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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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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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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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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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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DUMMY

어딘가의 회장 같은 거대한 로비.


직사각형의 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마감으로 인해 거친 외벽이 인상적인 그곳은 언뜻 그 투박한 모습 탓에 허름하게도 보인다.


벨루디스와 같은 화려함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공국과 같은 유구한 역사가 엿보이는 깊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6M는 된 법한 높은 층고와 넓이 말고는 딱히 대단한 건 없다. 관리만이 잘 되어 제법 오래된 느낌을 풍길 뿐이다.


그러나 이는 로비를 둘러본다면 달라진다.


질서정연하게 도열하고 있는 사람들의 숨을 압박하는 분위기,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단 위에 놓인 깃발. 이것들을 본다면 앞선 생각들은 눈 녹듯 자취를 감출 것이다.


대신 이리 말할 거다.


――장엄하다고.


특히나 단 뒷벽에 길게 늘어진 깃발을 등지고 값비싼 흑단 의자에 앉아있는 중년의 남자―― 주름진 미간에 잔뜩 힘이 실린 그 안의 눈을 직시한다면 심약한 자는 즉시 굴복하리라. 초라하단 생각 따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패왕과도 같은 기운을 몸에 두른 남자는 팔걸이에 기대 턱을 괴고는 도열하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 시선을 받은 이들은 움찔 몸을 떨었다.


이게 신호였는지 단의 한 계단 아래에 대기하고 있던 남성은 대조적으로 차분하게 말하였다.



“보고해주십시오.”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 떨어지자 마치 준비되어 있던 것처럼 즉시 한 남자가 경직된 자세로 한 걸음 나왔다.


남자는 긴장한 티가 역력하나 명료한 음성으로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똑바로 입에 담았다.


모든 보고가 끝나자 남자는 들어가고 새로운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늘어서 있던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보고를 이어갔다. 그 모습은 흡사 압도적인 권위에 떠는 민중들과도 닮은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의복은 제아무리 재력이 있다고 한들 손에 넣기란 무척이나 힘든 고급품들이다. 게다가 본인들 또한 그 의복에 어울리는 관록을 지니고 있었다. 필시 졸부 따위는 아니리라.


공포에 떠는 모습도 모르는 자들이 보는 착각에 불과할 뿐이었다. 물론 공포를 지닌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각자의 면면엔 숨길 수 없는 환희와 깊은 경외가 어려있었다. 결코 외포로 인해 경직해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한동안 계속되던 보고는 단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과묵한 인상의 남자에게로 이어졌다.


아이보리의 깔끔하게 다듬어진 수염과 머리카락의 남자는 마찬가지로 앞으로 나와 단을 향해 예를 표하고는 입을 열었다.



“베르다드에서 온 서신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 자인 디바오러라 추정됐던 이스피리아의 동선엔 이상한 점은 없으며,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에도 학원 내에 있었다고 합니다. 세인트리안에서 베르다드까진 빨라도 한 달. 후속 확인까지도 마친바,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합니다.”


단번에 쏟아지는 보고가 끝나고, 여태 삐딱한 자세로 듣고만 있던 단 위의 남자가 침묵을 깼다.



“가베인.”

“아, 예. 부르셨습니까, 황제 폐하?”


묵직한 목소리에 대답한 건 늘어선 사람 중 가장 단과는 멀리 있던 한 사람이었다.


여기까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다만, 문제는 대답한 그 목소리. 이제 막 일어난 듯 늘어진다. 도저히 황제라는 까마득한 지위의 사람에게 보일 모습이 아니었다. 주변에서도 이러한 그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베인이라 불린 남자는 덥수룩한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앞으로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다른 자들처럼 귀족 같지는 않다. 차림새만큼은 그럴싸하나,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닌, 옷에 입혀졌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게 이 남자의 전부가 아닌 모양이다. 가볍고, 어수룩한 모습과 달리 어딘지 모르게 날카롭게 날이 선 기운이 흐른다. 이 때문에 눈총은 보내나 그 외의 다른 행동은 하지 않는 것으로도 보인다.


황제는 그런 그―― 가베인을 눈동자만 내려 쳐다보았다.



“네가 가면 얼마나 걸리지?”

“베르다드까지 말입니까? 음······ 빨라도 2일은 걸리지 않을까 하네요. 도착하고 나선 녹초가 돼서 바로 씻고 잘 겁니다.”


이틀밖에 안 걸린다는 소리에 주변에선 조심스러운 탄성이 나왔다. 그야, 한 달이 걸리는 거리를 2일로 줄인다니 놀랄 만하다.


그러나 황제는 무덤덤하게 다시금 물었다.



“바오로 교황이라면?”

“딱히 속도를 중시하는 타입은 아닐 듯하지만······ 그래도 그만한 괴물이니, 한 몇 시간 이내에 도착하지 않겠습니까?”


불성실하고 불확실한 답변에 재차 사람들이 인상을 썼다. 그러면서 동시에 작게 신음을 흘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거리란 알리바이가 깨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여태까지의 조사 내용으로 보면 자인 디바오러는 단독으로 세인트리안을 이겼다. 교황보다 강하면 강하지, 절대 약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정식적으로 이겼다는 선언이 나오거나 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성전은 반나절 만에 없던 일인 양 철회되었고, 여러 정황상으로 봐도 세인트리안이 졌다는데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막 보고를 올렸던 아이보리의 과묵한 남자는 미간에 깊게 주름이 파였다. 단순히 추측일 뿐이고, 증거라고도 할 수 없지만, 실수임에는 명백했으니.


그렇다고 가베인의 말을 의심할 수도 없다. 그는 황제가 신임하는 자임과 동시에 제국에서 손에 꼽는 강자이기에.


그렇게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졌을 때였다. 거대한 로비의 양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여기였네!”


이 자리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듯한 활기찬 음성.


목소리의 주인은 6살 정도의 어린 여자아이였다. 드레스라든가 몸을 치장하고 보석, 아리따우면서도 귀여운 외모는 평범한 아이가 아님을 짐작게 했다.


그런 여자아이는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일직선으로 단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회의 도중의 급습. 예의가 없는 무례한 행동을 넘어 황제에게로의 섣부른 접근이었음에도 제지는 없다. 오히려 주변을 지키듯 서 있던 근위를 포함, 나열해있던 자들까지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의아할 장면을 연출한 여자아이는 앉아있는 황제의 바로 앞까지 왔다.



“할아버님!”


그랬다. 여자아이의 정체는 황제의 손녀. 그렇기에 앞선 무례들이 허용됐던 모양이다.



“할아버님! 할아버님!”

“그래, 그래. 어서 오너라.”


자신의 옷깃을 붙잡고 재촉하는 사랑스러운 손녀의 목소리에 황제의 입가엔 아주 잠시 미소가 머물렀다.



“어쩐 일이더냐, 로즈린느.”

“사도님이요! 사도님은 찾으셨나요?! 우리 제국 사람이 아니냐고 시끌시끌하잖아요!”

“하아. 또 몰래 마을에 갔느냐.”

“앗?! 아, 아뇨······ 아, 아니, 아닌 게 아닌데······ 그, 그래도 호위는 제대로 데리고 갔어요, 할아버님. 혼자 가지 않았어요!”


황제의 손녀라는 중요 인물이,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서 황궁을 빠져나간다는 사태 자체가 불가능이다. 혹여라도 발생한다면 목이 떨어지는 자가 한둘이 아니니라. 그저 제 딴에 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애당초 손녀가 어지간하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한 건 다름 아닌 황제 본인이었으니.


하지만 너무 막 나가는 것도 교육상 좋을 리가 없다.


그리 생각한 황제는 조금 얼굴을 굳혔다.



“시민들의 생활을 답사하는 건 좋다만, 자신의 본분을 잊진 말거라. 그리고 회의 도중 박차고 들어오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구나. 이 회의는 우리 제국의 앞날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란다. 신하들에게도 지나친 무례고.”

“으우······ 죄송해요.”


기가 팍 죽어 고개를 숙이는 로즈린느.


눈물이 글썽거리는 손녀의 모습을 잠시 보던 황제는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쓰다듬는데, 무척이나 애정이 담긴 상냥한 손길이었다.



“솔직히 사과도 한다니 참으로 훌륭하구나. 과연 우리 엠페라도 가문의 일원이다. 그런 기특한 로즈린느에게 좋은 걸 알려주마.”

“어떤걸요······? 할아버님.”

“사도님 말이다. 의심이 가는 자를 찾아냈단다.”


자신이 그렇게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다. 방금까지 시무룩했던 것이 무색하게 로즈린느는 활짝 핀 얼굴을 황제에게 들이댔다.



“누, 누구?! 어느 분이신가요?!”

“진정하거라. 여기저기 열심히 알아봐 준 모두에게 감사를 전하지도 않았잖느냐.”

“아! 그렇죠!”


로즈린느는 냉큼 가슴에 손을 올리고는 드레스 자락을 슬쩍 뒤로 넘긴―― 제국식의 예법을 보이며 넙죽 머리를 숙였다.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제국을 위해 힘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송합니다.”


대표로 대답을 한 아이보리의 남자를 따라 일동 정중히 예를 표했다.


한 차례 인사가 끝나고――


――번뜩.


눈을 빛낸 로즈린느는 할 일을 다 했다는 양 기대 가득한 시선을 황제에게 향했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듯한 로즈린느에 황제는 흐뭇하게 여기며 손녀가 원하던 것을 입에 담았다.



“사도님은 베르다드에 다니는 학생이 아닐까 싶구나.”

“베르다드요? 우리 제국이 아니라? 그리고 학생이요?”


모든 게 뜻밖의 이야기였나 로즈린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단다. 제국 쪽 관문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단순히 본인의 정체를 숨기려 한 행동이었던 것 같구나.”

“그, 그럼 배움을 위해 베르다드에 있을 뿐, 우리 제국의 신민이실 수도 있지 않나요?!”

“그자의 신분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니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신민일 확률은 상당히 낮을 듯싶구나.”

“왜요?”

“조사하기로 그자들은 인간의 영토 밖―― 마국 쪽 관문을 통해 벨루디스로 왔다고 한단다.”

“마국이요? ······응? 그러면 먼 조상이 우리의 신민이었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요?”

“후후. 거기까진 모르겠구나. 아무리 신하들이 뛰어나다지만 그런 것까지 알아내긴 힘드니. 다만 밖에서 온 자라면 어디 출신이건 상관은 없는 게 아니겠느냐?”

“그렇네요! 이제 우리의 신민이 되시게끔 모셔 오면 될 테니!”


로즈린느는 벌써 사도를 데려오는 것을 상상했는지 무척이나 기쁜 표정을 지었다. 과연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로서 키워지는 엠페라도 가문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건 로즈린느의 생각만치 간단한 일이 아니다.


먼저 눈도장 찍은 사람이라던가 엄청나게 힘든 난관이 존재할뿐더러, 만약 데려오더라도 사도라는 명목이기에 백성이나 신하는 될 수 없다. 그렇게 한다면 온갖 곳에서 반발하여 개입할 명분만을 내어줄 뿐이다. 최소 제국의 3대 가문 급의 대우, 혹은 그 이상의 지위로서 대접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제국을 더욱 부강하게 할 수만 있다면야 상관없다. 그러나 불확실한 것에 발을 담그기엔 걸려있는 게 너무나도 크다.


한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도박을 할 순 없으니 황제는 최대한 로즈린느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게 타이르기로 했다.



“로즈린느,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단다.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의심될 뿐이라고. 그자가 확실히 사도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 사도 자체도 사람들이 멋대로 추앙 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가요?”


당연히 아니다.


전자는 넘어가더라도 후자는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다. 아무 근거도 없이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기에 사도의 재림이란 소문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는 것이지만······ 자세한 설명은 로즈린느에겐 아직 어려울 테니 생략했다.



“아. 할아버님! 그러면 제가 가서 확인해볼게요!”


제 딴에는 뭔가 대단한 제안인 듯 말했으나 그딴 건 없다. 로즈린느는 단순히 그토록 기대했던 사도와의 만남을 추진하려는 것에 불과했다.


이런 얕은꾀에 속을 사람은 이 자리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황제도 당연히 이를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어린 황손을 타국에 보낸다니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나쁘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조금은 때마침 잘 됐다는 기분도 든다.



“로즈린느. 그저 사도님을 뵙고 싶기에 꺼내는 이야기가 아니렷다?”

“예, 예! 우리 제국의 부국강병을 위한 겁니다!”


대답은 활기차나 로즈린느는 마주한 눈을 슬며시 피했다.


이를 모른 척 넘기며 황제는 이어 말했다.



“그렇다면 로즈린느, 네 확고한 의사를 존중해주마. 직접 가서 사도의 정체를 파악하도록 해라!”

“네! 고마워요, 할아버님! 아, 아니지, 감사드립니다, 황제 폐하.”

“너의 활약 기대하도록 하마.”

“넷!”


너무나 기뻐하는 로즈린느. 황제도 살짝 눈가를 느슨하게 했으나, 이내 헛기침하고는 힘을 주었다.



“로즈린느. 너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짐의 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차질이란 존재해선 안 될 것이다.”

“당연한 말씀이에요!”

“그래. 그러니 너를 도와줄 사람들을 붙이도록 하마. 그들과 함께 네 임무를 확실히 수행하도록 하거라.”

“네. 배려해주셔서 고마워요, 할아버님. 아니, 황제 폐하.”


아직 익숙하지 않은 예를 보이는 로즈린느에게서 황제는 시선을 돌렸다.



“가베인.”


강철 같은 강인한 목소리에 가베인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전의 가벼움 따윈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하명하십시오.”

“가베인 딕 에틸센. 네게 제국을 떠나는 로즈린느와 베르그의 호위를 맡긴다.”

“기쁘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발언을 허가한다.”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라고 하고 싶으나, 로즈린느 님도 계시는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여성 부관을 받고 싶습니다.”

“허락한다. 인선은 좋을 대로 하도록.”

“옛!”


예를 표한 가베인이 물러나고, 내린 명이 의외였던지 로즈린느가 물어왔다.



“저······ 할아버님, 작은 아버님도 가는 건가요?”

“그렇단다. 로즈린느를 믿고 있기는 하나 어른이 없다면 곤란할 때도 있겠지. 게다가 상대는 벨루디스의 최고 국빈이다. 데리고 오려면 예의를 보인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과연 그렇군요! 알겠어요, 할아버님. 저 작은 아버님과 함께 열심히 할게요!”

“그래, 힘내거라.”


사도로 의심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듣지도 않았건만. 쉽게 납득한 로즈린느는 얼른 가서 출발 준비를 하겠다며 서둘러 회장을 빠져나갔다.


등장할 때도 그렇지만 너무나 예의 없는 퇴장.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가베인도 짧게 예를 보이고는 그 뒤를 따라나섰다.



“폐하, 괜찮으시겠습니까?”


앞선 결정들에 노파심이 들었는지, 단 앞에 서 있던 진한 갈색 머리칼의 남자가 드물게 예를 어기고 물었다.


무엇 때문에 저리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 정도는 낼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알고 있을 텐데? 거역할 수 없는 큰바람이 불고 있다. 이 흐름은 막을 수 없어.”

“다시는 없을 기회이기도 하죠.”

“그렇지. 수백 년 만에 온 이 기회를 놓치기엔 너무나 아쉬워. 그렇지만 아이들에겐 잘못이 없다. 실패하더라도 죽는 건 우리만으로 해야 해.”

“말씀 받듭니다. ······다만, 호위는 가베인이 빈만큼 수를 늘리겠습니다.”

“허하지.”


황제는 예를 보이고 물러나는 남자―― 샤라즈 공작 너머의 나열한 신하들을 보았다.


공작과의 대화는 평범한 음성이었던 터라 다들 들었을 텐데도 비난이나 힐난의 낌새는 없다.


――제국을 위하긴커녕 본인의 핏줄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었음에도.


아들과 손녀를, 남자와 여자를 하나씩 보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자신과 다른 자식들이 죽더라도 남녀, 어느 한쪽만 살아있으면 피는 끊기지 않을 것이기에.


이러한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전원 가베인에게 내린 명령을 통해 다 알았을 것이다.


‘제국을 떠난다’란 말은 바로 그러한 의미였다.


보통 어떠한 명이든 제국을 떠난다는 말 따윈 넣지 않는다. 이는 제국을 버린다는 의미인데 넣기나 할까. 반역죄를 덮어씌울 것도 아니고. 로즈린느는 아직 어리기에 이러한 숨은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가베인도 이를 알아차렸기에 주변에서 의아하게 여기지 않을 선에서 부관을 요청한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그러나 이 모든 걱정도 성공한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 된다.


당연히 황제도 이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만사 모든 게 잘 풀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패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다만, 어떠한 이유든 이기적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아무런 면목조차도 없다.


하지만 황제에겐 감사나 사과 따위를 입에 올리는 건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니 대신 명하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제국과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그 목숨 짐에게 맡기도록. 걱정은 하지 말라. 위대한 폰타르트 제국은 해낼 것이다. 이 짐 또한 그대들과 최후까지 함께 하겠다.”


듣는 이의 몸이 떨릴 굳은 의지가 깃든 명.


이에 화답하듯 무릎을 꿇은 이들의 우렁찬 외침이 회장에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이제 제국편에 돌입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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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144 22.07.15 67 0 30쪽
166 설정 및 줄거리 요약. 루 몬테르, 세인트리안 외 기타편 22.07.14 77 0 27쪽
165 설정 및 줄거리 요약. 베르다드 편. 22.07.14 79 0 31쪽
164 설정 및 줄거리 요약. 나트알 편. 22.07.14 63 0 22쪽
163 143 22.07.14 66 0 36쪽
162 142-2 22.07.13 58 0 18쪽
161 142 22.07.13 74 0 28쪽
160 141 22.07.13 82 0 38쪽
159 140 22.07.13 66 0 39쪽
158 139-2 22.07.13 65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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