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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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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5.01 00:47
연재수 :
2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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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73
추천수 :
315
글자수 :
3,647,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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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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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41쪽

1XX (특별편)

DUMMY

특별편입니다. 본편과는 크게 연관이 없습니다.






“우움! 우으으음!! 돼, 됐다!! 완성이야!”


리아는 부르르 떨던 주먹을 치켜들며 환호했다. 그러자 근처에 누워서 한심하다는 듯 보던 커다란 고양이―― 페리는 하품도 멈추고는 벌떡 일어났다.



《엥? 정말로 그딴 걸 만들었다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아, 아니······ 누구라도 나랑 같은 생각일 거다. 그 전에 뭘 어떻게 하면 그런 괴상한 상상을 할 수 있는지나――》

“――부부! 그런 말은 이 완성품을 보고나 하죠?”


리아는 손안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는 안경을 들이밀었다.


‘다시 봐도 정말 잘 만들었다.’



《······작동은 하는 거냐? 그리고 애초에 그건 진짜 있긴 한 거고?》


황홀하게 안경을 보고 있던 리아의 눈빛이 까칠해졌다.


이만한 걸작을 보고도 저런 소리를 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더는 간과할 수 없던 리아는 책상에 있던 종이 묶음을 쥐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 말한다면 저와 함께 가보도록 하죠.”

《어, 어딜 말이냐.》


리아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래서 나한테 온 거야?”

“네!”


시원하게 긍정하는 리아.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의 이러한 반응에 마주 보며 앉은 그녀―― 방의 주인이었던 루비아는 진심으로 싫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묻기조차 싫긴 한데 참고 물을게. 어째서 나야?”

“뭐긴요. 당연히―― 아! 이걸 안 줬구나.”

“응?”


리아는 황급히 나설 때 들고 온, 귀중품처럼 안고 있던 종이 뭉치를 건네줬다.


제법 정성이 들어간 종이 뭉치는 표지도 있었는데, 그곳엔 ‘상품 기획안’이라 적혀있었다. 오른쪽 밑 구석엔 넘버링도 표기되어 제법 그럴싸한 형태의 보고서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숫자는 100.


그렇다. 기념비적인 100번째 아이디어 제출안이었던 거다. 그토록 많은 시도가 있었기에 기획안도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춘 것이었다.


‘물론 루비아 씨의 엄한 지도로 인해 확립된 것이긴 하다만.’


오늘 이날까지의 노고에 리아는 몸서리 쳤다.


루비아는 영 내키지 않아 했으나, 본인이 시킨 일이기도 하고 내용이 궁금했던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기획안을 읽어 내려갔다.


다른 때보다는 조금 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리아는 지켜보았고, 잠시 후 루비아는 종이 뭉치를 내려놨다.


제법 자신감이 있었던 리아는 기대심을 품고 평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미간에 주름이 잡힌 루비아의 입이 열렸다.



“기각.”

《당연히 그렇겠지.》

“역시나 괜찮은 기획―― 어? 왜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리아는 곧장 반발했으나 되려 루비아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이걸 누가 사겠냐?”


루비아는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페리마저도 커다란 울림통을 자랑하며 동의했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기념비적인 회차를 장식하려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거늘 어찌 이러한 처사를 인정하겠는가.


‘회심의 역작이라 확신까지 드는 판국에!’


다른 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그렇지만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고스트 서치’는 밀리언셀러에 등극할 초초인기 아이템이라고. 백방 웃돈을 주고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는 화젯거리인 물건이 될 것이다.


‘밀리언셀러가 책 이외에도 쓰이는 말이긴 했나?’


단어의 선정이 정확했나 의문을 품으면서도 리아는 소리쳤다.



“이번만큼은 루비아 씨가 틀렸어요! 이건 팔려요! 100%!”

“하아. 100번째라 애쓴 건 알겠고, 그래서 100%라고 강조한 것도 알겠는데······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이게 어떻게 팔리겠어? 이 ――귀신을 본다는 안경이 말이야.”


루비아, 그녀치고는 굉장히 질색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의 안경을 노려봤다.



“진짜 이딴 걸 잘도 팔 생각을―― 그 전에 정말 볼 수나 있긴 한 거야? 애초에 귀신 같은 게 있긴 한 거고?”

“당연히 멀쩡히 작동해서 볼 수 있죠! 귀신도 다, 당연히 있고요!”

“······만들긴 만들었는데, 귀신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는구나. 그러면서 잘도 볼 수 있다고 큰소리치다니.”

“아, 아뇨! 있어요! 비,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어요!”

“헤에······”


어딜 어떻게 봐도 루비아는 전혀 신용하고 있질 않다.


‘옛날에 희끄무레한 뭔가를 진짜 보긴 했었는데.’


딱히 그게 아니더라도 마법의 세계이고, 혼도 멀쩡히 볼 수 있는 세계이니 있을 확률은 훨씬 높지 않을까. 유령 타입의 몬스터 같은 것도 게임에서는 자주 등장하고 말이다.



“됐고. 어쩌다가 이런 괴상한 걸 만들게 된 거냐?”

“아~ 그게, 리카드 씨의 안경을 만들어주다가요.”

“그건 또······ 갑작스럽네.”

“헤헤. 예전에 잠깐 신세를 져서요.”


리아는 이전 리카드의 안경 패션쇼를 이야기했다. 영화감독의 기분을 낼 수 있었던 그때의 일을. 이번 기획안은 새 안경을 만들어주기로 스스로 약속한 것을 지켰던 것이었다.


모든 개요를 들은 루비아는······ 더더욱 질색했다.



“그럼 안경만 만들었으면 됐지 뭘 어떻게 하면 이딴 광기로까지 이어지는 거야?”

“과, 광기라뇨.”

“이게 광기가 아니면 도대체 뭐냐. 아이리스는 바빴어?”

“어······ 아이리스요? 음. 네. 친구들과 모여서 숙제한다고 했어요.”

“그럼 그렇지. 그 아이가 있었다면 이딴 바보짓을 하기 전에 말렸을 텐데. 아쉽게 됐어.”


루비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안경을 들어 올렸다.



“뭐······ 좋게 잘 만들긴 했네. 특히 다리의 이 경첩이. 정밀 세공이 진짜 장난이 아닌데? 드워프가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판국의 정밀도와 세밀함이야. 다만······ 안경 하나에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어?”

“당연하죠! 안경이란 즉, 눈!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계속 함께하는 건데 당연히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죠!”


리아는 옛날 사람이다. 정확히는 전생에서지만.


여하튼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거다. 노인의 기억이 생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리아에겐 안경이란 비싼 물건이고, 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시력이 매우 좋아 안경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안경은 더욱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로망으로까지 여겼었다.


이후 공정의 자동화와 생산 효율의 증대로 값싼 물건으로 전락하였음에도 한 번 머릿속에 박힌 이 이미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기왕 만드는 거 처음 리카드의 안경을 고쳐줄 때보다도 심혈을 기울이잔 생각을 했고, 자주 접었다가 펴, 쓰면 쓸수록 가장 사용감이 떨어질 경첩은 따로 설계까지 하였다.


물론 리아에겐 도면이라든가 설계의 지식 따윈 없다. 그렇지만 지구에서와는 달리 절대 까먹지 않는 기억력이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리아는 하나하나 더듬어 가며 나사 하나까지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자면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는 리아에겐 단순노동과도 비슷한 일. 설계에 미스가 있으면 계속 수정해서 반복적으로 동작 여부와 내구성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아이의 도움도 있고 해서 생각보다는 이르게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저 안경으로――


원래는 리카드에게 줄 물건이었다.



“아앗?!! 실수했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루비아는 살짝 인상을 썼다. 그렇지만 왜 리아가 저러는지를 한눈에 알았는지 그녀는 안경의 도면이 그려진 장을 게슴츠레하게 보았다.



“어쩐지 대중화를 노린 것치고는 쓸데없이 품삯이 많이 들겠다 싶더라니. 술식만은······ 꽤 간당간당하게 합격점이지만. 아니. 애초에 이거 뭐야? 세세한 부분에선 전부 심상마법이잖아. 장난해? 그 이전에 공방을 구하기나 마땅찮아 보이는데? 셀레스테 쪽에 맡겨도 되겠다만, 지금 하는 일이 있으니 대량 생산은 무리고. 다른 데에 맡기자니 실력이 딸려서 무리. 그리고 금속은 이게 뭐야? 티타늄 합금?? 뭐랑 혼합한 거고, 조합비는 어떻게 되는 건데 이거. 가장 중요한 걸 안 써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조합비······ 같은 게 있나요?”

“합금이 왜 합금이겠냐? 뭔가랑 합쳤으니 합금이지. ······아. 알겠다. 이거 생성 계열의 마법으로 만든 거였냐. 즉, 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금속이라는 거지? 너 진짜 재주도 좋아. 별걸 다 할 수 있고.”

“루비아 씨는 아직 못 하나요?”

“그래. 너처럼 후딱 습득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생성 계열은 나랑 안 맞는 느낌이야. 어떻게 해야 할지 영~ 감을 모르겠네. 일단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볼 요량이지만.”

“루비아 씨라면 금방 해내실 거예요. 델리안도 쉬운 거라고 그랬거든요.”

“칫.”


루비아가 혀를 찼다.


그 모습이 의아했던 리아였지만······ 즉시 눈을 내리깔았다. 이는 불량스러운 얼굴로 입꼬리를 내린―― 공주로서는 어떨까 싶은 친구의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함으로, 결단코······ 쫄아서가 아니었다.



“그렇군요······ 으음. 그럼 금속은 어떡하지?”


비교할 사람과 비교해야지, 라며 투덜거린 루비아는 불만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원체 질질 끄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과자 하나를 집어 먹는 것으로 끝내고 말을 받아줬다. 여전히 표정은 어딘가의 불량배나 일진 같았지만.



“어떡하긴. 널리 쓰이는 티타늄 합금을 써야겠지. 철이나 구리 같은 걸로 다운그레이드하고 싶진 않을 거 아냐?”

“품질을 낮추다니 그야말로 언어도단! ――이지만, 현실적으론 타협해야 하나? 하지만 금속을 바꾸면 내구성에 영향이 생기는데······”

“이걸로 쓰면 어때?”


테이블 위에 있던 물건을 루비아가 쓱 내밀었다.


그 물건이란 바로······ 그녀가 평소 자주 애용하던 부채였다.



“엥?! 이거 루비아 씨의 마법 지팡이잖아요! 루비아 씨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이걸 어찌――”

“――그만. 멍청한 소리 좀 하지 마. 누가 이걸 부셔 먹으랬어?”


탕탕.


루비아는 손톱으로 부채를 두들겼다. 조금 짜증 나 보인다.



“여기에 쓰인 티타늄 합금 말이야. 이걸로 대체하면 어떠냐고 묻는 거야.”

“응?”


리아는 고개를 갸웃하고 부챗살이 금속으로 된 부채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거 철선 같은 거였죠. 어? 근데 티타늄 합금······? 엥? 루비아 씨! 이 부채도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거였어요?! 그보다 티타늄이 있었어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연히 있지. 애초에 넌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티타늄 합금을 만든 거야?”

“어······ 아, 아뇨. 그게······ 아! 맞아요. 에르! 에르가 견본을 보여줬어요! 예전에 마도구 제작 수업에서도 여러 금속을 꺼내기도 했잖아요. 그중에 있던 거였어요!”

“그래그래. 뭐, 그렇다고 해둘게.”


신뢰의 ‘신’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루비아. 어딜 어떻게 봐도 조금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리아는 삐질 땀이 흐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실직고할 순 없지 않은가.


전생에서 본 물건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고는 말이다.


그렇기에 조합비라는가 혼합된 금속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리아는 감각과 기억에 의존해 그저 이름만을 티타늄 합금이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아, 암만 루비아 씨라도 이건 읽진 못하겠지. 진짜 관심법도 아니고. 둘러댔다는 건······ 아무래도 들켰겠지만. 그리고 역시 마법은 사기야. 원리나 구성을 전혀 몰라도 이미지만 있다면 그 어떠한 것도 가능하니.’


헛기침한 리아는 화재도 돌릴 겸 부채를 들어봤다.


부채는 루비아의 머리카락 색보다도 조금 진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속살은 종이 대신 새하얀 이름 모를 꽃이 그려진 주황색의 천이 사용됐는데, 바람을 불어야 하니 빳빳한 건 당연하지만 그 촉감만큼은 엄청 부드러운 게 비싼 물건임을 예상 가능케 하였다.


이렇게 부채는 눈길을 끄는 요소들이 많다 보니 티타늄 합금이 쓰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그냥 봤어도 몰랐을 거 같은데. 내가 무슨 장인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봐. 으음······ 근데 이거 왠지 코팅이 아닌 거 아냐? 뭔가 덮어씌운 느낌이 없는데. 금속의 재질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루비아 씨. 이거 부챗살이요. 색은 어떻게 낸 거예요?”

“난들 어떻게 알아. 너 자주 까먹는 거 같은데 나 공주님이다? 그런 대장장이의 일을 이 내가 알 리가 있겠냐?”

“그, 그런 게 아니라 전 그냥 박식한 루비아 씨라면 아실까 해서 물은 건데······”


루비아의 성질을 긁는 건 사양이다. 얌전히 부채나 살펴보도록 하자.


아쉽기는 하지만 리아는 부채를 살짝 두들겨보기도 하면서 대체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결론은 금방 났다.


티타늄 합금이라 불리는 만큼 루비아의 부채도 꽤 단단하고 가벼웠다. 그렇지만 마감이랄까, 현미경처럼 아주 세밀하게 살펴보면 그 구조의 치밀함이 조금은 느슨하다. 이에 따라 만져지는 촉감 또한 미세하게 거칠다.


하지만 조금 질이 떨어지긴 정도로 안경에 쓰인 티타늄 합금과는 큰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대체재로서는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그렇게 확인을 마치자마자 루비아가 말을 걸었다.



“그거 제법 괜찮지?”

“그렇긴 한데······ 이거 엄청 비싸지 않아요?”

“당연. 이 나도 쓰는 건데 비싸지.”

“그, 그럼 쓰기가 좀 곤란해요. 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 아녜요. 좀 성엔 안 차지만 단가를 낮추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겠어요.”

“아니. 그냥 고급화 전략으로 나가는 편이 좋을걸?”

“어. 왜요?”


루비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상식적으로 이딴 이상한 거에 돈을 쓸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 어지간히도 재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손도 안 가겠지. 그나마 기묘한 물건에 수집욕이 생긴 괴짜들만 눈독 들이지 않겠어? 그러니 안경의 완성도나 높여서 비싼 값을 치르는 게 훨씬 이득이야. 티타늄 합금도 비싸긴 하지만 미스릴이나 아다만티움보다야 한참 싸. 비교적 구하기도 쉽고. 적어도 네가 만든 이 처음 보는 금속보다는 말이지.”

“오! 그건 정말 다행이에요. 전 이대로 제 걸작이 묻히는 줄―― 응? 루비아 씨. 왜 거들어 주시는 거예요? 아까까지만 해도 기각이라면서요.”


어이없다는 듯이 루비아가 본다.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기각해봤자 너 몰래 필므 쪽에다가 물건 좀 보내서 팔아보려고 했을 거 아냐?”

“그, 그걸 어떻게?!”


진짜 관심법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루비아의 말대로 정말 소량이지만 멜리다 상회에 납품하여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려고는 했었다. 그 정도라면 대량 생산할 필요도 없고 하니 말이다.


그걸 이리도 정확하게 읽힐 줄이야. 정말 놀랍다.


하지만 경악에 찬 눈으로 바라보니 오히려 루비아는 더욱 한심스럽다는 듯이 보았다. 그렇지만 역시나 츤데레.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한숨을 쉬는 걸로 그쳤다.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보이는 곳에 놔두는 게 좋겠지. 필므 그 바보가 거절할 리도 없고.”


다시금 한숨을 쉰 루비아는 턱을 괬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된 물품이어야 해. 알겠어, 리아? 멜리다 상회는 이제 막 입소문이 나고 있는 소상공인이야.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란 거지. 이런 시기에 악평이 발생하는 건 사절이야. 기껏 여기까지 쌓아 올렸는데 되돌아가긴 정말 너무나도 화가 나거든.”


여기까지 말한 루비아는 공주에 걸맞은 압박감을 풍겨왔다.



“너도 충분히 이해했다는 전제하에 물을게. 그거 그냥 고급품의 안경으로 팔 거야? 아니면 정말 귀신을 탐지하는 물건······ 고스트 서치인가로 팔 거야?”


루비아가 이리 진지하니 리아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녀가 이리 말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러나 대답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결정은 끝났다.



“네. 이건 고스트 서치. 밀리언 히트 상품이에요!”

“좋아, 알겠어. 그럼 가볼까?”


산뜻하게 말한 루비아가 훌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떨결에 따라서 일어난 리아는 물었다.



“어딜 가는 거죠?”


질문을 받은 루비아는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달렸다.






“네, 그렇군요. 그래서 이번엔 저에게로 온 것입니까, 루비아 님?”


그렇게 말을 한 그녀는 데자뷰인지 아까 어디서 본 사람처럼 인상을 쓰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물론 루비아에게만이다. 방의 주인인 그녀―― 라프리트는 또 다른 갑작스러운 방문객 중 한 명인 리아에겐 환한 미소로 응접하였다.



“어서 오세요, 리아 양. 출출하진 않아요? 마침 간단하게 요깃거리 할 다과들이 들어왔답니다.”


돌변하듯 표정이 휙휙 바뀌는 그녀의 모습에 리아는 순간 움찔했으나······ 달달한 유혹을 이길 순 없었다.


곧바로 헤벌쭉이 된 리아는 왜 왔는지도 잊고 기대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대화에는······ 조금의 관심조차 가지질 않았다.



“그럼. 안네가 준비를 다 하기 전에 이야기나 들어보죠.”

“응? 다 알아들은 거 아니었어?”

“하아. 용건을 듣지도 않았는데 어찌 알겠나요. 전 루비아 님이 아닙니다.”


못마땅한 듯 루비아는 턱을 한껏 끌어올리고는 내려다보는 것처럼 라프리트를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아까웠던지 평소와 달리 티격태격하진 않고 루비아는 바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미안. 솔직히 내가 너무 무리한 걸 주문했어. 제아무리 나라도 이딴 이야기를 듣고 추측하기란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조금 생각이 짧았어.”


사심이 조금도 없는, 순수하게 사과의 말을 전하는 루비아다.


그랬다. 그녀는 시간을 아까워한 게 아니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납득 못할 이 사태를 남에게 이해하길 강요한 게 미안했던 것이었다.


저 루비아가 솔직히 미안하다니 제법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찌릿 노려보는 루비아가 무섭기에 리아는 무관계인 사람 마냥 숨을 죽이고 다과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이번엔 정말 시간이 아까웠던지 루비아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용건은 간단해. 이 근처에 그게 있는 곳이 어디야?”

“그게 뭐죠?”

“뭐긴 뭐야. 귀신인가 뭔가지. 후작 가이니 그런 게 있을 만한 곳의 정보가 나름 들어올 거 아냐.”

“······저와 저희 집안을 도대체 뭐로 보시는 겁니까?”

“아이씨. 네 개인적으로도 알고 있는 게 있을 거 아냐. 대충 넘어가라 쫌.”

“그런 정보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공국에서는 후작 가가 유령이 있을 만한 곳의 정보를 수집하고 그럽니까?”

“그러겠냐.”


루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검증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군.”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는 루비아가 제법 측은했는지 라프리트는 잠시 고민하였다. 그러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을 번쩍 떴다.



“있어요!”

“응? 뭐가.”

“정보요. 그런 정보가 모일 곳을 알아요.”

“오~! 설마 왕형이야? 막상 찾자니 귀찮았는데 알아서 안내해준다니 고맙네.”

“······왕형이 뭔가요.”

“다 아는데 새삼스럽게 구네.”

“헛소리는 그만하시고.”

“헛소리?!”


눈을 부라리는 루비아가 무섭지도 않은지 라프리트는 무시하고 오묘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사설이지만 루비아 님은 자체적으로 정보를 모으고 있으시잖아요. 그걸 활용하신다면 정보 정도야 금방 구하실 텐데 왜 그러지 않으신 겁니까?”

“당연하잖아?”


고개를 갸웃하는 라프리트에게 루비아는 맥이 빠진 목소리로 말하였다.



“네가 내 입장이 돼봐. 갑자기 애들에게 귀신이 있을 곳을 찾아보란 정신 나간 소리가 쉽게 나오겠냐?”

“······.”

“명색이 공주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가당키나 하겠어? 그리고 그딴 일로 움직일 애들을 생각해봐. 와. 아무리 나라도 미안해서 자괴감이 드는걸.”

“조, 조금 오버하시는 거 같기도 하지만······ 뭐, 이해는 합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어서 말이나 해봐. 알고 있을 만한 녀석이 누구인데?”

“정말 조급하셨나 보네요. 평소이시라면 바로 알아차리셨을 텐데. 저에게 오지도 않으셨을 테고.”

“잔소리는 됐어. 빨리 말하기나 해.”

“자, 잔소리요?!”


씩 웃는 루비아. 한 번씩 덕담을 주고받은 그녀들이었다.


조금 울화가 치민 듯도 하였지만 라프리트는 이 이상 쓸데없는 데에 힘을 쏟고 싶지 않았던지 꾹 눌러 담았다. 그런 라프리트는 검지를 세웠다.



“당연히 갈 곳은――”






“――예? 그래서 제게 오신 거라고요?”

“아아. 그거 벌써 봤던 거여요. 질리니 그만 놀라시어요.”

“어······ 예. 아, 알겠습니다.”


도움을 얻으러 와놓고는 너무나 고압적이고 강압적인 루비아다.


보는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지만······ 리아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내, 내 까까······”

“쯧.”

“리, 리아 양. 여, 여기 좀 챙겨왔어요!”


잔뜩 흐렸었던 낯빛이 밝아진 리아는 안네가 건네오는 봉투를 받았다.


예의가 없는 건 알지만 곧바로 안을 열어 확인해보니······ 많진 않지만, 종류별로 두어 개씩 다과들이 담겨 있었다.



“오오.”


‘역시 라프리트 씨는 상냥하셔!’


적어도 눈앞에서 하나도 먹을 시간도 주지 않고 가자고 한 루비아보다는 천사임엔 확실하다. 아니, 그런 잔혹한 짓을 당연하다는 듯이 행하는 그녀와 비교해서는 라프리트에게 실례다.


‘암. 그렇고 말――’



“――응?”

“아뇨. 아무것도 아녜요.”


누가 루비아 아니랄까 봐 굉장히 민감하다.


째려보는 루비아의 시선을 피한 리아는 다과가 든 봉투를 귀걸이에 집어넣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츠카 씨의 방엔 처음 와 보네요.”

“확실히. 나도 동쪽 기숙사 방을 보긴 처음이네.”

“저도······ 직접 와보긴 처음이네요.”


그렇다. 이곳은 동쪽 기숙사. 작은 괴도단의 멤버인 츠카의 방이었다.


듣긴 했지만, 서쪽 기숙사보다 거의 10배쯤은 작은 게 제법 차이가 있었다. 좋게 말하면 세면시설이 갖춰진 원룸이랄까. 듣기엔 투룸도 있다고 했다만 여긴 아닌 모양이다.


놓인 갖가지 물품 또한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급이 떨어진다. 아니, 침대랑 책장, 공부할 때나 쓸 긴 책상과 자그마한 원형 테이블이 전부인 츠카의 방은 조금 휑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쓰인 나무의 질 자체는 나쁘지 않다. 꽤 고급품을 사용했는지 제법 중후한 느낌을 풍겼다.


그리고······


리아는 슬쩍 옆을 봤다.


굉장한 동행인들.


친구인 그녀들은 내로라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어 많은 관심 어린 시선들이 쏟아졌으며, 츠카의 방에 도착했을 때는 절정에 달하였다.


지금도 귀를 기울여보면 문밖에서 “어째서.”와 같은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저기! 제, 제방은 아무래도 조, 좋지 않으십니까? 그것보단 어, 어서 용건을 마치심이?”

“뭐어······ 그렇긴 하네요. 바글바글하니 좁기도 하고요.”


츠카의 방은 생각보단 넓긴 했지만 레딧츠나 안네, 에르에 덩치 큰 고양이까지 있으니 확실히 비좁다.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 양해를 구해 츠카의 침대에 앉아있는 실정이다. 어서 이야기를 듣고 나가는 게 그에게도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리아는 힐끔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꼈다.



“응? 왜 그러세요, 츠카 씨.”

“아, 아뇨!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츠카의 행동거지가 너무나 수상하다.


지긋이 그를 보던 리아는 문득 든 생각에 자신을 따라 침대에 앉은 그녀, 라프리트를 쳐다봤다. 참고로 루비아는 원형 테이블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다.


츠카는 차마 본인도 앉진 못하겠는지 책상 앞에 의자가 있음에도 서 있었다.


‘그런 거군.’


그야 신경이 쓰일 것이다.


――흠모하는 여성이 본인 침대에 앉아있다면 말이다.


평소 침착한 그였기에 잘 몰랐지만, 지금도 안 보는 척 힐끔힐끔 눈길을 주는 걸 보면 확실하다.


츠카. 그는 라프리트를 맘에 두고 있는 거다!


리아는 흐뭇한 기분에 자꾸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아냈다. 이럴 때야말로 어른의 여유와 관록을 보여줄 때이기에.


물론 괜한 주선 따위도 하지 않는다. 그러한 행위가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전생을 통해 수차례 봐왔기 때문이다. 단지 따스한 눈으로 지켜볼 뿐이다. 마음속으로 응원하면서 말이다.


‘응. 힘내요, 츠카 씨!’


상대는 후작가의 아가씨. 절대로 쉽진 않을 거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간 그녀의 아버지인 리벨리타스 후작도 인정해주지 않을까.


머나먼 일을 그려 본 리아는 그 광경이 제법 흡족했다.


정말 너무나 달콤한 나머지······ 과자가 당긴다.


그렇게 리아는 또다시 관전인 모드가 되어 미소와 함께 다과를 꺼내 먹었다. 물론 남의 침대이니 흘리지 않게끔 조심했다.



“귀, 귀신이 나오는 곳이요?”

“루비아 님의 설명을 보충하자면 그러한 소문이 들리는 곳이 있느냐 하는 거죠. 각 지역에서 정보가 모이는 상인 조합이라면 이야기 정도는 들으셨을 것 같습니다만.”

“어······ 예. 너무 해괴망측한 이야기들이라 귀담아듣진 않았지만, 확실히 그런 소문이 도는 곳들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루비아는 바로 물었다.



“위치는. 장소는 알고 계시어요?”

“다는 모르지만 유명한 곳들은 좀 알고 있습니다, 공주님.”

“그래요? 그럼 안내해주세요.”

“지, 지금 바로 말입니까?”

“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서둘러 확인하고 싶네요.”


다른 말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한 루비아의 확고함에 츠카는 별다른 이의를 꺼내지 못했다.



“그럼 어서 가보도록 하자―― 리아, 너.”

“우음. 꼴깍. 캬―― 앗! 오, 왜요, 루비아 씨.”

“······.”


대답 대신 루비아는 황당함을 가득 담아 리아와······ 곁에 대기하고 있는 에르를 쳐다보았다.



“진짜 팔자도 좋네. 이 와중에 우유를 마시고 있――다기 보다, 그건 또 언제 준비해놓은 거야 정말.”

“그, 그보다 지금 출발하신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얼른 다시 집어넣어.”


말만큼은 사근사근했으나 리아는 느꼈다. 그 안쪽에선 얼음과도 같은 싸늘함이 있다는 것을. 그저 츠카가 있기에 본성을 감추고 있는 거다.


살짝 몸을 떤 리아는 서둘러 컵을 에르에게 돌려주려 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꽂혀있던 빨대가 떨어졌고, 무의식중에 리아는 손을 뻗어 빨대를 잡았다.


그리고······


주르륵.


반대 손으로 잡고 있던 컵이 기울어져 남아있던 우유가 흘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거의 다 마셨기에 양이 별로 되지 않았다는 걸까.



“아앗?!”

“뭐 하는 거야 정말.”

“괘, 괜찮습니다. 제가 나중에 정리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죄송해요, 츠카 씨.”

“아뇨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이스피리아 님껜 튀지 않으셨습니까?”

“네. 저는 괜찮은데······”

“저도 정말 괜――”

“――그만. 다들 그만하고 어서 가도록 하죠? 흘린 거야 어차피 청결마법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네?”


오오. 무섭다.


안광이 번득이는 듯한 루비아의 재촉에 리아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문밖을 나섰다. 따라오는 페리가 바보라고 놀려대 울컥했지만 주춤할 순 없었다.


그렇게 밖을 나오니――


많은 학생이 방 앞에 있었다. 그중 바로 앞에 있던 학생은 살짝 식은땀을 흘리면서 어색하게 웃음을 보였다.



“응?”

“시, 실례했습니다!”


고개를 갸웃하니 앞에 있던 학생은 소리쳤고, 그 뒤를 따라 다른 학생들도 실례했다며 외쳤다.


그리고는 우르르. 흩어지는 개미 떼처럼 뒤돌아 사라졌다.


한순간에 텅 빈 복도.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리아는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반대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는 그쪽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난리지?”

“그, 그러게.”

“어라. 필므 씨랑 셀레스테 씨?”

“엇?! 이, 이스피리아 님!”

“그리고 라프리트 님과······ 소, 소베르비아 공주님?!”


이쪽을 확인한 둘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더니 만면 가득 환한 미소로 달려왔다.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이스피리아 님.”

“누, 누추하다뇨.”


‘필므 씨! 츠카 씨의 방을 보면서 그런 말을 하시면 안 되죠!’



“고, 공주님을 이런 곳에서 뵙게 된다니······”

“아, 고마워요, 셀레스테 양. 하지만 시간이 없다 보니 차분히 담소를 나누는 건―― 아니, 마침 잘됐네요. 여러분들 시간은 괜찮으신지?”

“······네?”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필므와 셀레스테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야. 이스피리아 님이 오셨단 소릴 들었을 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생각했는데 속는 셈 치고 보러 오길 잘했어. 감히 방까지 모실 수 있었던 츠카 녀석은 괘씸하지만.”

“응. 나도 설마 하면서 왔는데 정말 다행이었어. 덕분에 공주님도 만나 뵐 수 있었고. 츠카는······ 부러워서 샘이 나지만.”

“아, 아니, 둘 다 왜 나한테······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차갑게 보는 둘에게 변명하는 츠카.


그런 이들이 있는 곳은 아네픽시르의 상공으로, 옹기종기 앉아있는 그들의 발밑엔······ 파란색을 입힌 보호막이 있었다.


그렇다. 이전 체험학습 때에도 사용했던 이동 방법이었다.


굳이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루비아의 강력한 의견 탓으로, 말이나 여타 다른 이동 수단으로는 느리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리아로서도 기왕이면 빨리 일을 보고 끝냈으면 했던 터라 이견은 없었고, 현재 목적지로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중이었다.



“츠카 씨. 슬슬 도착하지 않았나 싶은데 어디쯤인가요?”

“아, 옛! 어디 보자······ 아! 저깁니다.”


츠카가 가리키는 방향엔 제법 만듦새가 괜찮은 돌다리가 있었다. 관리도 나름 잘하고 있는지 커다란 흠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거기다 사람까지 꽤 다니는 게······ 이래저래 아무리 봐도 그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미심쩍지만 츠카도 소문의 영역인지라 별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으니 차마 실망할 순 없으리라. 게다가 아직은 확인하기 전이다. 섣불리 단정해선 안 될 것이다.


발판을 다리 근처로 대니 지나가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쳐다본다. 그런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리아들은 다리에 내려섰다.


멀리 있던 경비병들도 이 모습을 보았는지 빠르게 다가왔다. 엄청 신속한 것이 생각보다도 치안이 좋다.



“저, 뉘신 지?”


2인 1개 조로 보이는 경비병은 하늘에서 내려온 수상한 자들임에도 행동거지부터 품위가 느껴지는 루비아와 라프리트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특히 슈페리얼 래퍼드인 페리를 보고선 눈을 부릅뜨고는 움츠러들었다. 어쩌면 시선이 모인 원인의 절반은 페리 때문은 아닐까도 싶다.


그런 경비병에게 루비아는 대답 대신 톡톡. 리아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으으······ 차, 창피한데.’


하지만 루비아에게 거역하기란 상당히 곤란한데다가 어찌 됐든 결국 신원을 확인해야만 한다.


마음을 굳힌 리아는 뻣뻣하게 앞으로 나섰다.


구경꾼들의 시선도 잔뜩 쏠린 가운데 경비병은 의아한 눈으로 앞으로 나선 리아를 쳐다봤다.



“저, 저기 이걸······”


리아는 말린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경비병들은 난감하다는 듯 서로 미루듯 받아들기를 주저했다.


보다 못한 라프리트가 말을 꺼냈다.



“수상한 술식이 있거나 하지 않답니다, 여러분. 리아 양, 천천히 조심스럽게 펼쳐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 네.”


그녀의 지시대로 리아는 천천히 두루마리를 펼쳐 안의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잔뜩 경계하고 있던 경비병들은 빼곡히 글씨만이 적힌 것을 보고 그제야 어깨에 힘을 풀었다.


그제야 리아도 왜 이들이 경계했는지를 깨달았다.


경비병들은 혹여나 두루마리 안에 공격용 술식이 그려져 있는 걸 경계한 것이다. 만약 술식이 있다면 마력만 주입하면 간편히 마법을 쓸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리 조심하는 모습을 보면 생각보다도 더 빈번한 수법인가 본데?’


뜻하지 않게 술식마법의 활용법을 배우게 된 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두루마리 내밀었다.


이번엔 사양하지 않고 두루마리를 받은 경비병은 찬찬히 안의 내용물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이 서서히 커진 그들은 제일 밑단에 있는 도장에 시선이 가고······


척, 척!


자세를 바로잡더니 경례하였다.



“시, 실례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경비병의 모습에 주위는 웅성거렸다.


그것이 무지하게 창피했던 리아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괘,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경례는 그만두세요.”

“어, 예. 아, 알겠습니다.”


절박한 외침에 경비병들은 서로를 보더니 얼떨떨해하면서 손을 내렸다.


일단 말을 들어주어 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실례하옵니다만······ 최고 국빈께서 왜 이런 곳에? 그것도 하늘에서······.”


다행히 경비는 눈치가 있는 사람이었는지 작게 물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답이 술술 나오는 건 아니었으니. 리아는 구원요청을 바라는 눈빛을 뒤로 보내었다.


그런데······ 그 눈빛을 받은 루비아는 끼기도 싫다는 듯 눈을 피했다. 보아하니 절대 나서지 않을 요량이다.


설득은 할 수 없다. 리아는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인 라프리트를 보았다.


잠시 머뭇거린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크게 숨을 토해내고는 구원에 응해주었다.



‘역시 라프리트 씨야!’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라프리트를 보는 동안 그녀는 경비병들에게 상황을 설명하였다. 다만, 그녀 또한 설명이 제법 곤란한지 목소리가 작았다.



“별일은 아니고, 그게······ 이곳에서 마차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하여 왔습니다.”

“마차 사고요······? 아~ 예, 맞습니다. 사고 자체는 그리 없지만, 사고가 났다 하면 유독 보석을 실은 마차가 자주 사고를 당했습죠. 징크스라고 하던가요? 그래서 보석의 운반은 이쪽으로 잘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혹시 그걸 조사하시러 오신 겁니까?”

“뭐어······ 그,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오오! 최고 국빈과 일행분께서 직접! 그것참 감사한 일입니다. 혹여나 저희가 도울 건 없으십니까?”

“아, 아뇨. 말 그대로 조사만 하는 터라 간단하게 보는 것뿐이니 괜찮습니다. 일도 있으신데 미안하고요.”


이리 말했건만 경비병들은 꽤 감동하였는지 꼭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다며 한사코 돕겠다고 하였다. 라프리트는 반대로 사양했고.


한동안 말씨름을 이어가던 이들을 중재한 것은 여태 구경하고 있던 리아로, 사실 리아는 본 것이었다. 루비아의 관자놀이에 살포시 핏줄이 솟는 것을.


모두를 위해 루비아가 폭발하는 사태만은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그래서 재빨리 중재하여 최종적으로 경비병들은 리아들이 있는 곳의 인파와 교통을 통제하여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결정되었다. 물론 완전히 막는 건 아니다. 그저 살짝 옆으로 돌아가게끔만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실랑이 때문이었는지 인파가 더 많아지지 않았나 싶은 기분을 느끼며 리아는 일행들을 이끌고 다리를 거닐었다.


다리는 마차 2대가 제법 빡빡하게 지날 수 있을 폭에 길이는 약 20m. 그리고 밑에는 수로가 흐르고 있는 흔하게 볼 법한 모습이었다.



“야, 리아. 그 안경은 왜 안 끼냐? 그거 성능을 검증하러 왔는데 말이야.”


걷는 도중 무지하게 불만 가득해 보이는 루비아가 말을 걸었다. 얼른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는 기분이 잘 전해진다.



“맨눈으로도 괜찮을 거 같아서요.”

“뭐······? 아하. 그렇게 된 거로군. 과연. 그딴 괴상한 물건이 뜬금없이 튀어나온 건 아니라는 건가.”


뭘 이해한 건가 싶었다만 루비아는 거기서 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대신 안경을 츠카에게 넘기라 해서 그가 성능 측정을 맡기로 했다.


츠카는 사양했다만 어차피 도수도 없는 거고, 루비아의 말대로 성능은 확인해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안경에 힘들면 필므가―― 자기가 줄곧 끼고 있겠다며 의욕이 넘쳐흐르는 그가 있으니 교대하면 될 것이다.


크지 않은 다리이다 보니 금세 한 바퀴를 돌았고······ 리아는 좌절했다.



“아,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게. 마차 사고가 자주 났던 건 그냥 우연의 일치 아냐? 유독 보석이 실린 마차가 많았던 것도 단순 우연이고. 얼추 보기에도 사고는 날만 하잖아?”

“그, 그래도 아직 한 바퀴를 돌았을 뿐이잖아요. 뭔가 놓치고 지나갔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아······ 진짜 괜히 따라왔나 봐.”

“어? 그러고 보니 루비아 씨는 어쩐 일로 같이 오신 거예요?”


이런 일에는 절대 끼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차마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속뜻을 눈치챘는지 루비아는 힐끔 내려다봤다. 그 싸늘한 눈빛에 리아는 흠칫했다.


잠시 그대로 노려보던 루비아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번만큼은 다른 사람이 확인하게 할 수도 없으니 온 거잖아.”

“미, 미안해요. 바쁘실 텐데 괜히 불러내서······.”

“······됐다. 됐으니까, 얼른 끝내고 돌아가기나 하자.”


저 루비아가 귀찮게 걸어 다님에도 불구하고 저리 말해주는 것이다.


꽤 의욕이 살아난 리아는 페리에게 물어보았다. 별로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나름대로 야생에 있던 고양이.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무언가를 느꼈을 수도 있다. 참고로 도중 “아앙?!”이라며 성을 낸 루비아는 보지 못한 걸로 했다.


그렇게······


따끔한 고통이 느껴지는 머리를 부여잡은 리아는 페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너 정말 다른 의미로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쓰, 쓸데없는 말은 됐어요. 그보다 어때요. 뭐 느껴지는 거 없어요?”

《너나 네 남편이 느낀 게 없는데 내가 뭘 느낄 리가 있나.》

“오. 맨날 바보 취급하면서 의외로 높게 봐주네요?”

《앙?! 혹이 하나 더 늘고 싶은 거냐!》

“아, 아뇨.”


역시나 고양이에게 무언갈 기대하는 게 잘못됐다. 괜한 분풀이나 당하고.


툴툴거린 리아는 여태 조용히 따라오기만 한 에르를 올려다봤다.



“에르는 어때요? 뭐 이상한 점이라든가 보이나요?”

“있기는 해.”

“역시 에르! 늘어진 어딘가의 고양이와는 달라요!”


페리가 무섭게 울어대며 반발했지만, 이미 리아의 관심사에선 한참 벗어났다. 기대 가득하니 에르를 올려다봤다.


그 모습이 재밌었던지 에르는 피식 웃고는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볼을 빨갛게 물들인 피해자들을 속출시키며. 물론 당사자만 알지 못하였다.



“저기 다리 밑에 묘한 마법이 설치되어있어.”

“다리······ 밑이요?”

“응. 리아도 한 번 보면 알 거야.”

“으음······ 어? 진짜 있네.”

“리아 양, 뭐가 있다는 건가요?”

“아, 라프리트 씨.”


돌아보니 그녀 말고도 전원 설명을 바라는 눈치다. 이럴 때는 일일이 설명해주기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편이 빠르리라.


리아는 모두를 이끌고 마법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데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올 때도 사용했던 파란 발판을 만들어냈다.


훌쩍 올라탄 리아는 손짓했다.



“다들 타세요. 이 밑이에요!”

“알겠습니다!”


곧장 대답하며 올라탄 것은 필므 뿐으로――



“실례하겠습니다.”


아니다. 츠카도 뒤이어 군말 없이 바로 올라탔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할지 서로를 보며 의견을 주고받는 듯하였으나, 별수 없었는지 루비아를 필두로 다들 발판에 올라섰다.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못한 경비병들은 다리 위에 남겨두었다.


혹여나 떨어지지 않게 벽도 만들어 닫은 리아는 천천히, 그러면서도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서둘러 다리 밑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아치형의 다리 밑에서 리아는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요. 저기에 술식이 그려져 있어요.”

“모르겠네······. 레딧츠, 너는 알겠어?”

“미세하긴 하지만 감각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그래? 리아. 저건 무슨 마법이야?”

“으음······ 대충 보기에는 지정된 위치에 응축된 바람을 쏘아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때 놀란 외침이 울렸다.



“보인다! 저게 말씀하신 술식이군요.”


외친 사람은 츠카로, 그는 끼고 있던 안경을 추켜 올리면서 술식이 있던 자리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츠카, 어딜 말하는 거야?”

“저기에―― 아, 잠시만. ······이스피리아 님.”

“네?”

“괜찮다면 셀레스테에게도 안경을 잠시 양도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구, 굳이 허락받지 않으셔도 돼요. 편한 대로 돌려보세요. 네. 편한 대로요.”

“감사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를 전한 셀레스테는 조심스럽게 안경을 썼다. 제법 날렵하고 시크한 디자인이라 귀여운 그녀에겐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조금 아쉽다고 생각하면서 보고 있으니 셀레스테가 다리 밑을 올려다보고는 소리쳤다.



“우와~! 정말 보여. 술식만 이리 잘 보이고 신기하네. 대단해요, 이스피리아 님!”

“헤헤. 뭘요.”


쑥스러움에 뒷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으니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작가의말

실은 100화 기념 특별편입니다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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