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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가라사대] 퇴마가 아닌 벽사, 파사 혹은 해원

 

20여 년 전에 하이텔 PC통신 란을 통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출간으로 이어지고 일약 수퍼 베스트셀러에 오른 <퇴마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3년에 걸쳐 19권에 이르는 이 장대한 시리즈는 그 완성도나 작품성을 떠나서,

우리나라 출판계에 한 획을 그은(무려 900만부가 팔렸으니) 대단한 작품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일부 팬덤에서는 신적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퇴마록>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는 데엔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필자는 92년에 비슷한 장르의 만화를 준비했으나 담당기자에게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반려되었다!)도 있지만, 그걸 떠나서 <퇴마록>은 몇 가지 부분을 두고 보면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퇴마>라는, 우리 말에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일본식 표현을 정착시켰다는 점이 무척 크다.

사실 퇴마(退魔)라는 단어는 일본식 한자 조어이다. 

추측하건대 이우혁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일본만화 <공작왕>에서 그 단어를 빌려왔을 것이다.

(공작왕에 수록된 외전 중에 버젓히 왕인환지퇴마록[王仁丸之退魔錄]이라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퇴마록의 엄청난 히트는 ‘퇴마’라는 단어가 마치 원래 있던 우리 말의 표현인 것처럼 굳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퇴마는 과거 그 어떤 문헌에도 등장한 적이 없는 외래어 표기이다.

그렇다면 퇴마를 대신해서 쓰였던 표현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건 어렵지 않다. 사전을 뒤적이면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벽사(辟邪), 파사(破邪), 축사(逐邪), 구마(驅魔), 해원(解怨), 막음질, 등등

모두 정식으로 사전에 등재된 단어들이다.

하지만 퇴마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을 눈 씻고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다.

왜? 우리식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퇴마록을 관통하는 분위기는 국수적이고 항일적이라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무속인들도 퇴마라는 단어를 마치 상표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좀 씁쓸하다. 자기들이 모시는 신은 호국영령이라고 자처하면서, 버젓하게 일본식 한자 조어로 정체성을 표현한다는 게.

 

지금부터라도 달리 써보면 어떨까.

파사, 축사, 구마, 해원, 막음질 등으로. 훨씬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아니면, 나 혼자 생각인 것일까.

 

 

 


댓글 2

  • 001. Personacon 렌아스틴

    13.01.01 20:22

    헉!

  • 002. Lv.4 비연회상

    13.01.22 15:56

    저도 이게 항상 궁금했어요. '퇴마'라는 관념 자체가 일본것 아닌가?
    솔직히 우리 무속신앙을 잘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초자연적인 마(?)를 상대하는 전통적인 관념은 으깨서 부숴 없앤다기 보다는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서거나 쫓고, 근본적으로 원한을 풀고 달래서 해소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쪽이 더 이야기가 풍부하고 매력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근데 문득 생각난건데 일본 것이라기보단 서구(구체적으로는 기독교 세계)가 원조인것 같기도 하네요. 그네들은 전혀 타협의 여지없는 절대적인 '악'을 상정하는데 거리낌이 없으니까요. 고대신화에 나오는 악의 세력, 기독교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고대 중세 시기에 상상되고 심지어 여러가지로 악용되기도 했던 악마나 마녀같은 관념을 보면 말이죠. 거기에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같은 스토리는 전혀 허용되지 않고, 악은 악으로써 쳐부숴 없애고 투쟁할 대상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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