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큐피트.
로마 신화의 사랑의 신으로 날개를 달고 있고 사랑의 화살을 쏘는 변덕스런 아기신이다. 이 신이 쏘는 화살에는 사랑의 힘이 담겨 있어, 맞은 순간 그 사람이 보고 있는 사람한테 사랑을 빠진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커플의 사이를 이어주는 사람을 큐피트라고 부르곤 한다.
왜 이걸 설명하고 있냐고? 설명하지 않고서는 이 난장판을 설명하기 힘들 거 같아서다.
"하아아아아아."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있었고 그 옆에는 미모의 여학생이 기절해 있다.
현재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와 내 친구의 사이를 잇는 큐피트로서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나와 그 여자애 둘만이 있다.
우웅. 우웅.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수신자는 확인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전화 올 사람은 뻔하니까.
"어디야!?"
- 난 이 썩을 놈 머리끄댕이 잡고 밖에 나왔지.
"아니......하......이렇게 그냥 냅두면 어떡하라고?"
-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아주 당당하다. 목소리에 흔들림조차 없다. 쥐고 있는 핸드폰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간다. 물론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 너 내 역할이 뭔지 몰라?
"똥쟁이."
- 야이씨. 여자한테 무슨 말을. 나는 똥은 하루에 한 번 씩만.........아니, 이 쓰레기는 여자한테 무슨 말을 하게 하는거야?
진심으로 혐오한다는 음색이다.
아니 뒤에 거는 아무리봐도 순전히 너가 자폭한거 아니냐?
억울하기 짝이 없다.
"시끄럽고. 빨리 나랑 역할 바꿔."
- 뭐? 너 똥쟁이 하고 싶었어?
그게 또 왜 그렇게 되는건데? 심지어 너가 방금 자기 입으로 똥쟁이 아니라며.
- 근데 난 똥쟁이가 아니야.
아, 진짜.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아니......하.......예린이랑 남는 역할을 너가 하고 내가 우진이랑 돌아가겠다고."
굳이 이걸 풀어서 설명해야하는 것도 짜증난다. 이 녀석도 알면서 이러는 거 같은데.
- 안돼. 이미 경전철까지 탔어.
행동력 거참 빌어먹게도 빠르네. 아니, 최대한 빨리 도망쳤다고 하는 게 맞겠지.
- 할 말 없으면 끊는다.
점차 소리가 멀어지는 느낌에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야야야야야! 끊지마! 진짜 어떡하라는건데!"
- 아니, 뻔하잖아. 너가 위로해주라고. 위기는 곧 기회 몰라?
".....말했잖아. 이제 포기하겠다고."
- 안돼. 큐피트로서 허락 못 해."
큐피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당사자가 됐다는데 너가 왜 그러는데? 오지랖도 정도껏 부려야지.
짜증이 확 올라와 한 마디 하려는 순간, 다시 말이 들려왔다.
- 도망치지마. 너가 그토록 좋아하던 사람이잖아. 다른 남자애랑 친하게 지내면 질투하면서 왜 막상 자기 앞에 있으면 도망치는건데?
"............"
- 끊는다.
딸칵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어졌다. 하지만 그 녀석이 남긴 말은 계속 내 머리 속에 맴돌았다.
후우우우우.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빌어먹게도 맑다. 구름 한 점 없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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