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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님의 서재입니다.

금강반야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임산
작품등록일 :
2021.12.26 20:47
최근연재일 :
2022.01.25 18:25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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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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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글자수 :
101,834

작성
22.01.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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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8. 사령혈천대법(邪靈血天大法)

DUMMY

수십 일이 지났다.

그나마 이 사악한 소음을 만들어내는 자들이 출입하는 것을 기준으로 세니 날이 지나는 시간 감각은 어렴풋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민감한 현대인의 삶을 살았던 정검이, 만약 시간의 흐름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관심을 두고 살펴보니, 이 사악한 자들이 그 사악한 소음을 읊조리고 연주하는 시간이 대략 하루 열 시간 정도 되었다.

이십사 시간을 계속하는 것이 아닌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지만, 그 열 시간을 견뎌내는 일이 너무도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정검도 끈질기게 버텼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결심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실험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을 터.

반드시 누군가가 알아채고 정검을 구할 것이다.

그 전까지 어떻게 해서든 이 사악한 소음으로부터 자신의 청정한 정신을 보호해낼 것이다.

그 다음 운이 좋아 누군가가 뇌사상태인 자신의 육신을 구해줄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이 사악한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소음에 대항하느라 소모되어지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 지관(止觀)을 수행하여 자신의 육신을 뇌사상태에서 깨워낼 자신이 있었다.

아니 꼭 스스로의 힘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정도의 의료 수준이라면 의식이 돌아온 것을 알아채고 반드시 육신을 깨워줄 것으로 믿었다.

그날이 오면.

육신이 완벽하게 깨어나는 날이 오면, 그 상대가 누구든 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고 정검은 다짐했다.

상대가 재벌이든, 의료권력이든, 군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



고군분투하는 중에 문득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지낸 지 벌써 수십 일이 지났다. 내가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 거지?’


처음엔 이런 의문에, 당연히 여러 현대적인 의료조치들, 예컨대 영양 공급 조처들이 이루어져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링거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는다거나 하는.

하지만 아니었다.

아무리 현대적인 의료조치들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며칠에 한 번씩은 교체되어야 할 것 아닌가.

예컨대 링거액을 교체하려 해도 그 교체를 위한 소음은 발생할 것이고, 그러면 정검이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조치는 없었다.

놈들은 사악한 소음들을 만들어내다가 나갈 뿐, 그 어떤 의료적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굶기고 있는 것이다.


‘설마 아사시키려고?’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려면 그냥 두면 되지 이렇게 시끄럽고 사악한 소음들을 발생시키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굶겨 죽이는 것이 목적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게다가 아무리 반인륜적인 실험을 자행하는 놈들이라고 해도, 그 실험의 결과를 얻어내려면 실험은 지속해야 할 것이고, 그러려면 정검의 생명은 유지시켜야할 것 아닌가.

어떻게 생각해도 굶겨죽일 의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자 더욱 더 의문이 커졌다.

굶겨죽일 목적은 아닌데, 아무런 의료적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고, 몇 십 일이 지났는데도 멀쩡하게 살아있다?


‘도대체 뭐지? 왜 아직도 나는 죽지 않고 있는 걸까? 도대체 어떻게 내 생명을 유지시키는 걸까?’


궁금증은 쌓였지만, 해답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주어지지 않았다.



***



게임하다 딱밤맞기를 해봤는가?

딱밤맞기를 할 때 가장 무서운 때는, 맞는 순간이 아니라 맞기 전, 언제 어느 때 딱밤이 내 이마를 때릴지 모르는 그 순간이 가장 무섭다.

또 다른 예도 들어 보자.

매일 걷는 길이라도 그날따라 가로등이 꺼져있으면 갑자기 무서워진다.

익숙했던 환경이 갑자기 낯설고 알지 못하는 환경으로 변한 때문이다.

이처럼 본래 불안과 공포는 부지(不知)에서 비롯된다.

즉 알지 못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정검도 그러했다.

시간이 갈수록 알지 못하는 것들은 의문으로 쌓이고, 이러한 의문을 풀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함은 커지고, 정검도 지쳐갔다.

고난의 시간들을 수행의 기회로 삼고자 했다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답답한 상황이 길어지다 보니 정검도 인간이라 지칠 수밖에 없었다.

싸마타 수행도 언제나 한결같을 수는 없는 법.

지치다 보니 때론 출입식념경을 념송하는 것도 놓은 채 놈들이 연주하는 도중에도 잠들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했다.

지친 정신이 견디다 못해, 강제로 육신에게 잠을 자게 한 것이다.

그러면 무의식에 사악한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그런 날의 꿈은 온통 흉측한 것들로 가득했다.

본래 살아있는 존재에게 있어서 잠은 육신의 피로뿐 아니라 정신의 피로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날이 서있던 정신의 긴장도 풀고, 거칠었던 정신도 정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잠이다.

또한 꿈은 그런 와중에 무의식적 욕구를 발산함으로써 정신적 스트레스를 푸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그런 잠이 온통 흉몽으로 채워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정신이 피폐해지다 못해 미치게 된다.

정검이 바로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물론 아주 좋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놈들의 연주가 없는 밤 시간을 이용하여 잠도 자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은 지치고,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잠은 곧 놈들의 사악한 연주에 알몸으로 노출되는 것.

가랑비에도 옷 젖는다지 않던가.

마치 가벼운 잽에 골병드는 것처럼 정검은 이렇게 시간이 가면 결국 자신이 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위기였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나는 나로서 남지 못하고, 사악한 욕망에 휘둘리는 악마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상황을 바꿀 방책은 전혀 없는 절망적인 위기였다.



***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고단한 싸움을 그저 버텨내며 견디던 그런 날이었다.

평소에 들리지 않던 잡음이 들려왔다.

누군지 모를 두 사람이 정검에게 가까운 위치로 접근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정검을 내려다보며 나누는 대화일 것이다.


“천 일이나 지났··· 진척이 없···”

“아니오. 최근에··· 대법에 반응··· 경우가 많아지고···”

“··· 사령혈천대법(邪靈血天大法)··· 완성··· 교의 목표···”

“걱정마시··· 대안이 마련 되었··· 이번에야 말로···”


정검은 대화를 듣고 경악했다.

경악한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중국어였기 때문이다.


‘중국어다! 어떤 말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 중국어야!’


놀라운 일이었다.

생각해 보라.

도대체 왜 정검이 중국어를 쓰는 자들이 있는 곳에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정검은 당연히 자신이 대한민국의 어딘가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을 벗어나 있을 거라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 사악한 실험을 하고 있는 놈들도 당연히 한국인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아닌 중국어를 사용하는 곳에 자신이 있다?

그럼 이곳이 지금 중국이라는 이야기 아닌가!

실험을 하는 자들이 중국인이라는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가 대학 때 전공이 동양철학이라 중국어를 배워둔 덕에 몇 마디라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했다면,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곳으로 와있다고 착각해서 멘붕에 빠졌을 것 아닌가.

다만.


‘중국어는 중국어인데, 현대 중국어가 아닌 것 같다.’


정검은 그 사실에 또 다른 의혹에 빠졌다.

현대 중국어도 아닌 고대 중국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이 지구상에 있나?

공산당 집권 후 중국은 북경어와 광동어를 중심으로 한 언어체계와 간체자를 중심으로 한 문자체계로 언어와 문자를 정비했다.

그러므로 중국이라 해도 고대 중국어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 더 의문이 생긴다.


‘여긴 도대체 어디란 거냐?’


정검이 충격을 받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릴 때, 대화를 나누던 자들은 정검에게서 멀어졌다가 이윽고 소리가 사라졌다.

아마도 정검이 있는 이 장소를 벗어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아예 눈치 채지도 못할 정도로 정검의 마음은 어지러웠다.


왜 자신이 고대 중국어를 사용하는 곳에 와있는지.

왜 자신의 정신을 사악하고 파괴적인 것으로 물들이고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고민하던 중 정검 스스로가 놓치고 지나간 그들의 대화 한 토막을 떠올렸다.


‘그래. 그들은 분명 내가 천 일이나 이 사악한 음악을 듣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최소 천 일 이상을 이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최소 천 일 전에 이곳으로 이동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게 뇌사상태에서 천 일간 실험대상이 되어 있다가 이제야 의식을 되찾았다고 치자.


‘또 무슨 대법이라고 했는데, 무슨 대법이었지? 아! 사령혈천대법! 대법이라면 주술인가? 이름조차 사악한 것으로 보아, 짐작했던 대로 사악한 목적의 주술인 모양이다. 정리해 보자.’


놈들의 대화를 통해 확인된 사실만을 나열해 보았다.


첫째, 최소 천 일 이전에 정검이 대한민국에서 이곳 고대중국어를 사용하는 곳으로 이동해왔다.

둘째, 이동의 목적은 사령혈천대법이라는 주술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셋째, ‘교’라는 이름으로 보아 종교집단이 주술의 주체이다.


확인된 사실을 나열하다 보니 마음이 더 어지러워졌다.

정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혼란스러워졌다.


‘뭔가 이상하다! 뭔가 논리에 어긋난다!’


작가의말

정검이 드디어 상황의 진실에 접근해 갑니다.


오늘도 행복할 날 되셨길 빕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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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상대맥(上帶脈)이 뚫렸다 +2 22.01.18 945 16 10쪽
14 14. 해결책을 찾았다 22.01.14 966 17 9쪽
13 13. 사령혈천마공(邪靈血天魔功) 22.01.13 967 17 9쪽
12 12. 변화 22.01.12 943 17 9쪽
11 11. 동혈영신주(童血靈神呪) 22.01.11 992 14 9쪽
10 10. 지관쌍운(止觀雙運) 22.01.07 1,099 16 9쪽
9 9. 빙의(憑依) 22.01.06 1,114 16 10쪽
» 8. 사령혈천대법(邪靈血天大法) +1 22.01.05 1,168 13 10쪽
7 7. 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 +1 22.01.04 1,277 18 9쪽
6 6. 또 하나의 수식법, 수식법(隨息法) +2 21.12.31 1,310 17 9쪽
5 5. 지독하게 사악하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천재적이다 +1 21.12.30 1,437 23 9쪽
4 4. 수식법(數息法) +1 21.12.29 1,654 24 10쪽
3 3. 설마 뇌사? +1 21.12.28 1,860 28 9쪽
2 2. 제발 그 읊조림을 멈춰! +1 21.12.28 2,057 30 10쪽
1 1. 정검, 의인으로 죽다 21.12.28 2,764 3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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