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2,632
추천수 :
8
글자수 :
451,055

작성
20.12.17 20:00
조회
17
추천
0
글자
12쪽

24화

DUMMY

24.


“마리아···.”


전투에서 정신을 잃었던 유리가 딸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깨어났다.

가장 먼저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이 아닌 나무로 만들어진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도대체.’


심지어 정신을 잃기 전과는 다른 공간이 눈에 들어와 신중히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 순간부터 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윽!”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전신에서부터 찾아오는 격통에 온 미간을 찌푸렸다.

안간힘을 쓰며 상체만이라도 겨우 일으켜 벽에 기댄 후 몸을 살폈다.

전신에 깔끔하게 붕대가 감겨있었다.


‘내 장비는.’


침대 옆에 배낭과 로브, 그리고 검이 놓여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에는 마나를 돌리며 몸속을 살폈다.


‘부서졌던 뼈나 장기도 다 치료돼 있어. 도대체 누가?’


자신을 치료해준 이에 대해 생각을 하던 중 코로 각종 약재의 냄새가 들어왔다.

맞은편에 천막으로 가려진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물이 끓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누구지? 그것보다 숲 밖으로 나온 건가? 어떻게? 소크테라를 따돌리거나 함정을 벗어날 만한 인물이 백작령에 존재할 리가 없을 텐데···.’


온갖 추측을 하던 도중 맞은편의 방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살짝 긴장했다.

그와 달리 천막을 젖히면서 한 노인이 찻잔을 든 채 여유롭게 나타났다.

익숙한 그리고 상당히 인상 깊었던 얼굴이었다.


“소크테라···!”


유리는 재빠르게 마나를 일으키며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침대에서 내려오며 검을 뽑으려 했다.


“크헉!”


끔찍하고 극심한 고통에 행동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심지어 다리의 힘도 풀려 중심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소크테라는 그를 부축해 다시 침대에 눕히고 곁으로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자네를 치료한 지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게 아니라네. 내가 사제가 아니기에 통증까지는 없애주지 못했어. 이 노인은 신경 쓰지 말고 얌전히 누워 나 있게.”


소크테라는 짧게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아까 내가 보여준 추태는 잊어주게. 그때는 종족의 본능으로 인한 경계심과 자네의 입에서 나온 것 때문에 생긴 분노로 나답지 않게 흥분해버린 것이니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유리는 단번에 알아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아···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유리는 얼버무리듯이 입을 열었다.

소크테라는 자신의 얘기를 듣고 유리가 화를 낼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치료해준 것은 맞지만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병상에 누워있을 일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가 깨어날 때까지 꽤 많은 변명거리를 생각했었으나.


“하···.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 내가 정말 큰 실수를 했어. 하마터면 자네를 죽일 뻔했으니. 내가 열 마디, 백 마디를 한다고 해서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과를 받아주었으면 하네. 정말 미안하네.”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소크테라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윽.”


유리는 그의 행동에 놀라 억지로 몸을 일으켜 고개가 끝까지 내려가기 전에 두 팔로 황급히 몸을 받쳐 일으켰다.


“굳이 이렇게 고개를 숙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해가 풀렸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 노인의 체면까지 살려주니 고마움도 고마움이지만 미안한 마음만 더욱 커지는구먼.”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제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아채신 겁니까?”

“이미 전투가 끝났을 때 내가 자네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지 않았나.”


유리는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예. 그러셨죠.”

“그 행동은 자네를 죽이려고 했던 행동이 아니야. 자네의 기억을 살펴보기 위한 행동이었지.”

“그럼.”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네. 그리고 이 상황을 유일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자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데려와 치료한 것이야.”


유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얀은 분명히 이 일이 기록되지 않게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크테라는 모든 것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래서 유리는 말을 해도 되는지 아닌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졸음이···.’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그에게 극심한 졸음이 찾아왔다.

갑자기 고개를 꾸벅거리는 유리의 모습에 소크테라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는가?”


그가 자신을 불렀으나 유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심하게 몰려오는 졸음 탓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잠들어 버렸다.


***


잠에 빠졌던 유리는 온몸을 감싸는 온화한 기운과 따스한 공기에 감았던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꽤 익숙한 공간이었다.


‘여긴 분명히 얀의 공간일 텐데. 어째서?’


유리는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바닥에서 일어나며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를 떠다니는 수많은 금빛 실뭉치.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과 기둥.

얀의 공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딱히 본다고 닳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지는 말아줘. 내 개인 공간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야.”


갑작스레 들려온 음성에 유리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여전히 새하얀 옷을 입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얀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유리와 눈이 마주친 얀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유리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이라···. 일주일밖에 안 되기는 했지만 네 기준에서는 10일 정도 지났을 테니. 그것보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정중하네.”

“저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들로 존재를 입증했으니 태도를 바꾸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것도 그렇지. 뭐, 완전히 믿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게 신경 쓰지는 않아. 거기 서 있지 말고 이리 와 앉아. 몸도 성치 않을 텐데.”


얀이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유리는 그의 호의를 받아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너를 왜 부른지는 알고 있겠지?”

“소크테라, 그자 때문이 아닙니까?”

“잘 알고 있네. 걔한테는 말해도 상관없어.”

“상관···없는 겁니까?”


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갔다.


“그래. 걔는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어. 드래곤을 이용해 없애버리기로 마음먹었을 때 손도 거들어준 아이야. 그래서 우리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지. 게다가 그 주술을 사용할 운명이 아니기도 하니까.”


얀은 깊게 한숨을 쉬고 숨을 가다듬은 후 말을 이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너를 치료해주고는 싶지만···. 이곳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꽤 힘을 쓰는 일이라서 말이야. 아마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볼 수 없을 거야.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물어볼 거 있어?”


얀의 말에 유리는 여러 생각을 했으나.


“미안. 그것들에 대해서는 말을 해줄 수가 없을 것 같네.”

“그럼 딱히 물어볼 건 없습니다.”

“알겠어. 그럼 이만 돌아가서 볼일 봐. 고생하고.”


얀이 자리에서 사라지자 유리의 앞에 익숙한 문이 나타났다.

그는 문을 열고 걸어 나갔다.


***


유리는 눈꺼풀 너머에서부터 흘러들어 오는 빛에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니 소크테라가 옆에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유리가 잠에서 깬 것을 눈치챈 그가 흘리는 말투로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분들을 만나고 온 건가?”


유리는 몸을 일으키며 답했다.


“눈치채신 겁니까?”

“자네가 잠에 빠졌을 때 잠시 힘을 썼지. 이미 내가 겪어본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럼 잡담은 그만두고 본격적인 대화로 넘어가지. 대충 주술이 시작되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시기부터 말해주게.”


유리는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댄 다음 대화를 이어갔다.


“첫 납치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8일 전입니다.”


유리는 회의에서의 자료와 자신이 조사한 것을 정리하며 차근차근히 얘기를 해나갔다.

하루하루 계속되는 납치 사건.

제국의 추측과 대응.

마리아의 납치.

신들과의 거래.

납치범들의 규모와 계획 등등.

마리아의 얘기가 나온 시점부터 유리에게서 흘러나온 살기가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망할 것들.’


유리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끌어 오르던 살기는 금세 가라앉고 감정도 진정되어갔다.

고개를 돌리니 소크테라의 손이 금빛으로 빛나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딸과 관련되면 진정을 할 수가 없어서.”

“괜찮네. 가족이지 않은가.”


그에 대한 고마움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그의 얘기가 끝이 나자 소크테라가 입을 열었다.


“자세히 얘기해주어서 고맙네. 주술로 기억을 읽는다고 하여도 그림을 하나씩 넘기는 식이라 모든 것을 알 수는 있어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법이라서 말이야. 덕분에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어.”


소크테라는 차로 목을 축였다.


“그런데 자네는 위에 계신 분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 건가?”

“그건 갑자기 왜 물으시는 겁니까?”


유리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지금 상황에서 그들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겁니까?”

“그건 아니야. 그분들은 자네를 속이거나 하지는 않았어. 다만 진실도 말하지 않으셨지.”

“그건 또 무슨 얘기입니까.”


유리에게서 거친 마나와 함께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소크테라는 자신에게 향하는 기운만 흘려보내며 얘기를 이어갔다.


“듣다 보면 이해가 될걸세. 일단 자네가 들었던 말대로 주술은 이미 반 이상 진행됐네. 그때보다 시간이 더 지난 데다 자네의 말을 들었을 때 주술은 더욱 완성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지. 이제 중간에 막을 방법은 나라고 해도 떠오르는 게 없네.”


소크테라의 냉정한 말에 유리는 암담함이 들었다.


“정말 없는 겁니까?”


그렇다고 포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 엄청난 양의 사기가 모이며 진행되고 있을 주술을 도중에 막을 방법은 없네.”

“그럼 가만히 주술이 완성되기를 기다려야 합니까? 제 딸을 구할 수도 없는 겁니까?”


유리의 기세가 더욱 거칠어졌다.


“아직 내 말은 끝나지 않았어. 분명히 주술을 중간에 막을 방법은 없지만 완성되기 직전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무슨 얘기입니까?”

“이 주술의 원리는 다량의 사기, 순도 높은 마나, 다수의 영혼을 이용해 부활시키는 걸세.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던 세 가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쉽게 말해 흡수해야 한다는 말일세. 이해가 되나?”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흡수를 하게 되면 말씀하셨던 사기가 줄어들어 움직일 수 있기에 막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정확하네. 하지만 충분히는 아닐세. 여기서 내가 말한 직전은 정말로 직전이야. 찰나의 순간이 맞겠지.”

“그럼 아까 하셨던 말씀의 뜻은.”

“자네는 딸과 얘기할 그 어떤 시간도 없어. 구제된 영혼들은 곧바로 순리를 따라 움직이게 될 거야.”


유리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떠오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 딸이 새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진실입니까.”


그 생각이었다.


“그건 진실이야.”


유리는 푸르게 빛나는 눈으로 소크테라를 바라봤다.


“그거면 됩니다. 저는 딸과 얘기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저 딸을 이렇게 만든 조직을 부숴버리고 딸의 영혼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됩니다.”

“마음은 잘 알았네. 그럼 본격적으로 대화를 해보지. 자네, 사기를 느낄 수 있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1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29화 20.12.21 21 0 12쪽
28 28화 20.12.20 19 0 13쪽
27 27화 20.12.19 23 0 13쪽
26 26화 20.12.18 21 0 12쪽
25 25화 20.12.17 19 0 12쪽
» 24화 20.12.17 18 0 12쪽
23 23화 20.12.16 18 0 13쪽
22 22화 20.12.15 20 0 13쪽
21 21화 20.12.14 21 0 13쪽
20 20화 20.12.13 23 0 14쪽
19 19화 20.12.12 19 0 12쪽
18 18화 20.12.11 24 0 13쪽
17 17화 20.12.10 20 0 12쪽
16 16화 20.12.09 25 0 12쪽
15 15화 20.12.08 28 0 12쪽
14 14화 20.12.07 22 0 12쪽
13 13화 20.12.06 25 0 12쪽
12 12화 20.12.05 25 0 12쪽
11 11화 20.12.04 26 0 12쪽
10 10화 20.12.03 33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