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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님의 서재입니다.

열아홉 바로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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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작품등록일 :
2023.08.17 13:20
최근연재일 :
2023.10.14 13:21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04
추천수 :
0
글자수 :
53,804

작성
23.08.17 13:22
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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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열아홉 바로 서른

DUMMY

***


나무가 알록달록 물들어 있는 가을, 고3인 난 교실에 틀어박혀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다.


" 자자. 이제 수능 한 달 남았으니까 다들 힘들어도 조금만 더 힘내자! 특히 우리 연수. 선생님은 우리 반에서 연수만 믿는다. 한국대 한 번 가보자! "


나 하연수. 예쁜 페이스로 태어나 공부까지 잘하는 소위 말해 엄친딸이었다. 우리 반에서 정시로 한국대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거다. 나머지 애들은 수시로 겨우 인서울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 그럼 이제부터 자습하도록! 선생님 잠깐 교무실 좀 다녀올 테니까 조용히 하고! 다들 연수 방해하지마! "


선생님은 끝까지 내 걱정만 하다가 교무실로 가버렸다. 그러자 벼르고 있던 애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터져 나왔다.


" 아, 진짜 짜증나. 우린 수시 합격 했는데 왜 수업이나 듣고 있어야 하냐고. "


" 내 말이. 이거 완전 시간 낭비야. 이럴 시간에 영화라도 한 편 더 보는 건데! "


" 끝나고 영화관 콜? "


" 콜! "


수시에 합격한 애들은 벌써 인생이 끝난 듯 놀기에 바빴고 그 피해는 전적으로 우리 정시인들이 받고 있었다.


지방대에 합격한 주제에 잘난 척들은. 뭐든 다 좋으니까 제발 내 인생에 방해만 안 됐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말했다시피 난 한국대에 가야 하니까!


내가 한국대에 간다면 저런 애들이랑도 더는 상종할 일이 없을 거다. 그래서 난 하루 빨리 이 지겨운 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내 수준에 맞는 한국대로다가!


" 야, 정인범이다! 오늘도 완전 대박... "


그때, 수시인 중 하나가 창밖을 보며 감탄했다.


정인범. 그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잘생기고 인기 많은 체육인이었다. 인문계에 와서 체대를 노리는 것도 신기했지만 인범이는 그 어려운 과정을 자신의 숙명인냥 미친 듯이 열중하고 있었다.


난 공부에서 탑이라면 인범이는 운동에서 탑. 우리가 결혼한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조합은 없을 거다. 우리 아들은 아마 공부 천재인 운동 천재가 되지 않을까.


창가 맨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난 오랜만에 인범이의 기다란 기럭지를 감상하며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다른 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인범이는 내 썸남이었다. 지금은 입시 때문에 서로 자제하고 있는 거지 거의 사귀는 사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다. 요즘은 연애고 공부고 그냥 예쁘고 잘난 놈이 혼자 다 해먹는 승자 독식의 시대였다. 그 중에서 엄친딸로 태어난 난 남부러울 거 없이 아주 잘 살고 있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쉬는 시간이 되고, 열심히 공을 차던 인범이가 소매로 땀을 훔치며 스탠드로 걸어갔다.


" 와, 정인범 땀 흘리는 것도 멋있어..! 정인범 사랑해! "


눈치 없는 수시인들은 눈치까지 더럽게 없어서 남의 남친될 사람한테 공개적으로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봤자 쟨 너희한테 관심 없다고. 정인범이 만나는 여자가 무려 나라고! 한국대에 합격하면 그 사실을 아주 대대적으로 홍보라도 하고 다녀야겠다.


다시 공부에 집중하려는데 옆 반에 내 불알 친구 도경우가 시원한 이온 음료 하나를 내 책상에 터억 올렸다.


" 이거 마시고 해. 너 좋아하잖아.. "


얜 엄친딸인 나를 뛰어넘는 천재급 엄친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경우가 외모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 재능을 오로지 공부에 몰빵한 나머지 여심을 사로잡고 있지 못 하다는 거다.


본판은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두꺼운 안경과 해병대처럼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에 이성적인 매력이 급하락했다. 그래도 얘가 키는 커서 아직 희망이 있었다.


" 너도 한국대 붙으면 나랑 같이 라식 수술이나 하러 가자. 깍두기 행님들처럼 바싹 밀어버린 그 머리도 좀 기르고. 이 누나만 믿어. 내가 최고의 인기남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


" 뭐래. 공부만 하다가 맛 갔냐? "


" 맛이 간 건 네 헤어스타일이지. 제발 우리 이러지 말자. 한 번만 더 그렇게 머리 잘라오면 내가 그냥 바리깡으로 네 머리 밀어버릴 거야. "


" 그럼 옆에서 내가 네 머리 같이 밀어주려고. "


어쩐지 갑자기 음료수를 조공한다 했더니 나를 갈구면서 공부하다가 받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온 거였다.


네가 그럼 그렇지.


" 야, 정인범 올라 온다! 구경 가자! "


그때, 우리 인범이의 귀환 소식이 들려왔다.


난 6반, 인범이는 4반. 그리고 꼽사리로 경우는 5반이었다. 우리 사이에 얘가 눈치 없이 끼어 있는 게 심히 불만이었지만 다리 두 개만 건너면 인범이를 만날 수 있었다.


" 이거 잘 마실게! "


난 경우가 가져온 이온 음료를 들고 일어섰다. 지금은 나보단 열심히 땀 흘리고 온 인범이에게 이 음료수가 더 필요할 거다.


" 야, 하연수! 너 또 정인범한테 조공하려고 하지?! 새꺄 그거 내가 사준 거잖아! "


" 나한테 준 거니까 이제 내 꺼야! 누굴 주던 내 맘! "


난 교실 밖으로 달리며 신이 나서 소리쳤다. 경우가 뭐라 씨부리던 지금 내 눈엔 오로지 인범이밖에 안 보였다.


그게 내가 열심히 공부한 이유이기도 했다. 자고로 예부터 선생님께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배우자의 얼굴이 바뀐다고 했다. 난 꼭 한국대에 가서 인범이와 뜨겁고 아찔한 로맨스를 찍고 말 거다. 그렇게 한 3년 연애하다가 결혼에 골인하면 내 인생의 숙원을 전부 이룬 거다.


그때 계단이 있는 복도 끝에서 인범이의 콩알만한 머리가 나타났다. 여자보다 얼굴이 작은 건 매우 예의가 없지만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외모는 감히 불평을 내뱉는 내 입술을 예의 없는 놈으로 만들었다. 만약 신이 누구 잘못이냐 묻는다면 그냥 모든 걸 내 잘못이라 말하고 싶었다.


" 인범아, 힘들었지? 이거 마셔. "


난 황소 같이 달려 드는 다른 여자애들보다 앞으로 치고 나가 내 썸남에게 시원한 이온 음료를 건넸다.


봐라. 얘가 누구 남자인지.


" 고마워. "


인범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한방으로 그간 쌓였던 수험 스트레스가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오늘부터 남은 한 달간 밤을 새워도 끄떡 없을 거다.


" 어, 나도... "


" 너도 고맙다고? 뭐가? "


"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


" 뭐야. 하연수 너무 열심히 공부했나 보다. 수능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


가뜩이나 잘난 얼굴을 봐서 정신이 혼미해 죽겠는데 인범이가 살인 미소를 지으며 내 알량한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넌 태어나줘서 고맙고 난 태어나서 완전 땡잡았다.


이 행운을 영원히 잡고 있기 위해서라도 난 무조건 한국대에 합격하고 말 거다. 그래서 합격 통지서를 들고 인범이에게 멋지게 고백할 거다!


***


집으로 가늘 길, 경우는 입이 댓발 튀어나와서 옆에서 계속 꿍얼거렸다. 경우네 집은 우리 집과 5분 거리에 있어서 같이 다니곤 했다.


" 넌 어떻게 내가 준 걸 정인범한테 갖다 바칠 수가 있냐. "


얜 아직도 그걸로 삐져 있었다.


" 뭘 그런 걸로 그러냐! 내가 내일 2개 사줄게! 아니다. 삼각김밥까지 쏠게! "


" 됐거든! 당분간 너랑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꺼져. 나 간다. 조심히 가든지 말든지 네가 알아서 하고. "


경우는 흥 소리를 내면서 아파트 단지로 달려갔다.


사람이 공부만 잘하면 뭐하냐. 저렇게 속이 빈대만도 못해서 삐지기나 하는데.


난 못난 도경우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내가 갈 길로 방향을 틀었다.


" 에이 기분도 꿀꿀한데 편의점에서 간식이나 사가야겠다. "


난 잠시 골목으로 빠져 밤새 먹을 과자와 커피를 사 들고 나왔다. 품 안에 먹을 걸 가득 안고 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아까 매몰차게 가버린 도경우의 심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좀 너무했나..?


사과를 하기 위해 녀석에게 메시지를 적으며 슬슬 걸어나갔다.


" 경우야, 미안.. 다음부터는 내가... "


그 순간, 갑자기 눈 앞에 번쩍이는 섬광이 빛나며 내 몸은 하늘을 날았다.


이게 무슨 일인지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내 세상은 암흑으로 물들어 버렸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난 서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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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전히 예쁘던데 23.10.14 12 0 10쪽
3 몰래 온 손님 23.08.22 18 0 10쪽
2 10년만에 몰락 23.08.21 22 0 10쪽
» 열아홉 바로 서른 23.08.17 5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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