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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유니버스

두억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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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작품등록일 :
2012.10.08 21:24
최근연재일 :
2017.03.14 08:26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5,598
추천수 :
256
글자수 :
97,337

작성
16.12.23 01:19
조회
1,547
추천
22
글자
11쪽

Target. 01: 도화선 (2)

DUMMY

이런 씨발.

남자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다.

구두 뒤축이 닳아 없어져 하마터면 발을 헛딛고 꼴사납게 나자빠질 뻔했다. 촌스러운 이 대 팔 가르마에 뿔테안경까지 쓰고 있어 어수룩해 보이던 얼굴이 한순간에 귀신같은 형상으로 바뀐다.

남자는 짜증스럽다는 듯이 보도블록 턱을 몇 번이고 걷어찼다. 그 서슬에 놀란 택시기사가 자기도 모르게 목을 움츠리며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하더니 황급히 차를 몰아 저만치 달아났다.

그때서야 남자는 발길질을 멈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온화한 얼굴로 돌아와 옷매무새를 고치며 천천히 보도 위로 올라갔다.

키는 그리 크지 않다. 군살 없는 적당히 마른 체격에, 구부정한 자세 때문인지 어깨가 약간 쳐진 느낌이다. 다림질을 하지 않은 후줄근한 회색 정장을 걸친 것도 그렇고, 검정색 뿔테안경을 쓰고 귀밑도 희끗해서 세파에 찌든 중소기업의 만년과장 같은 인상이다.

남자는 주변을 한차례 돌아보더니 형형색색 네온들이 깜빡거리는 유흥가 쪽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마치 제식훈련 중인 군인처럼 보폭이 일정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이라 오가는 행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두 시간 전만 해도 거리를 점령하고 경쟁적으로 호객행위에 열을 올렸을 유흥업소 삐끼들도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삐끼 하나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들고 나오다가 남자를 발견하고 히죽 웃으며 쪼르르 달려왔다.

“사장님, 혼자세요? 어디 찾으시는데요? 고민하시지 말고 제가 물 좋은 데 소개해줄게, 같이 가세요. 애들도 다 어리고 진짜 잘 빠졌어요. 서비스 안주도 팍팍 드릴게요. 정말,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주대도 아주 저렴하고요, 애들도 다 예쁘다니까요. 진짜 끝내줘요. 제 말이 틀리면 돈 안 받을게요, 진짜 엄창.”

삐끼가 남자의 팔을 잡으며 오늘밤만 수백 번도 더 읊었을 대사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남자는 무심한 눈빛으로 삐끼를 보면서 천천히 팔을 뺐다. 그러자 삐끼가 능청스럽게 웃더니 남자의 팔을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며 남자를 잡아끌었다.

“에이, 빼지 마시고 같이 가세요. 정말 꽝이면 돈 안 받는다니까요. 사장님, 저 못 믿으시겠어요?”

남자는 말없이 삐끼를 쳐다보았다. 표정 없는 포커페이스여서 삐끼는 계속 밀어붙여야할지 아니면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나을지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고민을 오래하진 않았다. 오늘 실적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장님, 그러지 마시고 저희 가게로 가시죠. 가서 정 맘에 안 들면 돈 안 내고 그냥 나오셔도 됩니다.”

“그건 됐고. 그보다 여기 피아노란 모텔이 어디 있지?”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의외로 듣기 좋은 중저음에 묘하게 박력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삐끼도 뜻밖이었는지 눈을 깜빡거렸다.

“피아노?”

“모르나? 모르면 됐고.”

남자가 팔을 뺐다.

“피아노라면 저기 모퉁이만 돌면 나오는데요.”

삐끼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래? 저쪽으로 가면 된단 말이지. 고맙다. 그럼 수고해.”

남자는 삐끼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삐끼는 멀거니 서서 남자의 등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담배를 피워 물며 그의 뒤를 밟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자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매일 밤 호객행위를 하느라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봤지만 그런 눈빛은 본 적이 없었다.

마치 굶주린 야수 같은 눈빛이었다.

언뜻 보기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회사원 같은 인상이다.

그런데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굵은 뿔테안경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오른쪽 눈 밑의 상처 때문인지도 몰랐다.

삐끼는 한번 궁금한 게 생기면 풀릴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좀처럼 떠나지 않은 자기 ‘구역’을 벗어나 남자를 따라나섰다.

조심조심.

조용히 걸음을 옮기면서 남자를 좇았다.

남자는 삐끼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보폭은 그리 크지 않는데도 무척 빨라서 삐끼는 잰걸음으로 쫓아가야했다.

이윽고 남자가 모퉁이를 돌았다.

삐끼는 바로 따라가지 않고 모퉁이에 등을 붙이고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그때 갑자기 희뿌연 것이 나타나 시야를 가렸다.

“뭐지?”

삐끼는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자신이 좇던 남자가 그 야수 같은 눈빛으로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아니, 저는 그냥······.”

마땅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평소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을 정도로 깡다구가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 남자에겐 눈도 제대로 맞출 수 없었다.

“가서 너 할 일이나 해. 쓸데없이 남 일에 끼어들지 말고.”

목소리는 여전히 듣기 좋은 중저음이었지만 말투는 무미건조해서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었다.

“알아들었으면 그만 가봐. 난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삐끼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왔던 방향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남자는 가만히 서서 삐끼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정면에 보이는 모텔로 향했다. 출입구에 영문으로 <MOTEL PIANO>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는데, 마지막 철자‘O’가 꺼져있다.

“피안(彼岸)인 건가······.”

남자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이고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카운터에 접수를 받는 직원이 없었다.

어차피 숙박할 생각도 아니었다.

남자는 직원을 기다리지 않고 성큼성큼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카운터 쪽을 한번 돌아보고는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3층에 머물러있던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왔다.

땡 하는 차임이 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때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후문에서 얼굴이 희멀건 청년이 들어오더니 남자를 보고 급히 몸을 낮추며 알은체를 했다.

“어? 고 형사님. 언제 오셨어요?”

“방금.”

남자, 고영준은 툭 내뱉듯이 짤막히 대꾸했다.

청년은 몸에 밴 습관처럼 웃는 낯짝으로 손을 싹싹 비비며 굽실거렸다.

“헤헤, 오셨으면 저부터 찾으셨어야죠.”

“그건······.”

영준은 말을 꺼내려다가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있는 걸 보고 말을 멈추었다.

영준과 비슷한 연배의 남자였는데,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죄가 있든 없든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경찰을 꺼리기 마련이다. 영준은 옆으로 비켜서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러면서 엘리베이터 안의 남자를 면밀히 살폈다. 딱히 수상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랜 형사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나이는 많아야 서른 후반. 군인처럼 짧게 자른 머리.

얼굴은 별다른 특징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상이었고, 밖에서 일을 많이 하는 직업인지 피부는 검게 그을렸고, 키나 체구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옷차림은 검정색 바람막이(윈드브레이커)에 구제 청바지를 입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갈색 워커를 신었다. 그리고 가죽장갑을 낀 오른손에는 검정색 보스턴백을 들고 있었는데 꽤 묵직해보였다.

“실례하겠습니다.”

그가 양해를 구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손님, 벌써 가시는 거예요? 아직 이른 시각이라 버스도 안 다닐 텐데······.”

청년이 따라붙으며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남자는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만 살짝 숙이고는 건물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양반, 되게 무뚝뚝하네.”

입구까지 따라가 배웅했던 청년이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왔다.

“자주 오는 손님?”

영준이 물었다.

“뭐, 이 장사에 단골이라는 게 있나요.”

청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긴.”

영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건 그렇고 ‘그 자식’은 어느 방이야?”

“503호입니다.”

“일행은?”

“혼잡니다. 아니구나, 아까 1시쯤에 아가씨 부르던데요.”

“아가씨?”

“네, 출장 안마요.”

“새끼, 웃기네. 잠수 타는 주제에 오입질은 못 참겠나 보지.”

“헤헤헤, 그게 참는다고 참아지나요. 자, 여기.”

청년이 마스터키를 건넸다.

“알았다. 넌 가서 일 봐라.”

“저기, 고 형사님.”

“뭐지?”

“살살, 살살 하시라고요. 저도 먹고 살아야죠. 괜히 소문이라도 나면 손님 뚝 끊겨요. 지난번에도······.”

“그만. 알았으니까 1절만 해.”

“예.”

“아, 그리고 나 이제 ‘형사’ 아니라고 몇 번 말해.”

“그럼 뭐라고 부르죠?”

“고 경감님.”

“옛, 고영준 경감님!”

청년이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했다.

영준은 청년을 무시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청년에게 받은 마스터키를 만지작거리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했다. 영준은 준비운동이라도 하듯 손목을 가볍게 풀면서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503호. 오석태, 개자식 여기 짱박혀 있었냐.’

영준은 문에 귀를 댔다. 새벽 1시쯤 여자를 불렀다더니 여태까지 재미를 보는 모양이었다. 침대가 요란하게 들썩거리는 소리,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헐떡거리는 소리가 아무런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들렸다.

영준은 쓰게 웃으며 마스터키로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주저 없이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여자는 영준에게 등을 보인 채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며 요분질을 하고 있고, 그 밑에 깔린 사내는 씨름선수처럼 체구가 육중했는데 털이 부숭부숭한 두 손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헉헉대고 있었다. 그렇게 침대 위의 두 남녀는 영준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영준은 화장대로 눈길을 돌렸다. 거울 옆에 붉은색 갓을 씌운 스탠드가 보였다. 영준은 청년의 당부를 까맣게 잊었는지 코드를 뽑고 스탠드를 바닥에 힘껏 패대기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구가 깨지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때서야 누군가가 방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두 남녀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영준은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면서 히죽 웃어보였다.

“석태야, 그만 집에 가자.”

여자는 영준을 보자마자 이불로 몸을 가리면서 비명을 질러댔다. 반면에 오석태는 여자를 거칠게 옆으로 밀어내더니 인상을 구기며 발가벗은 채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워낙 체구가 커서 바닥이 울렸다.

“이 새끼, 너 뭐야!”

“발밑 조심해라.”

“뭐? 아악!”

오석태는 씩씩거리며 영준에게 달려오다가 맨발로 전구 파편을 밟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니까 조심하랬잖아, 새끼야. 하여간에 조폭 새끼들은 민주경찰께서 하시는 말씀은 죽어라고 안 들어요.”

영준은 혀를 끌끌 차더니, 발을 붙잡고 강아지마냥 낑낑거리고 있는 오석태의 턱을 구둣발로 힘껏 걷어찼다. 앞니 두 개가 부러지며 바닥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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