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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

귀무(鬼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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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
작품등록일 :
2021.05.26 09:38
최근연재일 :
2021.06.21 04:58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07
추천수 :
20
글자수 :
60,895

작성
21.05.26 09:43
조회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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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물오름달 사흘(1)

DUMMY

아이는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기억에 곁에 사람이 있던 적은 드물었다.

아직은 어려서 기억이 적었지만, 아마도 자주 혼자였던 것이 맞을 것이다.


“뭐야. 기분 나빠.”

“야. 왜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는 거야!”

“여보. 그러니까 저 애는 데려오지 말자고 그랬잖아.”

“아빠. 쟤 좀 어떻게 해봐.”

“후우···. 미안하다. 오늘부터는 창포에 있는 둘째 고모 집에 가서 지내자.”


가끔.

아주 가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대부분이 이런 것들이었다.

무겁고 무척이나 두꺼운 솜이불로도 막아지지 않던 소리.

꽁지발을 들어야 겨우 열 수 있던 높은 방문 사이로도 넘어오는 소리.

고성이고 고함이었으며, 불만이고 기피였다.

날이 선 말들이 향하는 곳은 모두가 같은 방향이었다.

아이는 아직 어렸지만, 그것이 모두 자신을 두고 하는 말임을 모르지 않았다.


“얘.”


하지만 아이는 듣지 못한 척했다.

아이가 살아오며 어른들에게 두 번째로 많이 들은 말이 몰라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모르는 척하는 것이 익숙했다.


“얘얘얘얘얘얘얘얘얘얘얘얘.”


지금도 그러했다.

공터에 쭈그려 앉아 있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수십 차례가 넘는 무시와 외면에도 상대는 계속해서 아이를 불러댔다.


“얘. 너 내 목소리 들리잖아. 왜 자꾸 모르는 척하니?”


순간 아이의 시야가 검은 물이 든 것처럼 새까매졌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아이의 눈앞을 덮어왔다.

그럼에도 아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일관된 무반응이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아이를 불렀다.

오히려 귀에 걸릴 듯 잔뜩 찢어진 입매를 보노라면, 무척이나 이 상황을 즐기는 모양새였다.

그녀는 아이에 귀 가까이로 자신의 입을 갖다 대었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악!”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갑작스레 퍼부어진 큰소리에 아이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귀를 부여잡았다.

계속해서 무시하려 했건만 보기 좋게 실패해버린 것이다.

여인은 그런 아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듯 배를 잡고 땅을 굴렀다.


“이씨. 저리 가지 못해!”


아이가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여인을 향해 윽박을 질렀다.

젖살 가득한 동그란 볼때기에 한껏 바람이 들어 부풀어 있었다.

아이 딴에는 제법 무서운 기세를 보인 것이나 그리 보아주긴 어려운 모습인 것일까.

확실한 것은 적어도 여인에게 두려움을 주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한참을 땅을 구르던 여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순식간에 아이의 앞으로 다가왔다.

눈 깜박할 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믿기 힘든 속도로.


“그러게 왜 대답을 안 하니. 어른이 부르면 응? 대답을 해야지.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시끄러. 저리 가 버려!”


아이는 여인을 밀치며 손을 휘휘 저었다.

신기한 것은 아이의 손이 여인의 몸을 통과해 허공을 갈랐다.

마치 흐르는 물에 손이 투과하는 것처럼.


“그러지 말고 나랑 놀자. 응? 나랑 놀면 재밌을 거야. 그러니까 나랑 놀자. 놀아야지. 놀자. 응? 놀자. 놀자. 나랑 놀자. 놀아야지. 착한 아이는 나랑 놀아야 해.”

“싫어. 너랑은 안 놀아.”

“왜? 왜 그러니? 왜 놀아주지 않니?”


아이의 매몰찬 거절에 여인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래? 그럼 나는 무어니?”

“너는 귀신이잖아.”

“깔깔깔깔깔깔깔.”


여인이 또다시 배를 부여잡고 땅을 굴렀다.

귀가 찢어질 듯 괴기하고 시끄러운 높은음이 주위를 울렸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 싫으니?”

“응. 싫어.”

“왜 싫은데?”

“너는 안 보이는 거잖아. 안 보이는 거랑은 말하면 안 돼.”

“그치만 너는 내가 보이지 않니?”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잖아. 너랑 얘기하는 걸 누가 보면 이번에도 혼이 나서 쫓겨날 거야.”

“왜 쫓겨나는데?”

“시끄러. 너 같은 거랑은 얘기도 하기 싫으니까 이제 나한테 말 걸지 마.”


아이는 그렇게 말하곤 휙 하고 등을 돌려버렸다.

하지만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공을 돌아 아이의 앞으로 날아왔다.

아이는 수차례의 외면에도 여인이 떠날 기미가 없자 아예 눈을 질끈 감고서 자신의 귀를 막아버렸다.


“깔깔깔깔깔깔. 귀를 막는다고 들리지 않을 거 같니? 눈을 감는다고 내가 사라질 것 같니?”

“깔깔깔깔깔깔. 바보 같아. 얘는 정말 바보야. 깔깔깔깔깔깔.”

“계속 그렇게 있을 거야? 그럼 나도 계속 이렇게 괴롭혀야지. 히히히힉힉히힉히히힉힉.”


여인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주위를 맴돌며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아이의 무시와 여인의 재잘거림은 산 너머 해가 낮아지고 갈수록 붉은 기가 점점 곤색으로 물들어갈 때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여인의 날이 선 고성은 더욱 높아졌고 음성 또한 괴기하게 변해갔다.

처음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것이었다면 나중은 쇠못으로 고막을 때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으으. 가라. 제발 좀 가버려.’


아이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랐다.

애초부터 어딘가로 달음질쳐서 도망이라도 갔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아이에게는 안전한 안식처도 임시로 몸을 피할 피난처도 없었다.

이곳저곳 친척의 손을 전전하다 얼마 전 창포에 있는 고모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고모는 아이가 집에 도착하자 안쓰럽고 불쌍한 아이라며 몇 번이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때 아이는 모처럼 느끼는 따뜻한 손길에 울음을 왈칵 쏟아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따뜻함은 식어 없어졌다.

그동안의 다른 곳과 다름없던 과정이었다.

모두가 결국에는 아이를 무척 차디찬 눈으로 대하게 되었다.

그 눈빛 속에 담긴 감정은 경멸이나 혐오 같은 것.

슬프고 괴로웠지만 아이는 내색하지 않았다.

괴로움은 익숙한 것이니까.

그나마라도 참고 조용히 지낸다면, 적어도 잠을 잘 공간과 비록 식었더라도 끼니는 때울 수 있는 밥은 주어지니까.


“에잇 퉤. 재수 없으니까 집에 들어오지마. 만약에 몰래 들어오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네 팔다리를 다 분질러 버릴 거야.”


하지만 아이에게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다.

고모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 집의 큰아들이 아이를 쫓아낸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다시 집에 들어간다면 팔다리가 실제로 부러뜨려질지도 몰랐다.

한두 살 터울의 나이 차이였지만, 둘은 아이와 청년의 몸집만큼이나 체격의 차이가 심했기 때문이다.

고모는 며칠간 집을 비운다고 했으니 꼼짝없이 노상에서 한동안 부랑자가 될 판이었다.


‘괜찮아. 조금만, 조금만 참으면 돼··· 그러니까···.’


아이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애석하게도 여인은 그런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네가 자꾸 그러면 나는 너에게 해코지를 할 수밖에 없어. 그러면 많이 아플 텐데. 처음엔 발가락이 뽑히고, 그다음엔 팔이 뽑히고, 마지막에는 머리가 뽑히고. 깔깔깔깔깔깔깔깔. ”


어느덧 해는 이미 산을 다 넘어가고 없었다.

하늘엔 해보다 선명한 달이 오롯이 떠 있었다.

사람들이 밤이라 부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여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제발 가. 제발 가라고. 제발···.”

“끼익끼히힉. 깔깔. 깔깔깔깔깔.”

“으으으으···.”


날이 어두워질수록 여인의 몸은 점점 비대해졌고 괴이한 목소리도 끝을 모르고 더 괴이해졌다.

여인의 목에서 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름이 끼치도록 참기 힘든 소리가 괴로워 아이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댔다.

처음엔 일반적인 성인의 체구이던 여인은 종극엔 마을에서 가장 큰 당산나무만큼이나 커다래졌고, 외형 또한 사람의 것에서 점차 사이한 것으로 변해갔다.

아이는 게슴츠레 실눈을 뜨고 그것을 보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앉은 채로 뒷걸음질을 쳤다.


“어···어어, 괴, 괴물···.”

“끼히히히히힉. 내가 그러니까 끼히힉 아까 그냥 끼이끼끽히힉 놀자고 했잖아 끼히.”

“사,사,살려주세요.”


아이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간절한 아이의 외침과는 달리 한때 여인이었던 것의 눈빛은 호의적이지 않아 보였다.

하늘에 뜬 손톱달처럼 휘어져 있는 눈매는 웃음이라기보다는 먹잇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의 눈과 같았다.

괴이한 그것은 입을 크게 벌려 아이를 향해 다가왔다.

사람의 입 모양에서 새의 부리처럼 변해버린 주둥이를 들이밀면서.


“멈춰라. 이 마귀야!”


그때 괴물의 뒤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여인의 목소리이지만 아이의 고모보다도 연륜이 쌓인 음성.

일반적으로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다만, 그 음성이 흔들림 없이 단단하고 강인하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살려주세요!”


아이는 이때다 싶어 들려온 목소리를 향해 구조요청을 보냈다.

새 주둥이를 한 괴물 또한 갑작스럽게 등장한 방해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분 좋게 휘어져 있던 눈매가 한껏 일그러져 자신이 분노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년이 겁도 없이 이 몸을 방해하는 것이냐!”

“허! 별 잡스런 마귀 년이 목청 하나만큼은 더럽게 크구나.”


노인은 괴물의 귀가 찢어질 듯한 고성에도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거기에 난생처음 보는 괴기스러운 모습을 눈앞에 두고 공포감이 들 법도 하건만, 일절 놀라는 기색 또한 없었다.

오히려 괴물을 보고 마귀 년이라고 칭하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당당한 모습은 입이 벌어질 정도로 놀라웠다.


“뭣이?! 지금 네년이 이 몸에게 잡스럽다고 말을 했느냐?”

“그럼 여기에 네년 말고 후레개잡년이 또 있느냐?”

“후, 후레개잡년? 이익!”


노인의 입에서 쏟아지는 적나라한 욕설에 괴물이 잔뜩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었다.

괴물은 더욱 매서워진 표독스러운 눈으로 노인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채찍처럼 낭창하게 휘어진 팔은 눈으로 좇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노인을 향해 짓쳐 들었다.


텁.


“과연 육시랄 후레 개잡년답게 하는 짓도 가당찮구나.”

“우와!”


노인은 자신의 검지와 중지를 들어 괴물의 팔을 가볍게 막아내었다.

도무지 믿기 힘든 광경에 아이의 입 밖으로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이, 이이! 죽이겠다. 죽여버릴 거야!!!!”


괴물은 계속되는 노인의 독설에 분노로 가득 차 이성을 잃었다.

자신의 공격이 너무도 쉬이 막힌 것이 이상하다고 여길 틈도 없었다.


“고작 네년이? 하! 지나가던 개도 안 웃을 잡소리를 하는구나.”


또 한바탕 괴물을 조롱한 노인이 품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어 들었다.

언뜻 보기에 콩 같이 동그랗고 조그만 열매 같은 것이었는데, 노인은 재빨리 그것을 괴물을 향해 던졌다.

하지만 열매는 괴물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 놈의 주위로 떨어졌다.

괴물이 그 모습을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노인을 향해 비웃어댔다.


“깔깔깔깔! 꼴처럼 매가리가 없는 게 뒤질 때가 되어서 오늘내일하는 년이로구나.”


노인은 자신을 향한 비아냥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보통은 공격이 빗나가게 되면 조금은 당황스러울 것임에도.

오히려 여유가 가득한 그녀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맺혀있었다.


“어차피 곧 뒤질 년이 오늘 이 몸을 만나 갈 때를 조금 더 재촉하는 것이니, 내 친히 숨을 거두어 주는 것을 영광으로 알렸다.”


괴물은 그 모습이 마치 인생을 포기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짓는 헛웃음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이윽고 잠자코 괴물의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의 입이 열렸다.

의외인 것은 내뱉어진 말들이 아쉽게도 괴물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쯧쯧. 고년 새 주둥이에 뱀 눈깔을 하고 있어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만, 생긴 것처럼 잡귀답게 시야가 좁구나.”

“뭣이. 이 년이 아까부터 자꾸···.”

“뱀눈깔아. 네년 옆을 봐라.”

“흥. 내가 그딴 속임수에··· 이, 이게 뭐냐!”


치이이이익.


괴물이 땅을 쳐다보자 떨어져 있던 열매들이 각각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처럼 빛을 띠며 선을 그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 붙은 열매들을 따라 대각선으로 움직이던 선들은 하나로 이어져 최종적으로 오각형의 형태를 띄우게 되었다.

괴물은 졸지에 오각형의 선 안에 갇힌 꼴이 되었는데, 수상함에 재빨리 그 안을 빠져나오려 했으나 무형의 벽에 막힌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긴 뭐야. 네년 새집에 보내줄 차표지.”


노인이 그런 괴물을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작가의말

긴 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짬짬이 틈이 나는대로 연재할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직장과 겸해 하려다보니 그리 자주는 올리지 못할 것 같아 미리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모쪼록 이번 글은 잘 이어보겠습니다.

다들 점점 무더워지는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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