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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곡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3일 간의 만남



3일 간의 만남


  내가 사는 동네에는 군수용 철길이 나 있는데, 그 철길을 사이에 두고 백년쯤 된 듯한 버드나무와 두 아름 반이나 되는 미루나무가 마주 서 있습니다.

  길가 버드나무 아래에는 1톤 크기의 작은 트럭 한 대가 몇 주째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이 길을 지나가던 늦가을의 어느 오후, 그 트럭 밑에 낭패한 모습을 한 털복숭이 개 한 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엉거주춤한 자세에다, 특히 눈의 초점이 흐려져 있었습니다. 진물이 흐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내가 개를 잠시 살펴보는 사이, 맞은편의 목재소 담벼락에 붙어 있던 여자 아이가 분하다는 듯 알려 주었습니다. 몰려다니던 남자 애들 몇 명이 개를 보고선(땟국물이 절절 흐르는 모습이 맘에 안 들었는지) 연거푸 발길질을 해대더니, 눈에다 무슨 스프레이를 마구 뿌려댔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 아이는 “못됐어요!” 하는 말로 설명을 끝냈습니다.

 

  내가 다가가자 녀석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춤주춤 뒷걸음치며 트럭의 바퀴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문득 집에서 팔자가 늘어져 있을 ‘행운이’가 생각났습니다. 행운이는 생후 3개월 무렵 산 너머 은행나무 약수터에서 만난 녀석입니다. 며칠 굶은 표정으로 나를 유혹하고는, 쭐레쭐레 따라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입덧을 무기 삼아 상전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 저녁,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녀석의 발치에 사료를 놓아주었습니다. 눈치를 보던 녀석은 내가 조금 거리를 두고 뒤로 물러서자, 사료 앞으로 다가서더니 그걸 급하게 먹어치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봅니다. 목이 마르겠다 싶었지만, 당장 물을 가지러 갈 만큼 내 맘이 절절하지는 않았습니다.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보니 녀석이 트럭 밖으로 나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녀석의 꼬리가 두세 차례 흔들립니다.

 

  다음 날 아침 사료 한 웅큼을 호주머니에 넣고 녀석에게 갔더니, 누가 갖다 놓았는지 뜯어낸 달력 종이 위에 라면 부스러기와 물그릇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걸로는 양에 차지 않았던지 내가 주는 사료도 마저 먹었습니다. 그렇게 이삼일 지나는 동안 녀석의 눈빛도 어느 정도 회복되고 움직임도 활발해졌습니다. 나와는 눈으로, 꼬리로 인사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이별의 신호였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저녁,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때까지만 해도 시간이 되면 녀석이 돌아올 거라 믿으며 사료를 놓아두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시 이틀이 지나서도 사료는 눅눅해져 가기만 할 뿐 그대로였습니다.

  섭섭하지만, 녀석이 자신의 생활로 돌아간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녀석의 모습을 한번 더 봤으면 하는 마음은 내 욕심이겠지요. 시간이 흐른 뒤 어느 골목에서 마주치더라도 서로 알아볼 수 있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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