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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님의 서재입니다.

전대 성녀의 대체품이 되었으니 탈출을 희망한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heide1991
작품등록일 :
2020.05.20 01:46
최근연재일 :
2020.05.22 22:55
연재수 :
6 회
조회수 :
172
추천수 :
18
글자수 :
39,541

작성
20.05.20 02:08
조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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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1화.

DUMMY

벽돌로 둘러싸인 어둑한 공간에선 지하실의 냄새가 났다. 어릴 적 탐험을 하겠다고 내려갔던 지하실의 퀘퀘한 곰팡이와 먼지의 냄새.




“서경아.. 우리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을까.”




“글쎄.”




울먹이는 수연이의 말에 무심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닿은 어깨까 움찔 떨리는 것이 느껴져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 또한 여유가 없었다.


중세시대에서나 볼 법한 무거운 쇠갑옷을 입고 자신들의 키보다 큰 창을 든 인간들이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쇠갑옷에 창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건만 창에서는 알 수 없는 빛이 뿜어져나오며 웅웅거린다.


누군가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아직 추위가 다 풀리지 않은 2월 중순. 그들은 우리가 이곳에 떨어지자마자 모든 걸 가져갔다.


가방, 핸드폰, 외투, 하다못해 머리끈까지. 속옷을 뺀 모든 것들을.


산발을 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옷이 벗겨진 순간부터, 여기 있는 모두는 살아생전 처음 겪는 공포에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 증거로 아까부터 오줌 지린내가 나고있다. 누군가 게워낸 토사물도 방치된 상태다.




“무서워..”




특히 수연이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릴 때마다 이가 따닥따닥 부딪친다. 새파란 입술은 짓씹어져 피가 말라붙었다.




“괜찮아.”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다. 알고는 있지만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마치 지금이라도 상냥하게 대하면 방금 전 뱉어낸 말이 무마되기라도 할 것처럼 수연이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 덜덜 떨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내 손을 마주잡는다. 놓치면 모든게 끝나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머릿속으로 되짚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게 평범한 하루였다.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맛집을 찾아 버스를 탄 게 전부였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버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하얀 원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이었다. 알 수 없는 글자가 빼곡히 적힌 원형의 틀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는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갑자기 모르는 곳에 떨어진 우리가 당황해서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버스 안에 있던 어떤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갑옷을 입은 채 대기하던 이들 중 하나가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쳐냈다. 창끝에 닿자마자 머리와 몸이 순식간에 분리되었다.


몸은 힘없이 그자리에 풀썩 쓰러졌고, 목은 데굴데굴 굴러 사방에 피를 흩뿌리더니 벽에 툭하고 부딪혔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귀가 찢어질 정도로 웅웅 울려댔다.


아무도 목이 굴러다니는 자리에 다가가려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내가 그 목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앉았다. 수연이는 떨어진 목을 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반대편으로 고개를 틀었다. 잘린 목과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남자가 말을 걸어올 것 같았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죽는다니.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다.



“서경아 저기..”




“씨발 조용히 좀 해. 또 누구 하나 목 날아가는 거 보고싶어?”




조용히 하라는 당사자의 입에서 더 큰 소리가 나오자 병사들 중 일부가 몸을 들썩였다.




“한경태. 목소리 낮춰.”




“지금 저 개복치 싸고 돌 때야? 주서경, 네가 아직도 뭐라도 된 것 같지?”




과도한 스트레스에 해묵은 열등감이 섞여나온다. 뒤에 이어질 레파토리 또한 쉽게 예상이 갔다.




“정신병자년이 어디서 이래라 저래라야.”




“야 미친. 조용히 좀 해..!”




비명처럼 새어나온 목소리에 한경태는 뭐라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으면서도 한경태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있는 여자아이는 중2때 나와 같은반이었던 반장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물기어린 눈동자에 간절함이 깃든다. 설마 내가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난감한 표정으로 마주보고 있는데 갑자기 수연이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윤아 또한 움찔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내려오는 계단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리기를 잠시.




철걱, 철걱, 철걱.




이내 누군가의 발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워낙 가까이 붙어앉아 있던지라 무거운 마찰음이 가까워질 때마다 사람들의 몸이 떨리는게 느껴졌다. 이윽고 계단이 환하게 밝아지며 창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자 수연이가 ‘힉’하고 숨을 삼켰다.


대기중이던 병사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병사 하나와 유일하게 갑옷을 입지 않은 남자 하나가 차례로 내려왔다.


앞서 내려온 새로운 병사는 갑옷으로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병사들과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다. 기백이라고 해야할까. 키도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였고, 그가 든 창은 다른 것들보다 것보다 훨씬 밝은 빛을 띄고 있었다. 그 환한 빛이 바로 뒷쪽, 주인이라고 짐작되는 이의 일부분을 비추었다.




빛을 받은 새빨간 머리칼이 마치 피로 만든 바다처럼 넘실거렸다. 뒤에 서 있던 남자는 그림자속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란테.”




그의 입이 움직이자 덩치큰 병사가 옆으로 물러나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이의 모습이 창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받아 단번에 드러났다.


붉은 머리카락과 하얀 이마, 콧날, 금색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여자아이들 중 일부가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날카롭고 균형잡힌 이목구비였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이 모든게 꿈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이게 현실이라면 말도 안되게 불공평한 일이다. 진짜 살아있는 인간이 저런 얼굴을 하고 있다면, 나머지 인간들은 신이 대충 빗다가 내팽개친 점토 뭉텅이 쯤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저 비현실적인 얼굴이 여기 있는 이들의 주인이고, 우리를 끌고 오도록 지시한 사람인 건 확실해보였다. 혼자서만 붉은 색의 망토와 금색 자수를 놓은 셔츠, 검은 바지와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 부츠를 신고있었다. 무엇보다 표정이 아주 오만한데다 우리를 보는 눈이 무슨 벌레를 쳐다보는 것 마냥 재수가 없었다.




그는 주변을 빙 둘러보다가 토사물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지린내도 맡았는지 손등을 코에 가져다대며 천천히, 원을 그리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긋이 살펴보았다. 그가 한발짝 뗄 때마다 모두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도 감히 피하는 인간은 없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홀리기라도 하는 듯,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 얼이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가 내 앞에 방치된 머리통을 대수롭지 대수롭지 않게 차 버리며 마침내 나를 들여다 보았을때, 나 또한 잠시 그 얼굴에 넋을 잃었다.


반면 그는 무엇을 확인하는 것인지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전체적인 형태를 확인하기라도 하듯 머리부터 발 끝까지 주욱-훑어보고는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순간,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서경아 나..”




“쉿.”




내가 수연이를 조용히 시키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가 방금 전 자신의 앞에 앉아있던 이에게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마눅-이라고 말한 것 같았다. 분명 다른 언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엇을 지시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꺄아아아악!!”




옆자리의 머리가 하나, 날아갔다. 여자의 머리다. 긴 머리칼이 눈 앞에서 춤을 추더니 그대로 바닥에 뒹굴었다. 이제 날아간 머리는 둘. 남아 있는 사람은 열 하나. 그 중 다섯은 나와 고등학생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다.


나는 그의 눈을 보았다. 금을 녹여 부은 듯한 눈동자엔 일말의 동정심도 비쳐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금 미간을 좁힌 채 자신의 셔츠에 튄 핏방울을 내려다보았다.


이 인간, 분명 우리를 전부 죽이라고 명령했다. 나는 수연이를 구석으로 보내고 최대한 앞을 막아섰다.




‘어쩌지?’




그러는 사이에도 병사들은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어떻게 도망치지? 도망 칠 수 있나?’




어느새 반장을 포함한 동창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한경태 또한 벌벌 떨면서 내 뒷쪽으로 몸을 숨겼다.




‘지금, 지금 저 사람이 들어온 곳으로 나갈 수 있을까? 안돼. 틈이 없어. 안돼. 안돼. 안돼.’




비명이 지하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눈앞이 온통 새빨갛게 변해간다. 피칠갑된 쇠갑옷, 사선으로 붉게 물든 벽돌들, 계속해서 뜨겁게 흘러넘치는 바닥. 나는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를 응시했다. 새빨간 머리카락. 흔들림 없는 금색 눈동자. 어차피 모두 죽는다. 그것도 순식간에.




“씨발.”




나는 코앞에서 스러져가는 노인의 시신 아래로 재빨리 몸을 숙이고 들어갔다.




“야, 야 어디가!”




한경태의 다급한 목소리와 나머지 아이들의 비명이 차례로 귓가를 때렸다. 무기도 없다. 쇠갑옷을 입은 이들과 달리 우리는 맨몸이다. 어차피 다 죽은 목숨.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린다 한들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병사의 수는 총 여섯. 세명은 나와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나 내가 혼자 빠져나와 현재 빨간머리와 나 사이에 서있는 갑옷은 셋. 하나는 왼쪽에서 50대쯤 되어보이는 여자를 죽이고 있고, 하나는 그의 앞에 비스듬히 서있다. 그리고 빨간머리의 옆에 꼼짝없이 서 있는 멀대같은 놈이 하나 더.




나는 그대로 노인 시체를 들춰엎고 뛰었다. 평소라면 한 번에 들 수 없을 무게였지만 어차피 몇초 후면 죽을테니 허리가 나가도 상관 없다. 저들도 여자인 내가 위협적이란 생각은 못 할 테니 한 번 정도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내가 달려나가자 주변의 병사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순간 ‘어...?’하고 움직임을 멈추는 듯 했다.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아마 2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대로 노인의 시체를 거구의 병사에게 집어던지고 그 뒤에 있던, 조금 놀란 듯 금색 눈을 크게 뜬 남자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정말로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숨결이 손바닥에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 진 순간. 불현듯 손바닥이 뜨거워지며 파란 빛무리가 손 주위로 일렁거렸다.




“커헉..!”




그러나 남자의 얼굴에 손이 닿기 바로 직전에 바로 서 있던 병사의 주먹이 순식간에 내 명치를 강타했다. 다른 이들과는 반응 속도부터 달랐다. 노인이 시체따위 가뿐하게 한 손으로 집어던지고, 다른 손으로 날 제압한 뒤 내 목을 잡고 한번에 들어올렸다. 가까이 오니 그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붉은 머리의 남자를 가리고 있을 때도 느껴지긴 했지만 이 남자, 2m가까이 되는 장신이다. 거대한 손이 내 목을 감싸 조이자 의식이 날아갈 듯 말듯 눈앞이 아슬아슬했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붉은 머리의 남자가 웃고있는 듯 했다. 그는 병사의 팔에 매달려 버둥거리는 내 머리채를 잡고 위 아래로 흔들었다. 두 사람이 나를 두고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언어가 달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소리도 멀어져가고 있으니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진짜 죽는구나.’





멍하니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다. 그래도 한 번은 시도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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