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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설정백과] '니르바나' 이야기

 

제목이 니르바나이지만, 내 이야기는 아니다.

내 소설에 등장하는 카페 니르바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카페 니르바나는 내 소설 세계관의 메인 이벤트를 이끌어 가는 핵심이다.

내 소설의 세계관은 크게 이든누리와 그믐누리로 나뉜다.

이든누리는 그냥 일상의, 우리가 사는 세상과 한 치도 다름이 없는 세계다.

반면에, 그믐누리는 그 일상의 세계에 가려진 비일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든누리와 그믐누리의 경계를 지키는 존재들이 바로 카페 니르바나의 식구들이다.

이들은 도계감찰, 혹은 지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때로는 게이트 키퍼라고도 불린다.

카페 니르바나는 인사동에 위치하고 있다.

다음은 내 소설에서 묘사한 니르바나의 모습이다.

 


카페 니르바나.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카페였다. 니르바나는 다른 카페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 실내 인테리어가 그렇다.

출입문을 중심으로 봤을 때 우측 벽면은 검정색 일색으로 도색되었고, 그 위에 붉은 색으로 각종 부적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반면에 좌측 벽면은 반대로 흰색 바탕에 푸른색으로 오망성이나, 카발라나 만다라 같은 비교(秘敎)적인 상징을 지닌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우측 벽면은 동양적인 분위기, 좌측 벽면은 서양적인 분위기라 할 수 있었다. 테이블도 통나무를 그냥 잘라서 다리만 만들어서 쓰고 그 위에 넒은 원형 유리판을 올려놓은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그 유리판 아래에는 타로 카드나 러시안 집시카드라든가, 각종 부적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각종 명상도구, 종교 제의에 쓰이는 법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종류도 다양해서 금강저, 칸타, 수정구, 수정목걸이, 다우징, 소형 피라미드 등, 카페 곳곳에 있는 기타 장식물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마치 작은 규모의 오컬트 박물관이라고 할까?

카페 안의 사람들에게서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상우를 이 카페로 데려온 모수선생이란 남자도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카페의 오너라고 인사한 수한도 그에 못지않았다. 아니 더 강한 느낌이었다. 모수선생은 단순히 남다른 분위기를 지녔다는 인상을 받은 것에 불과했지만 수한에게선 보다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것은 편한 듯 하면서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무형의 벽과도 같았다.

수한의 뒤로 보이는 창가의 테이블에는 지적이면서도 왠지 차가운 느낌을 주는 20대 중후반의 미녀가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은 특이하게도 일본의 승려들이 곧잘 입는 스타일의 남색 가사였다. 옆에 5개의 고리가 달린 석장도 기대어져 있다. 그렇다면 비구니? 하지만 흑단 같은 머리가 허리까지 닿아있었다. 상우는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려다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고 곧 포기해버렸다.

그때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의 청년이 그녀에게 차와 다과를 가져다주었다. 아마도 이 카페에서 일하는 청년인 듯싶었는데 외모가 이렇다할 특징이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너무나 평범한 나머지 한, 두 번 봐서는 도저히 기억해낼 수 없는 그런 외모였다. 만일 그 청년이 군중들 사이에 서있거나, 거리에서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쉽게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입고 있는 옷차림도 아무런 특징이 없는 검정색 바지에 검정색 셔츠다. 마치 상갓집에 찾아가기 위한 복장 같았다. 그래서인지 청년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죽음’이란 단어가 떠올려졌다. 귀를 기울이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어렴풋이 들려왔는데 여자의 이름은 반야(般若), 남자의 이름은 난엽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어느 쪽이든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름은 아니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였다.

가까이 가면 악취가 날 것 같은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굵직한 대나무 통에서 산대를 뽑으며 뭔가를 연신 중얼거리는가 하면,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큼지막한 수정구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고, 말끔한 정장 차림의 노인이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에 잠겨 있다든가, 정말 판박이처럼 꼭 빼닮은 귀여운 외모의 쌍둥이 아가씨가 타로카드를 뒤집으며 점을 치는 등, 어림잡아서 40여개에 달하는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지극히 일반적인 기준에서 정상적인 사람을 찾는다면 상우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었다.

상우는 왠지 두통이 심해진다 싶어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니르바나의 주방은 개방형이었는데 여자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곱상한 외모의 청년이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상우가 지금껏 봐온 카페 안의 사람들 중 가장 정상적으로 보였다. 물론 이 청년에게도 이상한 점은 있었다. 청년은 실내임에도 맹인들이나 쓸법한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행동을 봐서는 맹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상우는 이 카페가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기침이 들려 다시 고개를 돌리니 카운터 옆에서 흡사 KFC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한 외모의, 검정색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가 단정한 자세로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언뜻 카페 이미지와 언밸런스하면서도 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먹을 잔뜩 머금은 붓을 들더니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문장을 써내려갔다.


其安也易持也, 其未兆也易謀也. 其脆也易判也, 其微也易散也.

(고요히 있을 때는 유지하기 쉽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은 도모하기 쉬우며, 허약한 것은 쪼개기 쉽고, 작은 것은 흐트러뜨리기 쉽다.)


노자 덕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화선지를 들어 꼼꼼히 살피고는 마지막으로 ‘현천(玄天) 진우(眞雨)’라는 낙관을 찍고 마무리를 지었다. 상우는 아마도 현천은 휘호고 진우가 이름일 것이라 짐작했다.

문득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화선지를 접어 건네며 조용히 웃었다. 왠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부처를 닮은 미소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진우라고 합니다. 가끔 저 친구가 자리를 비울 때 대리 사장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건 카페를 방문해주신 것에 감사하는 작은 선물입니다. 그럼 편히 있다 가시길.”

상우의 예상대로 그의 이름은 진우였다. 진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는 다시 카운터 옆 자리로 돌아가 새로 먹을 갈기 시작했다. 역시 수한의 경우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남자였다.

“손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상우는 진우에게 받은 화선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귀를 즐겁게 하는 아리따운 목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리며 고개를 들었다.

“네?”

순간, 술이 확 깨는 상우였다.

무표정한 청년과 마찬가지로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인 듯싶었는데, 그야말로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를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미모의 아가씨가 쟁반을 허리에 끼고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더구나 남자들의 로망(?)인 짧은 미니스커트의 메이드 차림이라니. 상우는 자꾸만 스커트 밑으로 쭉 뻗은 각선미로 시선이 가는 것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정작 당사자인 메이드 차림의 아가씨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지만.

“험험, 이쪽으로 앉으라고 했나요?”

너무 노골적으로 시선을 주었다고 생각한 상우는 낮게 헛기침을 하며 그녀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이미 테이블에는 오너인 수한과 모수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먼저 앉은 것이다. 상우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희선아, 차를 좀 내와.”

“알았어.”

수한의 부탁에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준비하러 가는 미모의 웨이트리스.

아, 이름이 희선이구나. 상우는 혹시 모를 인연을 위해 그녀의 이름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최상우 씨라고 하셨죠? 여기 모수선생에게 들었습니다. 매일 밤. 괴상한 전화에 시달린다고요? 그것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면서요.”

수한이 물었다.

“네? 아, 네. 그렇습니다. 이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상우는 아직은 얼떨떨한 기분인데다가 평범하지 않은 카페 분위기 때문인지 말을 더듬거리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세요.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한다거나 가까운 친구에게 고민상담을 한다고 생각하심 될 겁니다. 익숙하지 않으시겠지만 아무래도 속에 담고 있는 말씀을 하시다보면 마음은 편해질 것 아닙니까?”

수한의 말에 상우는 몇 번의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그러니까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 것이 지난주 수요일부터였습니다. 오늘이 꼭 일주일째로군요. 전화는 항상 자정에 걸려왔습니다. 단 1초도 틀리는 법이 없었어요. 전화를 받으면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와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런 목소리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내가 무엇을 입고 있는지 뭘 하고 있었는지 마치 옆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모두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흥미롭군요.”

“처음엔 누군가 장난질을 한 거라 생각하고 경찰에 의뢰해서 발신자 추적을 해봤더니 그 시각에는 저희 집으로 걸려온 전화가 없다는 겁니다. 전화국에도 통화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하더군요. 이게 믿어지십니까?”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 법입니다. 게다가 저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포용력을 갖춘 보기 드문 사람이므로 당연히 최상우 씨의 말을 믿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수한은 뻔뻔스럽게도 자화자찬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낯뜨거울만한데도 표정하나 바뀌지 않는 걸 보면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인 듯싶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초면이라도 한마디 했을 상우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잠자코 수한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 것이 지난 수요일부터라고 하셨죠? 혹시 그즈음에 뭔가 이상한 일을 겪거나 의심쩍은 것은 없습니까? 이를테면 가까운 사람이 다쳤거나,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을 했다든지…….”

“아닙니다! 전 누구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상우는 수한의 물음에 완강하게 부정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런 의도에서 꺼낸 말은 아니었어요. 다만 그 전화가 만에 하나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해석된다면 뭔가 원인이 되었을 법한 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진야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인과율(因果律)의 법칙이니까요.”

“인과율이라고요?”

“네. 잘 생각해보세요. 뭔가 징후가 될 만한 일이 있었을 겁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상우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번쩍 들더니 수한을 바라봤다.

“그렇다면 혹시…… 생각났어요. 하지만 정말 그 것과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지 말해보세요.”

“그러니까 지난주 월요일이었습니다. 그날따라 특별히 피곤하지도 않았는데 늦잠을 자버렸죠. 덕분에 회사에 지각하고 말았습니다. 아시죠? 월요일 아침 출근길의 러시아워가 어떤 건지. 늦어도 너무 늦어버린 겁니다. 아침 조회가 끝나서야 사무실에 도착했으니까요. 당연히 과장에게 한소리 듣게 되었죠. 그런데 재수가 없으려고 그랬는지 그 날은 계속 일이 꼬이는 겁니다. 결제를 올려야 하는 서류가 갑자기 사라지질 않나. 점심시간에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문턱에 걸려서 넘어지질 않나. 정말이지 머피의 법칙이란 말이 실감나는 하루였죠.”

“정말 짜증나는 하루였겠군요.”

“그렇게 하루 종일 일이 계속 꼬이기만 하니 그냥 집에 갈 수가 없겠더군요. 그래서 친구들을 불러내서 술을 마셨죠. 그런데 술자리가 거의 파할 무렵에 친구 하나가 그 ‘공중전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공중전화요?”

“네, 공중전화요. 우리가 술을 마신 주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공중전화 부스가 하나 있는데 친구 말로는 워낙 으슥한 장소에 세워진 거라 사고도 많이 발생하고 사람들도 잘 다니지 않아서 폐쇄가 된지 오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전화국에서 전화기를 수거해 가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어두운 밤에 사람이 지나가면 공중전화의 벨이 울린다는 겁니다. 귀신이 붙은 전화기라나요. 그래서 전화국에서도 수거하지 않은 거라더군요. 물론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웃었죠. 요즘 세상에 귀신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제가 말도 안 된다고 하자 친구 녀석이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라면서 그렇게 믿을 수 없다면 직접 가보자고 하더군요. 술도 마셨겠다, 아침부터 계속 짜증나는 일만 생겨서 기분도 꿀꿀한 참에 잘됐다 싶었죠. 그냥 기분 전환삼아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곳에 가보셨나요?”

“네. 정말 친구 말대로 인적이 드문 장소더군요. 서울 시내에서 그렇게 으슥한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외진 장소였습니다. 낡은 벤치가 하나 있고 고장이 났는지 불 꺼진 가로등 아래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습니다. 역시나 오래되었는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더군요. 처음엔 호기로 그곳까지 갔었는데 막상 어두컴컴한 장소에 공중전화부스 하나만 서있는걸 보니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없던 일로 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옆에선 친구 녀석이 지켜보고 있어서 더욱 그럴 수가 없었죠.”

“꽤 곤란하셨겠네요.”

“그렇죠. 조금 망설이다가 친구 녀석이 은근히 약을 올리는 바람에 결국 공중전화 부스까지 걸어갔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무섭다며 멀찌감치 서서 구경을 했죠.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는데 정말로 친구 말대로 벨이 울리는 겁니다. 순간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어요. 공중전화기는 구형 모델이어서 요즘처럼 착신기능이 있을 리가 없었거든요. 게다가 오래 전에 폐쇄된 부스였다고요. 회선이 살아있지도 않은데 실수라도 전화가 걸려올 확률은 제로인 겁니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런데도 그 자존심이 뭔지 물러설 수도 없겠더라고요.”

“그럼 그 전화를 받은 겁니까?”

“네, 받았어요. 망설이다가 마음 굳게 먹고 수화기를 들었죠. 제가 공수부대에서 복무를 했는데 그때도 담력훈련을 자주 받았지만 정말 살 떨리는 경험이었습니다. 수화기가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죠. 입도 잘 떨어지지 않고. 아주 간신히 수화기를 귀에 댈 수 있었습니다. 식은땀이 다 나더군요. 그런데 수화기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소문처럼 귀신이 들린 게 아니었던 겁니다. 아마 잘은 모르지만 너무 오래된 기계라서 고장으로 벨이 울렸던 것 같아요. 저는 친구들을 향해 보란 듯이 수화기를 흔들며 웃어주었죠. 그런데 말이죠. 마냥 웃을 수가 없었어요.”

“왜죠?”

“그때 친구들의 표정이…… 그게 그러니까…… 다들 뭔가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는 손가락으로 제 등뒤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모두 입만 벌린 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어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더니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마치 냉장고를 열었을 때 서늘한 한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기운이 엄습했습니다. 바로 제 뒤에서 말입니다. 옴짝도 할 수 없었죠. 친구들은 아예 사색이 되어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서 뒤를 돌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죠. 아주 천천히…… 절반 정도 고개를 돌렸을 때, 별안간 친구 하나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친구들이 앞 다투어 뛰기 시작하더군요. 덩달아 저도 뛰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다시 주점까지 달려가는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말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었죠. 주점에 도착해서 숨을 돌리는 동안,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뭘 봤냐고. 그랬더니 다들 말은 안하더군요. 그러다가 제가 계속 다그치니까 처음 제안을 했던 친구 녀석이 가르쳐줬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았을 때, 공중전화 부스의 유리창 너머로 어떤 여자가 싸늘하게 웃고 있었더랍니다. 저를 보고 말입니다.”

“그래요?”

“전 친구들이 작당을 하고 장난친 거라 여기고 그 말을 무시했죠. 웃기지 말라고. 장난인거 아니까 적당한 선에서 끝내라고. 그런데 친구들의 태도가 좀처럼 바뀌지 않더군요. 그냥 장난이라고 하기엔 녀석들의 얼굴이 너무나 진지했어요. 결국 전 찜찜한 마음에 바로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냥 잊어버렸어요. 정말 녀석들 말대로 장난이 아니라면 다들 술에 취했었고 분위기가 그래서 헛것을 본거겠죠. 왜 그런 일이 가끔 있잖아요.”

“그렇지요. 그래서 그 이튿날부터 전화가 걸려온 겁니까?”

“그게 서로 연관이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튿날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맞습니다. 그 끔찍한 전화는 정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된 거로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상우 씨의 경우라면 열반차를 주문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열반차를 주문하시겠습니까?”

“네? 열반차요?”

상우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차의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습니다. 열반차, 아주 특별한 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카페에서만 취급하는 차니까요.”

수한이 열반차를 언급하자 갑자기 카페 안의 분위기가 술렁이며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상우에게 집중되었다. 마치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열반차라는 것을 주문하면 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겁니까?”

상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결이 된다면 주문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좋습니다. 가만있어보자 이번 일을 누구에게 맡기면 좋을까.”

수한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각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어나고 종업원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수한을 바라봤다. 알고 보니 상우를 제외하고는 카페 안의 사람들은 모두 손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을 호명해달라는 눈빛으로 수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럼 간단히 열반차의 가격에 대해 설명 드리죠. 에에, 저희는 언제나 현찰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뭐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만면에 가득 웃음을 띠우고 있는 수한의 모습은 어떤 특별한 힘을 지닌 능력자라기보다는 노련한 장사꾼처럼 보였다. 상우는 그런 수한을 보고 있자니 은연중에 가졌던 일말의 기대감이 거품처럼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 정말 신뢰할 수 있을까…….’

 

 

니르바나는 본래 혼(魂)이라는 이름의 카페였다.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다.

나는 대원에서 개최하던 대원챔프 신인공모전의 스토리 부분에 응모했었다.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서 응모를 했는데, 그때 가져간 이야기는 모두 세 가지였다.

하나는 큐피트의 보좌인 두두라는 아기 천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옴니버스 스타일의 코믹 로맨스물.

또 하나는 <샹그리라>라는 제목의 SF사이버 펑크물이었고, 마지막 하나가 퇴마물인 <혼>이었다.

당시 담당기자였던 박성식 형(현 만화컨텐츠 진흥위원장)이 나를 뽑아주었는데,

샹그리라는 너무 광범위해서 연재물로 다루기 어렵다고 했고,

<혼>은 우리나라에서 퇴마물은 아직 시기상조라며 반려하고, 두두를 채택해주었다.

당시 내 그림 파트너는 <cat>의 강현준 작가였다.

두두는 연재를 앞두고 군대 영장이 나오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잡지에 실리지는 못했다.

입대하고 첫 휴가, 나는 서점에 들렀다가 땅을 치고 울분을 토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선 퇴마물이 시기상조라더니!

우리나라에선 절대로 먹히지 않을 거라고 하더니!

당당히 퇴마록이라는 제목을 내건 소설이 장안의 화제가 아니던가!

으으으으!

난 지금도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어쨌거나 각설하고.

나는 그 이후로 대대적인 수정 및 보완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카페의 이름도 혼이 아닌 니르바나로 바꾸었다.

보다 글로벌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 싶어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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