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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졸리다

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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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최근연재일 :
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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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10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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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6. 세 발 뛰고 앞구르기(2)

DUMMY

잠깐 눈감았다 뜨면 뿅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마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아 눈 깜짝할 새에 슝 날아가는 마법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에."


수풀 색의 짧은 케이프로브와 갈색 바지. 처음에 봤던 것처럼 완벽한 모험가 차림의 야우라가 나른한 투로 말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저 녀석도 나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레샤아 혹시 그런 건 없을까아?"


그러더니 금세 뒤에서 레샤의 어깨에 팔을 감고 그 작은 애한테 자기 몸무게를 그대로 실었다.

안 그래도 왜소한 레샤가 죽는 소리를 내며 더 짜부러졌다.


"아앍 으으...! 전 마법사가 아니라고 몇 번을 얘기하는 겁니까...!"


"그럼 그런 정령 같은 건 없을까나?"


"예에? 정령은 그런 게 아니라구요... 하여튼 인간들이란... 아니, 야우라는 엘프잖아요...!"


"너도 그런 고정관념은 버리도록 해. 세상엔 나 같은 엘프도 있는 거라고. 그치, 레이크?"


"아니,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았어."


간단히 대꾸한 나는 일부러 걸음을 늦추어 뒤편에서 따라 걸어오는 에반젤린에게 갔다.

쟤네 둘이랑 있다가는 나까지 바보같이 돼 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두 분은 꼭 친자매 같아서 보기 좋네요."


"내가 보기엔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거 같은데?"


아 그래서 친자매인가?


그것이 어떤 의미였든 에반젤린은 여느 때처럼 헛짓을 하는 두 녀석을 보며 사람 좋게 웃고만 있었다. 그런데 평소 성당의 가르침대로 양손을 비운 채 다니는 그 애에게 어쩐 일인지 작은 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줄기를 각지도록 틀 잡아 엮은, 전형적으로 피크닉에 사용하는 바구니인건 뻔히 알고 있었지만.


"에반젤린, 들고 있는 그건 뭐야?"


혹시나 해서 물었다.


"아 이거요? 오늘 점심이에요. 클로에 씨에게 부탁해서 제가 만든 거예요. 또 약간의 디저트랑..."


"우리 놀러가는 거 아니야. 금방 갔다 금방 올 거라고."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디저트라니.

딱 그 말대로 아무 일도 없이 후딱 그렇게 끝나면 좋을 텐데.


"베이컨을 얹은 빵인데 숲에서 다 같이 먹으면 맛있을 거예요."


그러거나 말거나 에반젤린은 바구니 안의 내용물을 읊어주었다.



그래-


트리샤에게 부탁, 아니 의뢰... 아니 역시 부탁인 거 같으니 부탁이라고 하자.


아무튼 프랭클린의 손에 대해 부탁 받은 후 나는 토렌 씨의 조언대로 파티를 구성해보려고 시도했다.


그런데 막상 하려고보니 그 절차나 방법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있나. 그저 책에서 본 것만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으니 실제로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일을 외부에 떠벌리고 다닐 수도 없고, 하여 주변에서 모아보니 언제나의 구성원이 당연한 것처럼 모여서 일을 하게 되었다.

에반젤린과 레샤, 야우라까지 말이다.


좋은 점은 수당을 받아 나누는 게 아니라 참여한 사람 별로 받게 되었다는 것정도.


이번 일의 목적은 남쪽 숲에 있는 던전에 가서 프랭클린의 손을 가져오는 것뿐이었기에 그리 어려울 거라고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실전에선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옆구리를 얻어맞기 마련이다.

그것이 어떤 부분이었냐 하면은...


"이 동그라미가 어쩐지 좀 크다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구나."


나는 토렌 씨에게 받은 지도에 그려진 붉은 동그라미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탄식은 덤이다.


동그라미는 남쪽 숲의 어중간한 곳에 손가락 두 마디정도의 크기로 그려져 있었다. 토렌 씨가 말한 던전은 막연히 그 원의 가운데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가봤지만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고작해야 손가락 두 마디, 하지만 그 원은 지도 위에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제 크기보다 훨씬 더 큰 지역을 포괄했다.


"어떻게 된 거야, 레이크! 지도가 있으니까 금방이라며."


"좀 기다려 봐."


야우라가 어디선가 주은 나뭇가지를 내게 겨누며 말했고.


"레이크... 저는 슬슬 한계입니다만...?"


"그럼 좀 앉아있든가."


스태프를 짚고 선 레샤는 더 없이 음영 낀 눈으로 날 보고 있었으며.


"점심 말고도 새참을 더 가져올 걸 그랬나봐요."


에반젤린은 이미 비어버린 바구니를 살살 흔들었다.

그것보다 저게 왜 벌써 비어있을까. 나는 아직 하나도 먹은 기억이 없는데.

저절로 한 사람의 이름이 입에 올라왔다.


"야우라!"


"왜에에?"


야우라는 억울하다는 듯 말꼬리를 늘였다.


"너 혼자 다 먹었냐?"


"레샤! 이것 봐 레이크가 나 또 구박한다!"


멀찍이 앉아있던 레샤는 난데없이 공을 넘겨받게 되자 뭐가 목구멍에 걸리기라도 한 건지 기침을 마구 해대었다.

걸릴 게 뭐가 있겠나.


"너도 먹었냐?"


"큽, 산행중에... 케, 체, 체력 보충은, 헥, 아주.... 중요하다구요...?"


그 애는 연거푸 기침을 해대면서도 잘도 그렇게 떠들어댔다.


아니 나는 앞장 세워서 길 찾게 시키더니 자기들은 뒤에서 도시락이나 까먹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에반젤린을 보니 그 애는 평범한 미소로 서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서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에반젤린."


"...네?"


"아 해봐."


여전히 계속되는 잔잔한 미소.

...에반젤린의 목에서 꿀꺽하는 꿀렁임이 보였다.


"아... 이게 그래도 분명히 레이크님의 몫도 남아있어요. 자 보세요."


에반젤린은 보기 드물게 진땀을 흘리며 바구니에서 작은 빵조각 하나를 내밀었다.


"하하... 다 어디 갔을까요...?"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인지 에반젤린의 미소가 한 풀 더 무너졌다.


한 조각이라.

나는 에반젤린에게 넘겨받은 빵덩어리를 내려다보았다.

필요 없어, 이런 거 필요 없다고.


"있지? 말해두지만 나 빼고 먹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그래도... 좀 너무하지 않냐?"


차마 그 빵을 바닥에 내팽개치지는 못하고 입에 넣자 맛있어서 더 짜증이 났다.


"아... 레이크님... 저기 그러니까..."


어찌할 줄 몰라 하던 에반젤린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돌아가면 더 맛있는 걸 해드릴게요. 정말이에요."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나 빼고 먹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아니라고...!


아예 모르는 일 인척 고개를 돌린 레샤는 차라리 나았다.

슬쩍 눈치를 보던 야우라는 나한테 다가와 손바닥으로 등을 짝 내리쳤다.


"야!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


그게 어떤 기폭제가 되고 만 것이다.


"나 안 해."


그 결과 도출된 한 마디.


"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야우라와.


"네?"


제대로 놀란 에반젤린.


"콜록, 콜록, 켁...!"


아직도 목에 뭐가 걸린 레샤가 일시에 제각기의 반응을 보였다.


그리하여-


지도를 건네받은 야우라가 그걸 하늘 위로 펼쳐 보이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엄청 신나 보이는 게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부터는 이 야우라님이 대장이니까! 모두 잘 따라오라고!"


바위에 한쪽 발을 올리고 멋들어진 자세를 취하던 그 애는 그제야 지도를 거꾸로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쳐 잡았다.


"야우라...! 동서남북은 볼 줄 알죠...?"


레샤가 불안한 듯 옆에서 지도를 넘겨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무시한다 그래도 야우라는 엘프였다. 설마 그 정도를 모를까.


"걱정하지마시라, 이 야우라님한테 그 정돈 누워서 열매 따먹기니까."


그 말대로면 엄청 힘들고 어렵다는 의미였지만 구태여 딴지는 걸지 않기로 했다.

나도 홧김에 저지른 일이긴 하지만 설마 그 정도로 심각하리라고.

어쨌거나 야우라가 나보다 모험 경력은 더 위이지 않은가.


"그럼 저 쪽으로 가자."


야우라는 대뜸 어느 한 방향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예? 무, 무슨 근거로요...?"


그 먼 곳을 보는 레샤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근거? 아이,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가는 거지. 어차피 던전이 어디있는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아... 하지만... 여긴 꽤 깊은 숲이라구요오... 뭐가 나올지도 모르고..."


"에헤이 걱정 말라니까. 이런 숲에는 늑대 말고는 조심할 게 없어!"


호언장담을 한 야우라가 앞서 걷기 시작하자 에반젤린이 그 뒤를 잠자코 따랐다. 함께 걷던 레샤는 슬그머니 걸음을 늦추어 느지막이 뒤따르고 있던 내가 있는 곳까지 왔다.


여기저기 나무 사이를 살피는 그 애는 보내는 눈길마다 경계심이 가득해 더 없이 불안해보였다.

초심자에게 숲이 위험한 건 사실이다. 내가 뭣 하러 평소에는 관심도 안 주는 검까지 차고 왔겠나. 하지만 이렇게 밝은 대낮에 그러는 것도 퍽 우습다.


"레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늑대가 나타나면 널 도와줄 능력이 없다."


평범하게 농담을 건네자 레샤는 도리어 성을 내었다.


"뭔가요, 갑자기...! 안 믿어요. 누가 레이크 같은 걸 믿는다고 그래요...! 내가 알아서 할 거라고요...!"


"어어 그래 너 혼자 알아서 잘 해봐아. 난 도망갈 거니까."


"예에?! 이렇게 사람 끌고 와놓고서는... 그러고서 어떻게 용사 후보가 된 겁니까...?"


"내가 손들고 하겠다고 한 거 아니거든?"


또 한 번 정수리 꾹꾹의 공포를 보여줄까 싶었던 나는 가만히 손을 거두었다.

그래 난 책임감 없는 놈이 될 것이다.

최근에 팔자에도 없던 일을 여러 번 겪다보니 많이 지친 듯싶었다. 가끔은 고민도 고심도 없이 편하게 남이 하자는 대로 살아도 좋겠지.


"아!"


앞에서 들리는 야우라의 외침, 동시에 레샤가 내 옷자락을 잡고 제 앞으로 당겼다.

야... 사람으로 벽 만들지 마라...!


"있다, 있어!"


뭔가 큰 일이 벌어진 건 아니었던 건지 야우라의 신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여 다함께 달려가 그 진상을 확인해보니....!


"꾸엉...!"


작은 새끼곰 한 마리가 나무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어머, 귀여워라."


평소대로의 감상을 남기는 에반젤린을 필두로.


"저게 뭐야?"


"저게 뭡니까...?"


나하고 레샤가 말했다. 곰이라는 걸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우리가 왜 숲속을 헤매고 있는 건지 정녕 까먹어버린 것인지 묻는 것이다.

저 잔뜩 상기된 표정의 야우라에게!


"뭐긴, 붉은주먹곰이지. 봐봐, 앞발 끝이 빨갛지?"


확실히, 나무에 제 등을 살살 비벼 긁고 있는 곰의 앞발은 붉은색 털로 덥혀있었다.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왜 던전 찾으러 와서 곰을 봐야하는 건데."


"쟤가... 꿀을 엄청 좋아해."


진지하게 추궁하자 야우라는 견적을 살피는 상인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어 그래서?"


"엘프들도 있지? 꿀을 엄청 좋아해."


"어어 그래서?"


"쟤네들이 있는 곳엔 항상 벌집이 있어."


과연, 그 새끼 곰이 있는 나무의 위에는 큼지막한 벌집이 매달려 있었다.

아아, 그래서 그 꿀벌 집을 가지고 싶다는 얘기 같았다.

하아...


"...그걸 꼭 지금 해야겠냐?! 그것 때문에 세 명이 우르르 널 따라왔어야 했냐고!"


"기다려봐, 이 방랑검사 야우라님이 곧 달콤한 꿀을 맛보게 해줄 테니까. 모험의 재미는 이런 돌발적인 상황 아니겠어?"


돌발적인 건 상황이 아니라 네 머리통이겠지.

그 말을 뱉기도 전에 야우라는 그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뭔가 골똘히 고민하던 레샤가 입을 연 건 그 후였다.


"그런데 레이크... 새끼 곰이 여기 있다는 건 엄마 곰도 근처에 있다는 뜻 아닙니까...?"


"그 정돈 야우라도 생각했겠지. 아마 곰을 쫓아낼 방법을 알거나, 왜 그런 거 있잖아. 엘프들은 동물들하고 대화하고 막 그럴 거 같지 않아?"


"야우라가요...?"


하긴 가끔 사람하고도 말이 잘 안 통하는데.

자연히 우리는 수풀 속에 숨어서 야우라를 지켜봤다.


대체 어떻게 하려나 싶었던 야우라는 새끼 곰은 안중에도 없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다. 새끼 곰 역시 그 애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제 놀이에 빠져 있었고.

뭐야, 뭔지 모르겠지만 대단해.

비로소 잃어버렸던 야우라에 대한 신뢰를 일부 되찾은 그쪽으로 합류했다.


벌집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야우라는 레샤를 보자마자 들러붙어 말했다.


"레샤, 불 있지 불?"


"예...? 아... 네..."


레샤가 작은 불의 정령 셀라임을 불러내자 야우라는 품안에서 수상한 헝겊 뭉치를 꺼냈다. 안에는 어떤 식물을 말려 으깬 것처럼 생긴 조각들이 들어있었다.


셀라임이 아주 약간의 숨결을 그 안에 불어넣고 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놀랍게도 벌들이 집에서 나와 그 연기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냄새를 충분히 맛보여줬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야우라는 그 뭉치를 아주 멀리 던져버렸고 벌들이 그 뭉치를 맹렬히 추격했다.

야우라는 그 사이에 벌집을 취하려는 것이다.

원하는 걸 손에 넣은 야우라는 싱글벙글 웃으며 행복하게 벌집을 바라봤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언뜻 미묘한 시선을 느꼈다.

뭔가 슬픔과 원망이 느껴지는... 끈적한 시선.


"꾸엉...!"


소리의 근원지를 보자 새끼 곰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머, 저 애가 왜 저러는 걸까요?"


"저거... 공격하려는 거 아닙니까...?"


의문을 표하는 에반젤린과 레샤에게 야우라가 명쾌하게 답을 알려주었다.


"점찍었던 벌집을 뺏겨서 저러는 거야. 에헤헤, 약 오르지?"


곰에게 혀를 비죽 내밀고 손을 흔들며 약을 올리는 야우라.

그 모습에 레샤는 더더욱 얼굴에 음영이 짙어졌다.


"저러다가 진짜 공격하는 건 아니겠죠?"


"괜찮아... 곰하고는 친해질 자신 있어..."


실은 나도 약간은 불안했다.

그걸 알아서 그러는 것인지 새끼 곰은 계속 울어대기만 했다.


"레이크는 늑대도 못 이긴다고 해놓고서 그런 뻥을..."


어느 샌가 레샤가 내 말을 날조하고 있었다.


"아니 싸우는 거 말고. 어쨌든 네 좋을 대로 벌집도 땄으니까 빨리 가자."


나는 그걸 해명함과 동시에 야우라를 재촉했다.


"잠깐마안... 이거를... 아 에반젤린, 바구니 좀 빌려줘."


야우라는 에반젤린에게 바구니를 받아 어떻게든 벌집을 그 안에 넣고 그 위에 헝겊을 덮어두었다.


"자, 이제 가자!"


드디어 수습이 끝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위해 뒤돌아서는 야우라의 얼굴이 우뚝 굳었다. 뒤따르던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지나려고 했던 수풀의 사이로 커다란 곰 한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놀랄 새도 없이 너무 태평하고 천천히.

누구하나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투벅투벅, 뚜둑, 뚜두둑,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밟아 부러뜨리며 느릿하게 움직이는 곰은 매우 온순해보였다.


우리는 약속한 듯이 굳어서 조용히 곰님께서 하시는 일을 지켜봤다.

아무리 온순해보여도 우리 모두 본능적으로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걸 느낀 것이다.


곰님은 천천히 지나가 새끼 곰을 살폈다.

아, 아드님이시구나. 아니, 공주님인가?


"꾸어엉..."


새끼 곰의 울음소리.

그쯤에서 우리는 슬그머니 게걸음으로 티 나지 않게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꾸엉...!"


아이고, 아드님이 하고 싶은 말도 많으시네. 아니면 공주님.

하소연을 듣는 어미 곰은 이따금씩 같이 호응해주며 이야기를 들었다.

어쩐지 어미 곰의 콧숨소리가 어쩐지 점차 난폭해진다 싶었는데 이야기가 끝난 것인지 울음소리가 멈추자.


"쿠어어엉!"


급기야 포효를 질렀다.


"멈춰!"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뒤돌지 마... 나무 오를 생각도 하지 말고. 죽은 척도 안 돼."


우리 모두는 굳은 몸으로 딱딱하게 움직여 곰님과 마주섰다.

아주 벌벌 떠는 목소리로 레샤가 나에게.


"레이크...! 곰은 이길 수 있다고 했죠...? 그랬죠...?“


"내가 언제 그랬냐고...!"


이번에는 내가 야우라에게.


"야, 너 곰하고는 말 못하냐...?"


"쟤 좀 화나 보이는 건 알겠는데..."


다음은 야우라가 에반젤린에게.


"사제님, 먹을 거 더 있어?"


"아까 야우라 자매님이 다 드셨는걸요..."


그 다음 번 에반젤린에게서 유일무이한 해답이 나왔다.


"그 꿀은 어떨까요...?"


"뭐어...? 싫어... 이건 내 거란 말이야...!"


극구 반대하는 야우라, 그러는 중에도 붉은주먹곰은 콧김을 뱉으며 뜨거운 눈길로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보다도 야우라의 바구니를 보고 있는 것도 같았다.


어쩐지 나에겐 그것이,

'지금이라도 순순히 넘기면 봐줄 수도 있다.'

라고 느껴졌다.

곰이 경계심을 곤두세우며 조금씩 다가온다.


"야... 그냥 줘버려...!“


"싫어...! 싫다고...!"


바구니를 뒤로 숨기며 고개를 도리질 치던 야우라는 번뜩 결심한 듯 검을 뽑았다.


"이걸 줄 바엔 차라리 내가 싸우겠어!"


그렇게 내밀어진 검은 살짝 후린 어미 곰의 앞발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휘리리릭 하는 바람 소리까지 내며 날아간 검은 착, 하고 멋들어지게 저 먼 땅바닥에 꽂혔다.


아.


작가의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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