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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니 님의 서재입니다.

축귀의 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완결

후우우우니
그림/삽화
후우우우니
작품등록일 :
2017.01.10 15:45
최근연재일 :
2017.04.07 16:06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8,887
추천수 :
580
글자수 :
842,668

작성
16.04.27 22:58
조회
1,632
추천
20
글자
28쪽

1.창귀호전.-3.창귀호

그동안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v-




DUMMY

3.창귀호


“아~ 출출한 데...... 어머니, 집에 뭐 먹을 거 없소. 낮에 부쳐 놓은 전 부엌에 있어요?”

“왜~ 차려줄까?”

“아~! 있냐고요! 있음 내가 내어 먹음 되지. 차리긴 무슨..... 나오지 말고 누워 계슈.”


해가 막 저문 동네에 각 집집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정겨운 온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때였다. 전조의 뛰어난 군주의 정성어린 행정의 여파로 나름 풍요로운 정경이었다.

그런 시골의 정경중 한 집에 젊은 덩치 하나가 자기 집 마당에 나와 배가 고프다는 투정을 늙은 어미에게 부렸다. 차려주겠다는 어미에게 미안한지 자기가 차려 먹겠다고 짧게 퉁을 놓더니, 방 안의 초를 들고 다시 나와 부엌으로 들어갔다.


“담가 놓은 모주가 어디에~ 있나~”


흥얼흥얼, 입에 단 것, 군것질을 할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항아리에 담긴 모주를 표주박으로 떠 큰 대접에 가득 담기게 채우고 한지 깔린 싸리 채반에 소담하게 담긴 야채전부침을 집어다 작은 쟁반에 담아 가지고 나왔다.


‘모주 한잔에 구수하게 삶은 돼지고기 수육이 제격인데......’


속으로 아쉬운 생각을 하면서도 계란옷 두텁게 입은 야채전으로도 기분이 나쁘진 않은 지 가슴 팍에 소중히 품고 부엌에서 나왔다.


‘돼지고기생각을 해서 그러나...... 어디서 구수하고 노릿노릿한 냄새가 나네.’


방안에 전과 술잔을 놓고 다시 부엌에 들어가 초를 가지고 나오는 데 노린내가 더욱 강하게 났다.


‘원~ 제길 어느 팔자 좋은 집구석이 이 야밤에 돼지고길 구워 포식하는지 모르겠네. 먹다 얹혀 죽었으면 좋겠구만.’


속으로 샘이 나 악담을 툴툴대며 부엌문을 닫고 나오는 데 눈앞에 솥뚜껑 같은 검은 것에 등잔 두 개가 있는 것이 보였다. 강렬한 노린내가 어딘가에 좋은 팔자 집구석이 아니라 눈앞의 이것에서 나오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밤중에 눈으로 봐서는 뭔지 모를 것, 그것에서 나오는 효후 소리로 그것이 뭔지 알았다.


“히이이이잌-! 범이다.”


손에서 초가 떨어져 불이 맥없이 꺼졌다. 마당에서 아들의 큰 소리를 들은 어미 놀라 뛰쳐나왔다. 그러나 같이 놀라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히익-! 이....이게 뭐야!”


늙은 어미는 마당을 가득 채운 짐승의 몸통을 보고는 주저앉아 버렸다. 너무나 거대한 질감에 압도되어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어흥-!”


포효에 가난한 초가의 장지문이 떠르르 떨렸다. 주저앉았던 늙은 어미는 그 자리에서 눈에 흰자를 보이며 혼절했고 아들놈은 범이 들어와 막고 있는 싸리문으론 못나가고 돌을 얼기설기 쌓아놓은 뒤에 돌담을 기어올라 도망치려 했다. 그런 아들놈에게 범은 천천히 다가가 오른 앞발가락에서 발톱을 꺼냈다.


“휘-잉-!”

“콱!”

“아이-고!”


범은 앞발을 휘둘러 담을 넘던 사내의 왼 종아리를 후려쳤다. 발톱을 세우고 휘두르자 사내의 왼 종아리에는 고랑이 줄줄이 파이고 고랑마다 시뻘건 선지피가 쏟아져 내렸다. 그 뜨거움에 사내는 돌담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담 아랫길에 주저앉아 자신의 후끈대는 발을 보고는 통곡이 흘러나왔다.


“아이고 이 피! 사람살려~!”


사내는 무서워 울며, 절뚝대며 밤길을 걸어 도망쳤다.


“콰르르르르......”


요란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방금 자신이 넘어온 담을 허물어뜨리고는 범이 홀짝 뛰어 나왔다.


“히이이이익~!”


사내가 도망치려는데 뒤에서 사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웅퉁이 너 이놈...... 서라...... 댓가를 받으라......”


앞선 사내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사내는 그것이 예사 짐승이 아님을 깨달았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범의 주변에 불덩이가 날아다니고 그 위로 사람의 형상이 있는 데 음산함과 기괴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범의 등짝 어름에 있는 사람형상의 낯은 익히 알던 모습이었다.


“여......영우형, 영우형...... 나......난 아니우......”

“네 놈..... 숨을 내놓아라..... ”

“아.....아이고...... 형님, 어쩔수 없었소. 윗 전에서 시키던 것을 낸들 어찌 하오.”

“네 놈...... 목숨을 내어라. 니깟 놈 말, 필요 없다. 흐흐흐흐흐.........”


웅퉁이라 불린 사내가 절뚝거리며 도망치고 있었고, 뒤의 창귀호는 한 모둠 뛰어 박살낼 수 있는 지근거리에서 웅퉁이를 느긋하게 쫓고 있었다.

곧 웅퉁이는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고 아랫도리는 피로 범벅이 된 채 땀이 뻘뻘 나도록 쫓기고 있었다.


“영우형...... 영우형.......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엉~ 엉~ 내가 잘못했소. 살려주시오.”


절뚝대며 쫓기는 웅퉁이는 창귀호가 바로 죽일 수 있음에도 천천히 자기를 몰아대기만 하며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살살 가지고 놀며 일종의 폭행을 가하는 것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으나 두 눈에 붉은 불이 번뜩대는 맹수와 그 등에 귀신이 붙어 있으니 도망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흐흐흨~ 영우 형 살려 주시오. 살려 주......”


마을에서 빨래터로 쓰는 개울가 끄트머리까지 쫓긴 웅퉁이는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말 그대로 피와 땀을 너무 흘렸기 때문에 더 이상은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으으...... 형...... 영우형 제발 살려주시우........”

“너는 핏줄은 달라도 나와 형아, 아우야하며 절친함을 넘어 형제처럼 지냈다.”

“살려 주시우....... 살려 주시우........”


웅퉁이는 지쳐 정신도 없는지 넋두리처럼 살려달라는 말만 계속 반복할 뿐이었다.


“너는 내 누이와도 오빠야, 누이야하며 친남매처럼 지냈다.”

“흐흐흑~! 내가 잘못했소. 정말 잘못했소. 살려만 주시오. 흐흐흑~!”


호랑이의 눈과 사람 그림자의 눈이 같이 빛났다.

창귀호''.jpg

“그리 가깝게 지낸 네 놈이 우리 남매에게.......어찌 그랬느냐........”

“크르르르......”

“으....... 으....... 사...... 살려주시......”

“크왕-!”

“아아앜-!”


일순, 일성에 목을 부러뜨렸다. 두 번도 필요 없었다. 그리곤 앞발과 입으로 먹는다기보다 사람을 조각조각 마구 흩어 놓고 있었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체절들이 다시 여러 조각으로 부서져 뿌려졌다. 동네 아낙들의 공용 빨래터였던 실개울은 순식간에 실력없는 백정이 일한 도살장처럼 변해버렸다.


겨우 산 아래로 내려와 한 호흡 돌린 항현 일행은 마을의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항현은 먼저 범이 내려갔으니 분명 어떤 소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을을 고요했다. 검지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항현에게 퉁을 놨다.


“범이 나왔는데 소란스러울 리 없지요.”

“아! 되려 더 조용하려나?”

“동네에 개 짖는 소리 하나 없는 것이 분명 대충이 내려 왔어.”

“잠시만! 소리가 들려요.”


수빈이 귀를 기울려 가늘다란 소리를 찾아 방향을 손을 가리켰다. 다른 세 사람이 가리킨 방향으로 천천히 뛰어갔다. 지정한 방향으로 뛸수록 들리지도 않던 소리가 조금 또렸해졌다.


“하이고~ 움튼아~ 내 새끼야~ 기어코 네가 받을 걸 받는구나~”

“......!”


개울가에 웬 노파가 주저앉아 목 놓아 울고 있었다. 많이 늙은 여자여서 인지, 호랑이를 봐서 그런지, 울음소리가 모기 소리처럼 앵앵거려 그 푸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내 새끼야~ 남 눈에 눈물을 빼냈으니 응보를 받는구나, 너는 벌 받고 간다지만 남겨진 난 어떡하니~ 내 아들아~ 앙~앙~”


항현이 노파의 등 뒤로 다가가며 노파의 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았다. 어마어마한 피바다가 펼쳐진 개울가에 얼굴만한 살점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리고........


“할멈! 내 뒤로 숨으시오!”

“예!.... 옛!”


노파는 뒤에서 갑자기 기척이 나자 놀라 돌아보았다. 그리고 기척을 낸 사내가 긴 칼을 뽑아들고 있는 것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사내의 눈길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앞으로 향해 있는 것을 보고 같은 쪽으로 돌아보고는 세 번 놀랐다. 엄지손가락 만하게 보이는 큰 덩이에 등잔불 두 개가 나란히 떠 있는 것, 분명 아까 마당에서 봤던 호랑이였다. 세 번 연달아 놀란 노파는 또 까무러쳐 버렸다.

항현이 노파를 타 넘어 기절한 노파의 앞에 나아가 섰다. 사인검을 뽑아 좌상에서 우하로 비껴 잡고는 저 앞의 호랑이를 노려보았다.


“어흥-!”


천둥소리마냥 울리던 소리라기보다는 어딘가 불편한 듯한 울음을 남기고 호랑이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세 사람도 서둘러 뛰어가 사라지는 호랑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직 깊지 않은 밤에 동네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각 집마다 키우는 강아지 소리 하나도 나지 않았다.

잠시 후 순라꾼이 와 현장을 보았고 이후 관아의 불침번들도 와 상황을 보았으나 같은 것을 확인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항현은 노파를 업고 고을 관아로 갔다. 집이 어딘지를 모르니 할 수 없었다. 관아의 대문에 번을 서는 군졸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이제 오십니까요? 마을에 짐승이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호랑이 같은데......”


군졸들은 항현의 등 뒤에 업힌 노파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 뭡니까요? 죽은겁니까? 호환이에요?”

“이 분은 괜찮소. 허나 이분의 아들이 변을 당한 것 같소. 마을 아래에 갈대밭 너른 실 개울가에 호환을 당한 시신이 있소이다.”


업고 있는 항현을 대신하여 혁춘이 말해주자 군졸들은 진저리를 치며 겁을 냈다. 그리고 항현에게 업혀있는 노파를 확인하고는 또 대경실색했다.


“히이이익! 이.... 이...... 웅퉁이네 어머니다!”

“아니 그럼! 웅퉁이가 죽었다고! 아이구 이런......”


동헌의 행랑에 노파를 누이는 데 주변이 웅성대며 소란스러워지자 서헌(고을 사또의 사적 생활 공간, 일종의 관사)에서 머물던 고을 현령이 동헌(서헌과 반대 이쪽은 사무소이다.)에 다시 나왔다.


“무슨 일인가? 아니, 서울 손님, 지금 하산하시었나?”

“예, 방금...... 그리고 마을로 호랑이가 내려왔습니다. 지금 한 사람이 호환을 입어 마을 아래 실개천에 시신이 흩어져 있습니다. 조처를 부탁드립니다.”

“뭐-! 시...... 시신이...... 흩어져........”

“예! 딱 맞는 표현을 찾으니 그렇게 밖에 말씀드릴 수 없군요. 그리고, 지금 관아에 있는 아전, 관속들을 좀 불러 주시겠습니까?”

“아니, 그들은 왜?”

“퇴청하여 귀가한 자들은 다시 부르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당직으로 남아있는 자들만 불러 주십시오.”

“......음......”


현령은 캥기는 표정이었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어 그들을 불러 모았다. 항현이 혁춘과 다른 일행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줄 것을 부탁했다.


“저..... 어르신.”

“내 그리 나이가 많지 않으이. 형님이라 하시게.”

“아.... 그럼, 관원으로 계셨다니 선배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저..... 제가 이들에게 이를 때 잠시 자리를 좀 비켜주십시오.”

“......”


혁춘은 항현을 쳐다 보더니 선선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반드시 알아내라구.”


혁춘들이 자리를 비키며 한마디하자 항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관아의 속인들이 항현의 앞에 늘어 섰다. 그들과 같이 선 항현은 부드럽게 타이르는 어조로 말했다.


“지금 마을 안에 호환이 또 발생했네. 그... 이름이..... 뭐라더라......?”

“저도 그 노인을 봤습니다. 움튼이네 어머니였습니다.”

“움튼이?”

“예~ 워낙 늦게 본 자식이라 고목에서 싹이 움텄다하여 움튼이라고 부릅니다요. 근데 자라며 뭐가 그리 맘에 안차는 지 워낙 표정을 찡그리고 다니며 남이 하는 말에 퉁만 놓고 다니는 지라 고을에선 웅퉁이라고 부르지요.”

“음~ 심각한 강력 사건이니 본명으로 얘기하세. 움튼이라고 하세.”

“예~”


잠깐 피해자의 본명을 확인한 후 항현의 얘기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호환이라고는 하나, 이 일은 귀신들린 짐승의 일이며 인간의 원한이 끼어 있는 일이라, 그 내막을 모르고서는 해결이 힘들 듯 싶으이. 그래서 이 동네의 토박이들인 자네들에게 몇 가지 물으려는 게야.”

“.......”


관속들 대부분,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항현은 그런 그들에게 은근한 경고를 날렸다.


“지금 동헌의 행랑에 호환의 피해자의 어미인 할멈이 의식을 잃고 누워 있네. 깨나시면 직접 물을 텐데 만일 내가 직접 물어보아 알아낸 사실 중 대조하여 현재 관아에서 알고도 내게 제공치 않은 정보가 있을 시에는 반드시 정황은폐의 죄를 물을 것이야.”

“......!......”


관원들이 움찔 놀랐다. 그런 그들에게 아랑곳없이 항현은 계속 얘기해 나갔다.


“내 자네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네. 나도 관원이기 때문에 없는 얘기 있는 것처럼 지어내지 못하고, 있는 얘기, 없는 것처럼 지우지 못한다네. 일이 그리되면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자네들에게 내가 모진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니 그게 안타까와 미리 얘기하는 것이네.”


은근한 협박, 나중에 숨긴 것이 발각되면 반드시 형틀에 눕혀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경고에 관원들의 눈동자가 불안함에 이리저리 데굴데굴, 부산하게 돌아갔다. 그런 관원들에게서 눈을 떼 현령에게로 시선을 꽂으며 얘기를 이었다.


“물론 이 자리의 모든 관원들에게 다 적용되는 말이지요. 나으리.”

“그......그러나 겨우 호환 아닌가? 물론 사람이 죽은 일이니 중차대하다면 중차대하지만 중앙에 착호갑사들을 지원받아 몰아가 잡으면 끝날 일을 뭣 때문에 그리 깊게 가시는가?”


현령이 더듬더듬 항현에게 어깃장을 뻗대보았다. 아무래도 그냥 당하는 것은 억울한 모양인지 있는 힘을 다한 모양새였지만 항현은 차분하게 반박해 들어갔다.


“지금 피해를 보십시오. 정상적인 호랑이의 습격입니까? 범은 본래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동물이 아닙니다. 만일 먹는다면 산에 혼자 올라온 나뭇꾼이나 마을 외곽의 밭에 혼자 나가 김매는 아낙정도를 노리지요. 이번 경우처럼 마을 중심까지 어슬렁거리며 걸어 들어와 사람하나만을 찍어서 죽인 후에 다시 산으로 사라지는 일이 흔한 일이 아닙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이 짐승은 정상적인 미물이 아니라 사악한 영물입니다. 귀신이 들린 호랑이에게 착호갑사를 대응시켰다가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필히 대대적인 조사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될 것이고 그러면 지금 제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 모르긴 해도 정황을 은폐하려고 했던 것과 나라에서 키우는 소중한 전문 인력인 범 사냥꾼까지 잃은 죄까지 고스란히 현령이 다 지셔야 할 것입니다.”


항현이 맘속에 써 놓은 스토리를 좔좔 읊어대자 현령은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바라보았다. 그런 현령에게 항현이 재차 독촉했다.


“어쩌시겠습니까? 도호부에 요청할까요? 착호갑사대를? 입 닫고 계시면 행랑의 노파의 입에서 제가 직접 들으면 저도 관례대로 할 밖에 없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하~아~!”


동헌이 날아가라 한숨을 내쉰 현령은 뜸을 들이더니 항현에게 말을 해주기 시작했다. 가장 윗사람인 현령이 직접 얘기하는 지라 시립해 있던 아전들도 제지하지 못하는 눈치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윗사람이 힘으로 눌러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은근한 기대들도 품고 있었다.


“이 고을에는 윤진사라고 진사시에 합격하고 둔하고 계신 향반이 하나 계시네........”


현령이 말의 사이를 두었다. 아무래도 말을 꺼내기가 힘이 들어 보였다. 말의 머리를 꺼내놓고 뜸을 들이자 기회를 놓치지 않는 다른 아전들이 말을 이어갔다.


“그분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놈이 그렇게 파락호입니다요.”

“예, 주막에 술 마시고는 돈 안내는 건 기본이고 말리는 남의 집 너럭을 마음대로 가져가 팔아먹고 남의 집 개, 맘대로 잡아먹고 술 취하면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들고 싸움박질에......”

“아....... 아.......너럭 훔쳐 먹고 개 훔쳐 먹는 정도로 한이 맺힌 건 아닐게요. 말을 좀 짧게 합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소? 제일 처음 호환을 당한 영우라는 자와는?”


항현이 서두를 자르고 본론을 재촉하자 아전들이 시무룩 쪼그라들었다. 자연히 현령이 그 다음을 직접 얘기해 주기 시작했다.


“한 반 년쯤 되는 건인데...... 그 윤진사네 아들, 오강이란 놈인데...... 그게 동네에 잔품 팔며 사는 밝곰이라는 계집아이를 겁탈한 게야.”

“영우라는 아이와는 무슨 관곕니까?”

“후우~”


현령이 한숨을 다시 길게 불더니 말을 이어갔다.


“남매지..... 그 때는 내가 부임한 지가 얼마 안 돼 동네사정을 잘 알지 못해서......”

“?”

“그 여자아이가 겁탈 당했다고 그 오래비가 관아에 고변을 했지. 근데 오강이란 놈이 그 남매가 남매끼리 정을 통하여 근친의 죄를 범하였다, 맞고소를 해버렸네. 그리고 그것을 지적하자 앙심을 품고 자신을 역으로 고발했다고......”

“!”


이번 한숨은 항현의 입에서 나왔다. 현령의 입에서 나온 한숨은 죄책감과 징벌의 적정이 뒤섞인 후회의 숨이었다면 항현의 그것은 끓어오르는 노여움의 표현이었다. 현령은 다 나와 버렸으니 별 수 없다는 심정있었을까? 갑자기 말이 많아지며 당시 사정을 자세히 묘사했다.


“송사가 시작되자 벼라 별 증인들이 쏟아졌다네. 남매가 지나치게 가까웠다는 둥, 들녘에서 입을 맞추는 것을 봤다는 둥, 늘 손을 잡고 다녔다는 둥, 심지어는 밤에 정사를 나누는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네.”

“......”


미간을 찡그리곤 항현은 귀만 열어 놓았다. 같이 말을 섞었다간 토할 것 같았다. 옛이야기에 흐르는 냇물에 귀를 씻고 싶다는 얘기가 있다던데 항현의 마음이 딱 그랬다.


“거기에 비해 누이가 겁탈 당했다는 건 그 남매의 얘기뿐이니 자연스레 송사가 오강이란 놈 쪽으로 기운게야.”

“그 아비인 윤진사라는 분은요. 가만히 계셨습니까?”

“......”


항현이 윤진사라는 사람의 과거 동향을 묻자 현령이 꿀을 먹었다.

입이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와 현령어른을 만났던 게로군요. 말씀을 못하시는 걸 보니.....”

“그저 약소한 성의였을 뿐이니, 그 재물에 기울어 판결한 재판은 아니었네. 증인들이 너무나 많아서 내가 정확히 판단을 못했을 뿐이야. 허나 어쩌겠나? 송사를 누구 편들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지금 와서 보니 그 오강이란 놈의 평소 행실이나 그 남매들의 동네의 평가를 들어보니 내가 오판하였다고 생각이 되지만, 그 오누이의 고을안의 평판도 좋았다네. 남매간 우애있고 두 애 다 성실하고 착하기로......”

“둘 다 처벌받았습니까?”


항현의 물음에 현령이 고개를 떨구었다.


“국법으로 보자면 남매간의 통정으로 맑은 윤리를 어지럽힐 경우 여자는 교형이요, 남자는 참형이라, 죽음으로 다스려야 하나 아직 스물도 안 된 어린애들을 그럴 수 없어서 태형 100대로 감형하여 집행하였네.”

“애들이라 사형은 못 시키고 봐줘서 100대쯤 때렸다구요? 정말 많이 봐주셨군요.”


약간 빈정거림이 들어간 항현의 힐책에 현령은 중얼대듯 변명을 더했다.


“......죄대로 하면 윤리를 혼탁해하는 근친간의 간음 아닌가?”

“틀린 판결이었지요. 제 생각에는 대충 알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윤리를 흐린 큰 죄를 벌주어 공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탐하신 건 아니구요.”

“이.... 이 사람아! 그 나이 어린 아이들을 그렇게까지 했겠나?”


사람이 판단이 티미하긴 해도 나쁜 것 같진 않아 항현은 한 번 더 쏘아 붙이고는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아무튼 틀린 판단을 하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반성하고 있네......”


항현이 시무룩히 고개를 떨군 현령에게서 고개를 돌려 고을의 관속들을 쳐다보았다.


“그대들은 자기 고을의 사정을 모를 수가 없다! 그런 아는 바로 중앙에서 목민관이 파견되면 성실히 고을의 정보를 제공하고 보필하여 이런 오인, 오판이 없도록 도왔어야 하지 않는가!”

“......”


이번엔 관속들이 꿀을 먹었다. 아무도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결국 죄가 들어났으니 칼자루는 이 서울 손님이 잡은 것이 아닌가? 조용히 암말 않는 것이 백번 이득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리라.


‘만일 그 창귀호가 노린다면 그 윤진사네 오강이란 놈이겠군.’


가닥이 잡힌 항현은 아전들에게 더 캐내 보았다.


“다른 관련된 자들도 있는가?”


모두 묵묵부답으로 있을 때, 항현이 도착할 때 맞이하던 밤에도 홀로 정신이 맑았던 병방이 고개를 들어 항현에게 말해주었다.


“윤진사댁 도령이 그 밝곰이를 겁탈할 때 떼로 덤볐다 하더이다. 지금 죽은 웅퉁.... 아니 움튼이도 있었으며 윤진사댁의 하인인 번치와 살구나무 집이라 부르는 허씨 집의 자제 허일균, 이렇게 넷이옵니다.”


“아니 이사람, 어쩌려구......”

“이보게......”


병방이 사건의 관계자를 모두 항현에게 말해주자 아전들 사이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일어났다. 항현이 그들을 제지하려할 때 병방이 자신의 주변에 한마디를 던졌다.


“죽은 영우가 귀신이 되어 한을 풀고자 하질 않나. 우리가 엄정치 않아 의좋던 남매가 도륙이 났는데 우리는 지금 책임을 피하고자 입을 앙 다물고는 버티고 있단 말인가? 내 큰 벼슬은 아니래도 내 고향에 도움 되는 일은 한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이번 일은 너무 엇나간 것 같으이.....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이 일은 한쪽이 좋은 만큼 다른 쪽에서 눈물을 짜낸 일이니 공정치 못한 것이지 않겠나? 이제라도 같이 바로 잡도록 하세.”


뼈 있고 옳은 말을 은근히 조분조분 얘기하자 다른 관속들이 대꾸를 못했다. 항현이 그런 병방을 부드럽게 쳐다보았다. 그리곤 다른 관속들에게 지시 했다.


“그럼 일단 관계자들을 관아로 모으는 일을 선행해야 할게요. 내일 아침 윤오강, 번치, 허일균, 이 셋을 관아로 부르고 관아의 병졸들은 비상체제로 돌려 운용하도록! 불침번들은 각별히 조심하시오! 상대는 범의 힘과 귀신의 요력을 함께 갖춘 옛 이야기에나 나오던 괴물이요!”


관속들은 각각 표정이 복잡한 와중에서도 귀신, 괴물의 얘기만큼은 수긍을 못하는 표정으로 그 자리를 떴다.


“단순 호환 아닌가? 아니, 아니..... 호환만으로도 단순이라곤 할 수 없는 거지만...... 귀신, 요귀라니?”

“저희가 이곳에 온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자세히는 밝힐 수 없으나 이러한 기이흉사가 다른 지방에서도 있습니다. 이 창귀호의 주문도 이미 중원에서도 실전된 주문인데 갑자기 조선 땅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지요. 일련의 상황들을 조정에서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


중앙 조정을 언급하자 현령은 더는 반박을 못하더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 윤진사 말일세.”

“예”


현령이 뭔가 얘기를 하난 끼우려고 들자 항현은 지금 현령과 윤진사의 관계가 새삼스레 이상했다. 아무리 진사시가 쉬운 것은 아니라해도 겨우 진사시 통과자정도에게 지방관이 이리 쩔쩔맨다는 것이 말이 되질 않았다. 나름 지역에 힘 좀 쓰는 토호라 해도 이렇게 지방관을 압도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 죄 없는 여자아이를 겁탈하고 그 남매에게 사형이 확실한 죄를 뒤집어씌운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질 않는가?


“그 윤오강이란 놈은 좀 빼 줄 수 없는가?”

“내일 아침의 소환은 지난 건의 단순한 치죄만이 아닙니다. 물론 지난 잘못을 이제라도 바로잡아 송사를 공명정대하게 하고자하는 목적도 있습니다만 또한 이 호환들은 먹이가 부족한 산짐승의 난행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 맺힌 원귀의 보복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의 관련자를 한 군데 모아 보호하는 것이 저희로서도 더 수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음~!”

“도대체 윤진사란 자가 누구인데 현령께서 그리 우대하십니까?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나친 데가 있어 보입니다. 뭔가 개인적인 사정입니까?”


건에서 아예 빼내어 보호하려는 현령에게 항현이 슬며시 따지고 들자 현령도 넌지시 말했다.


“내가 이 고을에 부임하기 전에 지수군 황창성 대감에게 뒤를 보아줄 것을 부탁받았다네.”

“황.....”


항현이 이제야 감을 잡았다.

지수군 황창성이라면 한양에서 유명한 양반이었다. 현재 임금이 조카의 왕위를 찬탈할 때 앞장서서 반대파의 병졸이나 하인들을 벤 공로로 정난공신의 으뜸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한 인물이었다.

현재 임금보다 여덟 살 아래 동생이었는데 나이 터울이 그래서 였는지 임금에게 지나친 귀여움을 받았다. 군주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일이 왕왕 있었음에도 임금이 눈살을 찌푸릴망정 화를 내고 탓하는 법이 없다보니 조정의 대신들도 함부로 탄핵, 지적을 못했다. 그러다보니 노골적으로 청탁이나 금품수수를 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는데, 돈만 주면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도 피해자로 뒤바꾸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는 얘기가 도성에서 떠돌았다. 항현은 직접 관련된 자를 알지는 못했으나 들리는 풍문으로 그런 자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윤진사도 그런 중앙의 권신과 줄을 잡은 것을 배경으로 지방의 행정을 엉망으로 헤집어 자신의 쓰레기 아들을 보호한 것이다.


“그렇담. 제가 직접 가 뵙겠습니다.”

“......”

“제가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아들의 죄 또한 지적을 해 보지요.”

“......”

“그도 맘에 안 드십니까?”

“내가 그 자 때문에 그러는가? 한양에 황창성 대감에게 윤진사가 불평이라도 토로하면 어찌될지 모르기 때문이네. 그 황창성 대감은 유명하지 않은가? 성정도 더럽고 웃다가 불같이 성을 내고 성내다가도 낄낄대며 웃는 종잡을 수 없는 위인으로......”

“......”


항현도 그런 선을 모르는 자를 상대해 본 적이 없어서 겁도 조금 났다. 그러나 빤히 보이는 부정과 범죄를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젊은 항현은 긴장은 했지만 오래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제가 내일 그 집에 가 얘기를 할 테니 안내만 해 주십시오.”

“......”


현령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 대화는 막음이 되었다. 현령은 고민 가득한 얼굴로 내아로 들어갔고 항현은 다른 일행과 웅퉁이 어미가 있는 행랑으로 갔다.


“정신이 드십니까?”


항현이 겨우 정신을 차려 수빈의 간호를 받고 있는 웅퉁이 어미에게 인사를 건넸다. 항현의 관복을 확인한 웅퉁이 어미는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구~! 나리~! 우리 아들이~! 우리 아들이~!”


그 관복이 뭔지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른 채 그저 관복을 붙들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항현은 관복이 잡힌 채로 늙은 어미의 등을 쓸어 내려주었다.


“자~ 노인, 개울가의 일은 원한을 앙갚음한 것이오. 노인의 아들은 남에게 원한을 살만한 일이 있었소이까?”


이미 놀라 까무라쳤던 늙은 노파를 밀어 붙힐 수가 없어서 항현은 은근히 달래는 투로 얘기했다. 그러나 어떻게 얘기해도 자식이 진 죄의 추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노파는 더욱 서럽게 울기만 했다.

등산의 피로로 이미 혁춘과 검지는 툇마루에 대충 걸쳐서 자고 있었다. 항현도 졸립긴 했으나 자식을 잃은 슬픔에 서러워 우는 노파를 뿌리칠 수가 없어서 반쯤 졸며 노파를 보듬고 있었다. 수빈은 그런 항현의 곁에서 노파를 위로하며 항현의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노파를 위로하며 부드럽게 종용했다.

관원인 항현에게 피해자 조사는 의무일 수 있지만 수빈은 관원이 아니었음에도 항현을 거들어 주기 위해 노파를 옆에서 간호하였으니 항현은 그런 수빈에게 따뜻한 고마움을 느꼈다.




완주 완료 다음 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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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창귀호전.-4. 윤진사 +15 16.04.28 1,273 20 30쪽
» 1.창귀호전.-3.창귀호 +10 16.04.27 1,633 20 28쪽
2 1.창귀호전.-2.언문주 +12 16.04.27 1,902 17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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