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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

귀무(鬼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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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
작품등록일 :
2021.05.26 09:38
최근연재일 :
2021.06.21 04:58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10
추천수 :
20
글자수 :
60,895

작성
21.06.1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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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여우누이(1)

DUMMY

“허뜨뜨··· 후읍.”


시하의 입속으로 흐물흐물한 어묵 한 덩이가 들어갔다.

김이 빠지지 않은 뜨거운 상태였지만 아이는 그런대로 잘도 그것을 오물오물 씹어댔다.

아이의 경험에 이리도 맛나고 따뜻한 음식이 존재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실로 허기보다는 결핍에 가까운 먹성이었다.


“천천히 먹거라. 누가 쫓아오는 줄 알겠어.”

“음뇸뇸. 흘무니 이그 느무 마싯져요.”

“허허허허. 그래. 양껏 먹거라. 배가 터지지 않을 만큼만 왕창 먹어도 된단다.”

“네!”


아이의 손은 멈출 줄을 모르고 움직였다.

정란은 시하가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 또한 항상 주린 배를 움켜쥐었을 아이의 모습이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자신은 앞으로도 이런 맛있는 음식을 얼마든지 먹일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것.

그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후아. 배부르다.”

“이제 다 먹었느냐?”


엄청난 기세로 10여 분을 몰아치며 어묵을 흡입한 시하의 손이 드디어 멈췄다.

탕 속에 꽂혀 있는 어묵은 단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어느새 판매 중인 전부를 먹어치운 것이다.

노점 위에는 먹어치운 만큼의 앙상한 꼬챙이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제가 너무 많이 먹었죠···.”


꼬챙이의 산을 바라보는 시하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값을 치르는 사람이 아님에 경제권을 쥔 정란의 눈치가 보였던 탓이다.


“껄껄. 얼마 먹지도 못했구나. 한창 클 나이인데 그리 먹어서야 힘이나 쓰겠는고.”

“···헤헤.”


다행히 아이의 눈앞에 서 있는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정란의 부드러운 재치에 시하가 겸연쩍게 웃었다.

정란은 시하가 먹어치운 결과물을 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는 노점의 주인을 향해 말했다.


“주인장 솜씨가 좋아, 덕분에 우리 아이가 맛있게 잘 먹었네 그려. 그럼 이것들 셈을 치러주시겠소?”

“아. 예. 어디 보자···.”


정란의 말에 주인장이 꼬챙이들을 집어 하나하나 개수를 세어보았다.


“총 33개네요. 개당 1원씩이긴 한데, 어르신네 아이가 잘 먹는 모습이 저도 보기 좋아 그러니, 그냥 삼십 원만 값을 치러주시지요.”

“허허, 이런 고마운 일이 있나. 자 여기 삼십 원일세.”

“후후. 다음에 또 들러주시어요.”

“그럼세. 내 지나갈 일이 생기면 꼭 들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아이야, 너도 이다음에 할머니 손 꼭 잡고 또 와야 한다?”

“히히. 네!”


간단하게 노점 주인과 인사를 마친 두 노손은 왔던 길을 걸어 역으로 되돌아왔다.

기분 좋은 배부름과 함께 열차에 탑승하려던 시하는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정란의 발걸음 또한 멈춰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에는 일전에 보았던 검표원과 더불어 여럿의 남자들이 서 있었다.

그중 검은 모자를 눌러쓴 수염이 까칠한 남자가 굳은 얼굴로 앞에 있는 다른 사내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열차를 통과시켜 줄 수 없다니요.”

“어허. 아니 된다면 안 되는 줄로 알게.”

“아니. 무작정 안 된다고만 말씀하시지 말고 왜 안 되는지 그 사유라도 알려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이유는 아까 말했지 않나. 지금은 열차 내부 검사 때문에 못 지나가네.”

“대관절 갑자기 열차 검사라니요. 애초에 출발 전에 이미 마치고 온 것을 지금 괜히 트집 잡는 것 아닙니까!”

“허, 지금 자네 역장인 내게 성을 내는 건가?”


역장이라 밝힌 사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검은 모자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대하는 태도로 보아 역장이라는 사내가 상급자인 것처럼 보였으나, 남자는 전혀 기죽지 않고 되려 역장을 향해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이렇게 열차를 잡아두면 타고 있는 승객들은 어쩌라는 말입니까. 이리되면 예정된 시간에 도착할 수가 없는데, 물건 대는 상인들이나 중요한 약속이 있는 승객들의 원성은 누가 책임진단 말입니까? 예? 역장님이 책임지실 수 있냐 이 말입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계속되는 남자의 역정에 결국 역장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러면 내 처음 말한 대로 자네가 조금의 성의만 보이면 해결될 노릇 아닌가!”

“하.”

“하? 기관장 자네, 지금··· 내 앞에서 한숨을 쉰 건가? 이런 위아래도 모르는 작자 같으니···!”


역장이 기관장이라 부른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관장이라는 사내는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역장을 향해 한심과 경멸이 담긴 눈빛을 보였다.


“말 같은 소리를 해야 듣는 시늉이라도 하지. 썩어빠진 인간 같으니라고.”

“뭐, 뭐야? 이 미친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아이고, 역장님. 기관장님. 그러지들 말고 말로 하십쇼. 말로···.”

“맞습니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왜들 이러십니까.”


오고 가는 대화가 점점 격해지며 급기야 역장이 기관장의 멱살을 부여잡는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주위에 있는 직원들이 급하게 둘의 사이로 끼어들어 역장과 기관장을 부여잡고 말리느라 애를 썼다.


“철현이. 이거 놔봐. 저 돈에 미친 작자가 잘 못 된 거지 내가 잘 못 된 게 아니잖아.”

“아이고 그래도 기관장님. 아무렴 그래도··· 역장님이 상급자인데 나중에 철도청에 저희를 안 좋게 보고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기관장이 자신의 소매를 붙잡느라 애를 쓰고 있는 검표원, 철현에게 억울하지도 않냐는 듯 말했다.

분명 철현 또한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든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직장이라는 곳이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할 수는 없는 법이다.

월급쟁이에게는 밥벌이라는 생계를 위해, 때로는 싫고 궂은일도 넘어갈 수 있는 융통성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직속 상관인 기관장은 그 불같은 대쪽같은 성격상, 융통성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는 위인이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이보게들. 당최 무슨 일인가.”


그때.

실랑이가 한창인 그들의 사이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등장한 인물은 다름 아닌 잠자코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정란이었다.


“아이코. 어르신!”


철현이 정란을 알아보고는 냉큼 고개를 숙였다.

역장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그녀가 누군지 모르기에 그저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고생이 많네. 그래, 해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좀 알려주겠나?”

“아, 그것이···.”

“거기 노인은 누군데 끼어드시오. 이건 우리 철도청의 공사(公事)이니 외부인은 참견하지 마시오.”


철현이 말을 꺼내려는 찰나, 역장이 나서서 그의 말을 잘랐다.

철도의 직원들 간의 공적인 일이니 일반인으로 보이는 정란은 빠지라는 것이었다.


“허허. 이 노인네도 끼고 싶지는 않네만. 그럴 수가 없겠네 그려. 가만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니. 자네들이 하는 얘기가 열차가 출발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니 말일세.”

“거 참. 말귀 못 알아듣나. 관계자끼리 얘기 중이니 빠지라니까?”


점잖게 정란이 말을 했지만, 역장은 단호할 정도로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했다.


“하! 공사(公事)는 무슨··· 네 몫을 위해 뒷돈 챙기는 게 어떻게 공사란 말이냐.”


뒤에서 이를 갈고 있던 기관장이 끼어들어 말을 보탰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의아했던 터라 정란이 고개를 돌려 기관장을 향해 물었다.


“뒷돈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글쎄. 저 인간이 열차를 그냥 통과시키고 싶으면 급행료를 내라고 하지 않소!”

“저, 저 인간이···!”


기관장의 난데없는 폭로에 역장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정란은 역장을 애써 무시하며 기관장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급행료라니. 그게 무엇인가?”

“하, 말만 번지르르한 급행료, 그게 무엇인고 하면. 실상은 역마다 배때지에 기름만 차 있는 저런 돼지 같은 위인들이 명분도 없이 차를 멈춰 세우는 거요. 그러고는 뒷돈을 주기 전까지는 보내주지 않는다 이거지요. 아주 관행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악행입니다. 저 처먹을 뇌물을 저렇게 당당하게 달라고 요구하다니. 하, 내 원 더러워서 씨발. 에잇 퉤.”


기관장은 말은 하면서도 구역질이 난다는 표정으로 넌더리를 치며 역장이 있는 바닥을 향해 침을 뱉었다.


“이런 개새끼가!”

“역장님!”

“아이고. 기관장님.”


도무지 위계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관장의 태도에 역장이 길길이 날뛰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다시 또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자 주위 직원들이 잽싸게 나서 또 둘을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흠. 그런 일이 있었구먼. 하면 그 급행료라는 것이 얼마인가?”


전후 사정을 파악한 정란은 속이 썼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정의롭다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에 속하는 그녀였다.

그러니 역장의 제 잇속을 채우려는 태도가 곱게 받아들여질 리는 만무했다.

다만, 그녀가 가만히 참는 것은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시하 때문이었다.

괜시리 어른의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된 것 같아 아이에게 몹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그쪽이 얼마인지 알면 내기라도 하시려고?”


역장이 정란을 향해 비아냥대며 코웃음을 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철현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란은 얼굴에선 여전히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네. 내가 셈을 치를 테니 어서 값이나 얼마인지나 말 하시게.”


제법 당당한 정란의 태도를 본 역장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보통은 열차 내에 있는 승객들에게 십시일반 걷어 마련하는 것이 급행료였다.

한 사람이 내기에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닌데, 저리 당당한 모습을 보자니 우습기도 했다.

필시 옆에 있는 손자와 열차라는 것을 타보자고 바깥 구경을 나온 세상 물정 모르는 늙은이일 터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부터 고자세인 노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였다.

그는 원래 요구했던 급행료의 배를 더 높게 불러 정란을 향해 말했다.


“이만 원이오.”

“··· 이만 원?”


예상보다 큰 금액에 정란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통 한 가정이 한 달을 생활하는 비용이 적게는 오천 원에서 만원 정도였다.

당장 열차표 값이 오백 원 정도였으니, 역장의 요구는 마흔 명의 표만큼의 값을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왜? 못 내겠소? 큭큭.”


정란의 당황한 표정을 본 역장이 고소를 머금었다.

일개 노인에 불과한 그녀에게 그렇게 큰 금액이 있을 리가 만무.

그걸 알면서도 말을 꺼낸 것은 노인의 지금과 같은 표정을 보기 위함이었다.


“이익, 저 개만도 못한 자식이··· 아까는 만원이라 하더니! 놔. 놔보라고!”


기관장이 팔을 부여 잡힌 채로 길길이 날뛰었다.

만원도 터무니없는 금액일진데, 이만 원은 말이 될 수가 없는 액수.

애초부터 노인을 엿 먹일 작정으로 말을 꺼낸 역장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기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흠. 생각보다는 금액이 크긴 하구먼. 당장 그만큼의 현찰을 들고 있지는 않으니···, 내 그만큼의 어음을 써주면 되겠는가?”

“뭐, 뭐요?”

“에에?”

“어, 어르신!”

“노인장!”


조금 곤란하다는 듯 꺼내어진 정란의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특히나 역장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당연히 지불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해 내뱉은 액수임에도 저리 당당한 태도를 보니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역장은 조금은 조심스러워진 태도로 재차 정란을 향해 물었다.


“그, 정말 어음을 써준다는 말이오?”

“내 빈말은 하지 않는 성격일세.”

“크흠.”


확답에 가까운 정란의 말에 역장의 콧구멍이 한껏 커지며 표정이 흥분으로 물들었다.


‘이게 웬 횡재냐!’


“그, 그럼 어음을 써주시지요.”

“알겠네. 그럼 백지 전표를 가져와 주시게.”

“잠깐!”


물 흐르듯 만족스러운 거래가 성사되려던 찰나.

돌연 기관장이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노인장. 이만 원이 무슨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리 큰돈을 이리 쉽게 주신단 말이오. 더군다나 저런 탐관오리 같은 놈에게. 절대로 안될 말입니다.”

“허허. 그래도 어쩌겠는가. 찻길이 트이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만!”

“어이. 기관장 너는 빠져. 어디 어른들 얘기하는데 끼고 지랄이야 지랄이.”

“노인장. 절대 안 됩니다. 만일 저놈에게 돈을 주셔도 제가 열차 운행을 시작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 절대로 주지 마십시오!”

“하. 이 새끼가 진짜···. 아까부터 뭣 모르고 기어오르네.”


역장의 주먹이 기관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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