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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유티코 - dijud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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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젠
작품등록일 :
2017.01.11 20:44
최근연재일 :
2024.02.1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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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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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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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6] - 신은 무엇에 진심을 보이는가

DUMMY

의식이 순간적으로 끊겼다가 다시 눈을 뜨듯 이미지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오랜만에 보는 그녀가 섬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표정의 의미는 뭔데, 그것도 몇십 년 만에 보는 나를 두고 당신은 그런 얼굴을 할 수 있지?


그 옆에는 처음 보는 얼굴의 기사도 엿보였다. 겉모습은 오스카 사무엘이 설명해준 여타 황궁기사나 제국 기사단원들의 외견과는 상당히 다른 게, 마치 과거의 자신 같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얼굴, 얼굴의 생김새는 당연히 처음 보는 인간이지만 자세히 볼수록 배신자를 닮았다는 느낌이 머릿속 생각들의 집합에서 움직였다. 실제론 배신의 형태를 취한 신념의 행동이지만 결과론적으로 제국에 대한 배신행위임과 동시에 대륙을 구한 숨겨진 영웅이였다. 그럼에도 역사는 배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고결한 순례니까.


그녀는 날 알아봤고, 나 역시 그녀를 알아봤다. 그 당시와는 머리스타일이나 옷차림이 상당히 달라지긴 했지만, 당황할 때마다 버릇처럼 짓는 한쪽 찡그림은 왠지 애틋한 마음도 들었다. 단, 이 감정은 순수하게 영혼이 느끼는 단말마를 성력의 무한 발산으로 육체가 전체적으로 깨닫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


가짜 육체 안에 박혀있는 가브리엘의 나무 인형에 영혼이 묶여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순수하게 자가결정권 따윈 사라진 상태다. 엘프의 왕국에서 여태 잠자코 있었건 만 아무렇지 않게 가브리엘에게 불려가 장소까지 전이 당해선, 여태 제대로된 명령이 주입 된 적이 없었기에 명확히 영혼에 새겨진 신의 명령은 인형으로서 거부할 수도 없다. 거부라는 선택권조차 인영재령에겐 갖춰지지 않은 기능, 그리고 ‘생각’만 할 뿐, 실제로 그렇다는 발언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단 한 가지.


스스로 생각만큼은 가능하기에 주인인 가브리엘조차 파악하기 힘들고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주위의 환경에서 ‘우연’ 을 가장한 선택이니까.


‘착각하기 마련이다.’


움직이지 않는다. 발걸음조차 내딛지 않는다. 무의미한 싸움을 지속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뭘 고민 하는거야. 넌 내 인형인데.”


에드나쉴의 머릿속에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울려펴졌다. 동시에 가짜 육체 속 심장이 있을 부위에 박혀있는 목각인형에서 하얀 실들이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움직임을 거부하던 중검을 든 오른팔과 손에 깊숙이 박히면서 강제로 검을 들어 올리고, 신력을 발현해 창이 날아오는 궤적에 가져다 대었다.


“발로 차.”


“젠장. 망할 가브리엘.”


오른발로 바닥에 나뒹구는 작은 돌멩이를 부츠로 대충 차올렸다. 똑바로 튀어오른 돌멩이는 전방으로 올라가 창촉에 접촉했고, ‘초회 한정’ 의 특수성을 가진 레라지에의 권능이 간단하게 돌멩이를 관통했다.


“아니, 생각해봐. 라미엘을 죽인다 쳐도 여전히 남아있는 두 명의 신과 그들이 보호하는 기사를 네가 어쩌려고 그러지?”


“그건 네가 생각할 게 아니야.”


대드는 에드나쉴과 간단히 묵살하고 행동을 강요하는 가브리엘이 대화하는 사이, 권능을 잃은 티베리우스의 창이 에드나쉴의 중검과 충돌했다. 악력과 신력의 충돌은 일반적으로 성력과의 파쇄 현상과는 질이 달랐다. 서로 다른 성질과 파장에 주변으로 유리가 깨지듯 공간조차 일그러지며 두 힘이 압축됐다.


가브리엘의 ‘공간허상측영’.


에드나쉴의 목각인형에도 각인된 가브리엘의 미약한 권능이 신력을 타고 발휘되면서 상황은 에드나쉴에게 더욱 유리하게 만들어졌다. 티베리우스의 창, 그리고 중검에게 향해 떨어진 라미엘의 번개까지 떨어져 순간, 자세가 무너진 에드나쉴은 튕겨내기를 포기하고 그대로 반회전하며 창과 번개를 그대로 뒤편으로 흘렸다. 중검 앞으로 형성된 극소로 작은 공간의 차이로 무뎌지는 감 없이 다음의 행동을 부드럽게 취했다.


“뭐라도 해야한 단 그 강요가 더욱 나를 옥죄여 온다.”


창과 번개가 박힌 바닥은 폭발하며 큰 구멍이 나버렸다. 주변의 건물을 폭삭 무너졌고 중앙 거리를 기점으로 동남쪽의 거주지역 일부가 아예 사용 불가능할 정도의 파괴가 발생했다.


“가브리엘. 적당히 날뛰게 해라. 네가 흥분해서 이럴수록 네 황제가 더 곤란하단 건 알지 않나?”


에드나쉴이 초라해진 거주지역의 참상을 보고 한마디 했지만, 이 다음으로 가브리엘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절로 나오는 한숨에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도, 이미 사라진 라미엘과 여전히 건물 지붕에 올라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 형상의 기사를 그저 묵묵히 쳐다보았다.


“네 악력이 내 몸에 있는 영혼에 닿아야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날 멈추게 할 수 있다. 지금의 네 실력으로는, 그런 모습이 되었다 한들 날 이기지 못한다. 자책하지는 말아라. 네가 인간이기에, 내가 괴물이기에 그런 결과를 부정할 수 없을 뿐이야.”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갑자기 사라져 흥미를 잃은 에드나쉴도 약해진 구속력에 자리를 떠나기로 생각했다. 애초에 원래 있던 곳은 엘프의 나라였다. 얌전히 지내고 있는 걸 멋대로 꺼내와 무기로 쓴 가브리엘에게도 화가 나지만, ‘강제 계약’ 에 의한 구속력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폭성신화.”


힘 없이 내려친 검에서 폭성신화가 검은 기사를 향해 덮쳐졌다. 얼마 못 가 라미엘이 아까 전 세웠던 방벽에 가로 막혀 다시금 힘겨루기 형태로 되었지만, 에드나쉴은 시야가 가려져 서로가 못보는 이 타이밍에 서둘러 렉궈르의 동문을 부수고 황궁으로 향하는 가도로 사라졌다.





-





“지원 요청이라고? 대체 어디서 적이 난입했다는 말이냐.”


도시의 주인은 현장 상황을 발 빠르게 전달 받고 있었다.


사랑하는 도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어릴 적부터 자라온 도시는 자신의 일부와도 같으니까. 하지만 병사들과 주 군사시설은 거주지역 외 비문화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데다가 성 내 중심가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시장이 위치한 곳은 대규모 병사의 출입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해 놓은 데다가, 애당초 렉궈르로 ‘적’ 이라 칭하는 존재가 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이곳 사람들에게는 없었다.


“연합도시라곤 해도 우리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 그런 곳을 전장 삼아 파괴 시키다니··· 당장 출전할 수 있는 기사들을 현장으로 보내라. 병사들은 시장과 중심구역을 통제하고, 동문의 방비를 강화하라.”


렉궈르의 본 성, 중앙구역에서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다른 연합도시와 마찬가지로 제법 높은 층의 성으로 본 성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도시다.


최상층.


렉궈르의 영주이자 연합도시를 지휘하는 두 지휘권, 군사지원과 군부지휘라는 권력을 모두 손에 쥔 차기 계승자 라즈니 데인 공작은 오스카 사무엘과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검문소를 통해 렉궈르로 올 것이라는 황궁기사단의 소식을 들은 바, 민심이 허락하지 않는 황궁기사들의 입궁을 어쩔 수 없이 허락하고 평소보다 군사들을 순찰 돌리며 방비와 검문에 신경을 썼다. 더군다나, 다른 가문과 비교해 우호적인 입장을 뒀던 랑궈르에서 온 기사까지 렉궈르의 권한인 남문 검문소에 간섭하는 때부터 공작 또한 시선을 거두었다. 황궁기사단장 독단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 쯤은 라즈니 데인 공작도 이미 예측했었으며 오스카 사무엘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명예를 실추당한 두 귀족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콜스포스 가문에서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군사지원 가문의 힘이 추락한 때, 랑궈르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괜한 배려로 내 집에 상처를 내었구나.”


“황궁의 명령이니 저희는 따를 수밖에 없지요···. 모쪼록 기사들에게 명령을 전달한 상태입니다. 곧, 소식이 올 겁니다.”


라즈니 데인을 보좌하는 렉궈르의 뼈대가문 엥겔스 가문의 행정귀족 소속 무란 남작이 한탄해 하는 라즈니 데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 반대편, 라즈니 데인 이전 공작인 그의 아버지부터 모셔왔던 렉궈르의 대표 기사이자 전투귀족 가문의 서열 1위, 군 상급지휘관이자 렉궈르 방위사령관 아덴 후작도 묵묵히 무란 남작을 따라 고개를 까딱 숙였다.


그는 처음부터 검문소의 언급을 하는 황궁기사단의 전언으로부터 거부감을 들어냈지만, 그의 작위는 후작에 그치며 실질적 계급도 옵타이오 군사체계에서 상급지휘관 수준에 연합도시의 제한으로 최고권력은 방위사령관이 고작인 환경에서 영주인 공작은 물론 황궁기사단장의 말에 간섭할 작은 실마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참담한 상황에 대해 암울하기 그지없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렉궈르의 군사 환경과 이전부터 쌓아온 도시의 문화적 특성은 쉽게 바꿀 수 있는 체계도 아니였으며, 타 연합도시와 비교해 전시일 뿐, 평화시대로 따지자면 상당히 훌륭한 치안과 안전성을 갖춘 도시다.


“현재 렉궈르는 비상 전시 상태입니다. 생각보다 동문의 주변 구역이 심각하게 훼손된 듯 합니다. 마침, 새로운 보고가 왔습니다.”


아덴의 시선은 공작에서 좌측, 홀로 옮겨졌다. 근위기사들 앞으로 완전무장 차림의 한 병사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상층의 넓은 홀로 또 다른 병사가 힘겹게 뛰어오며 곧장 공작이 보는 눈 앞에 무릎을 꿇고 아덴의 외침에 보고를 시작했다.


“보고입니다···. 현재 적으로 규정된 오스카 사무엘은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이 남문에서 북서문으로 이동했다는 것 외 찾지 못했습니다. 성벽의 잔해에 깔린 황궁기사는 구출하였으며 황궁기사 루바레의 보고에선 동문의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기사는 오스카 외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정보의 상이함과 시간차가 커서 신중한 조사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예측대로 오스카는 북서지역인 렉궈르의 본 성 구역으로 왔다는 거군. 헌데······ 그의 추종자들이 동문의 거주지역에 그러한 파괴흔적을 남길 수준은 되지 않는다···.”


아덴은 침착하게 병사의 보고를 되짚으며 이상한 점을 찾아내려고 했다. 병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말 그대로 시간 차가 맞지 않는다. 이전 보고에서 오스카 사무엘의 마지막 위치는 서문 근처였다. 서문에서 동문으로 이동했다고 해도, 이상하지만 북서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면 ‘다른 인물’ 이라는 점 밖에 떠오르지 않았기에.


“차라리 동문을 개방하여 오스카 일행이 빠져나가도록 유도하라. 더 이상 렉궈르가 파괴되는 모습은 보기 싫구나.”


라즈니 데인 공작은 침울한 얼굴로 아덴에게 부탁까지 당부하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덴 방위사령관. 시간은 하루다. 오스카 사무엘과 추종자들을 찾아내 황궁으로 향하도록 도와라. 단, 의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 우리로선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전력은 없다는 걸 명심 하도록.”


“예······. 공작님.”


하지만 그의 입장은 기사.


군 지휘관.


방위사령관.


어쩔 수 없는 위치에 선 용맹한 사내.


제대로 명령을 수행하고자 예를 갖추고 홀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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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역사는 이기적이다[4] - 증오의 존재[2] 24.02.12 5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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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역사는 이기적이다[2] 24.01.27 3 0 12쪽
126 역사는 이기적이다[1] 24.01.15 6 0 13쪽
»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6] - 신은 무엇에 진심을 보이는가 24.01.08 6 0 11쪽
124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 할 수 있는가[5] 23.12.30 6 0 11쪽
123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 [4] 23.12.22 6 0 18쪽
122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 [3] - 고뇌[2] 23.12.16 7 0 10쪽
121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2] - 신들의 뜻[1] 23.12.09 7 0 9쪽
120 누가 정의인가, 당신은 확답할 수 있는가[1] 23.12.02 7 0 14쪽
119 숨은 자들의 도시[5] 23.11.24 11 1 10쪽
118 숨은 자들의 도시[4] - 황궁기사의 격돌[2] 23.11.16 8 0 13쪽
117 숨은 자들의 도시[4] - 황궁기사의 격돌[1] 23.11.11 7 0 13쪽
116 숨은 자들의 도시[3] 23.11.05 7 0 15쪽
115 숨은 자들의 도시[2] 23.10.28 7 0 10쪽
114 숨은 자들의 도시[1] 23.10.21 9 0 11쪽
113 발렌체 공략전[8] - 디유티코, 스칼렛 23.10.15 12 0 11쪽
112 발렌체 공략전[7] - 더 호라이즌[4] 23.10.09 13 0 11쪽
111 발렌체 공략전[6] - 더 호라이즌[3] 23.10.06 15 0 13쪽
110 발렌체 공략전[5] - 더 호라이즌[2] 23.09.30 14 0 11쪽
109 발렌체 공략전[4] - 더 호라이즌[1] 23.09.26 19 0 12쪽
108 발렌체 공략전[3] 23.09.22 14 0 17쪽
107 발렌체 공략전[2] - 무모한 작전[2] 23.09.16 15 0 12쪽
106 발렌체 공략전[1] - 무모한 작전[1] 23.09.06 1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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