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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님의 서재입니다.

나의 미친 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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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북
작품등록일 :
2023.08.17 12:01
최근연재일 :
2023.09.21 09:19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709
추천수 :
30
글자수 :
91,517

작성
23.08.17 12:08
조회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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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빗속의 미친 계집

DUMMY

# 출궁


조선의 왕 이신. 오늘도 기생집에 가기 위해 부하들을 데리고 궁을 나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비가 와서 우산을 써야 했지만 타고난 고귀한 신분을 가려주는데 도움이 되어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무엇보다도 길거리에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저 궁에선 모두가 나의 걸음마다 따라붙으며 귀찮게 했는데 이 거리엔 날 방해하는 인간들이 없었다. 이래서 내가 출궁을 좋아하는 거다.


솨아아악. 빗소리도 이리 경쾌하니 오늘은 사랑하는 임과 기쁘게 노닐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마을 어귀에 있는 한 나무 밑에서 웬 계집이 비를 쫄딱 맞으며 서 있었다. 이미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도 그 계집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 저 계집은 대체 왜 저리 있느냐. "


난 날 호위 하겠다며 기어코 따라온 태호에게 물었다. 녀석은 매일 이곳을 출퇴근하니 나보다 이곳 사정을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근래에 등장한 이 동네 미친 계집입니다. "


미친 계집이라..


하긴. 이리 험한 날에 저리 비를 맞고 있는 걸 보면 제정신은 아닌 거 같았다.


" 그래..? 그럼 얼른 가잣구나. 우리 이쁜이들이 기다리겠다! "


저 계집이 미치거나 말거나. 이 조선에 여인은 차고 넘쳤으니 미친 계집한테 신경 쓸 연유도 시간도 없었다.


해가 뜨기 전에 난 서둘러 나의 꽃들을 만나러 가야 했다.


# 월곽


어느새 기생들과 방을 잡고 놀고 있는 이신. 그는 진수성찬이 가득 차려진 상의 상석에 앉아 양 옆에 어린 기생들을 끼고 부어라 마셔라 하며 마음껏 흐트러졌다.


이 월곽에 정인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매번 올 때마다 새로운 기녀들을 끼고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짐에게도 지켜야 할 가정과 부인들이 있었지만 저 궁에 있는 것들은 하나 같이 체면을 차린다며 갑갑하게 굴어 같이 있으면 지겹기만 했다. 애초에 왕에게 일편단심 해바라기를 바라는 건 심히 곤란한 일이었다.


그건 이 기녀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내가 가면 금방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 사랑을 주고 몸을 주고, 이것들도 지조란 것을 모르는 계집들이었다. 그러니 나와 상성이 딱 맞았다. 우리에게 지조는 개뿔. 그냥 하루 진하게 즐겁게 놀다가 헤어지면 그뿐이었다.


" 근데 말이다. 내 오는 길에 웬 미친 계집을 보았는데. 그 계집이 누군지 아느냐? "


그건 아주 사소하고 흔한 안주거리에 가까운 질문이었다. 그냥 간단히 호기심이라 정의하면 좋을 거다. 그 정도로 그 미친 계집은 내겐 별다른 의미도 관심도 아니었다.


" 아, 그 계집이요? "


소향이는 그 계집을 아는 눈치였다.


" 그래. 그 계집은 대체 왜 거기서 그러고 있는 것이냐. 밖에 비도 억수록 쏟아지더만. "


" 그게 사정이 있긴 한데.. 다들 함구령을 내려서 쉬쉬하는 거라 말씀을 드리기가... "


함구령이라. 짐이 함구령을 선포한 적이 없는데 도대체 누가 그딴 명을 내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 어느 양반이 왕인척 하며 한양을 호령하고 다닌 모양이었다.


에끼 이 놈. 딱 걸렸다!


" 내 마음 속에 혼자만 알고 있을 터이니 속히 말해보거라.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이다. 비밀. "


" 그럼 전 선비님만 믿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실은 그 계집이 유연이라는 몰락 양반의 딸인데, 김상조 영감님의 따님의 낭군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합니다. "


" 내 얼마 전에 영감의 딸이 혼인하였다 듣긴 했는데.. 남편 역시 별 볼일 없는 집안이라 영감이 꽤 불쾌해 했다지? "


조정에서 끗발있는 김상조 영감의 딸이라면 응당 나의 후궁이나 내 동생들의 처로 들어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사내와 혼인을 하였다 하여 의아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 마당에 과거까지 구린 놈이라니. 김상조 영감이 다리를 분지러 놓지는 못할 망정 왜 그런 사내를 사위로 맞았는지 궁금했다.


" 그 댁 따님이 이 남자가 아니면 확 우물에 뛰어들 거라고 난리를 쳤다나봐요. 잠깐 헤어져 있는 동안 상사병이 들어서 죽다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 시대의 열녀 납신 거죠! "


" 제 아무리 김상조 영감이라 해도 자식은 이기지 못한 것이로구나. 근데 그 남편이랑 저 미친 계집이랑 그리 가벼운 관계는 아니었고. "


" 말도 마세요. 실은 그 미친 계집이랑 둘이 혼인하기로 날까지 잡아 놨는데 김상조 영감 따님을 잡고 확 갈아타버린 거죠! 그때부터 저 계집이 나무 앞에 하염 없이 서 있다고 하옵니다! 아마도 그 남자를 기다리는 것이겠죠.. 에휴. "


같은 여인이라 그런지 소향이가 자기 일인 마냥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조라는 것도 모르는 것들이 공감하는 척 하기는.


이것들은 아마 더 능력 있고 돈 많은 남자가 나타나면 만나던 사내를 바로 손절하고 갈아탈 것들이었다. 그럼 그 미친 계집이 아니라 그 망할 놈에게 공감하여야 하는데 어찌 주제 파악도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들이 이렇게 미련해서 내 적당히 정을 주는 거다.


내가 조선의 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들러 붙어서 귀찮게 할게 뻔하니까!


" 그래?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로구나. 그 미친 계집 얘기는 그만 하고 우린 놀잣구나! 그래. 오늘은 소향이가 좋겠다! 날 즐겁게 해줄 자신 있지? "


난 주머니에 넣어둔 엽전 꾸러미를 소향이에게 던져줬다. 그건 오늘 밤 나를 즐겁게 해줄 노고에 대한 보상이었다.


우리끼리 지조니 사랑이니 다 집어치우고 그저 몸과 몸을 부딪히며 잠깐의 유희를 즐기잣구나. 난 딱 그 정도의 적당한 관계가 좋았다.


***


거사를 마치고 태호의 잔소리에 못 이겨 난 서둘러 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하도 격렬히 놀았더니 몸이 뻐근하여 잠시 멈춰 섰는데 그 미친 계집이 아직도 나무 앞에 서 있었다.


유연이라고 했던가. 이미 그 계집에 대해 들은지라 난 그 계집이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익숙했다.


그렇게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데 문뜩 저 계집이 도대체 언제까지 버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 계집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저곳에 있었고 오늘은 모든 허물을 쓸어내릴 듯 비가 억수록 쏟아지는 날이었다. 멀쩡한 놈들도 고뿔에 호되게 걸릴 날씨에 저리 약해 빠진 계집이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거다 . 아마 조금 있다가 못 견디고 집으로 돌아갈 거다.


" 전하, 바삐 가셔야 합니다. 이러다 동이 트겠습니다. "


이번에도 태호가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며 나의 길을 재촉했다.


" 아직 조금의 여유는 있지 않느냐.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 지금 재미있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니. "


아주 조금만 더. 난 저 미친 계집을 관찰하고 싶었다. 그건 아마도 내 주의에 저런 파격적인 계집이 없어서 일 거다. 내가 아는 여인들 중에는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저리 애처로운 짓을 하는 미친 계집도 없었고, 양반 주제에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저리 체면을 버리는 짓을 하는 미친 계집도 없었다. 그래서 난 저 미친 계집이 얼마나 상상이상의 짓을 해줄지 궁금했다.


사람이라면 응당 제 목숨이 위험해지면 사랑 따윈 버리고 제 안전을 우선으로 챙길 거다. 허니 저 계집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맞았다. 그게 내가 본 여인들의 보편적인 행태였다.


풀썩.


그때 그 계집이 더는 버틸 힘이 없었는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그 위로 장대비가 쏟아지며 그 계집은 점점 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마 저리 두면 오늘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 거다.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귀한 목숨을 버리다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준다고.


네가 그렇게 헌신하였다고 하여 놈이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일 거다. 원래 인간들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남의 슬픔 따위야 얼마든지 모른 척 할 수 있는 이기적인 것들이었다. 결국 진심인 사람들만 바보가 되는 얄궂은 판인 거다.


" 전하, 가셔야 합니다. "


" 그래. 가자. "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했지만 내겐 시간이 없었다. 오늘도 대신들과 씨름을 벌이려면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용기와 의지로 완전무장을 해야 했다.


그런데 말이다..


그걸 아주 잘 아는 내 발걸음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워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 넌 저 계집을 데리고 오너라. "


나도 이게 미친 짓인 줄 알지만 내 주위에 있는 현명한 여인들보다 저런 한심한 것들이 좋았다. 하도 찾기 힘들어서 희소성이 있달까 .


한 마디로 난 저 계집이 좋은 게 아니라 저 계집이 가지고 있는 순정을 좋아하는 거다. 저 순정이 나한테 향하게만 한다면 난 평생 목숨 바쳐 날 사랑해줄 여인을 얻게 되는 거다.


내가 바라는 게 바로 그 순정이었다! 권력에 눈이 먼 저 후궁들은 절대 가지고 있지 않은 순정말이다!


" 하오나 제 정신이 아니라 다른 궁인들이 두려워하올 것이온데... 혹여 마마님들에게 해를 입히기라도 하면... "


" 귀신궁이 있지 않느냐. 저 계집을 거기다 두면 다른 궁인들과는 마주칠 일도 없을 거다. "


" 하오나 그곳은.. "


" 하오나. 하오나! 내 말대로 해준 적도 없으면서 뭘 자꾸 하온다고 하느냐! 이것은 나의 명이니 더는 토 달지 말고 따르거라! "


" 예, 전하...! "


하여간 태호 얘는 안 되고 걸리는 게 많아서 탈이었다.


내가 이 조선에서 마음에 드는 여인을 찾아 내 옆에 두겠다는 데 감히 누가 말린다고.


하여간 주제를 모르는 것들이 내 마음까지 좌지우지 하려 꼴값들을 떠니 점점 더 상종하기가 싫어졌다. 그딴 복잡한 것들보단 차라리 사랑밖에 모르는 저 미친 계집이 수백 배는 더 나았다.


그게 내가 저 계집을 데려가는 이유였다.




추천 한번씩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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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복수하고 싶으면 내 침소에 들거라 23.08.20 25 1 11쪽
14 너의 사내는 망할 거다 23.08.20 24 2 11쪽
13 내 계집을 가졌다기에 대단한 사내인 줄 알았다 23.08.20 27 2 10쪽
12 네 하루의 전부가 되어야겠다 23.08.20 32 2 11쪽
11 그 누구와도 널 나누지 않아 23.08.19 32 1 10쪽
10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 이루리다 23.08.19 36 1 10쪽
9 너를 안는 데 추억은 필요 없어 23.08.19 31 2 10쪽
8 궁에는 슬픈 여인들이 많아 23.08.19 37 3 10쪽
7 너는 나의 왜, 나는 너의 어떻게 23.08.18 38 2 11쪽
6 너는 꽃처럼 졌다 23.08.18 41 2 10쪽
5 나는 너와 취할 것이다 23.08.18 47 2 9쪽
4 너 내 말 들리지? 23.08.18 44 2 10쪽
3 날 사랑하지 않는 것들 23.08.17 48 2 10쪽
2 왕이 미쳤다 23.08.17 52 2 10쪽
» 빗속의 미친 계집 23.08.17 9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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