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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야(紅夜) 님의 서재입니다.

타도천마 독마천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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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05.13 23:48
최근연재일 :
2022.07.14 17:56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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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추천수 :
23
글자수 :
34,372

작성
21.05.1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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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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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3쪽

1. 한명은 살고 두명은 죽는다

DUMMY

독마(毒魔) 왕악림(王惡林)은 두 제자의 이름이 적힌 죽간을 눈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성격이 화급하지만 감각과 재능이 뛰어난 동방후(東方厚)냐.

재능은 떨어지지만 인내심이 깊은 진자림(眞紫林)이냐.’


만독곡(萬毒谷)은 일인전승의 문파다.

후계는 한명으로 족했다.

무공 실력이나 입문 순서로 따지면 동방후를 선택하는게 맞다.

그런데 마음은 어쩐지 진자림에게 기울고 있었다.


‘예전 스승님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왕악림은 죽은 사부와 사제가 자꾸 떠올랐다. 그는 결국 두 제자를 전부 호출했다.


“사부님, 자림과 함께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거라.”


검은 무복의 건장한 체격. 늑대같은 인상의 동방후가 먼저 들어왔다.

아침 연공을 막 끝낸 그의 몸에서 뜨거운 김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한쪽 발이 방문으로 넘어간 그 순간.

온몸의 털이 전부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목숨을 여러번 구해준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방문을 넘으면 반드시 죽는다.’


“사형, 뭐하세요. 안들어가시구···스승님이 기다리시잖아요.”


얼음장을 깨고 빨래를 하느라 소맷단과 바짓단이 흥건히 젖은 진자림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얼떨결에 동방후는 방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둘 모두 자리에 앉거라.”


천마와 싸운 이후 그는 왼팔을 잃었다. 천하를 호령할 것 같은 매서움도 그때 사라졌다.

죽을날을 받아 놓은 사람처럼 삶을 공허하게 내버렸다.

동방후와 진자림은 스승의 모습을 지켜보기가 어려워 그간 애가 끓었다.

그런데 오늘 왕악림의 눈빛은 평생의 숙적을 맞서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결연했다.

왕악림은 천마와의 싸움 이후 한번도 꺼내지 않았던 흑색 장포도 입고 있었다.

오른손에 든 것은 곡주의 상징인 방울채. 만곡령(萬谷鈴)이었다.

방안의 긴장감은 지난해 무산 못지 않았다.


“팔선탁 위에 잔 두개가 있다.”


두잔의 독. 동방후는 직감적으로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사부가 평생에 걸쳐 연성한 무상지독!


‘흑화(黑花)!’


불안감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왕악림은 평생 단 세번 흑화를 사용했다. 그 세번이 왕악림에게 독마라는 별호를 선사했다. 흑화에 중독되면 온몸의 내장이 검게 녹아 안면 칠공에서 흘러내린다.

그보다 끔찍한 장면은 없다.

천마와의 싸움에서 흑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으리라.


“마시거라.”


“네? 사부님 농담이시죠?”


왕악림의 눈빛에는 거짓이 없었다.

두 잔 중 한곳에만 흑화가 있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두잔 모두 진짜 흑화다.


‘다같이 죽자는 겁니까? 천마에게 복수하자는 말은 거짓이었습니까? 사부님?’


그 때 진자림이 잔을 들어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들이켰다.


“미친놈!”


그래. 진자림은 원래 이런놈이었다. 사부가 죽으라면 군말없이 죽을 놈이었다.

그래도 일말의 망설임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이건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아니야··· 자식보고 죽으라는 부모가 어딨어.

천화도 사부님도 모두 정신이 나갔어!’


검은 피가 진자림의 울대를 치고 울컥하며 올라왔다.

그때 동방후의 발은 이미 바닥을 박차고 문 밖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사부님이 노망이 난거야! 미치지 않고서야 우리 둘다 죽이려할 이유가 없어. 미친 늙은이!’


동방후는 자신의 상황판단을 추호도 후회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면 왕악림이 직접 그의 입에 흑화를 부었을 것이다.


뒤통수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려 올까 그는 귀를 막고 달렸다.

사부가 전력을 다해도 지금의 자신이라면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불안해서 구역질이 날때까지 뛰었다.


“그래... 후는 도망갔구나.”


왕악림은 활짝 열린 방문을 말 없이 닫았다.

진자림은 바닥에 쓰러진채 코와 입에서 검은 피를 흘리며 덜덜 떨고 있었다.

눈과 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 대라신선이 와도 구할 수 없다.


‘스승님이 아니었으면 나는 그해 겨울 눈에 파묻혀 굶어 죽었겠지. 내 목숨은 스승님의 것. 내가 죽으면 사형이 곡주를 이어 받을 거야. 사형 고마워. 그 동안 나한테 잘해줘서...’


진자림은 해가 갈수록 스승이 자신을 아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인전승인 만독곡에서 그의 존재는 분명 스승이나 동방후에게 부담이 될 것이 분명했다.

후계 전승이 이루어질 때 방계는 목이 날아간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스승과 사형을 사랑했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독을 털어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진자림은 동방후가 도망간 것을 알지 못했다. 속이 타들어갈 것 같은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화로를 통째로 삼킨 것 같아··· 엄마. 나 죽나봐.’


너무 아프니 기억에도 없는 엄마를 찾게 되었다.

그의 몸에 깃든 아홉개의 독이 흑화에 맞섰지만 소용 없었다.

어떤 색도 검은색으로 뒤덮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정신이 점차 흐려졌다.

저승에 한발 걸치고 있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이대로 눈을 감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악림이 진자림을 일으켜 앉히고 가부좌를 틀게 했다.


짤랑!


만곡령의 청량한 소리에 진자림은 정신이 번쩍들었다.


“살고 싶으면 부형인의 구결을 외우면서 독기를 도인하거라.”


격체전력(隔體傳力). 명문에 닿은 손길에서 친숙한 기운이 그의 혈도를 타고 돌기 시작했다.


‘부형인··· 스승님의 부형인이야.’


같은 구결로 익혔지만 스승의 것과 진자림의 것은 천지차이였다.


스승의 막대한 진기는 혈관을 타고 돌던 독기를 단숨에 제압했다.

검은 독기는 스승의 진기를 타고 전신을 휘돌았다.

돌면 돌수록 다양한 성질의 진기와 독기가 하나처럼 뒤섞여 흘렀다.

종국에는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두려움이 가셨다.


어린아이가 막 걸음마를 시작할 때, 부모가 뒤에서 든든하게 잡아준다면 이런 느낌일까.

내친김에 진자림은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지!’


왕악림은 조심스럽게 손을 땠다.

다행이었다. 왕악림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눈 앞이 완전히 어둠에 덮이기 전에 봐둘 수 있어서.


이제 완전히 몰입한 진자림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맨몸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상쾌했다.


문제는 백회혈이었다.

벽에 막힌 것처럼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진기가 머뭇거리며 뒷걸음질쳤다.

그때 스승의 부형인이 뒤를 받쳐 주었다.


‘할수 있어.’


마치 그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기는 잠시 뒤로 물렀났다가 전력을 다해 벽을 향해 들이 받았다.


쿵!


쿵!


가부좌를 튼 진자림의 몸이 한차례 움찔 거렸다.


마침내 철옹성이 무너졌다.


쿠르르르!


거대한 둑이 터진 것 처럼 걷잡을 수 없는 진기의 강물이 인당을 거쳐 기해, 회음, 다시 백회로 치달았다.

그동안 위치는 알지만 진기를 수발하기 힘들었던 세맥들들까지 범람하는 진기가 휩쓸고 지나갔다.


어릴적 보았던 황하의 홍수가 이랬을까.

사람이고 집이고 모두 집어삼키던 거대한 흙탕물.

그때는 자연을 이해할 수 없어 두려웠는데 큰 고리의 순환을 완성하니 알게 되었다.

그것 또한 거대한 순리의 일부였음을.


대주천(大周天)


진자림의 머리위로 희미한 기운이 꽃처럼 피어 올랐다.


하나






‘삼화취정(三花聚顶)까지! 선사의 영령이 우릴 도왔구나.’


왕악림은 이런 기연을 미쳐 경험하지 못했다. 제자가 대견했다.

한편으로는 재질이 뛰어난 동방후가 이런 기연을 만났다면 어떤 성취를 보였을까 내심 아쉽기도 했다.


눈을 뜬 진자림은 뒤에 앉아 숨을 헐떡이는 스승의 모습을 보았다.

쓰러질 것 같은 스승은 품에 안으니 종잇장처럼 가벼웠다.


‘이렇게 작았었나?’


진자림은 자신의 몸이 조금 커졌다는 사실을 미쳐 알지 못했다.


“사형··· 사형은요?”


“그놈은 도망갔다.”


언제나 당당했던 사형이 도망갔다는 소리를 진자림은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형도 자신처럼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인전승의 문파이니 스승이라면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살렸을 것이다.


‘사형은 도망간게 아니야··· 나를 살리려고 곡주가 될 기회를 버렸어.’


진자림은 왈칵 눈물이 났다.

그러나 품안의 스승이 마른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마··· 천마를 꺾어야해. “


몰아 쉬는 숨이 거칠었다.

눈의 초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면서도 천마를 되뇌였다.


“네. 알아요. 스승님. 제가 꼭 염원을 이루어 드릴께요.”


왕악림은 고개를 저었다.


“ 지금 당장은 안돼. 우내십독(宇內十毒)을 모두 꺾을 정도는 되어야 천마에게 도전이라도 해 볼 수 있다. 너만의 독을 연성해라. 흑화로는 안돼···.!”


“네. 흑화를 뛰어넘을 독을 만들께요. 스승님 말을 너무 많이 마세요.”


“다음 곡주는 너다. 자림아!... 만독곡의 14대 곡주!”


왕악림은 손에 쥔 만곡령을 그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얼마나 악력이 쎈지 손아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순간 진자림은 사부가 기운을 되찾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눈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흐른채로··· 스승은 그의 곁을 떠났다.


진자림은 스승의 시신을 바로 누이고 구배지례를 올렸다.

강호에서는 삼마 중 일인, 우내 십대고수로 꼽히며 공포의 존재로 군림했던 독마 왕악림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언제 중독되었지?’


쉴새 없이 위를 게워내던 동방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흑화를 마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독 되었다는 것은···


아!


방문에 한발 걸쳤을 때 온몸이 경고를 보냈다.

들어가면 죽는다고.

바닥에 가루형태의 독을 뿌려두면 가벼운 발걸음에도 먼지처럼 일어나 호흡기로 침투한다.

하독의 기본중에 기본이다.


“하하하! 천하의 모든 독을 안다고 으스대더니 꼴 좋구나!”


바보같은 자신의 모습에 눈물이 나왔다.

스승은 누군가 도망갈 것을 예상하고 바닥에 독을 뿌려둔 것이다.

뛰게 되면 호흡이 가빠지고 혈액이 미친듯이 빨리 돌게 된다.

아무리 약한 독이라도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해독은 스승님만 가지고 있을텐데 젠장···”


그렇다고 지금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부형인으로 독기를 한 곳에 몰아 두고 진기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막았다.

아직 독의 종류나 성질도 알아내지 못했으니 임시방편이었다.

스승이 하독한 독이니 평범할리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한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


동방후는 한달이 걸려 동방세가에 도착했다. 내공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수하게 두 발로 운남의 오지에서 호북까지 온 것이다.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몸이 먼지구덩이에 구른 것은 당연했지만, 눈밑이 거뭇하게 죽고 잘생긴 얼굴도 해골처럼 비쩍 말랐다. 한달 동안에 일어난 일이라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15년만에 자식을 바라본 어머니는 충격과 눈물로 자식을 안았다. 그는 몸을 채 씻지도 못하고 아버지에게 문안을 올렸다.


“중독되었구나.”


의술이 하늘에 닿았다는 동방진천은 단숨에 아들의 상세를 알아차렸다.

독마가 심혈을 기울인 독이라면 아들의 생사여탈은 그의 손을 떠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네 상태는 네가 가장 잘 알것이다.”


동방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아버지라면 자신의 중독을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절망에 빠졌다.

부형인의 진기를 재물로 하루하루 시간을 버는게 고작이었다.

세상에 독마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에게 남은 시간은 앞으로 고작 두세달에 불과했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나의 의술은 아직 그정도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언제나 냉정하고 담담한 태도를 보이던 동방진천의 얼굴에 처음으로 낙담에 가까운 표정이 드러났다. 동방후는 그 표정에서 가족의 정을 느꼈다.


“죽기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뵈었으니 소자는 만족합니다.”


“허허··· 벌써 포기하는 것이냐?

정녕 독마의 절독에서 살아나는 이들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들어본 적이 없다. 동방후는 고개를 저었다.

스승의 독은 무적이었다.

그래서 스승을 따랐던 것이다.


‘스승님의 독을 극복...도대체 누가···. 설마..!’


그때 그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독마의 독연을 뚫고 태연히 왼팔을 가르던 장검이 똑똑히 떠올랐다.


“위무극(慰無極)!”


무극창천(無極搶天) 위무극(慰無極).


천마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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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송곳은 언젠가 주머니를 찢고 나온다 21.05.14 48 4 14쪽
2 2.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 21.05.13 89 5 15쪽
» 1. 한명은 살고 두명은 죽는다 21.05.13 72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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