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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

귀무(鬼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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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
작품등록일 :
2021.05.26 09:38
최근연재일 :
2021.06.21 04:58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09
추천수 :
20
글자수 :
60,895

작성
21.06.15 01:25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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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여우누이(2)

DUMMY

퍼억-


“어억!”


역장의 주먹질에 얼굴을 맞은 기관장이 땅을 나뒹굴었다.


“이보게!”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란이 대경실색하여 역장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역장은 그녀의 호통에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숨을 씩씩 내뱉으며 본인이 얼마만큼 화가 났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하, 저 새끼가 아까부터 기어오르고··· 어디 윗사람한테 말이야. 어? 후··· 아, 또 생각할수록 열 받네.”


사람을 보기 좋게 때려놓고선 오히려 잘못은 맞은 사림이 했다는 적반하장인 태도.

너무도 당당한 그의 모습에 모두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저씨! 사과하세요!”


그때.

잠자코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시하가 앞으로 나섰다.

아이는 앙다문 입술로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어 역장을 향해 소리를 쳤다.

딴에는 제법 강건한 모습에 역장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뭐? 이 콩만 한 게 어디 어른들 일에 끼어들고 있어.”

“아저씨가 저 아저씨를 때렸으니까 사과하라구요!”

“하. 오늘 재수가 더럽게 없구나. 별의별 벌레 같은 것들이 기어오르고···.”


살기가 담긴 어른의 눈빛을 받아냈음에도 시하는 전혀 움찔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장의 기세가 살벌해질수록 당당히 발을 내밀며 호통을 쳐댔다.


“다 큰 어른이 창피하지도 않아요?”

“하!”


여간 되바라진 것이 아닌 아이의 태도에 역장은 어이가 없을 지경.


“이게 정말···!”


역장은 저 버릇없는 아이의 정신머리를 고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그의 허리만큼 밖에 오지 않는 아이건만, 그의 팔이 고민도 하지 않고선 보기 좋게 시하를 향해 내뻗어졌다.

물론 아직은 어린아이기에 있는 힘껏 때릴 생각은 없었으나, 그렇다 해도 아직 덜 자란 아이에게는 충분히 위험할 법한 공격이었다.

역장의 팔이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것을 본 시하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텁-


다행스럽게도 역장의 팔은 누군가에 의해 중간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공격을 막은 장본인에게서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운 살기가 쏟아져나왔다.


“네···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역장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대상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구부정하던 허리를 꼿꼿이 세운 정란이 엄청난 기세를 풍기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마나 흉흉한 안광을 번뜩이는지, 역장은 백발이 희끗한 노인이 성인 남자의 팔을 그리 힘들지 않게 부여잡고 있다는 사실을 신경 쓸 틈도 없었다.


“···노인장?”

“이 개만도··· 못한 종자가···. 감히···!”


으득


정란의 이가 부서질 듯 갈리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바람이 한 점 불지도 않건만, 어째서인지 정란의 고운 백발이 바람을 타고 넘실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이들은 무언가 모를 한기가 주위를 감싸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 나의 아이에게··· 네까짓 것이 감히··· 손찌검을 하려 해?”


역장을 죽일 듯이 쏘아보는 정란의 안광에 귀기(鬼氣)가 맴돌았다.

그 눈빛을 본 역장은 제 자리에서 굳은 것처럼 몸을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무, 무슨 사람 눈빛이···.’


꿀꺽.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겨우 눈동자를 굴릴 수 있는 정도.

그것은 마치 포식자를 눈앞에 둔 초식동물의 모습과 같았다.


저벅.


쿠웅-!


정란의 발이 역장을 향해 한 발짝 움직이자,

역장의 머릿속으로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크윽.”


쿠우웅-!


귀청과 함께 뇌까지 떨려오는 굉음에 역장이 재빨리 손을 들어 자신의 양쪽 귀를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소리가 커다랗게 울리며 정란의 발걸음을 따라 기괴한 증상이 반복됐다.

이윽고 정란이 세 번째 발걸음이 내밀었을 때.


“으그극. 으그그그.”


역장이 돌연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온몸을 떨어댔다.

반쯤 실성한 자의 그것처럼 눈동자가 까뒤집어지며 흰자위가 드러났다.


“무, 무슨 일이···.”

“역장님? 역장님!”

“···!”


상황을 지켜보던 철도청 직원들이 난데없는 상황에 입을 벌렸다.

그들의 입장에선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란이 감히 끼어들기도 힘든 위험한 기운를 풍기는 통에 쉬이 말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단 한 사람, 기관장을 제외하고 말이다.


“어, 어르신!”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기관장이 정란의 앞을 가로막았다.


“주위에 보는 눈이 많습니다··· 부디··· 노,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기관장이 고갯짓으로 노인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의 시선을 따라 정란이 고개를 돌렸다.

열차 밖으로 나와 있는 승객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행들이 소란스러워지자 하나둘 구경이라도 난 듯 모여들었던 것이다.


“··· 후우.”


정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기세를 거두어들였다.

그와 함께 게거품을 물고선 사시나무처럼 떨어대던 역장의 몸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온몸을 찔러오며 숨통을 조여오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하마터면 죽는 것인가 싶던 순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된 역장은 그대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직도 정신이 온전치는 못한 것인지 혀를 내빼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흐, 흐어···.”

“이봐. 괜찮소?”

“허··· 허어···. 사, 살려···.”


역장이 다가온 기관장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기관장의 눈에 반쯤 정신이 나간 그의 하의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이 보였다.


“쯧. 네놈은 오늘 저 사내가 구명의 은혜를 베풀어 산 줄 알거라.”


정란이 역장을 향해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할머니···.”


낯선 그녀의 모습에 시하는 좀처럼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귀신과 싸우던 정란의 모습도 이처럼 흉흉하지는 않았었다.


푸욱


시하는 정란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한참이나 짧은 팔로 매달린 것처럼 자신의 할머니를 안은 아이가 말했다.


“할머니. 화 풀어요.”

“흐음.”


아이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른인 제 할머니를 타일렀다.

정란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 때문에 놀랐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와 더불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만든 역장에 대한 분노 또한 다시 치밀어 올랐다.

시하가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더욱 강하게 파고들며 소맷자락을 당겼다.


“이쯤 하면 됐어요. 전 괜찮아요. 저는 괜찮으니까··· 이제 진정하세요. 할머니.”


딸랑-


아이의 목소리가 청명한 방울 소리처럼 정란의 귓가를 울렸다.

그와 함께 파도가 넘실대는 것 같던 마음이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마치 신이 그녀에게 말을 걸 때와 비슷한 울림.

덕분에 완전히 기세를 거둔 정란이 자신의 소매를 붙잡은 아이를 놀라움과 신기함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가야. 괜찮니? 할미 때문에 많이 놀랐겠구나.”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허허··· 이 늙은이가 네게 못난 모습을 보여버렸구나.”

“헤헤. 할머니가 저를 구해주려고 그런 거잖아요. 이것 봐요. 덕분에 저는 너무 멀쩡한걸요.”


시하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 돌며 정란을 향해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저어···.”


사태와 어울리지 않게 하하호호 즐거운 두 노손을 향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정란이 눈을 돌리자 그곳엔 금붕어처럼 눈을 멀뚱거리고 있는 기관장이 있었다.


“어르신.”


정란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기관장이 역장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직도 눈이 흐리멍텅한 것이 좀전의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 보였다.


“무언가?”

“그게··· 저 인간··· 아니, 역장은 괜찮은 겁니까?”

“흠. 저 상태라면, 아마 두 시간 정도 후면 제정신으로 돌아올걸세.”

“아··· 그렇군요···.”


상태만 보자면 영 맨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정란의 말에 조금은 안심한 기관장이 재차 물었다.


“한데, 어르신. 저 작자가 저리 못된 인간이기는 해도··· 이런 일을 겪었으니 후에 분명 보복을 하려 들 것인데···.”

“아. 그렇군. 저치 때문에 자네들이 곤란할 수가 있겠구먼.”


기관장과 철현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 정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자신의 말을 다른 쪽으로 해석한 것 같았기에 기관장이 다시 말을 보태었다.


“아니. 그것이 아니오라. 저희야 어차피 상부에서 뭐라 한들 그런대로 넘어가면 되겠지만··· 어르신께서 해코지를 당할까 싶어 그렇습니다.”

“하하하하핫.”


걱정스럽게 자신을 보는 기관장의 눈빛에 정란이 한껏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따뜻한 미소와 함께 기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걱정은 고맙네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네.”

“예? 하지만···.”

“허허. 저 역장이라는 도적놈은 정말 밉네만, 사람을 아끼는 마음을 지닌 자네는 꽤 마음에 들어.”

“아, 예. 감사합니다···.”


자신을 칭찬해주는 정란의 말에도 기관장은 웃을 수가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역장의 뒷배가 꽤나 든든하다고 들었다.

그러니 저리 능력도 없고 인성도 글러 먹은 작자가 역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것일 터,

괜히 자신들의 분쟁에 휘말린 노인과 아이가 심히 걱정이 되었다.

복수심에 휩싸인 역장이 해라도 입히진 않을까.

역장의 옹졸하고 추악한 성격을 보건데, 자신의 걱정은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자네 이름이 무언가?”

“아, 저는 광호라 합니다.”

“빛나는 호랑이, ‘광호(光虎)’라. 과연 자네에게 어울리는 이름일세.”


이름을 들은 정란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지었다.


“껄껄. 보아하니 자네는 쇠(金)와 가까이하기는 그리 썩 어울리지 않으이.”

“예?”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기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상황에 난데없이 무슨 말인가.

꼭 길거리 무당처럼 관상이라도 보아준 것 같지 않은가.


“어디 보자··· 철현 군이라고 했던가?”

“예, 옙!”


이곳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정체를 아는 것이 검표원인 철현이었다.

철현은 정란의 부름에 군기가 바짝 든 군인과 같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안하네만 종이와 쓸 것을 좀 가져다주겠나?”

“예.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정란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철현은 어딘가를 향해 쏜살같이 나갔다.

누가 보면 임금의 명이라도 받은 것만 같은 그의 모습에 기관장의 머릿속이 더욱 의문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현이 양손에 펄럭이는 종이와 깃펜을 들고 일행의 앞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허억··· 여, 여깄습니다. 어르신.”

“허허. 고맙네. 그리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거늘.”

“헤헤, 아닙니다.”


철현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명문의 어르신이 분명한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을 새겼으니 좋으면 좋았지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자, 그럼. 어디보자···.”


종이와 펜을 받아든 정란이 거침없이 글자를 휘갈겼다.

총 두 장의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는데, 그녀는 작성한 것을 각각 기관장의 손과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역장의 앞에 놓았다.


“이게 뭡니까?”


기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건네진 종이를 받아들었다.

글자 하나하나를 눈으로 읽어내려가는 기관장의 눈이 점점 터질 듯이 튀어나왔다.

과히 명필이라 할 법한 유려하고 힘 있는 그녀의 필체가 놀라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 이것은···!”

“혹여 나중에라도 열차 모는 일을 그만두게 되면 월성(月聖)으로 오게나. 그 종이를 증표로 내밀면 자네를 막는 이는 없을 걸세.”

“어, 어르신···.”


종이를 움켜쥔 기관장의 손이 멈추지 않고 부들부들 떨렸다.


‘··· 월성의 무, 무···!’


기관장의 머릿속 뇌리에 박힌 것처럼 맴도는 종이의 글자 중,

평생에 한 번 볼 수나 있을까 싶은 엄청난 지위를 증명하는 호칭.


[ 이 서한을 들고 있는, 광호(光虎)라는 자가 도착하면 지체 없이 신무전(神巫殿)에 이르게 하라.]

- 무주(巫主) 손가(孫家) 정란(情蘭).


“무, 무··· ㅈ. 주···!”


너무도 놀란 나머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기관장의 반응이 익숙했던 정란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괜히 소란 떨 것 없네. 자네도 봤지만, 보기에 그저 평범한 늙은이 아닌가. 껄껄.”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귀한 분을 몰라뵙고 그만··· 결례를!”

“허허. 아닐세. 지금처럼 편히 대하게나. 나는 제법 자네가 마음에 들었으니.”

“하, 하하···.”


광호가 경직된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의 복잡한 표정엔 기쁨과 슬픔 중 어느 감정이 담겨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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