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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님의 서재입니다.

열아홉 바로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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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작품등록일 :
2023.08.17 13:20
최근연재일 :
2023.10.14 13:21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05
추천수 :
0
글자수 :
53,804

작성
23.10.14 10:48
조회
6
추천
0
글자
8쪽

고딩이 어디서 술이야

DUMMY

***


우린 사장님의 차를 타고 20분 거리에 떨어진 파스타집으로 이동했다. 가다 보니 내가 엄청난 대인기피증의 소유자였던 사실이 떠올라 점점 초조해졌다. 대게 맛집엔 사람들이 바글바글 넘쳐났다. 그 대인원을 마주하기엔 난 여전히 초라하고 자신 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내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담.


그때, 내 옆자리에 앉은 경우가 조심스럽게 떨리는 내 손을 잡아줬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복화술을 시작했다.



"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너한테 뭐라고 하면 죽빵을 날려준다니까. "


사장님을 의식해서인지 목소리가 모기보다 작았지만 그것마저도 든든하기만 했다. 내 옆에 도경우와 좀 별나지만 인생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장님이 든든히 지키고 있다면, 감히 그 어떤 인간도 날 함부로 무시하진 못할 거다. 사장님 말대로 난 의사 친구를 둔 성공한 인생이니까!


난 든든한 두 사람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퇴원 후 처음으로 파스타집에 가봤다. 예전에도 많이 가본 곳이었지만 오랜만에 보니 강직하게 굳어 있던 마음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돈만 있으면 이 나라는 청춘을 즐기기에 너무도 좋은 곳이었다.


우린 직원의 안내를 받아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경우는 날 사람들과 차단시키기 위해 일부러 창가쪽 자리에 앉게 했다. 이러니 내가 얠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도 미안하고 죄가 되는 듯한 찝찝한 기분이었다.



' 네가 지금 이런 고민할 때냐. 파스타나 먹고 공부나 열심히 하자... '


한숨이 나오려는 찰나 난 간신히 현실을 직시하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음... 파스타 2개랑 리조또 하나, 그리고 피자 하나 시키는 건 어때? "


역시 단골답게 사장님이 메뉴 선택을 주도했다. 난 그녀의 리드에 따라 눈을 굴려 메뉴판을 탐색했다.


크림 스파게티 19000원?!!!


나때만 해도 만 원을 넘지 않았던 파스타가 어느새 2만 원이 다 돼갔다. 반면 10년 전보다 더 가난해진 난 무시무시한 물가의 습격에 선뜻 메뉴를 선택할 수 없었다.



" 요즘 여자들이 알리오 올리오 좋아한다던데. 연수 넌 어때? "


" 어? 나도 좋지. 하하하... "


경우는 나한테 웬 괴상한 이름을 대며 어떠냐고 물었다.


자꾸 이런 말 쓰긴 싫지만 나때는 스파게티 하면 크림 스파게티, 토마토 스파게티, 그리고 치즈 오븐 스파게티가 다였다. 알리고 골리곤지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쟨 도대체 뭔데 이름이 저렇게 어려운 걸까. 메뉴판부터가 세대차이가 나서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 그럼 피자는 마라게리따 하고, 안심 전복 내장 리조또랑, 빠네 어때? "


마음만은 신세대 답게 사장님이 능숙하게 메뉴를 집어냈다. 이 세대 차이를 보건대 나랑 사장님이랑 나이가 서로 바뀐 거 같았다. 그걸 들키지 않으려면 나 그냥 주는 대로 맛있게 받아 먹어야만 했다.


잠시 후, 주문한 메뉴가 나오고 배가 고팠던 우리는 침을 질질 흘리며 음식으로 달려 들었다.



" 여기. "


그 와중에도 몸에 메너가 벤 경우가 나에게 피자 한 조각을 덜어줬다.



" 그래. 이것도 친구끼리 할 수 있는 메너다 이거지? 너네 어디 가다가 그런 친구 있으면 나도 좀 소개시켜줄래? "


이를 본 사장님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 아이, 제가 누나도 드릴려고 했죠! "


경우는 재빨리 피자를 사장님의 접시에 덜어주며 이를 수습하려 했다. 파스타 가격만큼이나 이 자식의 넉살도 파격적으로 변한 거 같았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며 남들을 쌩까고 다니던 자식이 이젠 알랑방구도 낄 줄 알았다. 세월이 이렇게나 무서운 거였다.



" 내가 더 연장잔데 왜 연수씨가 먼저야? "


" 누나가 더 연장자였어요? 전 얼굴만 보고 당연 누나가 더 어린 줄 알았죠! "


" 어머, 자기 뭐야! 당연히 내가 더 나이가 많지! 정말 보는 눈도 없다니까! 호호호. "


다행히 사장님의 기분은 좋아진 거 같았지만 대신 내 기분이 썩어들어갔다.


내가 아무리 10년 간 관리를 안 했어도 액면가로 내가 밀리는 건 말이 안 되지!


갑자기 분위기가 후끈해진 거 같아 난 옆에 있던 사이다를 원샷해 버렸다. 난 녀석을 씹어먹듯 얼음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었다.



" 우리 자기 목 많이 말랐나 보네. 기분이다. 지금부터 맥주로 간다! "


" 역시 우리 누나 센스가 굿이라니까. 저기여, 맥주 3병주세요! 아니다. 2병주세요! "


경우가 좋다고 맥주를 주문했다.


난 술이란 말에 당황했지만 이제 서른이 되어버린 내 나이를 떠올리곤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전엔 안 됐지만 난 지금 소주를 박스로 먹어도 누구 하나 제지할 수 없는 성인이었다.



" 근데 자기, 왜 2병이야? 사람이 셋이니까 당연 병도 세 개여야지. 1인 1병. 그게 국룰인 거 몰라? "


경우의 쪼잔한 주문에 사장님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 연수는 아직 술 안 마셔봤어요. 주량 체크도 안 끝난 애한테 무슨 술이에요. "


" 와.. 남친 흑기사 납셨네! 됐어! 다 먹지 마! 내가 3병 다 마셔버릴 거니까! "


" 전 왜 빼요! 전 주량 체크 확실히 끝나서 이 정돈 끄떡 없어요. "


" 자기 주량이 얼마나 되는데? "


" 소주로는 3병, 양주로는 7잔, 맥주는 무한. "


그게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겠지만 경우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 자기 술 좀 하네? 나도 한따까리 하는데. 언제 한 번 같이 마셔볼까? "


" 술은 언제든 콜이죠. 날짜만 잡아주세요. "


" 역시 의사 친구는 최고야. "


둘이 술로 의기투합하는 동안 난 알게 모르게 소외감이 들었다.



" 나..나도 마실 줄 알아! "


날 순수하게 본 두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완전 초짜는 아니었다. 고등학생 시절 너무도 궁금해서 아빠가 마시던 위스키를 몰래 마셔봤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그땐 맛이 없어 이딴 걸 왜 먹나 했지만 그래도 나름 경험자였다.



" 열아홉살 고딩은 빠져! 이건 어른들의 싸움이야. "


그때 경우가 내 내아를 열 한살이나 삭제시켜줬다.



" 그래. 자기 어쨌든 고딩에서 멈췄다가 다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거잖아. 난 자기 서른으로 인정 못 해. 열아홉살로 다시 시작해! 술은 내년에 마시는 걸로. 탕탕탕! "


뭐 이런 사람들이 있나 어이가 없었지만 날 아직 열아홉으로 봐주는 그들에게 고마웠다.


내 마음도 기억도 아직은 열아홉 살. 억지로 세상이 정한 나이를 따르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이 사람들만은 진짜 내 나이를 지켜줄 거다.


그건 그거고.



" 그래도 술은 마실래요! 요즘은 중딩들도 마신다는데 전 왜 안 돼요! "


" 어허! 언니가 아무리 쿨하고 시원시원해 보여도 보기보다 보수적인 사람이야. 어디 감히 고딩이! 의사 친구, 우리 자기 술 못 마시게 옆에서 쌍심지를 켜고 지켜봐야 한다? "


" 당연하죠. 저도 보기보다 보수적인 사람이라서요. "


꼭 이럴 때만 둘은 오누이처럼 죽이 잘 맞았다. 어쩜 둘이 어렸을 때 헤어진 먼 사촌일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몰래 피검사를 한 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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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질투심에 사로 잡힌 소녀 23.10.14 9 0 6쪽
» 고딩이 어디서 술이야 23.10.14 7 0 8쪽
11 파산 직전인 투자의 귀재 23.10.14 6 0 7쪽
10 미모 특강 23.10.14 6 0 8쪽
9 좋은 어른 23.10.14 8 0 7쪽
8 내가 되돌려 놓을 거야 23.10.14 7 0 7쪽
7 돌연변이 인간 23.10.14 8 0 8쪽
6 이기적인 19살 23.10.14 7 0 7쪽
5 내가 싫어하는 건 인간 23.10.14 11 0 7쪽
4 여전히 예쁘던데 23.10.14 12 0 10쪽
3 몰래 온 손님 23.08.22 18 0 10쪽
2 10년만에 몰락 23.08.21 22 0 10쪽
1 열아홉 바로 서른 23.08.17 5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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