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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님의 서재입니다.

나의 미친 계집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치북
작품등록일 :
2023.08.17 12:01
최근연재일 :
2023.09.21 09:19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710
추천수 :
30
글자수 :
91,517

작성
23.08.19 20:50
조회
36
추천
1
글자
10쪽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 이루리다

DUMMY

***


다음 날, 왕은 아침 일찍부터 지난 밤 자신이 이룬 업적을 보고하러 귀신궁을 찾았다.


“ 네 말대로 어제 그 궁녀를 다시 찾았다. ”


그는 처녀 귀신한테 정기를 빼앗긴 듯 정신이 반쯤 나간 얼굴로 말했다.


“ 잘 하셨습니다! 이제 그 계집은 안 올 터이니 정말 안심입니다! ”


귀찮은 계집을 드디어 떼어 냈다는 안도감에 유연이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 그래.. ”


“ 헌데 표정이 어찌 그러십니까··· 혹 어제 그 여자한테 기라도 빨리셨습니까? 그 여자가 그렇게 대단했습니까?! ”


“ 너는 무슨 그런 저급한 말을··· 하··· ”


“ 그렇게 한숨만 내쉬지 말고 말씀을 해보세요. 답답해서 숨 넘어가겠습니다! ”


왕은 답답해서 호들갑떨며 안절부절 못하는 유연을 보며 재미있는 듯 피식 웃었다.


“ 네가 이제라도 내 마음을 이해해서 다행이다. 그동안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답답했는 줄 이제 알겠느냐. ”


“ 답답한 분 치고는 말씀만 잘 하시던데요. 오죽했으면 미친 제 정신머리가 쏙 돌아와 버렸을까요. 귀가 먹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못가로 기어갔던 제 노력을 보면 그런 말씀은 못 하실 겁니다. ”


“ 알았다. 내 그리 말하는 것을 좋아하니 말하여 주겠다. 실은···그 계집이 너무 순수해서 새하얀 종이 위에 실수로 먹물을 뿌린 듯 죄를 지은 기분이었어.. 그 아이는 마치··· 진심으로 날 연모하는 거 같았다··· ”


“ 그게 전하께서 바라시던 거 아니십니까. 전하를 진심으로 연모하는 여인이요. 근데 대체 뭐가 문제라는 것입니까? ”


그간 왕의 진솔한 자기 소개를 들어왔던 유연은 그게 왕이 가장 원하는 여인의 상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렇게 진심을 소중히 여기던 분께서 막상 진심을 마주하고 꺼려하시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장구춤을 춰야 할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진심이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 내가 그간 너에게 너무 많은 것을 흘린 거 같구나. 그래서 말이 너무 많아. 따박따박 말꼬리나 잡고 늘어지고. ”


왕은 정곡을 찌른 유연의 말에 자신의 경솔했던 입을 후회했다.


하지만 나도 내가 왜 내 앞에 있는 이상형을 두고 자꾸만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알 수가 없어 심란하던 참이었다.


날 진심으로 연모하는 여인을 안았다면 누구보다 뿌듯하고 보람찬 아침을 시작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라 나도 많이 당황스러웠다.


근데 이 계집은 옆에서 계속 쫑알쫑알 긁고 말이야.


“ 넌 예전처럼 말을 안 할 때가 좋았다. 그냥 예전처럼 다시 말을 하지 말 거라. ”


그냥 내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그 어떠한 질타와 말대꾸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난 그래도 되는 왕이었다.


“ ··· ”


유연은 왕이 시킨대로 다시 입을 앙 다물었다.


“ 그래. 이제야 조용하니 좋구나. 그럼 난 말할 터이니 넌 전처럼 듣고만 있거라. 아무튼 날 연모하는 여인을 만나면 기쁠 거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뭐랄까··· 난 그 정도의 연정을 줄 수 없는데 상대는 내 사랑에 목숨을 거니 심히 부담스러웠달까.. 이게 맞는 것이냐..? ”


상대가 조용해지자 왕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마음 속에 깊이 담아뒀던 말들은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그리고 아직 답을 얻지 못 하였음에도 속에 쌓인 체증이 사라진 듯 시원하기만 했다.


내가 바로 이 맛에 귀신궁에 오는 거였다. 유쾌 상쾌 통쾌가 그간의 고민을 단박에 잊게 해주니 안 찾으려야 안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애초에 이 계집한테서 답을 구할 거란 기대도 없었다.


“ ··· ”


“ 그래. 이건 아니지. 허나 차라리 날 덜 사랑하는 여인을 안는 게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드는 거야. 나만 거짓인 것보다 차라리 서로 거짓이면 죄책감이 좀 덜 할 거 같아. ”


그의 기가 찬 발언에 유연은 뭐라도 한 마디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뭇사람들은 여인들의 마음이 갈대라 했지만 전하께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사내들의 마음도 만만치 않았다.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변하니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전하를 사랑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만약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며칠 밤을 새며 저 까다로운 기준에 맞추지 못한 날 자책했을 거다.


“ 너 말이 몹시 하고 싶은 모양인데? ”


왕은 자꾸만 움찔거리는 유연의 입술을 흥미로운 눈으로 보며 물었다.


저 계집이 또 뭐 한 마디 하고 싶어서 그러는 모양인데 이상하게 바라는 대로 해주고 싶지가 않았다. 좀 더 안절부절 못 하고 안달이 난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나도 참 성격이 별난 놈이긴 했다.


“ 내 아직 허락하지 않았으니 찍소리도 말고 있거라. 어명이다. ”


말을 하지 말하는 말에 유연은 거칠게 콧바람을 내뿜으며 사위했다.


“ 콧바람 소리도 내지 말 거라! 아직 짐이 할 말이 지청구로 늘어져 있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넌 그저 듣고만 있거라! ”


그렇게 왕은 그간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를 여과없이 그녀에게 공유하며 지난 밤의 고단함을 잊었다. 허나 그럴수록 유연은 고단함이 쌓여 얼굴에 검은 그늘이 번져갔다.


그 여자의 소원을 들어주면 귀찮은 하소연을 안 들어도 되나 했는데, 그 여자가 가자마자 전하께서 달려 와 푸념을 늘어놓으니 혹 때려다 혹 붙인 상황이었다.


나의 귀는 언제쯤이면 고요속에서 평온하게 쉴 수 있을까.


일단 그 귀찮은 계집 앞에서 더는 미친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소소한 위안이라도 얻기로 했다.


***


분명 일이 잘 해결됐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음 날부터 귀신궁은 소원을 가진 여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쾌거를 이루었다.


“ 소화가 그러는데 여기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서요.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


소화 그 계집이 기껏 소원을 들어줬더니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는 바람에 오늘도 내 하루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여기 온 여자들의 소원은 하나 같이 그 놈의 승은이었는데 같은 말을 수십 번 반복해서 들으려니 진짜로 정신이 나가버릴 거 같았다.


미안한 말인데 나도 더는 무리였다. 한 번은 어찌 저찌 전하를 설득했다 하지만 이 많은 여자들한테 전하를 내던지는 건 내 능력밖이었다. 그러다 미친계집 주제에 무엄하다며 능지를 당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 이건 제 마음의 성의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소원을 비는 여자들마다 내 옆에 귀한 노리개며 비녀며 동전을 놓고 가는 게 아니겠나.


가만히 앉아서 하루 아침에 상인들의 일주일치 벌이를 번다라..


“ 이거 꽤 짭짤한데..? ”


재물을 보니 자연스럽게 머리가 기민하게 굴러가니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일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건 심히 고단한 일이나 대가만 주어진다면 그리 못 견딜 어려움도 아니었다. 어차피 전하께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 아주 잠시만 내 이 여인들의 아픔을 들어줄까 한다.


***


다음 날, 하루 일과를 마친 왕은 입으로 피로를 쏟아낼 작정으로 귀신궁으로 향했다.


내 매일 그 계집에게 마음 속 응어리를 털어놓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아 도저히 이대론 잠에 들지 못할 거 같았다. 아주 잠깐이라도 회포를 풀고 와야만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귀신궁 밖까지 여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 저..저것이 무슨 일이냐? ”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 김 상궁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정신이 이상해지고 귀신궁에 갇힌 후로 사람들은 전부 불경한 곳이라며 근처에 가길 꺼려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론 귀신이 나온다고 소문이 와전되며 감히 그림자조차 밟으려는 이가 없던 곳이었다. 헌데 지금 그 귀신 소굴에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몰려 들었으니 쪽수에서 밀린 귀신들이 놀라 도망쳤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이런 일이···


“ 궁인들 사이에서 여기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도는 거 같습니다. ”


“ 소원..? 무슨 소원을 말하는 것이냐. ”


“ 승은을 입고 후궁 첩지를 받지 못하고 있던 한 여인이 여기서 소원을 빌고 다시 전하께서 찾아주셨다는 소문이옵니다. ”


“ 하.. ”


이제야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된 왕은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그렇담 지금 예 모인 여인들의 소원은 전부 나와 어떻게 해보겠다는 뜻, 난 그럴 마음도 능력도 없었다. 내가 아무리 절대 권력을 가진 조선의 왕이라 해도 그건 무리였다!


“ 다..당장 소원을 빌지 못하게 금하거라! ”


“ 예..? ”


얼토당토않는 왕의 명에 김 상궁이 눈을 똥그랗게 끄고 반문했다.


금주령은 들어봤어도 금원령이라니... 이 무슨...


“ 짐의 옥체와 관련된 일이니 당장 저것들을 막거라! 어서! ”


저리 많은 여인을 안았아간 기를 다 빼앗기고 말라 죽을 터, 난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여인들을 멀리해야 했다.


더는 그까지 소원 따위에 이 몸을 내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추천 한번씩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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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복수하고 싶으면 내 침소에 들거라 23.08.20 25 1 11쪽
14 너의 사내는 망할 거다 23.08.20 24 2 11쪽
13 내 계집을 가졌다기에 대단한 사내인 줄 알았다 23.08.20 27 2 10쪽
12 네 하루의 전부가 되어야겠다 23.08.20 32 2 11쪽
11 그 누구와도 널 나누지 않아 23.08.19 32 1 10쪽
»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 이루리다 23.08.19 37 1 10쪽
9 너를 안는 데 추억은 필요 없어 23.08.19 31 2 10쪽
8 궁에는 슬픈 여인들이 많아 23.08.19 37 3 10쪽
7 너는 나의 왜, 나는 너의 어떻게 23.08.18 38 2 11쪽
6 너는 꽃처럼 졌다 23.08.18 41 2 10쪽
5 나는 너와 취할 것이다 23.08.18 47 2 9쪽
4 너 내 말 들리지? 23.08.18 44 2 10쪽
3 날 사랑하지 않는 것들 23.08.17 48 2 10쪽
2 왕이 미쳤다 23.08.17 52 2 10쪽
1 빗속의 미친 계집 23.08.17 9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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