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일단은 착한(?) 내가, 그냥 넘어가 준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쟤, 쟤가 지금, 여기에 어떻게 있을 수가...!!!’
도리도리...
난 필사적으로 검을 꼬옥 끌어안은 채,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였다.
하~아...
[어쩐지... 아무리 그 영감님의 손녀들이라 할지라도 너무 과도한 친절을 베푸신다고 생각을 했네요, 그냥 추천서만 넘겨 드리면 될 일을 가지고서 말이죠. 뭐 그렇다 보니, ‘왜 굳이 제게 배웅까지 시키셨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됐지만요.]
“....!!!!”
[자~, 지금 바로 제게 넘겨주신다면 정상참작(?) 정도는 고려해 볼게요, 마스터.]
미소를 머금고 다가오는 그녀는, 그 미소와는 반대로 가라앉은 눈빛에서 살벌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제길... 제크 아저씨와의 대화가 너무 길었었던 건가? 아니야, 그 정도의 여유는 충분했어. 그래, 이건 아마도 저 불여시가 이걸 미리 눈치채고는 그녀들과 그곳 안으로도 함께 들어가지도 않았던 것이 분명해...’
젠장, 젠장, 젠장!!
‘...이걸 어쩌지? 밖으로 나와버려서 제크 아저씨의 도움을 바라기도 이미 글렀고...’
어느샌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제길, 뾰족한 수가 생각나질 않아...’
결국엔 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코너에 몰렸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레, 레이 내 말을 잠깐 좀 들어봐봐. 그러니까, 그 뭐시기냐 이건 말이지...”
아, 하하..하...
[.....]
그렇게 몇 시간 같은 몇 분이 흘렀을까?
말없이 노려보는 그녀의 시선으로 인해 압박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쯤, 무슨 속셈에서인지 어느덧 그녀가 살짝 표정을 풀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후~우... 일단은 알겠어요, 마스터. 그럼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릴 테니 일단 자리를 좀 옮기시죠. 그리고 제발!! 그 바보 같은 웃음소리 좀!! 그만 내시고요!!]
어라??
‘얘가 여기서 이렇게, 발을 뺀다고?!’
썩은 동아줄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지만, 이미 저 손을 잡지 않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 어?! 아, 알았어.”
조금은 떨떠름한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면 어디로..?”
[마침 이곳에 있으니, 제크님께 양해(?)를 좀 구하고 저희가 예전에 가끔 사용했었던 쉘터를 쓰도록 하죠.]
‘쩝... 협박이겠지...’
[자~, 그럼 먼저 들어가시죠, 마스터.]
끼이익...
혹여라도 생각이 바뀔세라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 다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내가 다시 모습을 비추자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제크가 이내 곧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어? 시후, 혹시 뭔가 빠진 거라도..?”
쩝...
“고새 문 앞에서 잡혔구만... 으힉!!”
[제크님~!! 도대체 마스터에게 이것을 함부로 그렇게 막 내어주면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아, 아니!! 그, 그게 말이지, 시후가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고 이것저것을 보여주는데, 그러니까 그게 글쎄 그럴싸하기도 하고... 그리고 또... 끄응...”
우물쭈물...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레이의 눈초리에 제크가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았으나, 역부족임을 체감한 듯 이내 고개를 떨궜다.
탕~!
그리고 그사이, 어느샌가 목덜미까지 잔뜩 붉어진 레이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짚었다.
[그래도!! 그러시면, 안 되는 거죠!! 정말...!!]
으으으...!!
[아무튼!! 두 분 다, 각오하세욧!!]
“.....”
“.....”
결국, 그렇게 시작되어버린 그녀의 잔소리(?)가 한동안 두 남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갔다.
.
.
.
(중략)
달~칵.
“흠~흠. 그럼 난 이만...”
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찻잔을 내려놓은 제크가 황급히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는 재빠르게 문을 여닫으며 퇴장하였다.
끼이~익!! 탁~!! 철~컥!!
조금 전, 레이가 언급했던 쉘터라 불리는 이곳은 원룸 넓이의 공간에 있을 것(?)은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작은 주거 공간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작은 공간의 가운데 위치한 테이블의 양옆에선 두 남녀가 마주 보고 앉아 말없이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호로록...
“.....”
하~아...
[마스터, 지금부터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릴게요.]
‘그나저나... 얘가 갑자기 이러는 의도가...?’
음...
‘그렇다면 어디... 자극을 한번, 줘 볼까?’
무언가 의뭉스러운 느낌이 들어, 난 살짝 그녀를 떠보려 미끼를 던졌다.
“그건 그렇고, 갑작스레 제안이라니? 하기야 뭐~, 난 당연히 생큐지~! 아~ 물론, 옷을 벗어달라던가 그런 제안은 거부하... 헉!”
부들부들...
[으으으으... 또, 고새를 못 참고 잘도 그런 말을...!!]
“내, 내가 뭐... 헙!!”
탕~! 드르륵~!!
[정말...!! 그 입 그만, 다무세요... 그렇지않으신다면, 제안이건 나발이건 간에 지금 당장!! 루크 씨께 보고를 드리러 갈 테니까요!]
‘헉! 여기서 더하다가는, 죽을지도!!’
레이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 짚고는 일어서서 죽일듯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아~하하하! 노, 농담이야! 농담! 자~자! 레이, 리, 릴~렉스~!”
나는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살살 어르고 달래기 시작하였다.
[하~아! 내가 미쳤지 정말! 이놈의 계약!! 무를 수도 없고!]
‘저, 저저저, 눈 돌아간 것 좀 보소.’
긁적긁적...
‘하~! 그나저나 이건 정말 빼박이네. 겨우 이 정도로 쟤가, 저렇게 열을 낸다?!!’
그에, 내면에 잠들어 있던 사냥꾼의 본능이 분명 무언가가 있음을 내게 경고하였다.
‘혹시, 뭔가 노리는 거라도... 아!’
그러던 중 무심코 최근에 그녀가 원하는 것이 있었음을 기억해 내었다.
‘뭐, 그렇다면야 내가 또 방법이 있지. 흐흐흐흐.’
흠, 흠!
“레, 레이야! 이번 한 번만 봐주면, 내가 올해 발매된 ‘로하스’의 앨범과 자켓, 브로마이드 전부에 모든 멤버의 사인을 받아다 줄게~! 오케?? 콜~?!”
난, 그녀가 결단코 거부하지 못할 승부수를 날렸다.
아니나 다를까?
[코, 콜~!]
‘옳지~! 물었고~!’
[‘아~앗! 이, 이게 아니지 참!’]
흠~흠!!
[조, 좋아요. 마스터가 정말 많이 반성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번 한 번만 더 제가 양보해 드리는 거예요! 겨, 결단코 무슨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절대로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흐흐흐, 그럼 그렇지. 레이, 발버둥을 쳐봐야 넌 영원히 내 ‘손바닥 안’이란 말씀~!’
얼굴을 붉히며 열변을 토하는 그녀의 모습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어쨌거나 예상을 하긴 했어도 이걸 이런 식으로 그냥, 은근슬쩍 쉽게 넘어가 준다고? 쟤가?’
하~!
뻔히 보이는 수작질에 살짝 혀를 찼다.
‘이건 아마도 애초에 저 제안이라는 걸 나에게 하려고 이미 마음먹고 있었단 소린데...’
하~아...
‘뭐, 일단은 착한(?) 내가, 그냥 넘어가 준다.’
잠시 의문은 들었으나, 일단 그녀의 의도에 편승해 따라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럼~ 그럼. 아주아주 순수한(?) 마음을 지닌 우리 레이가 그럴 리가 없겠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자~아~!
“그럼 어디, 그 제안이라는 걸 내가 한번 들어볼 수가 있을까?!”
크~흠, 흠흠...
간들거리는 나의 말투에 무언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 상태로 레이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저의 제안은 이러해요...]
아~!
[물론 그 전에, 그 검을 제가 보관한다는 것이 선행되어야겠지만요. 그리고 당연히 잘 아시겠지만, 이것에 대한 이견은 절대로 받지 않겠어요.]
“.....”
그에,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양어깨만을 살짝 으쓱이자, 물끄러미 날 응시하고 있던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뭐, 마스터께서 이 조건만 수락해 주신다면야...]
음...
하지만, 그녀는 금세 말끝을 흐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쩝... 불안하게 시리, 거 되게 뜸들이네...’
그러나 그런 불안도 잠시, 이내 그녀가 눈빛을 빛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마스터께서 이후에 10층의 제가 지정해드리는 구역만 저의 서포트 없이 무사히 클리어 해내실 수만 있다면, 그 검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바로 조처해 드릴게요.]
‘뭐, 뭐야? 생각했던 것보다, 조건이 너무 간단하잖아?!!’
[물론, 루크 씨의 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제가 도와 드린다는 의미에요. 단, 검의 봉인은 당연히 1단계까지만 해제한다는 조건이 붙을 테지만요.]
‘!!! ...이럴 애가 아닌데...??’
너무나도 수상한 냄새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래도 일단은 끝까지 한번 들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 참! 깜빡할 뻔했네요. 그리고 서비스로, 봉인 해제 시 필요한 스킬볼 중 부족한 부분까지도 제가 채워 드릴 예정이니 분발해주세요~ 마스터~.]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결국, 나의 입은 열릴 수밖에 없었다.
“어~ 어?!! 너 그 말!! 그거, 정말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이건 뭐, 조건이 후해도 너무...?!!”
[당연하죠~ 제가 어떤 분(?)처럼 매번 입에 거짓말만 달고 사는 사람 같아 보이세요?]
후~훗.
[물론, 이 모든 건 마스터께서 성공하셨을 때의 얘기지만요.]
그렇게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더욱이 그런 그녀의 의도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으으으... 도대체, 뭐냐고!!’
하지만 이미 생각의 허용치를 넘어버린 나의 뇌는 과부하로 인하여 더 이상의 추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젠장! 이렇게 되면, 못 먹어도 고다!!’
“오케이~! 콜!! 딜 성립!! 이런(?) 것도 못 주워 먹으면 나가서 뒈져야지~!!”
하지만, 그때.
갑자기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져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흐~응? 과연 그럴까요?]
“...??”
[마스터가 공략해야 할 구역을 제가 10층의 어느 곳으로 지정할 줄 아시고요?]
“너?!! ...서, 설마?!!”
아니나 다를까?
의미심장하게 날아오는 비수 같은 그녀의 말에, 난 순간 머리를 짚었다.
‘미, 미친!! 서, 설마?!! 저 불여시가 그곳을?!!’
“너너너! 지정하려는 곳이 설마 거긴 아니겠지?!!”
[그 설마가 맞거든요? 혹시라도 그곳은 10층이 아니라고 우기시려는 건 아니겠죠? 그만 포기하시죠, 마스터. 호호호.]
역시나,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웃음소리가 나의 귓전을 때렸다.
‘크~윽... 내가 고작 저런 노림수에 당하다니!!’
제기랄...
‘뭐~!! 그래, 좋다 이거야~!! 나도 이젠, 이판사판이다!!’
“까짓거~! 그 제안, 받아주겠어~!! 코~올!!”
앞에서 얄밉게 살랑거리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순간 나도 모르게 욱하는 심정이 들어 소리쳤다.
‘레이, 네가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래, 이래도 어디 네가 그렇게 나올 수 있나 한번 보자.’
아니나 다를까, 예상치 못했던 반격에 놀란 레이가 눈을 부릅떴다.
[마스터?! 호, 혹시, 미치셨어요?! 지금 저를 한번 떠보려고 하신 말씀이시죠?! 그렇죠?!]
“허~! 마스터에게 미쳤냐니! 여하튼, 내가 지금 그럴 이유가 전혀 없잖아? 애초에 그 제안이란 건 네! 가! 한 거라고~? 그리고 난, 그저 그 제안에 응하였을 뿐이고. 왜? 뭐? 문제라도 있나?”
[죄, 죄송해요. 하지만, 그건!!!]
‘오케이~ ‘마이 턴...’ 큭큭큭.’
맘속으로 영화 속 누군가의 명대사를 되뇌며 전투(?)의 의지를 다졌다.
“그건 뭐~ 뭐?! 설마, 서포터가 책임감도 없이 마스터에게 아무 말이나 찍찍 내뱉었단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으~으으...
[‘정말!! 얄미워 죽겠어!’]
찌릿~!
큭큭큭큭...
도끼눈을 뜬 그녀의 표정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아~!! 십 년은 묵었던 체증이 쏴~악! 내려가는구나!!
지금 나의 표정을 나 자신이 보아도 얄미울진대, 타인인 그녀는 오죽이나 했으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역관광(?)을 당해버린 그녀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요, 알겠다고요!! 제가 졌어요, 그냥 다른 곳으로 지정하면 되잖아요!! 흥~!]
‘미안하지만 레이야, 난 아직 안 끝났어. 큭큭큭큭.’
14화에서 계속됩니다.
- 작가의말
읽어 주시는 독자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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