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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

귀무(鬼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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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
작품등록일 :
2021.05.26 09:38
최근연재일 :
2021.06.21 04:58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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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0
글자수 :
60,895

작성
21.05.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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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물오름달 사흘(2)

DUMMY

쾅 쾅 쾅!


괴물이 날뛰어대며 무형의 벽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그런 노력과는 달리 결계는 무척이나 두터워 쉬이 깨지지 않았다.


“아가야. 괜찮니?”

“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노인이 아이를 향해 물었다.

처음엔 겁에 질려있었던 아이지만 지금은 신기함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다 큰 성인도 쉽게 정신을 추스르기 힘들 상황임에도 무척이나 마음이 강한 아이였다.


“그래. 다행이구나. 하면 잠시 뒤로 물러나 있겠느냐?”

“알겠어요.”


대답과 함께 아이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노인은 그런 아이를 기꺼운 눈으로 보고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회중시계를 꺼내어 들었다.

자세히 보니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각각 8과 4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디 보자. 해시(亥時, 20:30~21:30까지의 시간)로구나.”


말을 마친 노인이 낙서하듯 땅을 향해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흙이 쓸리며 새겨지는 그것은 언뜻 보면 글자 같기도 했고 대충 휘갈긴 그림 같기도 했다.

곧이어 낙서가 완성되자 노인이 허리춤에 묶여있던 주머니를 풀었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은빛의 꽃 한 송이.

아이는 예쁜 그 꽃을 빤히 보았다.

두 눈에 담긴 꽃망울이 꼭 하늘에 뜬 달님처럼 은은히 빛을 내는 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자. 나으리 이리 나와 주시지요.”


노인이 은 빛깔의 꽃을 글자들의 정 가운데에 놓았다.


드드득-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땅이 작게 흔들리며 갈라졌다.

그리고 벌어진 틈 사이로 검은 물체가 힘겹게 그곳을 비집고 나왔다.


“끄응. 이리 배려 없는 부름이라니. 이거 안 봐도 누가 날 찾았는지 알겠구나.”

“오랜만입니다. 해월관(亥月官) 나으리.”


노인이 땅에서 나타난 검은 도포의 사내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해월관이라 불린 사내는 그녀의 예의 바른 인사를 보면서도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다.


“거참. 자네는 어쩜 그리 한결같나. 굳이 이렇게 땅으로 부르지 말아달라니까.”

“아 그렇습니까. 나이가 드니 자주 기억이 흐려지는 모양입니다.”

“끄응!”


노인의 몰랐다는 듯한 너스레에 해월관이 혀를 찼다.

요즘 세대의 무녀(巫女)들은 시간이 좀 들더라도 진(阵)을 그려 자신을 소환하는데, 꼭 저 무녀는 상고(上古) 때처럼 구어(口語)를 사용해 그를 불러대었다.

그렇다고 노인의 무력(巫力)이 약하거나 배움이 짧아 그렇냐 하면은 그것도 아니다.


‘내 지금껏 본 인간 중에 제일 사람 같지 않은 놈.’


그러니 괘씸하지 않을 수가 있나.

모르긴 몰라도 은근히 자신을 먹이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다.

물론, 그 또한 구어를 깨우치는 것이 더 어렵고 그만큼 실전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함을 모르지는 않지만.


“크흠. 여튼 저 마귀를 처리하라고 부른 게지?”


해월관이 새 부리의 괴물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 긍정의 표현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래. 뱀새여인이로구만. 그럼, 오랜만에 몸을··· 응?”


괴물에게 가까이 다가가던 해월관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뒤로 물러나 있던 아이를 향해 있었다.

잠시 아이를 본 해월관이 고개를 돌려 노인을 향해 설명을 요구했다.


“다행히 마귀가 아이를 해하려 하는 것을 조기에 발견해 도왔습니다.”

“흠. 그래? 그런데 저 아이···.”

“예.”


노인이 해월관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끊었다.

해월관은 노인의 반응에 더 흥미가 동했는지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갑자기 땅에서 나타난 자신이 무섭지도 않은지 그저 말간 눈으로 본인을 당당히 마주 보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보통의 인간은 그를 보지도 못한다.

간혹 정말 드물게 그가 보이는 인간이라 하더라도 차사(差使) 특유의 중압감에 감히 자신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니 자신을 인식하다 못해 무례할 만큼 그를 뚫어지게 보는 아이가 신기할 따름.


‘호오. 오문(五門) 중에 사문(四門)이 깨어있는 인간이라.’


자세히 보니 태생적으로 범인(凡人)과는 다른 아이였다.

나름 저승의 차사 중에서도 관록 있는 그에게도 매우 희귀한 경우.

굳이 따지자면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이 손가락으로 세어볼 정도랄까.


“나는 저 미물보다는 네가 더 궁금하구나. 어디 한 번 너부터 알아봐야겠다.”

“나으리.”


팡-!


사내가 아이에게로 다가가자 노인이 달려오며 그를 말렸다.

해월관은 그런 노인을 보지도 않은 채 손을 뒤로 뻗었다.

그러자 노인은 괴물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야. 넌 내가 무섭지 않느냐?”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사내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자르지 않아 거추장스러운 앞머리 사이로 언뜻 보이는 맑은 눈망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섭지 않아요.”

“호오. 어째서?”

“그런데 아저씨는 귀신인가요?”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아저씨라는 호칭과 함께 다짜고짜 자신을 향해 귀신이냐고 물어오는 아이.

칠백 년이 족히 넘어가는 저승관 생활 중 이리 당돌한 질문은 처음이었다.


“너에게 귀신이란 무엇인데?”

“나에게만 보이는 것은 귀신이에요.”

“그럼 나는 귀신이겠구나.”

“근데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나를 괴롭혀도 귀신이에요.”

“크하하하하하. 거 참 멋들어진 정의로고. 그래. 그럼 너는 그 귀신들이 무서우냐?”

“아니요. 무섭지 않아요.”

“어째서 그렇니. 남들이 보지도 못하는 것을 보고 더군다나 너를 괴롭히는데.”

“괴롭히는 건 나에게 보이고 안 보이고의 차이가 아니니까요.”

“···.”


예상치 못한 답변에 해월관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 나는 보통의 인간에게 쉬이 보이지 않으니 귀신일 수 있겠으나, 반대로 너를 괴롭힐 생각이 없으니 귀신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렇게 간략한 요약을 마친 해월관이 아이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반갑다. 난 해월관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너와는 앞으로도 인연이 있을 것 같으니 미리 인사를 해두는 게 좋겠구나.”

“네. 안녕하세요.”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월관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왜 네 이름은 알려 주지 않느냐.”

“그게··· 죄송해요. 전 이름이 없어요.”

“이름이 없다?”

“네.”


푹 숙인 고개 사이로 아이의 슬퍼진 표정이 보였다.

해월관은 듣지 않아도 대충이나마 아이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쯧쯧. 그래서 사내아이임에도 음양(陰陽) 중 음(陰)의 기운만 강했군. 허허··· 부모의 따스함을 받지 못해 이리 좋은 싹이 볕을 쐬지 못했으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해월관은 괜찮다는 듯 아이의 등을 몇 번 토닥여주었다.

그렇게 잠시간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일련의 대화를 마친 그는 노인을 가로막고 있던 결계를 풀었다.


“나으리.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나도 아네. 때가 돼서 데려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흥미가 동해 얘기를 좀 해봤을 뿐이니 그리 방정 떨지 말게나.”

“그래도 아직 어린아이에게 저승의 기운이···.”

“어허.”

“···.”


좀처럼 보이질 않는 해월관의 엄한 표정에 노인이 채근을 멈추었다.

노인으로서는 어린아이에게 저승의 차사가 다가가니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아이를 살펴보니 별일은 없는 듯 보이니 우선은 그냥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자 그럼. 할 일부터 마쳐볼까. 좀 있으면 교대 시간이라 말이지.”


대충 손을 푼 해월관이 괴물의 앞을 향해 다가갔다.

괴물은 그를 향해 특유의 고성을 지르며 잔뜩 경계심을 내비쳤다.


“거, 더럽게 시끄러운 미물이로고.”


해월관이 귀찮다는 듯 자신의 귀를 후벼팠다.

그리곤 이내 가볍게 발을 떼어 땅을 박찼는데, 가벼운 발걸음과 달리 족히 3m의 높이만큼을 훌쩍 뛰어올랐다.

이어서 낙하와 함께 괴물의 목덜미를 향해 시원하게 내리꽂히는 발차기.


콰앙-!


지축이 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괴물이 축하고 널브러졌다.

단 한 번에 괴물을 제압한 그의 능력은 심히 경이로웠다.


“이제 좀 조용하네.”


만족한 표정을 지은 해월관이 기절해버린 괴물의 머리통을 어깨에 짊어졌다.

그의 덩치보다 한참이나 큰 괴물이기에 몸통이 땅에 질질 끌려다녔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예. 매번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차사님.”

“아이야. 너도 또 보도록 하자.”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


어느덧 둘에게서 멀어진 해월관이 인사에 화답하듯 노인과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곤 이내 괴물과 함께 땅으로 스며들 듯이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후우. 차사의 변덕은 종잡을 수가 없구나.”


소란이 진정되고 나자 노인이 참았던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저기···.”


그때 아이가 손을 내밀어 노인의 옷자락을 붙잡아 당겼다.

노인이 돌아보니 아이가 허리를 반듯이 접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허헛. 아니다 아가야. 내가 늦지 않아 다행이구나.”


무척이나 예의가 바른 아이였다.

아직은 허리춤에 닿는 키로 보아 하건대 이제 겨우 6살이나 되었을까.

다만, 눈에 밟히는 것은 자르지 않아 덥수룩한 머리와 가시처럼 앙상한 손목.

그리고 또래에 비해 많이 왜소한 몸.


“그래 아가야. 네 집이 어디냐. 이 할미가 데려다주마.”

“집은 저쪽인데···.”


왜인지 아이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노인은 그 모습이 의아해 아이를 향해 물었다.


“왜 그러느냐?”

“그게··· 지금은 집에 갈 수 없어요···.”

“음?”


조금 전의 해월관처럼 노인의 눈에도 아이의 표정이 들어왔다.

슬픔과 단념이 가득한 눈빛.

동그랗고 맑은 눈망울에 담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노인은 살아온 연륜으로 인해 아이의 상황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이런 못난 부모를 보았나!’


속으로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아이의 앞에서 티를 낼 수 없는 노릇.

가까스로 화를 삭인 노인이 아이의 힘없이 처진 손을 붙잡았다.


“나와 같이 가자꾸나.”

“네?”

“자. 어서 집으로 안내하거라.”

“그치만.”

“어허. 나이 많은 할미가 말하는데 ‘네’하고 대답해야지.”

“···네.”


노인의 말에 아이가 마지못해 발걸음을 떼었다.

집으로 향하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이에겐 무척이나 무거웠다.

당장이야 옆의 할머니가 있어 넘어간다 해도 사촌 형과 자신이 둘만 남게 되면 분명히 큰형의 매운 주먹이 날아들 것이었다.

그런 아이의 무거운 마음과 다르게 두 노손(老孫)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니?”

“예.”

“자. 들어가자꾸나.”

“···.”


아이는 대답 없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끼익 거리는 대문 소리가 천둥처럼 멀리 퍼졌다.

그로 인해 집 안에서도 밖의 인기척을 느꼈던지 누군가가 마중을 나왔다.


“뭐야. 야! 내가 집에 들어오지 말랬지!”


다름 아닌 고모의 큰아들이었다.

아이와 몇 살 터울 차이임에도 어찌나 사납게 눈을 치켜뜨는지, 그 모습이 마치 투견장의 도사견이 따로 없었다.


“이눔아. 네 눈에는 이 어른이 뵈지도 않는 게냐!”


노인이 겁을 먹어 몸을 떠는 아이를 등 뒤로 숨기며 말했다.

한바탕의 호통을 받았으나 큰아들은 살짝 찔끔하는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불만 가득 입술을 삐죽이며 노인을 향해 퉁명스레 물어왔다.


“누구세요.”

“어허. 어린놈아. 너부터 이름을 밝히고 인사를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냐.”

“아. 그럼 됐어요. 혹시 저거랑 아는 사이에요?”

“뭐, 뭣이!”


녀석에게서는 예의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허허··· 이거야 덩치만 작았지 소악마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사람을 가리켜 ‘저거’라니.

마치 길가에 널브러진 물건 취급을 하는 모양새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도 알 수 있는 법이었다.

노인은 그동안 아이가 어떤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알 것만 같았다.


“에잉! 그러지 말고 집에 있는 부모님을 불러오거라.”

“아니. 할머니가 누구신데 우리 부모님을 오라 마라 해요.”

“이놈이! 아까부터 버르장머리 없이 말하는 것하고는···.”

“아, 집에 아무도 없구요. 저거는 집에 들일 생각 없으니 그렇게 좋으면 할망구가 데려가시던가.”




큰아들은 그렇게 말하곤 집으로 들어가며 문을 걸어 잠갔다.

앙칼진 축객령에 노인은 어이가 없어 벙찐 표정으로 보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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