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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 님의 서재입니다.

항문외과 이계에 표류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신맛
작품등록일 :
2020.12.20 11:35
최근연재일 :
2021.01.29 22:10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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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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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140

작성
21.01.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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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7. 제국

DUMMY

승우는 혼란스러웠다.

“제국이 대체 왜······”

지금까지 가끔 들어보긴 했지만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는 곳이었다.

자작은 놀랄 것 없다는 태도로 승우의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어딘가에서 새로운 각성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을 보내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는 겁니다. 아까 말씀 드린 대로 탐색 그 자체가 목적인 거죠.”

마라 왕국에서도 그들의 등장이 극적이지 않았다면, 이후 미연이 놀라운 기술로 사람들의 병증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진작 직접 접촉해서 조사했을 터였다.

자작은 속으로 생각했다.

‘제국쯤 되니 그딴 거 상관없이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살피러 온 것이겠지.’

그리고 될성부른 떡잎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영입 제안을 했을 것이다.

‘꼼짝도 못했다고 했지.’

승우는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때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의문이 생겼다.

자작이 조심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때 하신 훈련이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이었습니까?”

“훈련 내용이요? 음······.”

승우는 잠시 기억을 되새긴 후 그때 평소와 다르게 조금 무식하게 나무를 힘으로 넘겨 공터를 넓히려고 들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자작의 얼굴이 꽤나 우스꽝스럽게 바뀌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설마 체력 각성자셨습니까?”

“아. 그게······”

승우는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고민했다.

지금까지는 숨기는 거 없이 솔직하게 밝혔지만, 이곳에서 말하는 각성과 자신의 각성이 다르다는 걸 밝히는 게 괜찮은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더구나 복면인의 습격으로 위기의식이 강해진 지금은 더더욱.

그러다 현재 제일 높은 수치가 저항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항을 각성했습니다.”

“음. 그렇군요.”

자작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 전 훈련 내용을 듣고 놀란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안심했다.

무기도 갑옷도 갖추지 않은 그의 모습에 마력이나 저항 각성자라고 예상하고 있었고, 예상대로의 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각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면 그럴 만도 하지. 각성의 특혜는 그만큼 달콤한 것이니.’

물론 장기적으로는 다른 능력에 눈을 돌리지 말고 각성한 쪽에 집중을 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자작은 승우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자는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조무사께서 체력 각성자라 착각을 한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걸 보고 그냥 돌아간 거지요. 아마 눈에 들었다면 제국 사람이 되라는 제의를 받으셨을 겁니다.”

“그렇군요······.”

“아쉬우십니까?”

승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아쉽다기보다는 그런 선택지가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게 우스웠던 것이다.

만약 승우의 능력이 기준을 충족시켰다면 제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곧바로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낼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 받아들이기 힘들지.’

도움을 받으려면 높은 확률로 제국에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병원을 벗어나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미연의 의술은 그들에게 있어 가장 단단한 버팀목.

그런데 이게 병원을 벗어나게 되면 그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문제였다.

당장 자작의 요청을 미연이 그 자리에서 거절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을 따라 병원을 나와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순간 지니고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를 버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정말 그가 제국에서 보낸 탐색꾼이기를. 그럼 실망하고 가버린 상황에서 다시 엮일 일은 없을 테니까.’

복수 같은 사치스런 감정은 없었다.

그저 다시금 자신들을 위협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승우는 모닥불에서 시선을 떼고 왔던 길을 돌아봤다.

남겨진 사람들을.

그중에서도 특히 한 사람을 걱정하면서.



* * *


“부럽다. 진심 개 부러워.”

동윤이 함께 식사 중인 미연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옆에서 그 소리를 들은 장은 대번에 그 말이 미연이 부럽다는 뜻이 아니란 걸 알아차렸다.

미연이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문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저러는 지 최소한 지금 식사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미연이 저러고 있었다는 것조차 내일이 되면 세실에 의해 마을 사람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조무사님은 과장님께서 식사하는 것도 잊고 이렇게 걱정을 하고 계시다는 걸 모르시겠지? 그것도 떠난 지 겨우 반나절 만에 말이야. 아아. 나는 언감생심 부러워하지도 못하겠구나.’

장은 저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미연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미적 감각은 아버지와 다른 게 분명했다.

식사가 끝나고 장이 자신의 숙소인 원장의 진료실로 돌아갔다.

“으음. 역시 정말 멋진 방이란 말이야.”

세실과 병사들의 등장으로 다시금 1층에서 지내게 된 게 장은 오히려 지금이 좋았다.

어떻게 살게 된지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들어올 때마다 설레는 건지.

나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용도조차 모르는 물건들이 수두룩한 방이었다.

똑똑.

그런 생각을 하며 방을 감상하고 있는데 뒤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원내를 다닐 사람이라고 해봤자 몇 명 없었기에 장은 별다른 생각 없이 바로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오오. 그러고 보니 여긴 또 처음이네요.”

“아! 동윤님?”

마리나 세실일 거라고 생각한 장은 놀랐다.

동윤의 말처럼 그가 이곳을 방문한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동윤이 의자에 앉자 맞은편에 앉은 장이 물었다.

“헌데 여긴 어쩐 일로···”

“연결석 말이에요. 그걸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잖아요?”

“예? 예. 뭐, 그렇지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왜 새삼스레 묻는 건지 의문스러워 하며 장이 긍정했다.

“그리고 보존석은 목소리를 저장하죠?”

“예에. 뭐······.”

역시나 다 아는 말이었다.

“그럼 두 가지를 합칠 방법은 없을까요?”

“예?”

이 말만큼은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자 동윤이 답답하단 표정으로 재차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보존석으로 저장된 목소리를 연결석처럼 전달할 수 없겠냐는 거죠. 왜 결국 목소리도 공기를 진동시켜 전달되는 거잖아요.”

“진동···이요? 목소리가요?”

“끄응···. 아!”

동윤이 뭔가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가리켰다.

“이거 전화기라고 하는 건데 혹시 뭔지 아세요?”

도리도리.

장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계속 알 수 없는 얘기를 하던 동윤이 이 방에서 역시나 용도를 알지 못하고 있던 물건 중 하나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이 빠진 것 같아도 장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빛이 났다.

모르는 걸 알게 된다는 건 언제나 흥미진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 *


여정은 순조로웠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산적이나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도로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소로임에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작의 일행, 십여 명 중 제대로 된 갑옷과 병장기로 무장한 병사들만 여섯.

거기에 견습 기사 둘은 번쩍거리는 철제 갑옷까지 입고 있었다.

인간이든 몬스터든 눈치가 있다면 알아서 피해갈 전력이었던 것.

하지만 여정이 편한 건 아니었다.

승우야 신체 능력 덕분에 편안하게 여정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일행은 달랐다.

손주를 생각하는 자작 덕분에 꽤나 빠르게 이동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지쳐가는 게 승우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덕분에 아직 미숙한 기마 실력에도 쌩쌩한 승우의 모습이 튀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승우의 모습을 보던 견습 기사 중 한 명이 자작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아무리 봐도 체력 각성자이신 것 같습니다.”

에둘러 의심을 토한 것이지만, 자작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각성자는 각성한 시점부터 해당 수치만이 아닌 모든 수치에서 놀라운 성장력을 지니게 되는 걸 모르느냐?”

“물론 압니다. 하지만 들은 정보로는 각성 시기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런······”

“고작 말 몇 마디로 이루어진 지식을 진실인양 착각해선 안 된다. 지금 네가 보고 느끼는 게 진실이다. 저 무시무시한 성장력이야말로 바로 각성자에게 부여된 가장 큰 축복이지.”

물론 자작은 자신이 가르치는 자가 마냥 각성자에게 겁을 집어먹길 원하진 않았다.

“마력을 각성한 마법사라도 기사를 주먹으로 때려죽일 수 있는 게 각성의 힘이다. 하지만 그건 각성자라고해서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만큼 따로 신체를 단련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얻을 수 있는 힘이지. 너는 조무사께서 매일 우리가 휴식을 취할 때마다 따로 훈련을 하고 있는 걸 보지 않았느냐?”

승우가 여정 도중 쉴 때마다 틈틈이 마을에서 하던 것처럼 근력 운동을 한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예. 정말 쉬지 않고 훈련하시는 모습에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 각성자라고 마냥 겁을 집어먹지도 말되, 겉모습만 보고 우습게보아서도 안 된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살펴서, 제대로 분석을 해. 그래야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

“명심하겠습니다.”


‘알아서 착각해주니 고맙네.’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대화였지만, 한 번씩 자신을 돌아보는 눈길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본의 아니게 대화 내용을 듣게 된 승우였다.

이미 얀에게 성장력이 각성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힘이라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딱히 힘쓰는 모습을 감추지 않은 승우였다.

그랬더니 예상대로 알아서 착각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저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첫날 복면인에 대한 정보를 듣고 놀라 잊었던, 벼르고 있던 부탁을 하기 쉬워질 것 같았다.

‘지금도 견습 기사를 둘이나 가르치고 계신 전쟁 영웅이라. 이보다 훌륭한 스승이 또 있겠어?’

힘을 제어할 수 있게 된 후 로저에게 꾸준히 사냥꾼들의 지식과 기술을 배워 온 승우였다.

하지만 사냥은 어디까지나 ‘동물’을 잡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가끔 몬스터를 잡는 경우도 있다지만 그건 덫을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몬스터와 마주 치거나 사람을 상대할 때의 기술은 딱히 없었던 것이다.

그 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승우가 결국 자작에게 가 마음먹었던 부탁을 했다.

“과장님과 동윤이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싶습니다.”

이미 전에 병사 둘이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못했다는 얘기를 들은 자작이었기에 승우의 요청을 가볍게 듣지 않았다.

더구나 손주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을 따라 나선 고마운 존재였다.

미연이 거절할 때 옆에서 자작의 편을 들어준 것을, 그로 인해 지금 그가 자신과 함께 가주고 있단 걸 자작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자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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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 변화 21.01.22 184 4 13쪽
32 32. 반응 21.01.21 192 5 12쪽
31 31. 동굴 21.01.20 203 5 12쪽
30 30. 지하 21.01.19 203 7 11쪽
29 29. 각오 21.01.18 222 6 11쪽
28 28. dwarfs 21.01.17 221 5 12쪽
27 27. 마법 21.01.16 262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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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교습 21.01.14 256 6 9쪽
24 24. 제의 +2 21.01.13 268 5 10쪽
23 23. 제모 +1 21.01.12 306 5 12쪽
22 22. 가족 상봉 21.01.11 286 9 12쪽
21 21. 재회 +1 21.01.10 320 8 12쪽
20 20. 절약, 수술 +1 21.01.09 332 9 11쪽
19 19. 긴장 +1 21.01.08 313 10 10쪽
18 18. 러셀 21.01.07 335 9 10쪽
17 17. 돼지 날다 21.01.06 383 10 13쪽
16 16. 얀 +1 21.01.05 383 11 10쪽
15 15. 독 21.01.04 377 8 11쪽
14 14. 카난족 21.01.03 402 10 11쪽
13 13. 두 번째 사자 +2 21.01.02 427 11 13쪽
12 12. CPR과 AED +1 21.01.01 440 11 14쪽
11 11. 거대 뱀장어 20.12.31 464 11 12쪽
10 10. 사냥 약속 +2 20.12.30 488 14 13쪽
9 9. 반사 이익 20.12.29 525 13 12쪽
8 8. 몬스터 20.12.28 570 13 11쪽
7 7. 재소환 +1 20.12.27 602 12 12쪽
6 6. 정전 20.12.26 642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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