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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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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혈거
작품등록일 :
2022.06.04 12:38
최근연재일 :
2022.07.22 09:00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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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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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3,716

작성
22.07.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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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8

DUMMY

“혹시 당신이 우리가 접선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인가 본데 난 서울로 가야 해.”

그 말을 듣자 방독면을 쓴 사내는 서랍에서 정글도를 새로 꺼냈다.

“날 상대해서 이기면 보내 줄 수도. 아, 아직 꼬마라 무리인가? 네가 날 한 곳이라도 밸 수 있다면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대호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는 기계라면 몰라도 사람에겐 관심이 없었다. 죽더라도 단 한 대의 기계라도 더 부수고 죽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좋아.”

대호는 옆에 있던 정글도를 꺼내 들고 그와 마주했다. 그는 단검술을 훈련에서 배웠으니 대충 써먹으면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팔을 하나 내주더라도 그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내면 이기는 것이었다. 대호는 먼저 그를 향해 도를 휘둘렀다. 그는 잽싸게 피하면서 그의 부상당한 머리를 한 대 갈겼다. 대호는 휘청이면서도 그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몇 번이나 대호의 공격을 받아치던 그는 대호의 몸 구석구석 가격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글도를 들고도 단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오직 주먹으로만 대호를 제압해 갔다. 대호는 침까지 흘려가며 고통스러워했다. 아까 맞은 명치가 아직도 쑤셨다. 그런데 방독면 사내에게 단 한 번도 닿지 못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군. 패배하면 넌 내 말을 따라야 한다.”

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방독면 사내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그는 왼쪽으로 몸을 돌려 피하려고 하던 찰나 머릿속에서 아까 꿈에서 울리던 소리가 들렸다.

“뒤에!”

그는 그 소리에 순간 뒤를 돌아봤는데 방독면 사내의 왼발이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몸을 숙여 간신히 그의 발을 피했다.

“오호라?”

방독면 사내는 자신의 발차기를 피한 게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대호도 방금 들였던 환청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설마 이곳에 저 사내와 자신 말고 누가 따로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나 소리는 그의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방독면 사내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야말로 이 지겨운 승부의 종지부를 찍을 참이었다. 그때였다. 대호의 머릿속엔 이번엔 이미지가 순식간에 들어왔다. 그 이미지는 사내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순간 사내는 움직였고 대호는 그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대호는 그저 뒤를 돌아 정글도를 정확한 위치에 두었다. 그곳에 가면 쓴 사내는 스스로 어깨가 닿을 수밖에 없었다. 방독면 사내는 결국 어깨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래, 그럼 그렇지. 내 동작을 읽고 있구나.”

대호는 자신도 모르고 정글도를 떨어트렸다. 뭔가 몸이 알아서 움직인 것 같았다. 방독면 사내는 어깨의 상처 부위를 대충 테이프로 감았다. 그리고 가면을 벗어 던졌다. 거기에 서 있던 사내는 바로 대호도 아는 얼굴인 김준범이었다. 준범은 어느새 자신보다 키가 커버린 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호와 준범은 평소에도 그렇게 친근한 사이는 아니었다. 애당초 준범은 영배나 대호를 만나러 자주 찾아오진 않았다. 그저 친구들 모임 때나 몇 번 보던 사이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렇게 만나게 되니 둘 다 반가운 기분이었다.

“미안하다. 정체를 미리 밝히지 못해서. 너를 테스트해 봐야 해서 어쩔 수 없었구나. 네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때 서울에 계신 게 아니었군요. 다들 준범 삼촌은 돌아가신 줄 압니다.”

“그럴 테지. 나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으니까.”

“그보다 어떻게 내 행동을 읽은 거지? 분명 난 매번 새로운 동작을 보여줬을 텐데.”

안 그래도 대호도 그게 궁금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패턴을 읽었던 게 아니라면 미래를 봤다는 거겠지, 안 그러니?”

대호는 분명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모르겠어요. 뭔가 보였던 것 같아요. 그보다 아까 욕을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사내 녀석이 별걸 다 맘 쓰고 있었구나.”

준범은 대호의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는 듯 말했다.

“내일 우리 둘은 여기를 뜬다. 네 엄마를 구하러 가야 하니까, 잠 푹 자둬라.”

준범은 그의 말에 갑자기 놀랐다. 갑자기 무슨 어머니를 구하러 간단 말인가. 남극은 기계가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기계는 남극에서 무얼 하는지 나오지는 않고 있었다.

“알아.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거. 아까 약속은 안타깝게도 못 지키겠다. 넌 준비가 됐어. 이제 어머니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러 가야 한다. 내일 일어나면 모든 설명을 해주겠다. 일단 지금은 잠을 자둬라.”

대호는 일단 준범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내일 그의 말을 들어보고 행동해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마음에 걸리는 말이 있었다. 세상을 구한다니···, 이 세상은 이미 끝나버렸다. 인류는 기계를 이길 수 없었다. 그는 다른 경호병들에 의해 잠자리를 제공 받았다. 먼지투성이 건물 지하에 반란군들은 아지트를 지어놓고 기계와 대치 중이었다. 그는 대충 담요를 덮고 아까 소리를 기억했다. 그는 잠시 집중해보도록 했다. 무언가 그를 찾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내면에서부터 무언가를 보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꿈에서 대호는 공중에 떠서 아기처럼 웅크리고 있는 낸시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그렇게 아기처럼 잠든 모양이었다. 대호는 여기는 어디고 왜 낸시가 잠들어 있는지 궁금했다. 그때 그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최영배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슬픈 눈빛을 외면했고, 그 순간 그 공간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별빛이 길게 좌우로 펼쳐지는 공간을 벗어나면서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정민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정민재를 애타게 불러보았지만, 그 목소리가 그에게 닿지 못한 듯 점점 그 공간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는 순식간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이미 지하엔 사람이 없었고 다들 일찍 나가버렸는지 주위는 한산했다. 그는 늦잠을 자버린 듯 급하게 일어났다. 어제 준범에게 맞았던 온몸이 쑤셨다. 특히 머리가 가장 아팠다. 헬멧이 없었다면 그는 거기서 자기 뜻을 이루었을지 몰랐다. 그는 어제 준범과 대화를 나누던 곳으로 갔다. 거기서 준범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대호의 것으로 생각되는 수프 한 그릇이 놓여있었다.

“잘 잤냐? 어서 와서 먹어라. 죽뿐이지만, 먹을 만하다. 우린 이걸 먹고 잠시 대화 좀 나누고 바로 일본으로 떠날 거다.”

대호는 그의 앞에 앉아 부상당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숟가락씩 수프를 먹었다. 그가 먹는 동안 준범은 벌써 다 비웠는지 여길 떠날 준비를 하며 그동안의 못 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김준범은 타임머신을 쫓다가 그만, 한 할머니에게 잡혀 온갖 수련을 강제로 받았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일단 준범에게 친구를 잃게 될 테니 마음 각오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조만간 예언이 실행되어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도 알려주었다. 모든 걸 알려줄 수도 있지만, 그러면 간섭이 심해져 미래는 망가지고 만다고 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만 요점만 집어서 알려주었다. 준범에게는 여기서 수련을 마치고 부산으로 향하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대호를 기다렸다가 친구들을 모두 모아 남극으로 가 대호의 어머니를 구하고 예언을 끝맺으라고 했다. 준범은 끝내 그 할머니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미래에서 왔다는 것 하나 빼고는 말이었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서울에 남아서 그 폭발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아마 할머니도 그 폭발에 휩쓸려 돌아가셨을 거라 말했다.

“예언이 끝나지 않았다니요? 이미 제 아버지는 죽었고 예언대로 인류는 곧 종말을 맞이할 겁니다.”

“어제, 네 행동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니? 나도 실은 믿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이 지겨운 예언 소리만 들어도 토가 나올 지경이야. 그냥 차라리 죽고 말지. 그런데 어제, 네 행동은 아직 내게 예언이 끝나지 않았다고 반증을 하던걸.”

대호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분명 꿈속에서도 낸시는 물론 아버지의 모습도 보았다. 설마 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신 걸까. 그럴 리 없었다. 그렇게 믿고 싶지도 않았다. 준범도 대호를 통해 우진과 영배가 세상을 등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배는 폭발로 죽었다는 걸 이곳 정보통을 통해 들었지만, 우진이 죽은지는 몰랐다. 그는 한참을 울었다. 곧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가 그렇게 강하게 그에게 리더가 되기를 요구했었구나 싶었다. 대호도 우진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참았다. 둘은 짐을 챙기고 대호는 준범을 따라갔다. 거기엔 반란군들이 이미 진을 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준범을 통해 대호가 마지막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직 이 전쟁을 끝낼 방법은 대호뿐이라고 모두에게 말해주었다. 대호와 준범이 도착한 곳엔 헬리콥터가 한 대 준비되어 있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일본 도쿄까지 간다고 했다. 준범은 거기서 친구 둘을 더 만나야 했다.

“그런데 정말 조종사 한 명과 저희 둘만 가도 될까요? 기계가 사방에서 진을 치고 있을 텐데요.”

“그건 걱정 마라 네가 있으면 기계들은 우리를 건들 수 없다. 다만, UFO는 안 만나길 기도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제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네가 드론에 공격당하고 기절했을 때 드론이 너를 알아보고 공격하지 않았다. 아마도 기계가 너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 할머니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해줬어. 기계도 건들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 예언을 끝낼 거라고.”

그러고 보니 대호는 기절할 때 기억이 잠깐 떠올랐다. 분명 대호가 봐도 드론은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그 할머니 정체는 뭘까요? 궁금하네요. 정말 미래에서 왔을까요?”

“난 미래에서 왔다고 믿는다. 정말 대단했거든. 처음엔 미래에서 온 우진의 손녀딸 정도로 생각했다.”

둘은 헬리콥터에 올라타고 일본으로 방향을 잡았다. 부산에서 도쿄까지는 거리가 꽤 됐지만, 지금 출발하면 새벽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대호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새로운 희망이 싹트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낸시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대호는 바다 너머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와 낸시를 꼭 구하리라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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