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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님의 서재입니다.

열아홉 바로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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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작품등록일 :
2023.08.17 13:20
최근연재일 :
2023.10.14 13:21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06
추천수 :
0
글자수 :
53,804

작성
23.10.14 10:44
조회
8
추천
0
글자
7쪽

좋은 어른

DUMMY

" 근데 자기 집이 엄청 잘 살았나 보다? 구쨔에 로이가통에! 이거 다 찐이지? "


사장님이 내 옷을 보고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제까진 꾀죄죄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온 몸을 명품으로 도배하고 찾아 왔으니 놀란 만도 했다.


생각해 보니 그 시절 난 많은 것을 당연한 듯 누려왔던 거 같다. 내가 입고 있는 이 명품들도 그땐 당연한 줄 알고 입고 다녔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살았던 집도 당연한 줄 알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쫄닥 망해보니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이요 행운이었는지 알겠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다신 누리지 못할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 예전에 아빠가 사업을 크게 하셨었거든요. "


과거형이 되어버린 행복했던 나날들에 난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정작 중요한 '지금은 망했어요'라는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 대박. 완전 엄친딸이었잖아! 자기 더 마음에 든다! 일단 이리 앉아서 나랑 커피 한 잔 하자! 궁금한 게 산더미야. 달달한 거 맞지? "


" 네. "


사장은 일하러 온 날 손님 테이블에 앉히고 달달한 커피 한 잔을 뚝딱 만들어 가지고 왔다.



" 예전에 내 소원이 이런 카페 하나 차려서 일하는 거였거든. 그래서 틈틈이 커피 만드는 법 배워뒀는데 결국 꿈은 이루어지더라고. 호호호호. "


" 정말 멋지세요. "


예의상 한 말이 아니라 난 정말로 그녀의 인생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 난 자기가 더 멋진데. 나도 엄친딸 그거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 근데 것도 할 수 있는 나이 제한 같은 게 있더라고. 10대를 놀면서 보냈더니 난 엄친딸 탈락! 20대에 아무리 돈 잘 벌어도 사람들이 엄친딸이라곤 안 불러주더라. 내가 중졸이라 그런가 봐. "


난초처럼 우아하게 자랐을 거 같은 사장님이 10대를 방탕하게 놀면서 보냈다고 하니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과거보다 지금 하고 있는 모양새가 더 중요한 거 같았다. 지금 모습이 사장이면 방탕했던 과거도 좋게 포장되는 거고, 지금 모습이 백수면 아무리 열심히 했던 내 학창 시절도 다 소용 없는 짓이 돼버리고. 결국 결과가 이럴 거라면 나도 학창 시절을 놀면서 보낼 걸 그랬다. 괜히 잘 살아보겠다고 코피 흘려가며 공부했던 날들이 후회됐다.



" 그래도 지금은 사장님이시잖아요. "


" 그러니까! 그래서 내가 학교 다닐 때 다 무시하고 갈군 애들 코 완전 납작하게 눌러줬잖아. 변호사고 대기업 다니면 뭐해. 난 사장이고 걔들은 월급쟁인데. 아마 돈도 내가 훨씬 많이 벌 걸? 걔들 인생에 현타 와서 어버버한 얼굴 보면 아직도 고소하다니까. "


사장님은 기분 좋은 듯 박수까지 치며 깔깔 웃었다. 나도 왠지 인생에 현타 온 부류에 속하는 거 같았지만 통쾌한 웃음에 나까지 기분 좋아졌다. 나에게도 날 무시할 사람들을 비웃어 줄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 근데 자긴 꿈이 뭐야?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깨어났으니까 하고 싶었던 게 왕창 있을 거 아냐. "


" 그게... "


내 주제에 거창한 꿈을 가졌다는 게 창피해서 난 손톱만 만지작거렸다.



" 뭔데 그렇게 뜸 들여. 사람 조마조마 하게. 설마 아이돌 같은 거야? 30에 아이돌은 조금 빡세긴 한데 난 응원해줄게. 난 뭐든 반전이 좋거든! "


" 아이돌 아니고요! 의..의사요! 원래 의대에 가고 싶었어요... "


사장님이 초반부터 거창한 꿈을 예상해준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내 꿈을 말할 수 있었다. 의사보다 아이돌이 더 어렵다는 게 아니라 30살에 아이돌이 되는 거보다 의사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었다.



" 멋진데! 자기 전교 2등까지 했다며! 그럼 당연 가능하지! 어차피 여기 손님도 없으니까 시간 날 때마다 공부해. 이참에 나도 의사 친구 한 번 가져보자. 내 친구들은 다 머리가 돌덩이라서 사자 붙은 직업이 하나도 없거든. 그게 내 한이었어. "


" 그게 어디 쉽나요. 현역들도 의대 가기 어려운데 전 10년이나 쉬었잖아요. "


물론 쉰 기억은 없지만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내 머리와 몸은 침대에 누워 쉬고 있던 게 됐다. 경우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지금 고3 학생들을 따라잡기에도 버거울 거다.



" 어머, 자기 마인드가 왜 그래? 그 머리를 가지고, 그 미모를 가지고 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냐고! 내가 자기 머리만 됐잖아? 의사가 뭐야. 난 하버드에 갔어! "


하버드까지야...


내가 아무리 머리는 좋았다고 하나 현역 때도 꿈조차 꿔보지 못 했던 꿈의 학교였다. 일단 언어부터가 딸려서 문제를 풀 수조차 없었다.



" 제가 깨어나고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고요. 넌 이미 늦었다. 네 인생은 망했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한민국에서 대학도 안 나온 백수가 뭘 해보겠다고 해서 되는 사회가 아니잖아요. "


" 그건 그 사람들 마인드가 썩은 거고! 내가 사람들 말대로 살았잖아?! 그럼 난 이 나이 먹고도 술집에서 온갖 개무시 당하면서 술이나 팔고 있었을 걸? 다른 사람들 말 듣지 말고 내 말 믿어. 자긴 지금도 뭐든 할 수 있어! 내가 그 증거야! 눈 앞에 살아있는 증거가 있는데 왜 해보지도 않고 입만 주절거리는 사람들 말을 믿고 있냐고! 따라 해 봐. 나는 할 수 있다! "


" 나..나는 할 수 있다.. "


" 목소리가 그게 뭐야! 아침 안 먹었어? 더 크게! 나는 할 수 있다! "


" 나는 할 수 있다! "


" 그렇지! 자기 출근하기 전에 그거 10번씩 외치고 와. 숙제야. "


" 네! "


" 오케이. 박력 마음에 든다. 나 다른 가게들도 둘러봐야 해서 지금 나가봐야 할 거 같아. 커피 만드는 법은 내가 찬장에 전부 적어 놨는데 어차피 손님은 없을 거야. 그냥 의사될 생각이나 하고 공부나 해. 한 6시쯤 다시 돌아올게! 아, 점심은 가게 이름으로 달아놔. 것도 우리 오빠가 알아서 처리해줄 거야. 자기 오늘도 화이팅!! "


" 화..화이팅! "


사장님의 에너지에 감염돼서 나도 모르게 박력 있게 화이팅을 외쳐버렸다.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사장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가게에서 나갔다.



' 근데 가게가 여기뿐이 아니라고..? '


아직도 우리 사장님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리 사장님은 참 좋은 어른이었다. 내 주위에 모든 어른이 사장님 같았더라면 나 혼자 쓸쓸히 집에 틀어박혀 고통 받지는 않았을 거다. 이 각박하고 삭막한 사회에 우리 사장님 보급이 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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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가 싫어하는 건 인간 23.10.14 11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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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몰래 온 손님 23.08.22 18 0 10쪽
2 10년만에 몰락 23.08.21 22 0 10쪽
1 열아홉 바로 서른 23.08.17 5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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