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헤이젠 님의 서재입니다.

디유티코 - dijudico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헤이젠
작품등록일 :
2017.01.11 20:44
최근연재일 :
2024.02.12 18:33
연재수 :
129 회
조회수 :
11,236
추천수 :
98
글자수 :
677,303

작성
24.02.12 18:33
조회
4
추천
0
글자
20쪽

역사는 이기적이다[4] - 증오의 존재[2]

DUMMY

이후에 벌어진 참상을 세상에 알릴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스칼렛과 마주친 병사는 도망가는 것을 명령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무식하게 달려들거나, 동료들과 합심해 연계공격을 시전하기도 했지만, 무기 자체가 스칼렛에게 닿는 경우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창날이 다가오면 창날과 연결된 부분을 가볍게 창날과 함께 베어내는 탓에 스칼렛에게 유효 공격이 들어가 질 못했다. 4층까지 완전히 올라와 복도에서 난전을 펼쳐도 성력응용기술 ‘캄비오 아우그멘’ 을 발동하면 절대방어의 특성을 발현해 미처 잡지 못한 근거리 공격이든, 멀리서 석궁으로 정확히 겨냥해 사격했듯 스칼렛에게 닿은 공격은 공격으로서 기능하지 못했다.


애당초 황궁 삼기사의 갑옷에 이런 좁은 전장 환경에서 공격해봤자 공격 반경이 좁아 제대로 된 타격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페이트의 석궁 촉은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지 날아오는 화살을 건틀릿으로 쳐내면 쉽게 부서졌다. 굳이 성력을 두르지 않아도, 그런 약해빠진 화살 따위 갑옷을 뚫지도 못하였다.


“도망가!!”


병사들은 하나같이 도망 칠 수 밖에 없었고, 4층 복도를 시체로 쌓아 아예 길을 막아버린 스칼렛은 전신에 일으킨 성력으로 신체를 강화하여 5층으로 향하는 계단까지 단숨에 달려가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제국기사단급의 갑옷만 해도 일반 병사가 공격해봤자 상처 하나 내기 쉽지 않은 품질을 유지하는 데다가, 변방의 영지에서 관리되는 무장 따위 닿지도 못했다. 이 시대의 기사는 수가 확연하게 줄어든 계기를 보냈지만 그만큼의 투자를 집중했다. 황제의 손아귀에 놓여진 제국기사단과 황궁을 수호하는 황궁기사단을 제외하면 그 수준이 비슷한 개인기사단을 비롯한 기사들의 갑옷은 병사들보다 나은 수준일 뿐, 스칼렛 같은 존재와 비교해 여전히 품질은 낮았다.


그러한 조건에서 스칼렛의 성력응용기술과 무장은 페이트의 질적 수준이 낮은 병사들의 무기는 닿지도 못하고, 설령 닿았다 해도 갑옷에 작은 상처도 내지 못하였다.


기사.


황제가 그토록 죽이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존재했고, 소문으로만 들었던 황궁 삼기사의 미쳐버린 존재감에 5층에 나타난 군사사관마저 시체들을 보고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전장에서 경험과 공적을 쌓아 사관급의 자리에 올랐다 한들 실력으로 기사의 자리에서 죽지 않고 살아온 세월, 더군다나 최강자를 의미하는 칭호와 강함까지 겸비한 스칼렛을 두고 그도 선뜻 나서지 않고 5층에 자리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계단을 무너트리겠다!! 나에게 창을! 너희는 영주님을 지켜라!”


“치사하게!! 이자식들아!”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파괴시킨다면 스칼렛은 짧은 시간 내에 도달하는 방법을 찾지 않는 이상, 영주를 죽이지 못하는 변수가 생겨버린다. 분명 유리한 고지에 수적으로 유리했던 페이트의 진영은 시체가 쌓인 산을 보고 겁을 먹은 5층에 합류한 병사들조차 더 이상 나서지 않게 되었다. 가진 건 활, 그리고 계단과 복도가 만나는 벽에 고정된 보병용 창 10자루.


군사사관은 던질 수 있는 건 전부 던지라며 스칼렛이 서있는 계단을 향해 자신이 먼저 창을 꺼낸 뒤 던졌다.


‘영주가 분명하게 6층에 있다는 거야.’


군사사관의 명령으로 일부의 병사들은 복도에서 6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급히 이동했다. 스칼렛은 영주가 아직 성을 빠져나가지 못한 상황이라는 걸 깨닫고 안심했다. 동시에 자신에게 날아온 창······ 정확히는 발판을 노리고 던져진 창을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창을 회피하면서 몸체를 베어냈지만,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계단의 하부 지지대는 창과 직격해 균열이 가고 일부분이 파손되어 잔해가 아래로 쏟아졌다.


“겨우 투창으로 돌로 만든 지지대가 파괴된다···?”


그래선 말이 안 되지.


몸체를 베었다고 해서 충격량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무게 중심은 앞에 있고, 막아낼 생각 이였다면 애매하게 베어내는 것이 아닌 창날을 베었어야 했었다.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투창은 지지대에 상처를 입혔고, 재차 창을 던지려는 군사사관의 손을 자세히 관찰했다. 어렴풋이 피어난 백색의 아지랑이가 군사사관의 손에서 창으로 퍼지는 걸 확인한 스칼렛은 순간 아찔한 표정을 지으며 앞을 막아서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부터 시체 따위 내가 밟고 지나간다.”


성력이 담긴 투창이라면 계단의 지지대 일부를 파괴해 계단을 끊어내는 방법 쯤은 가능할 것이다. 스칼렛도 그 위험성을 알고 곧장 5층으로 나아가기 위해 앞을 막은 채 창만 들이미는 병사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검에 발현한 성력으로 위협하며 사거리의 한계점까지 다가갔다.


“캄비오 아우그멘.”


족히 7가닥은 되는 가로막은 벽, 그 벽은 날카로운 철로 가다듬어진 전시 보병용 창이고 무식하게 돌파 하려다간 창에 찔려 밀려날 뿐이다. 그런 제식 무기 따위, 기사의 갑옷에 흠칫 말곤 줄 순 없지만, 전진을 막는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스칼렛의 성력으로 이루어진 절대방어에 각까운 갑옷을 창날이 관통하지 못해 뒤로 밀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스칼렛은 빈틈에 오른팔을 뻗어 7가닥의 창을 전부 베어내고, 만들어진 공간을 더욱 파고든 뒤 당황하여 창신을 놓친 병사따위 왼손으로 눈가를 가려주면서 단번에 3명을 베어버렸다.


저항감 없는 검격은 막힘없이 뒤쪽에 있는 병사까지 베어냈고, 갑옷을 입고 있는 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병사들이 계단에 힘없이 축 늘어져 쓰러지면 그것을 발판 삼아 스칼렛은 빠르게 5층으로 올라갔다.


한 명, 두 명, 베어내면서 도달한 5층의 막바지는 이미 복도의 형상이 어떤지 보일 정도로 가깝게 다가왔다. 스칼렛은 시선을 틀어 군사사관이 있던 곳을 바라봤지만, 그를 포함하여 일부의 병사가 자리에 없다는 걸 확인.


한 번의 페이스는 숨을 고루 쉬며 마지막으로 남은 4명의 병사를 두고 두 발자국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렸다. 앞서가던 오른발을 멈추고 뒤로 보내는 순간에 시선조차 4층으로 돌렸다. 협공하던 아까완 달리, 아예 기가 죽었는지 군사사관이 등장했음에도 올라오는 병사는 없었다.


“차너티의 부하들은 한심한 녀석들 뿐 이로군.”


그들을 욕하며 자리에는 없는 차너티를 욕보였다. 이곳에 있는 병사는 페이트 소속의 군사지만, 실질적으로 지휘체계는 동지역방위사령관인 차너티 후작에게 있고, 성을 보호하는 자의 직위가 군사사관이 전부라면, 거기에 겁을 먹고 적을 앞에 두고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자들이 스칼렛의 눈에는 그저 한심해 보였으니까.


“네가 악마라는 생각은 하지 않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정면, 5층의 계단 끝에서 였다. 어느새 길을 막던 4명의 병사는 각각 좌우로 최대한 몸을 붙이고 숙인 뒤, 자신들의 사이로 진입한 중갑옷의 병사와 그 병사가 얶개에 받치고 있던 기사단식 돌파랜스. 그리고 그 뒤에서 건틀릿을 낀 채 등장한 군사사관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입에서 나온 문장은 스칼렛에게 전혀 와닿지 않았지만, 성력을 발현시킨 주먹을 내지르며 랜스의 끝을 타격해 계단에 서있는 기사에게 날린 공격을 단번에 인식하고 검으로 절반을 베어냈다.


끝이 날카롭기보다 면적이 좁은 촉 부분은 뭉툭하여 중무장한 기사가 랜스를 들고 진형을 돌파하는 용도의 무장이다. 그것을 투창 식으로 사용하는 것도 스칼렛의 눈에는 재미난 상황이었지만 무의식적으로 검으로 빗겨내려 했었다. 하지만, 검격에 너무나 부드럽게 베이면서 막는 것이 아닌 랜스 그 자체를 수평으로 베어내었다.


“어···.”


속도에 의해 절반 가까이 베였을 때, 스칼렛도 자신이 쥔 검과 랜스가 반으로 갈리는 모습을 파악하고 바로 고개를 왼쪽으로 꺾어 피했다. 반으로 잘린 랜스의 위쪽은 그대로 허공을 가르며 계단 쪽 벽에 깊숙이 박혔지만, 상체를 꺾는 판단이 느렸던 탓에 우측 갈비뼈와 옆구리가 동시에 타격 되면서 5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 캄비오 아우그멘의 방어력은 충격과 성력의 파쇄로 발생하는 데미지를 가볍게 막아냈다.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날린 공격의 물리력 자체를 상쇄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야, 그런 무식한 공격도 할 줄 아네. 이름 모를 사관씨.”


“나는 널 알지. 스칼렛 가문의 살바토르. 현 황궁 삼기사이자 제국의 망나니라지. 이곳은 아카트 공국으로 가는 마지막 길. 적어도 나는 나의 병사들을 이끌고 널 막을 이유가 있다!”


군사사관은 조금 전 랜스를 어깨에 짊어졌던 병사를 뒤로 물리면서 오른쪽에서 대기하던 두 명의 병사가 가진 랜스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곤, 냅다 복도와 계단이 연결되는 부분을 내리찍었다.


“이것도 할 줄 알지. 넌 영주님에게 닿지 못한다!!”


스칼렛이 타격당한 부위를 어루만지며 주춤한 사이, 한 번의 타격 이후 스칼렛의 검이 랜스를 베어내려고 휘둘렀을 때, 군사사관의 후방에서 4개의 창이 일제히 스칼렛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아무리 너라도 예측 못 한 공격을 방어해내는 건 한 번이 다다. 너라도···!’


검이 닿지 못한다. 그렇지만 스칼렛이 한 발자국 더 앞으로 이동하면서 검이 궤적이 정상적으로 지나간다면 랜스는 베이고, 사관 자신을 비롯해 5층 복도에 있는 병사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다들 죽어 나가겠지. 할 수만 있다는 확률 자체를 무효화 시켜버린 사관의 지휘는 달려들어 계단의 파괴를 막으려는 스칼렛조차 주춤하게 했다.


왼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튀어 오르려 한 자세, 붉은 머리의 기사는 한 순간에 판단을 바꾸었다. 고작 일반 목창에 상처가 날 정도로 스칼렛의 갑옷은 약하지 않다. 그러나 검이 닿기도 전에 찔러 들어오는 창에 의해 전진이 가로 막혀 끝내 이미 반파된 계단의 상부가 완전히 바스러진다.


일절 반을 베는 횡단, 극한의 악력으로 오른쪽으로 튕겨 나가려는 검을 저지하고 검날을 앞으로 둔 채 머리 위로 올린다. 검을 쥔 손을 펴면서, 붉은 성력을 두른 검을 살짝 띄운 뒤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이동해 검두를 손바닥으로 받쳤다. 창은 전진을 막고, 뚫지 않으면 계단이 무너진다. 이래나 저래나 뭐 하나는 처리해야 한다고.


‘전부 해결하면 다 되잖아!!’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서 손바닥을 최대한 강하게 휘둘렀다. 손바닥, 조금 멀어지면서 손가락 마디의 뼈가 닿고, 힘을 받고 날아가는 금속에 마지막으로 손가락이 닿으면서 성력으로 강화된 근력을 얻고 붉은 도신의 검은 사관이 든 랜스를··· 마치 통과하듯 검신이 지나가 검등이에 걸릴 때까지 앞으로 나아갔다. 랜스를 든 사관의 팔이 제 아무리 길어도 자신 아래의 계단과 복도의 연결부를 부수려는 위치였다.


“···.”


스칼렛은 사관의 부릅 뜬 두 눈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사관의 심장을 정확히 절반을 찌른 검을 부드럽게 뽑아내고, 반파된 계단을 낮게 올라가는 순간에 반원을 그리는 횡베기로 4개의 목창 전부를 분리 시켰다.


“이제 너희를 지켜주는 대장은 없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페이트의 유일한 성력 사용자를 뒤로 하고 마침내 복도로 올라선 스칼렛은 자신을 노려보는 4명의 병사를 포함해 달려드는 오른쪽 2명의 창병까지 단 3합의 검격으로 정리했다. 바닥에 쓰러진 시체들 따위 기사의 관심 밖. 6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누구도 지키지 않았고 5층에도 몰려있을 거로 생각했던 병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계단에 누워 시체가 된 사관의 오른팔에 걸려 미끄러지지 않던 랜스를 집어든 스칼렛은 어느새 4층 중간 부분까지 올라온 병력들을 보곤, 사관이 하려고 했던 계단 파괴를 직접 실천하며 아예 지원을 올 수 있는 길을 끊어버렸다.


‘이 단순한 구조의 성은 결국 길이 하나다. 구식의 구조를 가져선 결국 이 꼴이 나지.’


대대적인 개보수가 이루어졌던 옵타이오 제국 초기에도 아카트 공국의 대다수는 증축을 거치지 않았다. 소마 파일레가 동지역방위사령관이였던 시절 유일하게 라이베른과 발렌체를 조금 다듬었지만 차너티가 완성 시키면서 다른 두 성은 내버려 뒀었다. 그것이 지금의 결과라 해도 틀리지 않겠지.


“난 영주를 베러 간다. 너희는 이제 영지를 포기하고 물러가라. 바레타 가문의 사병이 아님에도 페이트의 영주에게 충성한다는 건 너희도 바레타 가문의 하수인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이거늘, 나에게 날을 세우는 것이냐.”


4층의 병사들은 더 이상 5층으로 올라오지 못한다. 5층 복도와 방으로 이어지는 큰 복도는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고 주 병력이라 부를 수 있는 본대는 여전히 성 밖에서 성이나 포위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 많은 수의 병력이 성 안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작전은 전혀 없으니까. 군사사관이 사망한 시점에서 바깥의 지휘관도 이렇다 할 방안을 짜내지 못할 것이다.


6층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누구의 등장은커녕 방해를 받지 않았다. 4층에 쌓인 시체의 산과 비교하면 너무나 평화로운 분위기며 소음 하나 없는 정막함은, 아직 시끄러운 철벅거림이 들려오는 아래층과 비교되었다. 딱 한 사람, 계단과 가깝진 않지만 영주실이 조금 더 가까운 오측 큰 복도 라인의 그림자에 몸을 기댄 채 남아있던 하급 귀족 의복을 차려 입은 누군가가 스칼렛을 부르며 손짓을 하였다.


얼굴은 그림자에 반쯤 가려져 신원을 알 수 없었지만, 무장도 딱히 없고 부분 갑옷도 착용하지 않은 상대를 스칼렛은 경계하지 않고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서야 그림자가 맞닿지 않는 부분을 본 스칼렛은 오히려 흠칫 놀라며 검을 들이밀었다.


“살바토르 경. 당신이 찾는 영주는 이미 없습니다. 절 경계하셔도, 죽이셔도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신원을 숨긴 여성의 목소리에 스칼렛은 더욱 흠칫 놀랐지만 언젠가 들어본 목소리에 뒤늦게 반응하여 두 걸음 물러나 검을 거두었다. 조용한 복도 쪽을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괴리감이 넘치게 조용했다.


“뭐, 그럴줄 알았다. 발렌체도 비운 시점에 차너티가 주요 지휘관이나 귀족은 전부 아카트 공국으로 귀환 시켰다고 남몰래 생각은 했거든.”


“소식은 들었습니다······ 대항군이시죠. 발렌체의 소식도요. 왜 페이트에 오신거죠?”


붉은 머리의 기사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고, 복도로 들어가는 라인에서 벗어나 계단으로 가는 길로 모습을 비춘 ‘그녀’ 는 머리를 덮은 천을 벗어 던지며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나무 조각을 스칼렛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체리드 성으로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상인의 통행권입니다. 살바토르 경께선 황궁에서나 얼굴이 노출되었지 다른 곳은 이런 걸로도 쉽게 드나들 수 있을 거예요.”


“넌, 왜 날 돕는 거냐. 네 오라비는 바레타 가문의 사람인데. 플라.”


“이미 도망 갈 사람은 오래전에 도망갔습니다. 이곳을 터전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영지민들은 죄가 없잖아요. 플리아 라 페이트의 이름으로 그저 영지를 지키고 있었을 뿐입니다···.”


스칼렛은 그녀가 손을 내밀며 건넨 통행권을 천천히 손을 뻗어 통행증과 함께 그녀의 손을 잡았다. 건틀릿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온기를 대신하듯 그녀의 시선은 스칼렛과 똑바로 마주했다. 현 페이트 가문의 당주 나조 페이트가 바레타 가문의 여성과 결혼하면서 맺어진 협약으로 페이트 영지의 권력은 고정되었지만 영지를 떠난 영주를 과연 이곳에서 누가 주인이라 인정해주겠는가. 가문의 차녀만이 남아있는 이곳에 스칼렛은 흥미를 잃고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성 반대쪽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통과했다.


“플라. 넌 이곳에 숨어있어라. 대항군은 발렌체에 묶인 상황이지만 굳이 페이트로 오진 않을 거다. 난 지금부터 아카트 공국으로 갈 거다. 이 통행증을 준 이유가 뭐야?”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며 혹시나 함정을 예상하고 잔뜩 긴장한 채 그녀의 손을 잡은 손을 제외한 전신에 성력을 펼쳤지만 복도 끝으로 거의 도달할 때 까지 방해는 없었다. 그녀는 잡힌 손을 굳게 주먹을 쥐며 흔들렸던 눈동자는 어느새 당돌하게 변해있었다.


“오라버니가 하는 행동은 분명 평화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오라버니의 과거는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우리 페이트 가문의 역사도··· 별반 다를 거 없잖아요······ 피로 물든 역사는 피로 덧칠한다.”


“내가 떠날 때 했던 말이로군.”


스칼렛은 홀로 살아남아 영지를 벗어났다. 그곳에서 도망치기까지 숟한 고생을 했지만, 데카르안의 비공식 보호 아래 생명을 부지하면서 오스카 사무엘과 만났고 어렸던 스칼렛을 정치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보호해주는 존재들의 등장으로 새로운 삶을 얻어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대항이라는 거대한 목적 안에 복수라는 욕망에 가면을 씌우고 사령관으로서 참전하였다.


주어진 상황은 긍정적인 상태는 아니였지만, 플리아 라 페이트가 건네준 통행증은 어쩌면 변수가 될 거라고··· 살바토르는 변수를 생각해냈다.


“대항군은 약해요. 평야에 있는 전력으로는 레로빌스 공국조차 돌파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결과만 낳을 거에요. 그렇다면 차라리, 노체스 대공에게 합류하세요.”


“그 말은 못들은 거로 하지. 그래도 이 선물은 잘 쓰마.”


“떠나기 전 손에 쥐여준 목걸이 대신이에요. 나를 지켜주는 절대방어의 신념이랬죠.”


스칼렛은 그녀를 복도 끝으로 데려가 영주실의 문을 연 뒤 그녀를 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손을 놓으면서 통행증을 가져갔고 어차피 무너진 계단 쪽으로 가봤자 전투만 해야 할 뿐 목적을 잃은 영지에 굳이 더 있을 이유도 사라졌다. 붉은 도신의 신비의 무장은 유독 증오와 애증을 상징하는 붉은 성력에만 거세게 반응하여 한 번의 검격을 칠 때, 부드러움 베임이 특성으로 작용했다. 백색의 성력이 감싸이면 그 성능은 반절 이하로 떨어지지만 성의 구석, 약한 부분들을 부시고 베면서 빠져나갈 수 있는 틈만 만들면 충분히 조용히 성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영주실의 문을 닫으려고 했다.


완전히 닫히기 전, 스칼렛은 좁은 틈으로 그녀가 차고 있는 하나뿐인 목걸이를 볼 뿐,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녀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널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어. 인디라 자식과 똑같이 날 나로 봐준 사랑스런 아이. 내가 널 다시 보러올 테니까··· 말도 안되지만 날 응원해줘.”


끝으로 문을 완전히 닫은 살바토르는 북문으로 갈 수 있는 길을 탐색해 6층의 유리창을 깨버리고 5층의 감시용 테라스가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스칼렛에게 남은 수단은 두 가지, 아카트 공국으로 페이트에 잡입했던 것과 똑같이 감시가 허술한 부분을 고려해 성벽에 구멍을 내어 들어가느냐, 통행증을 가지고 체리드 성으로 숨어들어 변수를 창출하냐는 것이였다.


아카트 공국의 본 영지는 너무나 넓고 본 성으로 가기까지의 거리가 동문에선 멀었고, 그렇다고 어디로 가든 가장 빠른 루트는 동문을 통해서 가는 것이었다. 반면 체리드 성으로 간다면··· 들키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레로빌스 공국과 아카트 공국의 경계를 통해서 안전하게 체리드 가도를 따라서 체리드의 영지로 진입할 수 있다. 다만, 그것 역시 통행증을 이용해 신분을 숨기고서다.


더군다가 전시, 순찰이 없을 리가 없었다. 평소라면 애초에 두 영지의 영향력이 강하게 닿는 곳임으로 설령 마을이나 시설이 없다 해도 어디로든 다가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니까. 본래라면 레로빌스의 수호성에서 막히지만, 페이트에서 홀로 빠져나간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자, 나의 또 다른 선택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디유티코 - dijudico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역사는 이기적이다[4] - 증오의 존재[2] 24.02.12 5 0 20쪽
128 역사는 이기적이다[3] - 증오의 존재[1] 24.01.30 2 0 16쪽
127 역사는 이기적이다[2] 24.01.27 3 0 12쪽
126 역사는 이기적이다[1] 24.01.15 6 0 13쪽
125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6] - 신은 무엇에 진심을 보이는가 24.01.08 5 0 11쪽
124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 할 수 있는가[5] 23.12.30 6 0 11쪽
123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 [4] 23.12.22 6 0 18쪽
122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 [3] - 고뇌[2] 23.12.16 7 0 10쪽
121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2] - 신들의 뜻[1] 23.12.09 7 0 9쪽
120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1] 23.12.02 7 0 14쪽
119 숨은 자들의 도시[5] 23.11.24 11 1 10쪽
118 숨은 자들의 도시[4] - 황궁기사의 격돌[2] 23.11.16 8 0 13쪽
117 숨은 자들의 도시[4] - 황궁기사의 격돌[1] 23.11.11 7 0 13쪽
116 숨은 자들의 도시[3] 23.11.05 7 0 15쪽
115 숨은 자들의 도시[2] 23.10.28 7 0 10쪽
114 숨은 자들의 도시[1] 23.10.21 9 0 11쪽
113 발렌체 공략전[8] - 디유티코, 스칼렛 23.10.15 12 0 11쪽
112 발렌체 공략전[7] - 더 호라이즌[4] 23.10.09 13 0 11쪽
111 발렌체 공략전[6] - 더 호라이즌[3] 23.10.06 15 0 13쪽
110 발렌체 공략전[5] - 더 호라이즌[2] 23.09.30 14 0 11쪽
109 발렌체 공략전[4] - 더 호라이즌[1] 23.09.26 19 0 12쪽
108 발렌체 공략전[3] 23.09.22 14 0 17쪽
107 발렌체 공략전[2] - 무모한 작전[2] 23.09.16 15 0 12쪽
106 발렌체 공략전[1] - 무모한 작전[1] 23.09.06 16 0 12쪽
105 미래를 위해[1] 23.09.02 17 0 14쪽
104 이성적인 행동[2] 23.08.27 16 0 15쪽
103 이성적인 행동[1] 23.08.21 13 0 12쪽
102 절대선[5] - 관문 함락[2] 23.08.15 20 0 17쪽
101 절대선[4] - 관문 돌파[1] 23.08.12 20 0 11쪽
100 절대선[3] 23.08.05 18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