오호.”


바람처럼 가볍지만, 누구보다 날카로운 탈렌의 검로.

그의 일격을 막아낸 건 무기가 아니었다.

번뜩이는 탈렌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비늘이 달린 팔.

강철보다도 단단한 비늘들이 정령을 보호하고 있었다.


“오랜만인걸!”


세차게 몰아붙이는 천재 중의 천재.

그럼에도 정령의 몸에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호적수를 만났다는 생각에 활짝 웃는 그.


탈렌은 이것을, 이것과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무엇보다 단단하고 매끄럽고, 아름다운 그들만의 가죽.

옷이 아닌 자신의 일부이자 훌륭한 무기.


용.

그리고 비늘.


억겁의 세월을 견뎌내야만 지닐 수 있는 자격.

모든 정령이 바라 마지 않는 지고의 경지.

자신의 연격을 팔 하나로 막은 괴물 같은 놈.


눈앞의 정령은 지금 용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이 되기를 희망하는 호수의 정령과 겨울의 오한.

겨울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덮친 고블린 떼에.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긴장하던 처녀까지.


아귀가 맞아 떨어지자 탈렌은 웃음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런 거였냐! 엠버!”


끼기긱-

스릉-!


힘줄이 드러나도록 강한 힘을 주며 역수로 다른 칼을 뽑아냈다.

노리는 것은 용들의 공통된 약점인 겨드랑이.

자유롭게 팔과 날개를 움직이기 위한 부위.


천재는 칼을 뽑는 순간부터 확신했다.

이 발도술은 분명히 먹힐 것이라고.

제 아무리 하늘을 바라보는 정령이라고 한들.

12용사 소속 기사의, 장차 12용사가 될 봄바람의 쾌검을 막을 수는 없다고.


까가각-


“어?”


그리고 그의 자신감은 순식간에 박살났다.

한순간에 몸을 비틀어 등으로 막아낸 대정령.

짧은 칼날은 푸른 빛깔의 비늘을 긁어내며 위로 미끄러졌다.


“······젠장.”


툭.

퍼억-!


등으로 가볍게 밀치는 걸 넘어, 마치 쓰러지는 사람처럼 가볍게 등을 기댄 정령.

곧 전설이 될 대정령답게 파괴력은 남달랐다.

저 멀리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구는 탈렌.

바닥에 등을 긁혔지만 벌떡 일어났다.


“그래, 그래! 역시 용이지! 이래야 용답지!”

“······”


호수의 밑바닥, 조용히 힘을 모으던 대정령.

용의 가능성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제자리에서 비늘을 가다듬고 적을 바라볼 뿐.


자연의 일부이자 자연을 거스르는 존재.

정령의 끝은 꼭 세 갈래로 나뉘기 마련이었다.

되돌아가거나, 죽어버리거나, 용이 되는 것.


“용이라고 했어?”


엠버는 몸을 부르르 떨며 되물었다.


“그래. 형님이 죽인 괴물 말이야.”

“진짜 용이었으면 우린 이미 죽었겠지.”

“장담컨대 몇 년 안에는 될 놈이다.”


칼을 고쳐 잡고 천천히 다가서는 탈렌.

엠버도 그때를 떠올리며 조용히 칼을 꺼냈다.

얼떨결에 같이 칼을 뽑은 슈트케.

살벌해지는 분위기에 여인은 벌벌 떨었다.


“왜, 왜 갑자기 싸우시는 거죠? 칼은 왜 꺼내고요? 말, 말려야 하는 게 아닌가요?”


하얗게 질린 소티스는 뒷전이었다.


“······말려야 해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겨우 움직이는 처녀.

그녀의 행진은 땅딸막한 수인에게 가로막혔다.


“용이 되기 전에 죽이거나 붙잡아야 한다.”

“죽인다고요?! 안 돼요. 그냥 정령사로서 대화를 해주세-“


툭.


맥 빠지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지는 여인.

여우는 아슬아슬하게 소티스를 붙잡고 조심스레 바닥에 눕혔다.

슈트케가 그녀의 뒷목을 쳐 기절시킨 것이었다.


“······고마워.”

“저희가 상대하는 게 용이라는 거죠?”


눈치를 보며 눈을 힐끔거리는 후배.

엠버의 목소리부터 말투까지, 모든 게 차갑게 가라앉았다.


평소라면 가볍게 욕설을 날리며 타박을 했을 사람이.

어둠 속에서 보일 정도로 두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절대로 씻기지 않을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눈빛.

저번에도 그렇고 지금도 회색 눈이 금빛으로 번쩍거렸다.

짐승처럼.


“거의. 몇 년이면 용이 될, 이무기 같은 놈이라네.”

“직접 보는 건······처음인데.”

“그렇겠지.”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용.

모든 괴물과 악귀들의 왕이자 흉포한 생물.

최악의 인간들과 비견되고는 했다.


어둑한 두 개의 형상.

하나는 용의 가능성이고 하나는 용사의 가능성.

괴랄한 금속음을 여기저기 튀기고 있었다.


“선배님은 보신 적이 있으세요?”

“내 은사님이 용을 잡고, 또 죽었지.”

“아.”


까드득.


이빨을 드러내는 여우.

뾰족한 송곳니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슈트케.


“그, 그랬군요. 그럼 엄청-“

“지금 당장이라도 저 놈 목을 날려버리고 싶어.”


부들부들 흔들리는 엠버의 칼끝.

흔들리는 건 칼끝만이 아니었다.


“아니, 목이 아니지. 사지를 날리고, 죽지 않을 정도로 내장을 헤집고, 칼로 후비면서 저 놈 살로 만든 소시지를 자랑하고서, 비늘로 만든 갑옷까지 입고서······”


흔들리는 칼끝, 요동치는 마음.

말끝을 흐리며 밀리고 있는 탈렌을 바라보았다.


마법의 끝과 주술의 끝을 동시에 이룬 천재.

자기보다 수백 걸음은 앞서 있는 미래의 용사.

그런 놈도 지금 저렇게 밀리고 있는 판국에.

마법도, 주술도 못 쓰는 여우 한 마리가 끼어들어도 할 수 있는 건 없다.


무력감, 두려움. 그리고 불안.

막연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들이 가슴을 쥐고 흔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러면 안 되겠지. 씨발. 아니지! 못하는 거겠지.”

“크헉!”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탈렌은 다시 한번 튕겨 나갔다.

방금과 똑같이 바닥을 구르다가 힘겹게 일어나는 모습.

체력이 떨어졌는지 숨을 헐떡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엉망이 된 금발을 쓸어 올리며 입김을 내뿜었다.


무방비하게 등을 내보였지만 덤비지 않는 정령.

이쪽을 조용히 노려볼 뿐이었다.


“그렇게 화가 나면 직접 덤비지 그러냐.”

“······못 덤벼.”


친구의 눈길을 피하는 여우.


“왜?”

“지금 주술도 못 쓰고, 나보다 강한 너도 이렇게 떨어져 나오는데 장난해?“

“참나.”


탈렌은 주절주절 핑계를 늘어놓는 여우를 비웃었다.

평소 같았으면 닥치고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덤볐을 놈이.

화내면서 눈길을 피하는 꼬락서니라니.


마음에 안 들었다.

지금 이 뭐 같은 상황이.


“겁먹은 거겠지. 형님도 겨우 잡은 걸 우리가, 내가 어떻게 잡을까, 하고 말이야.”

“닥쳐!”

“잘 봐, 후배님. 얘는 겁먹으면 이러거든. 욕하고, 눈 피하고, 화내는 건······늘 화가 나 있어서 구분이 안 가려나.”

“겁먹은 거 아니라고!”

“그럼 가서 덤비라니까?”

“······”


힐끗.


눈을 들어 저기 있는 형상 하나를 바라보았다.

호수의, 심연에 자리를 잡은 대정령을, 이무기를.

심연의 이무기를 바라보자 이무기도 자신을 바라보았다.

바로 눈을 피해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는 여우.


“엠버. 우리가 저놈 못 잡으면 여기 주변에 있는 것들 싹 다 죽을 거야. 반응 보니까 저 레이디는 모르는 것 같던데.”

“이딴 마을 망해버리라 그래.”


될 대로 되라는 듯, 마구 내뱉는 여우.

어차피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었다.

선생님을 환영하지 않는 마을 따위.


“아저씨랑 꼬맹이가 먹혀도 그런 말이 나오겠다.”

“도망치라고 하면 되잖아.”

“퍽이나.”


용이 되기 위한 마지막 조건.

수많은 생명과 삶을 먹어 치우는 것.

육체를 갈망하는 본능이었다.


“그럼 제가 대신해도 되나요?”

“호오.”


엠버가 망설이는 사이 손을 드는 후배.

결의를 다진 그를 보며 바람의 기사는 감탄했다.


“후배님이 선배보다 낫네.”

“강해지고 싶은 겁니다. 선배님처럼.”

“흐응?”


묘한 소리를 내며 떠보는 탈렌.

슈트케는 당연하다는 듯 엠버를 가리켰다.


“당연히 이쪽처럼 강해지고 싶은 거죠. 무식하지만 대단한 노력가.’

“안타깝네, 넌 나랑 같은 류인 줄 알았는데.”

“불이 바람을 쫓다 보면 꺼지기 마련이죠.”

“······!”


그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여우는 후배를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듬직하고 용맹해 보이는 슈트케.

지레 겁을 먹고 초라한 몰골의 자신과는 천지 차이였다.


“일단 가보자고. 후배님이랑 나랑 합이 맞는지 한번 해 봐야지?”

“바라던 바입니다.”


용에게 다가서는 두 명의 마법사.

바람의 기사와 불의 길을 걷는 자를 바라보며 작은 여우는 쭈그려 앉았다.

지금 막 일어나려고 하는 처녀의 옆에.



***



라쿠스라 이름 붙여지고, 용의 가능성이자 대정령이라 불리는 존재.

그것은 눈앞의 전사들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우화를, 자신의 여인을, 자신의 가능성을, 그리고 미래를 짓밟으려 하는 어설픈 녀석들.

억겁을 살아온 자신에 비하면 한참이나 어린, 갓 싹을 틔우고 자리를 잡으려는 것들.


문득 라쿠스는 궁금해졌다.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오만한 것들이.

과연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까앙-!


이까짓 장난감으로 자신의 비늘을, 겹겹이 쌓아 올린 억겁에 흔적이나 남길 수 있을까.


“크흑!”


용을 바라보고 있는 이무기의 장난질이나 받아줄 수 있을까.


“재밌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른다.

그저 방해꾼을 물리치고 또 물리칠 뿐.

죽이지만 않으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지칠 때까지 가지고 놀다가 뱃속의 것만 쏙 빼먹으면 그만.

주위의 온기와 생명력만 쏙쏙 빨아먹듯이 말이다.

죽지 않을 정도까지만.


“그럼 전력으로 덤빈다!”

“······?!”


그렇게 라쿠스가 용의 오만에 빠진 사이.

봄바람을 몰고 오는 기사는 대장장이가 되었다.

영롱한 무지갯빛이 그의 손을 감싸더니, 곧 반듯한 단검 하나가 왼손에 쥐어졌다.

어디로 불지 모르는 봄바람이 기사의 손에 들어왔다.


위험하다.

자신의 세월에 흔적을 남길지도 모른다.

그것을 넘어 생채기를, 상처를 낼 수도 있는 일이다.


정령의 가슴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먼저 덤벼드는 라쿠스.


“흐읍!”


깡-!


휘청.


일순간, 엄청난 충격에 라쿠스는 중심을 잃었다.

기회를 엿보던 슈트케의 일격이 제대로 들어간 결과.

무지갯빛 칼날은 그의 겨드랑이로 향했다.


촤악-!


푸른 피를 흩뿌리며 겨드랑이를 찢어내는데 성공한 봄바람.

정작 당사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이네!”


옆으로 넘어지는 와중에도 겨드랑이를 보호함과 동시에 쓰러지지 않고 균형을 되찾았다.

살갗이 찢겼을 뿐 찌르는 것에는 실패한 기사.

하지만 가능성은 보였다.

이대로 협공을 계속하면-


“야, 물고기!”


앵앵거리는 남자아이의 목소리.

엠버가 칼을 들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물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드디어 덤빌 용기가 생긴 건가, 두 사람이 안심하는 순간.


“그러지 말고 일대일로 붙지? 정령 먹고 싶으면.”


팡팡!


여우는 자신의 하복부를 두들기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


그의 말에 놀라며 고개를 돌리는 라쿠스.

용병은 그 순간을 노렸으나 기사가 손짓으로 제지했다.


스윽.


손가락을 들어 소티스를 가리키는 여우.

그녀의 눈은 살짝 충혈되어 있었다.


“용이 암컷한테 푹 빠져서 사랑의 도주를 한다니.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야.”

“네?! 무슨-“

“쉿.”


슈트케가 놀라자 손가락을 입에 얹는 탈렌.


“분명한 건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그 용이랑은 확연히 다르다는 거지.”


“어떻게 하면 그 오만한 용께서 한낱 인간이랑 눈이 맞은 거지?”

“······”


정령은 여우의 말을 이해했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못했다.

한 치의 몸짓도 보일 수 없었다.


그 느낌을, 두근거림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는가.

처음 느끼는 그 무언가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

가슴이 답답해지고 따듯해지는 그것은, 무엇인가.


“미리 애기해 두는데, 너희들은 후회할 거다.”


그렇게 말한 여우는 목을 가다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읊었다.

누군가의 안타까운 끝을 생각하면 지은.

불멸과 이별의 노래를.



함께하고만 싶었어

사람들과 당신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떠나고 싶지 않았어


만나고만 싶었어

기억 속 추억들이

천천히 천천히

잊혀질 때마다

울고 싶지 않았어


이대로면 좋겠어

주변의 모든 것이

닳아서 닳아서

사라진다고 해도

이대로면 좋겠어


이룰 수 없겠지

끝내는 모든 게

사라지고 사라져서

우리도 사라져서

이룰 수 없겠지



눈을 뜬 엠버.

지금은 웃고 있지만 언젠가는 울고 있을 노래의 주인공을 생각하며.

싸늘한 금색 눈빛으로 용을 바라보았다.


“······무슨 시래요?”


어김없이, 눈치도 없이 물어보는 후배.

선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엠버를 보았다.


“잠깐, 저 노래는-“

“지금 너희들을 위한 노래다.”


탈렌의 대답을 끊은 건 엠버의 말이었다.

빛나는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는 탈렌.

진중한 여우를 보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번에도 비슷한 연놈들을 본 적이 있었지. 탈렌, 안 그래?”

“어? 아, 그랬지. 불멸자와 필멸자의 사랑이야기.”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가볍게 대답하는 바람둥이.


“그 녀석들 참 멍청했지. 지금은 행복하지만 나중에는 한쪽이 평생을 괴로워할 텐데.”

“솔직히 말해서 난 이 엿 같은 마을 어떻게 되든 신경도 안 쓰거든?”


스릉-


검집에서 칼을 뽑아 든 엠버.

무슨 일이 있어도 늘 함께하는 단검이었다.

용을 죽일 때도 쓰였던, 용살검을 보좌했던 그런 검.


“그런데 그 따위 꼬락서니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여우는 빙빙 돌려 말했으나, 결국 도달하는 곳은 하나였다.


“땅바닥을 걸어다니는 짐승 새끼가 한번 부탁해볼게.”


저벅저벅.


천천히 다가서는 엠버.

라쿠스의 앞에 도착한 짐승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엄중하게 물었다.


“한낱 미물의 결투 신청을, 받으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

“내가 이기면 평생 저 처녀와 교미하지 않는 걸로. 지면 우리의 정령을 내주지.”

“······!”

“우리 뱃속에 든 놈, 그게 목적이잖아?”


자신의 배를 다시 팡팡 두드리는 여우.

용의 가능성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정령이 가장 빠르고 쉽게 강해지는 법.

동족을 먹고 그 힘을 취하는 것이었다.


눈독을 들이고 있던 두 마리의 정령.

결투라는 의식 하나로 차지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럽고 귀찮게 시간을 질질 끌지 않고서.


“아니, 잠깐! 내 정령은······“

[고개를, 들어라.]


탈렌이 항의하려는 순간,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목소리.

허락받은 짐승은 아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똑바로 마주한 두 수컷.

지상의 짐승과 지하의 정령.


[어떻게, 덤빌 거지?]


[무기를 써도 좋다, 맨몸으로 덤벼도 좋다, 지상, 지하, 수중, 전부 된다.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으니 덤벼라.]


라쿠스는 매우 후한 조건에 흥분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면, 그리고 목숨을 건 결투라면.

소티스와 맺은 약속에서 예외로 칠 수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짐승의 목숨 정도는.


스윽.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을 다시 꼽는 여우.

칼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자신만만했다.

더 이상 다리도 떨리지 않았다.


“그 말 나오기를 기다렸어.”


“아무리 잘나신 대정령이라도.”


여우는 그의 코앞까지, 아니 키가 작아 가슴 앞까지 다가섰다.

대담하게도 그의 가슴을 쿡쿡 찌르는 엠버.


“여기로 승부하는 건 생전 처음이겠지.”

[무슨, 소리냐.]

“내가 선공으로 시 한 수를 읊었으니까.”


“이제 그쪽에서 반격을 하셔야지?”


여우는 웃고 있었다.

잠시 꿈틀대는 이무기의 얼굴.

곧 머릿속에 반가운 울림이 퍼졌다.


[한번, 해보겠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용의 가능성.

라쿠스는 흔쾌히 결투를 승락했다.


“이런 씨발! 내 정령은?!”


그리고 친구를 잘못 사귄 기사는 욕설을 날렸다.


작가의말

여러분, 친구를 잘못 사귀면 이렇게 해롭습니다(?). 친구라도 큰 돈이나 재산을 빌려주는 건 신중하게 하시고, 보증을 서는 건 ‘미친 짓’이니까 그냥 하지 마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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