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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위자드라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0.11.14 00:20
최근연재일 :
2021.01.15 22:08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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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3
추천수 :
32
글자수 :
169,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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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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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9화 - 졸업 논문(2)

DUMMY

연구의 결실이 드디어 보이고 있었다.

미스릴 대신 실크를 사용한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실크에 미스릴을 얇게 코팅처리 해서 사용하자 기존의 집속기가 울고 갈만한 성능을 내뿜기 시작했다.


사아아아-


기동할 때마다 천 스치는 소리가 묘하게 귀를 간지럽게 하긴 했지만, 이거라면 마도사들의 지팡이 무게를 획기적으로 덜어낼 수 있을 터였다.


“실에 미스릴 코팅을 하는 거랑···.”윙제스터는 완성된 논문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라면 왕국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제작도면을 주어서 잔뜩 만들어 팔면 가게의 좋은 수입원이 될 것 같았다.


“베레트. 정말 고마워.”

옆에서 미스릴 코팅한 실크 뭉치를 정리하던 베레트가 조금 놀란 듯 안절부절했다.

“뭐, 뭘요···선배의 연구는 굉장히 흥미로워서 저도 좋은 경험이 된 걸요.”

“내년에는 베레트 차례네. 열심히 해.”

“네! 선배도 놀랄만한 연구를 할 거예요!”


눈을 빛내는 그녀를 보며 윙제스터는 안심했다.

로무루스와의 일도 있고, 윙제스터도 그렇고 반푼이로서 아카데미에서 고학년 과정을 밟는다는 게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낮은 마나적성으로는 실기 점수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가 되는데다, 이론마저도 쉽지 않았다.

교수진도 그런 이들에게는 최소점수만 주고 거의 방치하듯 눈 밖으로 밀어낸다.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무언가를 배우고 연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고역이었다.


“마도공학 교수님에게 제출하러 가자.”

완성된 두꺼운 책 한권 분량의 논문을 옆구리에 끼고서 실험실을 나섰다.


실험동 건물을 나와 막 교수동 건물로 향하던 와중, 이미 제출했는지 빈 손으로 돌아오고 있는 로무루스와 마주쳤다.

“여어. 이제 제출하러 가나?”

“그래. 넌 이미 제출을 끝낸 모양이구나?”

“그래. 코흐 교수님께서 칭찬해줬어.”

“······!”


결코 느슨하게 평가하지 않기로 유명한 코흐 교수님에게 제출해서 칭찬까지 받았다는 건, 로무루스도 자기 나름대로 기발한 연구를 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로무루스의 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결코 허세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의 건은 졸업식이 끝나고 난 다음날로 괜찮지?”

“···그래.”


두 사람이 막 호승심을 불태우며 서로를 뜨겁게 바라보고 있을 무렵, 실험동 쪽에서 누군가 걸어 나와 그런 두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무슨 말씀들을 하고 계신 거죠?”

“······?”

“···아.”

두 사람이 그쪽을 돌아보면, 거기에는 윙제스터 보다는 얇은 듯했지만 엄연히 졸업논문을 비단으로 감싼 제 3 공주가 서 있었다.


“고, 공주님···!”

“······!”

“공주님이요?!”황급히 예를 취하는 두 남학생을 보고 뒤늦게 베레트 역시 예를 취했다.


공주는 그런 세 사람에게 손사래를 치며,

“괘, 괜찮습니다. 여기서는 저도 일개 학생 신분인걸요. 너무 그렇게 과하게 예를 취하시면···.”

“하지만, 왕실의 분께 허투루 예를 취하는 것은 큰 무례입니다. 공주님. 부디 이해를···.”

로무루스가 능숙하게 답해 보이고는 팔을 젖혀 교수동 쪽을 가리키며 에스코트할 의사를 표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공주는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작게 내젓고는,

“괜찮습니다. 로무루스 군. 저 혼자서도 갈 수 있으니까요.”

“아···.”

“그보다도,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계신 거죠? 두 분.”


공주의 질문에 로무루스가 뜨끔한 표정이 되어 시선을 피하고, 윙제스터는 언제나처럼 조금은 불손한 태도로 교수동을 향해 출발하려는 듯 발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언짢은 듯이 가로막는 로무루스의 모습에 윙제스터는 거슬린다는 듯 이마를 맞대고 전의를 불태웠다.

“비켜. 난 급하다고.”

“공주님께서 질문하고 계시잖아. 최소한 이야기는 하고 가라.”

“네가 하면 되잖아.”

“선배?!”

옆에서 불안해하는 베레트를 보고 나서야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돌아서서 공주를 마주본다.

“이야기라···.”

막상 이야기를 하려고 보니 골치 아파질 거 같아서 둘러댈 말을 찾아 머리를 굴리는데,


“···거짓말은 안 됩니다. 두 분. 제대로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

마치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듯한, 맑은 눈동자가 두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보고 있었다.


결국 로무루스가 입을 달싹거리다가 이를 악물고서 천천히 말을 꺼낸다.

“···졸업식이 끝나고 그 다음 날, 윙제스터와 다시 한 번 마도 결투로 겨루기로 약속했습니다.”


멈칫.


차분해보이던 공주의 표정에 일말의 불안이 스쳤다.

당시의 마도 결투가 꽤나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았던 것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그녀였다.


그토록 서로를 적대하는 두 사람이 또다시 마도 결투를 한다는 것은, 이번에야말로 피를 보게 될 거라는 이야기일 터.

“두 분. 그건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닌가요? 두 사람 다 아직 젊습니다. 좀 더 잘 생각해 보시고···.”


불안해하는 공주의 모습에 윙제스터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고, 로무루스는 곧바로 그녀의 불안을 알아챈 듯 손사래를 쳤다.

“아, 이번엔 저번처럼 그런 게 아닙니다. 이번 마도결투는 어디까지나 제가 윙제스터에게 도전하는 것이자, 서로의 마도사로서의 수준을 겨루어 본달까···.”


로무루스의 설명에 그제서야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온 공주가 사실을 확인하려는 듯 윙제스터를 바라본다.

“······.”

“사실인가요?”

“윙제스터.”


제대로 대답 해 주라는 듯이 로무루스가 옆에서 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사실입니다.”


그제서야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공주였다.

“정말 다행이군요. 저는 또 두 사람이 감정이 격해져 사생결단을 낸다는 이야기인 줄로···.”

“설마요. 저와 윙제스터는 그때와는 달리 제대로 선의의 라이벌 입니다. 그때처럼은 안 해요. 그렇지?”


어깨를 툭툭 부딪치며 동의를 요구하는 로무루스의 모습에, 윙제스터는 피식 웃어 보인다.

“···그건 어떨까나.”

“야!”

“하핫. 농담이다. 나도 네 녀석한테만큼은 지고 싶지 않으니까.”


두 사람이 예전과 달리 앙금이 없는 사이라는 것을 확신한 공주는 무언가 결심한 듯, 허리춤에 차고 있던, 왕가의 문양이 새겨진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 가볍게 바닥을 탁 하고 짚는다.

“···공주님?”

“······?”


“결심했습니다.”

“?”

“···두 사람의 마도 결투, 제가 공증인으로 나서겠습니다.”

“네?!”

“?!”

너무도 예상외의 발언에 로무루스가 손사래를 치며 어버버 거리고, 윙제스터는 말없이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확실히 공주의 인품이라면 공정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왕가의 인물이라면 공증인으로서 최상의 조건이다.

두 사람의 활약을 본 그녀가 나중에 인재를 등용할 시에 유력한 후보로 거론될 확률도 있었다.


“그, 그그, 그런 황송한 말씀을···!”

“······.”

어쩔 줄 몰라 하는 로무루스와 달리, 윙제스터는 심히 복잡한 심경으로 시선을 피했다.

로무루스는 어떨지 모르지만, 윙제스터의 바렛 스태프의 뿌리는 굳게 봉인되어 있던 할아버지의 연구였다.

왕가의 인물에게 그런 것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안전한 일일까?


물론 바렛 스태프를 안 쓰고 겨룬다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현재 윙제스터가 만들 수 있는 마도구 중에서 가장 전투에 유용한 것은 바렛 스태프 뿐이었다.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윙제스터가 상대하기 벅찬 재능으로 똘똘 뭉친 세이즈 가문의 막내다.

최소 5서클 마스터 수준의, 명실공히 이미 프로 전투 마도사 수준의 강력한 정통 마도사.

바렛 스태프 없이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었다.


“어째서 갑자기 그런 결정을···.”

“두 사람은 서로 감정이 격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

공주는 명백히 윙제스터 쪽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공주는 이미 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윙제스터에게서 또래의 아이들에게서 결코 느껴지지 않아야 할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부터 간간히 시달려 온 암살자나 납치 미수범들에게서 느껴지던 감각.

절박함, 각오, 그리고 살의.

“크으으음···.”


왕실에서도 일부만 아는 사실이지만, 공주에게는 한 가지 숨겨진 재능이 있었다.

바로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그 사람의 본심이 어떤 이미지로 그녀의 뇌리에 그려지는 것이 그것이다.


로무루스는 첫 만남 때와 크게 달라진 이미지로, 현재의 그에게서는 예전과 달리 풍성한 갈기를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젊은 숫사자의 자태가 떠오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윙제스터와 눈을 어렵사리 마주치면···.


크르르르르···!


“······.”

허름한 골목길.

상처 입은 채로 막다른 곳에 몰려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승냥이 한 마리가 그녀의 뇌리에 떠오른다.

이대로라면 윙제스터는 분명 결코 좋은 쪽으로는 향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처음 만난 때부터 한결같은 이미지였던 것이다.


“로무루스 군. 제가 공증인으로 서는 것, 동의해 주실 건가요?”

“······!”

로무루스는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그녀가 다시 윙제스터 쪽을 바라보면,


“저는 거절합니다.”

“윙제스터 너?!”

“선배?”

“···이유를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

윙제스터는 말없이 고개를 내젓고는 교수동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윙제스터 너 진짜?!”

“···로무루스. 넌 어떨지 모르겠다만, 나에겐 나의 사정이 있어.”

“······!”

“공주님이나, 여타 다른 공인들 앞에서 내 실력을 보이는 건 좋아하지 않아.”

윙제스터는 그렇게 베레트를 데리고 가 버리고, 로무루스는 공주가 상심했을까 걱정하며 그녀를 돌아본다.

“고, 공주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잘 이야기해서···.”

“···괜찮습니다. 로무루스 군.”

“······?”


그의 예상과 다르게, 공주는 마치 걸려들었다는 듯이 조금은 짖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 분명히 ‘선언’했는걸요.”

“네?”

“결심했다고 말한 것은, 두 사람에게 ‘요청’한 것이 아니라, 제가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거랍니다.”

“에···?”

“그러니까, 사실 두 사람의 동의는 무의미해요.”


그제서야 무언가 눈치 챈 듯 로무루스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서, 설마···.”

“네. 두 분의 의사가 어떻든지 간에, 저는 그 날 두 분이 계신 곳에 나타날 겁니다. 공증인으로서.”

“······!”


로무루스는 처음으로 이 공주님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마냥 차분하고 순진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소악마 스러운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19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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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2화 - 첫 출전(3) 21.01.15 29 1 12쪽
32 31화 - 첫 출전(2) 21.01.14 40 1 11쪽
31 30화 - 첫 출전(1) 21.01.13 33 1 12쪽
30 29화 - 록샤드 본 알프로스 21.01.12 33 1 11쪽
29 28화 - 방첩활동 21.01.11 36 1 11쪽
28 27화 - 위자드 블리츠(2) +1 21.01.08 47 1 11쪽
27 26화 - 위자드 블리츠(1) 21.01.07 51 1 12쪽
26 25화 - 왕립 마도공학 연구소 +1 21.01.06 49 0 11쪽
25 24화 - 제 2왕자 그리펠로스(3) +1 21.01.05 54 1 11쪽
24 23화 - 제 2왕자 그리펠로스(2) 21.01.04 67 1 11쪽
23 22화 - 제 2왕자 그리펠로스(1) +2 21.01.01 69 1 13쪽
22 21화 - 패자들의 재전(再戰) (2) 21.01.01 64 1 12쪽
21 20화 - 패자들의 재전(再戰) (1) 20.12.30 66 1 12쪽
» 19화 - 졸업 논문(2) 20.12.29 63 1 11쪽
19 18화 - 졸업 논문(1) +2 20.12.28 78 0 11쪽
18 17화 - 세이즈 저택 +1 20.12.25 79 0 12쪽
17 16화 - 한여름의 특훈(2) 20.12.24 73 0 11쪽
16 15화 - 한여름의 특훈(1) +1 20.12.23 79 0 11쪽
15 14화 - 가족, 대면하다 20.12.20 82 1 11쪽
14 13화 - 비공정 카페 진 팰리스 +1 20.12.19 94 1 11쪽
13 12화 - 마도공학 클럽 탄생(2) 20.12.18 88 1 12쪽
12 11화 - 마도공학 클럽 탄생(1) 20.12.17 92 1 13쪽
11 10화 - 공포의 무대포동 정식 +2 20.12.13 101 1 11쪽
10 9화 - 암살자 vs 마도사 20.12.12 98 1 11쪽
9 8화 - 뉴 핑크섬 거리(2) +2 20.12.06 106 1 11쪽
8 7화 - 뉴 핑크섬 거리(1) +2 20.12.05 107 0 12쪽
7 6화 - 제 3왕녀 20.11.29 101 1 12쪽
6 5화 - 마도 결투(2) 20.11.28 10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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