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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 님의 서재입니다.

항문외과 이계에 표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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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
작품등록일 :
2020.12.20 11:35
최근연재일 :
2021.01.2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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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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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재소환

DUMMY

대학병원의 조교수 자리도 거절하고 아버지의 병원으로 출근한 첫날.

미연은 CT 촬영 장비를 조작하고 있는 승우를 보며 경악했다.

“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죠?”

“예?”

그렇게 반문하는 그의 얼굴은 마치 뭘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함께 있는 미연의 아버지, 방준호 역시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

어이가 없었다.

환자가 있기에 그 이상 뭐라고 하지 못했지만,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었다.

각종 의료 장비들의 조작이 대부분 그의 몫이었다.

의원급 병원에서 조무사들이 간호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이건 간호사만이 아닌, 방사선사, 의사만 할 수 있는 일까지도 조무사가 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진료 시간이 끝나고 승우를 불러 함께 아버지의 진료실로 가 따졌다.

“대체 뭘 믿고 조무사에게 의료 장비들을 맡기는 거죠? 그러다 의료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요!”

준호는 하루 종일 자신과 승우를 노려보던 딸이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평온하게 답했다.

“조무사를 믿는 게 아니다. 승우 군을 믿는 거지. 다 나보다 잘 하니까 맡기는 거야.”

“기계치인 게 자랑이세요?”

그가 아픈 곳을 찔리자 얼굴을 굳히며 답했다.

“항상 내가 옆에서 관리 감독을 하고 있으니 괜찮다.’

“됐어요. 차라리 제가 할게요.”

하지만 준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자 진료하고 수술하기도 바쁜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그냥 지금처럼 승우 군에게 맡기 거라.”

“불법인데 계속 넘어가라고요?”

“1차 병원의 현실이 그런 걸 어쩌라고? 젊고 유능한 간호사는 아무리 많이 줘도 1차 병원은 거들떠도 보질 않아. 그렇다고 스마트폰도 다룰 줄 모르는 내 또래 간호사를 비싸게 고용하면 뭐해? 그보단 승우 군처럼 젊고 유능한 조무사가 백 번 낫지.”

“그래도 의료법 위반이에요!”

“법이 잘못 된 거다.”

“위험을 떠맡는 건 환자라고요!”

“위험하지 않다니까? 네가 이 친구 실력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 대학병원에서도 간호사에게 의사가 할 일을 잔뜩 맡기잖니?”

“간호사랑 조무사가 같나요?”

“둘 다 의사가 아닌 건 매한가지지.”

대학 병원이든 의원급 병원이든 인력 부족을 이유로 의료법을 어느 정도 무시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즉, 원장과 미연의 언쟁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어디냐는 문제.

두 사람은 결코 자신의 기준을 바꾸지 않았고, 이후에도 승우는 원장의 뜻대로 계속해서 의료 장비들을 다뤘다.

승우를 향한 미연의 태도는 그때까지만 해도 중립적이었다.

원장이 시키는 걸 고용된 조무사가 무슨 수로 거절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심지어 승우에게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말란 무리한 부탁도 하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승우가 미연을 나쁘게 보지 않는 건 이 시절 미연이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다.

미연의 태도가 변한 건 올해 초, 승우가 의사가 되기 위해 수능 공부를 한단 소문을 들었을 때였다.

‘대체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학창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자유롭게 놀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른들은 학창 시절이 오히려 나았다는 걸 일을 하고서야 깨닫는다.

미연은 둘 다 아니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 학창 시절에도 일하는 어른들보다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했고, 의사가 된 이후에는 그런 학창 시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조무사가 의사가 되겠다고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만약 일을 그만두고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겠다고 했다면 순수하게 응원을 해줄 수 있었으리라.

하는 일이 많아 근무 시간에 한해선 마치 미연이 레지 생활할 때가 떠오를 정도로 바쁘게 일을 하는 승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수능 공부를 해서 무려 의대에 들어가겠다는 거다.

‘아빠가 일 좀 맡겼다고 기세등등해진 거지. 그래서 의사란 직접을 우습게 본 거야!’

미연이 승우를 향해 까칠하게 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 * *


미연은 며칠 동안 병원에 처박혀서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장의 CT 촬영 결과, 수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술이 필요한데, 수술할 여건이 안 된다는 것.

미연이 정형외과의가 아니란 건 제쳐두고라도 정형외과 수술에 필요한 장비나 도구가 항문외과의 그것과는 태반이 달랐기 때문이다.

발전기가 있단 것도 몰랐을 정도로 병원 시설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상황.

“일단 병원에 무엇이 있는지부터 정확히 알아야겠어요.”

인턴과 레지를 거쳐 펠로우 과정까지 마친 그녀였지만, 이는 곧 대학병원에서 정해준 매뉴얼대로 배우고 실천해 옮기길 반복해왔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일을 하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항상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항문외과는 그만큼 인력은 부족하고, 일은 많은 과목이었다.

항문을 다룬다는 점 때문에 인기가 없어 인력 충원에 난항을 겪는데, 항문 질환 관련 수술은 수술 건수 순위에서 백내장과 더불어 매년 1, 2위를 다툴 정도로 수요가 많았던 탓이다.

동윤의 경우 한동안은 화장실에서 고생을 했지만, 그 뒤로는 두 사람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어졌는데 그러면서도 밖은 나가기는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창고에서 축구공을 발견한 후로는 한 번 씩 밖으로 나가 공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승우는 미연의 일을 돕다가 동윤이 밖에 나가기 시작하자 지금은 주로 동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혼자 밖에 두기가 불안했던 탓이다.

뭐, 사실은 혼자도 아니었지만.

“여기! 여기로 패스해!”

“에잇!”

동윤의 외침에 어설프게 공을 몰던 아이가 공을 찼다.

하지만 아직 익숙지 않은 발놀림에 공은 동윤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야! 어디로 차냐?”

“형, 미안!”

동네 아이들이 두 사람이 공을 가지고 놀자 호기심에 하나둘 모였던 것이다.

그래서 간신히 3:3으로 풋살을 즐길 정도가 되었다.

이곳 그루 마을은 겨우 20여 호만 사는 코딱지만 한 마을이다 보니 사실상 동네 애들은 다 모인 것이다.

그래서 코흘리개 어린애부터 여자 아이까지 인원 구성도 참 다양했다.

“라울, 넌 정말 이름이 아깝다.”

라울이 그나마 12살로 나이가 제일 많았고, 필립과 홍일점인 로미가 8살, 핀이라는 아이는 이제 겨우 6살이었다.

동윤이 핀과 한 팀이 되는 대신 제일 나이도 많고 축구를 잘 할 것 같은 이름을 지닌 라울을 데리고 왔는데, 라울의 실력이 영 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승우와 한 편이 된 로미가 네 아이들 중에선 가장 빨리 공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승우 형! 이건 진짜 아니라니까요? 라울을 데려가고 로미를 줘요!”

“이 욕심쟁이야, 넌 혼자서도 충분하잖아. 그런데 로미까지 탐을 내냐?”

“우우. 로미를 달라! 로미야, 부모님께 허락 받으러 가자. 오빠가 잘 해줄게!”

“이 자식이 이제는 어린애한테까지!”

동윤의 저질 농담은 어째 남녀도 모자라 노소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승우가 기겁을 하며 공 대신 동윤의 엉덩이를 찼다.

“아악! 형! 아직도 욱신거린단 말이에요!”

“그래서 찬 거거든?”

어쨌거나 아무리 라울이 못하고 핀이 어린애라 해도 동윤의 팀이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동윤의 실력이 생각 이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까지 축구부에 있었다는데 대체 왜 그만둔 건지 모를 정도로 혼자 승우까지 능숙하게 재치며 골을 넣어댔다.

“그래도 혼자서 드리블만 하니까 이기는 맛이 안 난다고요. 패스하는 맛도 좀 나야죠.”

“이기는 맛이 안나는 건 니가 너무 쉽게 이겨서 그런 거야. 오히려 라울도 우리 팀으로 데려올 테니 4:2로 붙자.”

“와. 말을 말아야지.”

승우는 좀처럼 양보해주지 않았다.

너무 쉬우면 쉽게 질리는 법.

동윤이 간신히 놀 거리를 찾았는데 계속 재밌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물론 지는 것도 싫고.’

동윤의 팀과 다르게 승우는 로미와 필립과 나름 패스를 주고받은 끝에 결국, 나무 막대기 두 개를 꽂아 만든 골대에 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골!”

“와아!”

“예이!”

승우가 로미와 필립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나누는 와중이었다.

“어?”

승우는 무언가를 깨닫고 놀란 표정으로 동윤을 돌아봤다.

동윤은 승부 근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듯 뚱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뭐요?”

“야, 돌아왔다.”

“돌아오다니 뭐가요?”

“스킬.”

그제야 동윤도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 드디어 쿨타임 끝난 거예요? 와, 무슨 스킬 쿨타임이 이렇게 기냐.”

잠시 아이들만 놀게 두고 승우와 동윤이 한 켠에 모였다.

지난 며칠 동안 나름 되돌아갈 방법을 찾으려고 애써봤다.

하지만 마을에서 유일하게 배운 사람이라는 마리도, 유일하게 제국 땅을 밟아 봤다는 사냥꾼 로저도 세 사람이 병원 건물과 함께 이곳으로 오게 된 원인을 알지 못했다.

마리는 이 근방을 다스리는 베르니에 백작에게 연통을 넣었으니 어떻게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베르니에 백작의 저택은 가는 데만 마차로 며칠 거리의 텔로스란 도시에 있고, 백작은 아예 아주 먼 왕도에 머물며 텔로스에는 일 년 한두 번 방문하는 게 전부라고 한다.

심지어 요즘에는 특히 뜸해 방문하지 않은 지 일 년이 넘고 있다고.

즉,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유일하게 매달릴 수 있는 게 사자 소환이라는 스킬이었다.

마리의 스승, 마르제는 그루 마을의 초대 이장으로, 마리를 가르친 인물이자 마을에 정착하기 전까지 제국과 왕국을 넘나들며 많은 경험을 쌓은 마법사라고 한다.

자타공인 마을에서 가장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었다고.

그래서 그런지 동윤이 은근슬쩍 이런 제의를 해왔다.

“형, 우리 그냥 지금 부르죠?”

“마리를? 당연한 거 아냐?”

알고 보니 마리는 동윤보다 한 살이 어려서 어느새 편하게 대하게 되었다.

그 어린 나이에 스승의 뒤를 이어 마을의 장을 맡고 있었던 것.

하지만 그녀만이 아니라 이 세계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어른 취급을 했다.

당장 라울이 내년부터 아버지를 따라 일을 한다는 말을 해서 승우와 동윤이 기겁해야 했다.

하지만 동윤은 승우에게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그 유령 말이에요. 마리를 부르면 결국 또 통역 노릇하느라 우리가 궁금한 걸 제대로 물어보기 힘들지 않겠어요?”

“음.”

마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거절하기엔 지금 처한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도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과장님을 부르려면 마리도 알게 될 걸? 지금 같이 있지 않겠어?”

마리는 며칠 전부터 병원 건물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연은 병원을 둘러보는 틈틈이 마리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동윤이 내놓은 해법은 간단했다.

“의사 샘도 안 부르면 되죠.”

“야, 그게 무슨···”

“들어봐요. 사실 불러봐야 소용없잖아요? 우리가 뭐 볼 수 있는 것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대화는 형 혼자 하잖아요.”

“음. 그게 또 그런가?”

“그러니까 우리 그냥 지금 바로 불러서 물어보자고요. 스킬도 빨리 써야지 쿨타임도 빨리 지나가죠.”

“후우. 알았다. 알았어.”

승우는 먼저 상태 창을 띄워 확인했다.


가용 포인트 : 1

체력 : -

민첩 : -

마력 : -

저항 : 10 (9등급)


스킬 : <사자 교감>


퀘스트 : 신도를 늘려라.

보상 : 신도 10명당 1포인트.

현재 신도 : 12


며칠 사이 신도가 조금씩 늘어나더니 어제 가용 포인트가 하나 생겼다.

동윤에게 레벨 업 축하한단 말을 들었지만, 솔직히 찜찜했다.

이곳은 유일신 사상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제국과 제국의 우방은 그렇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신도가 늘어났다는 건 그 ‘신’이라는 존재를 향한 믿음이라고 봐야 했다.

어쩌면 자신들이 이곳으로 오게 된 연유에는 그 ‘신’이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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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 세미앙으로 +1 21.01.25 166 7 13쪽
35 35. 브누와 자작 +4 21.01.24 185 7 11쪽
34 34. 죽음 +1 21.01.23 189 4 12쪽
33 33. 변화 21.01.22 184 4 13쪽
32 32. 반응 21.01.21 192 5 12쪽
31 31. 동굴 21.01.20 203 5 12쪽
30 30. 지하 21.01.19 203 7 11쪽
29 29. 각오 21.01.18 222 6 11쪽
28 28. dwarfs 21.01.17 221 5 12쪽
27 27. 마법 21.01.16 262 6 12쪽
26 26. 심부름 +2 21.01.15 259 7 12쪽
25 25. 교습 21.01.14 256 6 9쪽
24 24. 제의 +2 21.01.13 268 5 10쪽
23 23. 제모 +1 21.01.12 306 5 12쪽
22 22. 가족 상봉 21.01.11 286 9 12쪽
21 21. 재회 +1 21.01.10 319 8 12쪽
20 20. 절약, 수술 +1 21.01.09 332 9 11쪽
19 19. 긴장 +1 21.01.08 313 10 10쪽
18 18. 러셀 21.01.07 335 9 10쪽
17 17. 돼지 날다 21.01.06 383 10 13쪽
16 16. 얀 +1 21.01.05 383 11 10쪽
15 15. 독 21.01.04 377 8 11쪽
14 14. 카난족 21.01.03 402 10 11쪽
13 13. 두 번째 사자 +2 21.01.02 427 11 13쪽
12 12. CPR과 AED +1 21.01.01 440 11 14쪽
11 11. 거대 뱀장어 20.12.31 464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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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재소환 +1 20.12.27 602 12 12쪽
6 6. 정전 20.12.26 642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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