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별승 님의 서재입니다.

로그시티 : 흑단목함의 비밀

웹소설 > 자유연재 > SF, 판타지

별승
작품등록일 :
2023.04.10 21:02
최근연재일 :
2023.04.20 17:0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97
추천수 :
0
글자수 :
28,724

작성
23.04.10 21:07
조회
25
추천
0
글자
12쪽

프롤로그 - 전쟁의 유산

DUMMY

시들기 직전의 강렬한 황색 노을이 도시의 가장 높은 빌딩의 유리창에 반사되어 눈이 따가울 지경으로 내리쬐고 있었다.


그 빛들은 아찔하게 솟은 다른 빌딩들에 반사되어 아래의 도로로 흩뿌려졌다.


매끈한 곡선 라인을 가진 고급 차량들은 특유의 전기 음을 내며 고가도로를 달려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한다.


고가 아래로 깔린 그림자 속에 늘어선 구형 건물들로 구성된 빈민가 틈틈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간 골목길이 보인다.


도시의 외곽부 고가 위 신축 도시를 보면 불과 13년 전만 해도 이곳이 전쟁터였다는 사실을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바로 아래쪽 중심지로 끝없이 늘어진 우중충한 할렘가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아마도 이곳은 지금도 전쟁 중인 분쟁지역이라는 착각이 문득 떠올라 암울한 감정에 서서히 물들어버릴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도시 중앙부의 저지대 구도심은 삭막하기가 그지없었다.




사실 그럴만한 것이 수도에 자리 잡은 이 도시는 제 3차 세계대전 당시 강력한 포격이 떨어졌던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시 떨어졌던 것이 핵폭탄이 아니라서 방사능 문제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행이랄 점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가뜩이나 분지였던 곳에 생긴 이 깊고 거대한 반지하급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폭심지)’에는 생존자와 피난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흘러들어와 얽히고설키며 사회를 구성했고 누더기 같은 비계획 도시가 탄생했다.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이어진 외계인들과의 ‘차원전쟁’을 거치면서 이 과정은 더욱 심화됐으나, 5년 만에 극적으로 휴전협정이 이뤄지면서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후 진행된 기가폴리스 정부 주도하의 재개발과 전후 복구 사업을 거치면서 도시 외곽 부근부터 그 위를 덮듯이, 구도심 위쪽으로 신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런 괴이한 형태로 시공이 진행되었는가 하면, 이 거지 같은 도시는 분지에 폭심지이다보니 지면이 주변보다 낮아 장마철만 되면 물이 고여 침수 피해에 시달렸고 대기 상태도 자주 안 좋았다.


그러다 보니 도시 외곽으로 나올수록, 외곽의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그나마 살만한 지역이 형성됐다.




도시 외곽을 뒤로하고 폭심지이자 구도심 중앙 지역으로 가까워질수록 마치 저주라도 내린 듯한 암울한 도시가 펼쳐진다.


이런 곳에 그대로 신도시를 건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 그랬다면 유사 이래 최대의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공사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구도심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는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신도시와 고가도로들은 구도시에 그림자를 드리워 일조량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기가폴리스 자치구역들 중 12시간 내내 단 한 번도 햇볕이 들지 않는 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이 로그시티일 것이다.


하지만 도시의 진정한 문제는 물난리, 스모그, 기후나 일조량 따위가 아니다.


새로 건설되고 있는 고가도로 위쪽의 신형 고층 빌딩이 가득 찬 외곽 신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 범죄가 중심부 빈민가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시로 발생한다.


이 일대의 연평균 강력 범죄율은 종전 이래로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며 수직 상승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 인구 55만에 35 제곱킬로미터 규모의 반지하 도시는 원래 이름보다 ‘로그시티(Rogue City)’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심지어 정부 공식 문서에서도 본래 명칭보다 이 별명을 더 자주 인용할 지경이었다.


이 구제불능의 도시는 '기가폴리스(Giga-polis)' 전국을 통틀어 범죄율, 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혔다.


문제는 단지 기가폴리스에서만 1등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로그시티는 무려 전 세계에 분포한 모든 폴리스 행정구역들의 동일 단위 면적 대비, 동일 기간 내 범죄 발생 빈도를 측정한 차트에서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외곽 부근의 고가도로에 연결되어 부유한 상류계층을 유치하기 위해 설계된 초고층 신도시가 완공된 후에는 행정구역들 중 빈부격차, 양극화, 소득 불균형이 가장 심한 지역이라는 암울한 타이틀도 얻게 됐다.





전쟁 당시 사용되었다가 종전 후 회수되지 못한 무기들과 마약류의 전투 각성제가 흘러들어오면서 이러한 사태를 촉진시킨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후술할 저렴한 노동력 유치를 위한 이민 장려 정책이 대실패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이 로그시티의 치안과 빈민 구제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관할 지방행정청은 결국 5년 전인 2083년에 공식적으로 파산해버리고 말았다.


로그시티에 대한 치안 포기와 더불어 지방행정관청, 우체국, 경찰서 및 지구대를 비롯한 모든 행정 서비스가 중단됐다.


지방행정부가 이 구역에 대한 자치권을 포기하고 기가폴리스 정부에 반납해버린 것이다.


말이 파산이었지 그동안 로그시티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조성되었던 그 많은 행정예산이 정말로 모두 사용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소문이 무성하다.


공식적인 발표와 같이 자치단체에서 로그시티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이미 싹 긁어 쓴 뒤라 오히려 적자였다는 다수설과 누군가 이를 빼돌려 책임지지 않고 달아났다거나, 기가폴리스 정부로 넘어갔다는 소수설 등이 존재한다.


그 예산이 실제로 이미 다 사용이 되었든, 누군가가 빼돌려 썼든 지금은 알 방도가 없다.


이 사건은 매스컴을 통해 ‘행정청의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준 사태’라며 대차게 비판받았고 몇몇 책임자들이 사임하는 선에서 겨우 일단락됐다.


어쨌은 그 후 3개월간의 유예기간 동안 로그시티에 설치됐던 모든 공공기관들이 서서히 철수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방법원의 관할(管轄)도 모호해지면서 그야말로 로그시티의 무법지대화가 가속화됐다.


기가폴리스 전역에서 거진 한 달 동안 발생하는 분량의 범죄가 로그시티에서는 단 하루 저녁 8시간 만에 이뤄진다.


공권력의 붕궤를 찬양하듯 하루가 멀다 하고 범죄의 향연이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지 않아도 높았던 범죄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치안을 담당했던 기관과 경찰 공무원마저 도시를 떠나게 되면서 공식적인 집계도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로그시티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공권력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오히려 이러한 점은 범죄자들에게는 매력으로 작용했던 모양인지 전국의 수배범이나 도망자들이 숨어들기 시작했다.


졸지에 이 구제불능 구역을 떠안게 된 기가폴리스 정부측에서는 이에 대하여 한동안 아무런 공식적인 성명이나 대책 발표가 없었다.


혼란 상태를 방관하는 기가폴리스 정부와 검경을 대신해 연방에서 설치한 준군사 기관인 ‘기가폴리스 헌병군(Giga-Polis Gendarmerie, GG)’의 소수 대원들이 거리의 치안이라도 유지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공권력 부제 무법 기간이 약 6개월가량이나 지속된 후에야 기가폴리스는 로그시티의 치안유지 담당으로 제3의 세력에게 일부 공권력을 위임한다.


로그시티의 새로운 공식 지배자로 발탁된 것은 다름 아닌 세계적인 민간군사기업(PMC, Private Military Company; 주로 전직 군인 출신 용병들로 구성된 군사 기업. 정부나 기업의 하청을 받아 국가 분쟁, 경호, 지역 치안 관리, 군사 훈련 및 기술 컨설팅 등 전쟁과 관련된 일에 소속 용병과 장비들을 파견해 주고 보수를 받는다. 제3차 세계대전과 차원전쟁 종전 후 사회로 쏟아져 나온 엘리트 참전용사들이 PMC에 몸을 담았고, 크고 작은 군사 기업들이 난립하였지만 현재는 소수의 초거대 민간군사기업으로 인수합병이 이루어진 상태다.)들 중 하나인 ‘블랙앵커스(Black Anchors)’였다.


기가폴리스 정부가 블랙엥커스에게 로그시티의 치안관리를 위탁하는 위임계약을 체결한 것인데, 이 계약의 일부 내용이 재미있다.


1년마다 재계약이 이뤄지는 이 위임계약의 특수 조항에 따르면, 매년 로그시티 범죄율의 증감폭을 0%대(오차 범위 ±1%)로 ‘유지만 해도’ 기가폴리스 정부에서 추가 조건 없이 블랙앵커스와의 치안권 위임계약을 연장하도록 되어있다.


즉, 이 조항만 만족시키면 블랙앵커스는 무기계약 형태로 로그시티를 계속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특수 조항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범죄율 0% 달성이 아니라 범죄율 ‘증감폭 0% 유지’라는 것이다.


이 단서 조항은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 및 분석이 가능한데 첫째, 사실상 로그시티는 기가폴리스 정부가 반쯤 포기한 ‘범죄율 감소는 거의 불가능한’ 막장 도시라는 점이다.


뭐 물론 매년 수직 상승하는 범죄율을 전년도 대비 그래프의 경사도를 아주 조금이라도 완곡하게 해도 사실상 범죄율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라고 봐야 할 지경이지만, 어쨌든 범죄율의 직접적인 감소를 추구해야 할 기가폴리스 정부가 ‘증감폭 0%’를 계약 조건으로 삼았다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둘째, 한편으론 정부가 PMC를 견제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를 설정해 놓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계약상의 안전장치 없이 단순히 범죄율을 특정 퍼센테이지 이상 낮춰달라, 범죄 없는 로그시티를 만들어 달라라고 요청한다면, 이익만을 추구하는 민간 용병 기업이 계약조건 만족을 명목으로 로그시티에 무슨 짓을 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멋대로 계엄을 선포하고 전투원들을 동원해 로그시티 주민 전부를 학살하거나 전술 핵 폭탄을 터뜨린 다음 범죄율 0%를 달성했다고 인센티브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물론 블랙앵커스같이 명예나 평판을 신경 쓰는 초거대기업이라면 그럴 일이야 거의 없겠지만은 상술한 행위를 절대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그 누구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가폴리스 정부가 고심 끝에 제시한 ‘증감율 없이 현황 유지’라는 이 계약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블랙앵커스는 규제의 끄트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지켜가며 오늘도 이 쓰레기 도시의 치안 유지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특히 블랙앵커스에서 파견한 로그시티 치안의 총 책임자 ‘길버트 호크우드(Gilbert Hawkwood)’ 대령은 그의 참전용사이자 용병으로서의 화려한 커리어만큼이나 엄격하고 단호한 태도로 범죄를 대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아직 이 구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정의와 질서가 아닌 혼돈과 범죄다.


특히 밤이 내려앉은 로그시티에서는 더더욱.




----




눈이 따가웠던 석양이 사그라지면서 곧 밤이 되려고 한다.


3명의 병사가 일렬종대로 쓰레기가 즐비한 골목길을 가르며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회색 톤의 디지털 픽셀 패턴식 어반 카모 전투복 하의를 착용한 그들이 뛸 때마다 복부와 등의 경량 방탄조끼가 가볍게 쩔그럭쩔그럭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조끼 가슴팍에는 블랙앵커스(Black Anchors)의 상징인 검은색 닻 문양이 수 놓인 휘갑치기(오버로크) 패치가 붙어있었다.


허리춤 전술 벨트의 자석식 고리에 단단히 부착되어있는 접이식 소형 자동소총으로 보아 단순한 치안유지 요원이 아님이 분명했다.


적어도 낮 동안은 대부분의 밴디츠들이 블랙앵커스와의 직접적인 마찰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치안관리 요원들은 SMG(Sub Machine Gun; 기관단총)나 권총 정도만 소지하는 대신 자신들이 블랙앵커스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훨씬 요란스러운 장비를 착용하거나 눈에 잘 띄는 패치를 부착했다.


“팀장님, 해가 거의 떨어졌습니다.”


“이제 진짜 어디로든 들어가야 합니다.”


맨 앞뒤에 선 요원이 마른침을 삼키며 이어피스 마이크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들은 밤이 되면 이 구역의 지배자가 바뀐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계속>

unnamed.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로그시티 : 흑단목함의 비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 2화. 이중생환자(二重生還者) (2) - 불신의 기억 23.04.20 9 0 11쪽
5 1부 / 2화. 이중생환자(二重生還者) (1) - 갈등 23.04.18 11 0 10쪽
4 1부 / 1화. 이상한 수임(受任) (3) - 작전 기획 23.04.13 17 0 10쪽
3 1부 / 1화. 이상한 수임(受任) (2) - 사무장(事務長) 23.04.11 16 0 9쪽
2 1부 / 1화. 이상한 수임(受任) (1) - 블랙앵커스 현장팀 23.04.10 19 0 12쪽
» 프롤로그 - 전쟁의 유산 23.04.10 26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