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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 님의 서재입니다.

항문외과 이계에 표류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신맛
작품등록일 :
2020.12.20 11:35
최근연재일 :
2021.01.29 22:10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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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52
추천수 :
363
글자수 :
207,140

작성
20.12.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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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 장과 마리

DUMMY

승우와 미연이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걸 지켜보던 마리가 입을 열었다.

“대충 상황을 아실 것 같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전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승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영화 촬영이라는 게 뭔지 모른다고 했어. 의사도, 원장도.’

아니라고 하지 않고 모른다고 했다.

굉장히 어이가 없는 동시에 끔찍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냥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두고 싶지만, 그랬다간 지금의 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 같아 억지로 붙잡고 물었다.

“한국··· 그러니까 코리아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옆에서 듣던 미연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전 조무사, 지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거죠?”

하지만 마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미연을 당황시켰다.

“음. 처음 듣는 말이네요. 무슨 뜻이죠?”

“이봐요! 대체 지금 무슨 장난을 하는 거죠? 전 조무사, 당신도 한 패에요?”

“그럴 리가요.”

승우는 억울했다.

느닷없이 왜 자신에게 화살이 돌린단 말인가?

“그런데 한국을 아냐고 묻는다는 게 말이 되요? 저 사람들, 지금도 한국말을 하잖아요!”

승우는 그제야 자신이 눈치 챈 점을 그녀는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아 차렸다.

“그러고 보니 과장님, 시력이 안 좋으셨죠. 렌즈 안 끼셨습니까?”

“당직 서는데 렌즈를 왜 껴요?”

그러면서 가운에서 안경을 꺼내 쓰더니 재차 물어왔다.

“됐어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승우가 주변에서 둘의 대화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 말할 때 입모양을 보세요. 한국말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말을 쓰고 있어요.”

“하! 그게 무슨!”

미연의 시선이 마리로 향하자 마리가 입을 열었다.

“한국이 귀인의 나라셨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처음 들어봐서 실례를 저질렀네요. 그리고 통역 마법이 작용하고 있다는 걸 모르셨나 봅니다. 평소 마법 도구를 장착하고 계셔서 잊고 계셨던 건가요?”

“마, 맙소사. 대체 이게 뭐야? 정말 무슨 장난이죠? 하나도 재미없다고요!”

미연도 그제야 정말로 입모양과 들리는 말이 다르다는 걸 눈치 채고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승우는 미연이 저런 모습을 보이자 오히려 정신을 차려야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장님, 일단 진정하세요. 우선 냉정히 상황을 파악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 맞아요. 그래. 전화! 지진 때문인 것 같으니 먼저 119를 불러야겠죠?”

그녀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가운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들었다.

“······신호가 안 잡혀! 대체 여긴 어디야!”

혹시 몰라 승우 역시 폰을 꺼내들어 확인했지만 신호가 안 잡히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지도앱이나 교통 관련 앱도 켜봤다.

GPS가 잡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무반응이었다.

뒤늦게 사람들이 말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자신들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중간 중간 들리는 저게 뭐냐, 모르겠다, 처음 본다는 말들.

마리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조용한 곳에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동감이었다.

마리는 정말 미연을 귀족이라 생각하는 건지 그녀를 어려워하는 눈치여서 승우가 미연의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과장님.”

“대체 왜 GPS도 안 되는 거죠? 위성이 떠있으면 돼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미연을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공황 발작이라도 일으킬 것 같았다.

승우가 최대한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상황을 파악하기엔 너무 정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요?”

“마리 씨가 조용한 곳에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제야 미연이 마리를 돌아봤고, 마리는 묵묵히 상체를 숙여 보였다.

“음. 그래요. 좋아요. 그렇게 하죠.”

그제야 상체를 든 마리가 말했다.

“어디가 좋을까요? 제 숙소로 안내할까요?”

그 말에 마리의 손짓이 향한 방향을 바라봤다.

한국에선 포기 힘든 풍경 속에 자리 잡은 목조 주택들.

어딘지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따라 간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승우가 나섰다.

“저희 건물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죠. 동윤이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하니까요.”

그제야 미연도 동윤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렇군요.”

미연이 마리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어때요? 저희 병원으로 가서 이야기 좀 하죠.”

“귀한 분의 집에 초대되어 영광입니다.”

“집이 아니······ 후우. 일단 들어가죠.”

그렇게 말하고는 미연이 먼저 발걸음을 땠다.

이에 승우가 마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시죠.”

“고마워요.”

“음.”

미연의 뒤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선 승우는 뒤에서 마리의 기척이 안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다.

마리는 들어오자마자 바깥으로 난 자동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려는데 마리가 현관으로 다가갔고, 자동문이 열렸다.

그 뒤로 다시금 뒤로 물러나더니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다시금 다가가 문을 열었다.

마치 애들이 할 만한 장난이었지만, 밖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오오!”

“뭐야 저거? 사람이 열어주는 게 아니었어?”

“세상에! 나 백작님 성에 가봤는데 거기에도 저런 건 없었어!”

“갑자기 우리 마을 하늘에 나타나고, 사람이 없는 데도 문이 저절로 열리는 건물이라니. 저 정도면 단순히 돈이 많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보통 귀족이 아니신 거지! 한국이라고 했나? 그 나라의 왕족이시려나?”

“장, 진짜 어떡할래? 너 이러다 초상 치르는 거 아니야?”

“닥쳐! 가뜩이나 전 재산을 잃어서 심란하구먼!”

“새끼가 걱정해줘도 지랄이야.”

승우가 사람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계단 입구에서 미연의 뾰족한 음성이 튀어 나왔다.

“안 오고 뭐해요?”

이에 앞뒤로 왔다갔다 거리던 마리가 화들짝 놀랐다.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미연 쪽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승우는 그런 마리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영화도 한국도 모르고, 의사도 자동문도 모르는 세상이라······’

승우의 표정이 새삼 어두워졌다.


“에이. 공부만 열심히 하셔서 그런지 농담도 참 재미없게 하시네요.”

미연의 설명에도 동윤은 쉽사리 믿지 않았다.

병실에 있던 동윤은 반투명한 창 덕분에 외부 풍경의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투명해도 색과 실루엣의 변화는 알 수 있었지만, 애초에 동윤이 이곳에 입원한 시기가 겨우 어제였다.

고작 이 정도 변화만으로는 미연의 황당한 설명을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볼 수 있었다.

사실 미연의 설명이 어설프기도 했지만, 승우도 딱히 미연보다 설명을 잘할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되게 이쁘세요. 심지어 젊으시고.”

동윤은 오히려 마리의 미모에 관심을 가졌다.

“아, 감사합니다.”

젊다는 말에 미연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더구나 하늘색 머리라니. 관리하기 정말 힘들 텐데··· 혹시 연예인 아니세요?”

“연예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마법사 마리라고 합니다.”

“······마법사요?”

승우는 미연의 말도 믿지 않는 동윤이니만큼 마리가 마법사라는 사실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윤을 우습게 본 것이다.

동윤이 말을 이었다.

“아니, 설마 그 미모를 하고 아직 경험이 없으···”

“야!”

승우가 질색을 하며 동윤의 말을 막아섰다.

아무리 동윤이 미성년자라고 해도 저기서 더 나아가면 성희롱이다.

그나저나 마리와 대화를 진행시키려면 일단 동윤을 어느 정도 납득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승우가 제안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직접 주변을 둘러보는 편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사실 저도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미연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엘리베이터를 탈 수는 없었기에 결국 승우가 동윤을 부축해서 옥상으로 데려갔다.


“······.”

옥상에서 본 풍경은 아래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숲이 대체 얼마나 넓은 건지 지평선 안에 보이는 모든 게 푸르렀다.

동윤은 옥상 난간을 붙잡고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와, 대박! 여기 완전 숲속이잖아요! 분명 시내 한 가운데 있었는데 완전 신기하네?”

그렇게 천진해 보이는 반응을 토한 그였지만, 고개를 돌려 이쪽을 돌아볼 때의 표정은 완전히 혼란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대체 여기가 어디에요? 왜 말도 안 하고 이런 곳으로 절 데려온 거죠? 잘 때 옮긴 거예요? 수면제라도 먹였어요?”

역시나 당황하는 동윤에게 미연이 다시 나서서 상황을 설명했다.

아까랑 다를 바 없는 설명이었지만, 이번에는 동윤도 심각하게 상황을 받아 들였다.

“그래서 결국은 왜 이렇게 된 건지, 여기가 어딘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는 거잖아요?”

승우는 그 말에 속으로 생각했다.

‘아주 제대로 이해했네.’

미연 역시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이리로 데려 온 거예요.”

모두의 시선이 마리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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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 동굴 21.01.20 203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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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 각오 21.01.18 222 6 11쪽
28 28. dwarfs 21.01.17 22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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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제모 +1 21.01.12 30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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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재회 +1 21.01.10 319 8 12쪽
20 20. 절약, 수술 +1 21.01.09 332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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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얀 +1 21.01.05 383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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