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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졸리다

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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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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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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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0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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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3. 모르고 싶었어(5)

DUMMY

"그래서... 그대로 여기 지내면서 자연인이 되기로 하셨다는 거죠...?"


나는 쿤투아마 씨의 이야기를 대강 머릿속으로 정리해 결과를 되물었다.


"그래, 이제야 좀 알아듣는구나."


긴긴 이야기를 마친 쿤투아마 씨는 만족스러운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렵의 나는 완전히 백지상태였다. 듣긴 들었는데 들은 게 없다.

이게 대체 뭘까 하는 그런... '아아 나는 대체 무얼 위해...' 하는 그런 것 말이다.


"이야기 끝났으면 전 이제 집에 가 봐도 될까요?"


"뭐 가는 건 안 막겠다만 어떻게 나갈 생각이냐?"


태연하게 대답하는 아저씨.


"그건 아저씨가 알죠."


"난 모르는데?"


"왜요?"


"모르니까."


"그게 말이 되요?"


"안 될 건 뭐가 있냐. 두더지 쫓다가 떨어진 판에."


아하하, 농담도 잘하셔.

자연스럽게 우리의 언성은 서로 높아졌다.


"아니! 솔직히 말해 봐요. 아저씨 지금 나갈 줄 몰라서 자연인인척 뻥치는 거죠?!"


"뭐, 인마! 아니야! 나갈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안 알아본 거지!"


"그게 그거잖아요!"


"마음가짐이 다르잖아."


결과는 똑같잖아!


"너도 말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을 좀 더 편하게 먹어보라고."


"아니요, 저는... 하아..."


그래, 좋게 생각해보자. 나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는 게 힘이라는 말도 있고 하니까... 근데,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잖아?


아니아니... 다시 시작하자.

비록 이상한 곳에 떨어져버리고만 건 사실이지만 이것저것 경험담을 주워듣는 건 그런 대로 나쁘지 않았다.

헤헤, 뭐 어때 재밌고 좋잖아. 이런 게 바로 모험이지.

는 개뿔, 정신 차려야 한다.


아득함에 떠밀려 아무 생각 없는 상태가 되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다. 특히 심리적으로.

내가 여기 왜 왔더라?

뭔가 하려고 할 때는 목표부터 궁리하라고 했으니 나는 내가 여기에 무엇을 하기위해 왔는지부터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것저것 흘러가는 상념 속에서 떠오른 건 바로 소리....


그러고 보면 소리가 있었다.

여태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난 보르넬 씨의 말을 듣고서 동굴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가 뭔지 한 번 보겠다고 여기 온 거였다.


"저 아저씨 여쭤볼 게 있는데요."


"뭐냐 뭐든지 물어봐라. 내 최고 걸작? 아니면 파밀라 공작가에 검을 납품하게된 것에 대한 뒷이야기? 아니면..."


나는 재빨리 선수를 쳐 아저씨의 이야기를 틀어막았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혹시 이 동굴에 살면서 이상한 소리 들은 적 없으세요?"


"이상한 소리?"


본인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알아챈 쿤투아마 씨는 금세 식어버린 목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작품인 망치들을 걸어놓은 곳으로 갔다.

딱히 다른 주제의 얘기는 흥미 없다는 티가 팍팍 난다.


"쿠우웅, 쿠우웅 하는 소리요."


"글쎄에..."


하며 쿤투아마씨가 망치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한 소리라고?"


그 옆에 놓여져 있는 다른 망치를 후려쳤다.

쿠와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놓여있던 쪽의 망치가 부서져 버렸다.


"난 잘 모르겠구나."


전 잘 알겠네요.

나는 지잉 하고 울리는 귀를 막고 그 다음 것을 물어봤다.


"그러면요! 쿠와아아아아! 하는 소리는요?!"


귀가 울리는 탓에 목소리가 절로 크게 나왔다.


"아아 그건 알겠다."


충돌 시험에서 살아남은 망치를 미심쩍게 바라보던 쿤투아마씨는 다시 이리로 돌아와 내 뒤를 가리켰다.


"아마 저거일 게다. 슬슬 시간이 된 거 같은데."


또 그렇게 말하고는 귀를 틀어막기에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서 귀를 다시 꽉 막았다.

곧 쿠와아아아하는 폭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등까지 느껴졌다.


"때가 되면 저 갈라진 틈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밑에 호쿠마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지. 뭐든 간에 따뜻해서 좋아."


"뭐어... 지하의 지열에 의해 지하수가 가열되어 응축된 수증기가 이따금씩 지각을 뚫고 나오는거겠지요오..."


나는 기억나는 대로 대충 중얼거렸다.


말했다시피 소리의 진실 따위... 모르고 싶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고...

내가 왜 이런데서 그런 걸 알아야하는 거냐고...

어째서인지 가슴깊이 벅차오르는 슬픔을 참아내고 난 후에야 나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오호, 왜 갑자기 어려운 말 쓰고 그러냐?"


"별 거 아니에요. 그냥 보고 외운 거죠."


"그런 걸 왜?"


그러게나 말입니다.

묻고 나서도 애매모호한 내 반응에 뭔가 민망해진 것인지 쿤투아마씨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그러지 말고 점심이나 먹자. 때를 놓쳐서 배고파 죽겠다."


"점심이요? 아저씨 식사도 하세요?"


"그럼 인마, 나는 여기서 공기하고 이슬만 먹고 사냐? 드워프는 그렇겐 못살아."


"아뇨 뭐 자연인이시라니까... 근데 여기 먹을 게 있어요?"


"찾아봐야지. 잘 찾아보면 먹고 살만큼은 나온다.


"...저 그냥 집에 가면 안 돼요?"


싫다, 정말.



그리하여-


나는 쿤투아마 씨와 함께 공동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저씨 말로는 본인의 공방이라고 말하지만 여긴 논란의 여지없는 자연동굴인지라 굉장히 작고 넓었다. 이게 참 이상한 얘기인데 좁은 길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져있다는 뜻이다.

아저씨가 공방으로 쓰는 곳은 그나마 천장이 높아 구멍에서 해가 들어오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그래서 뭘 했는가 함은.


"야야야야! 좀 똑바로 서봐라 똑바로! 팔이 안 닿잖아."


"그거 아저씨 팔이 짧은걸 왜 나한테 그래요?! 그럼 위아래를 바꿔보든가!"


거미줄에 걸린 박쥐를 잡는다던가.


"아니, 왜에! 왜! 양동이를 돌로 만들어요? 나 진짜 아저씨를 이해를 못하겠네."


"얌마, 네 힘이 딸린 걸 왜 도구 탓을 해. 말해봐, 장인은?"


"장인은 아저씨가 장인이고요! 난 도구 탓해도 되거든요?"


저 밑에서 부글부글 솟아오르는 샘물을 퍼나른다던가.


"이 버섯 먹어도 되는 거냐?"


"모르죠. 저는 이름이랑 효능만 알지 생김새로 구분은 잘 못해서... 그래도 이름만 알면 뭐 웬만한 건..."


"이거 완전 헛똑똑이네. 이름을 알면 내가 너한테 물어보겠냐?"


어딘가 미심쩍을 정도로 알록달록한 버섯을 채집한다던가.


"어 야 잠깐만 저기 끝내주는 거 있다!"


"저한텐 다 똑같은 돌멩이로 보이니까 말해줘도 모른다니까요?"


잠깐 딴 길로 샌다던가.


"아이고, 야! 잘 좀 잡아당겨봐!"


"우으와...! 아저씨 키는 작으면서 왜 이렇게 무거워요!“


"그게 다 세월의 무게라는 거다!"


"뭔 소리에요, 도대체가!"


뭔지 모를 구덩이에 빠진 쿤투아마 씨를 꺼내 올린다던가....


끈덕지게 노력하여 겨우 아저씨를 끌어올린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온 몸이 아프고 쑤신다.

하면서 느낀 거지만 이런 종류의 활동은 단련하고는 조금 다른 듯싶었다.


예측이 안 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간절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후자의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되버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자."


쿤투아마 씨의 말에 나는 야호! 소리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는 곧장 원래의 거점으로 돌아왔다.

정말 쿤투아마 씨가 말했던 대로 이것저것 건진 게 많다. 상당히 의외였다.

박쥐나, 이름은 모르지만 먹어보니 안 죽었다는 풀하고 물하고 암염하고 기타 등등... 어쩔 거냐고 물어보니 다 모아 넣어서 끓이시겠단다.

아저씨가 최소한의 손질이 필요한 재료들을 손보는 동안 나는 물을 끓이기로 했다.


무겁디무거운 돌 양동이를 들고 어떻게든 낑낑대가며 화덕에 얹어져 있는 솥에 옮겨 담으려다가 손가락 힘이 풀려버렸고 그대로 엎어버리고 말았다.

아이고, 이거...


"엎어버렸네에..."


묘한 해방감과 함께 피식 웃으며 무심코 그런 말이 나오고 말았다.

나의 깊은 내면 어딘가에서는 다 때려치우고 싶었나보다, 미안하다 너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못해서.


"야아아! 너... 너...!"


우당탕하는 소리에 놀란 쿤투아마 씨가 엎어진 양동이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내가 불을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왜 갑자기 저리 호들갑이실까.


"아이, 내가 도와드린 게 얼마인데 불가지고 되게 쩨쩨하게 구시네. 불씨 남겨둔 거 있을 거 아니에요."


"없어! 없다고! 모닥불은 아까 꺼버렸고 화덕에 있는 게 유일한 불이란 말이야!"


"이 아저씨 진짜 대책 없네! 알았어요. 불 돌려드리면 되잖아요."


"네가 무슨 수로 돌려주겠다는 거야!"


어떻게든 날뛰는 쿤투아마 씨를 가까스로 진정시킨 나는 화덕에서 물에 젖은 목탄석을 꺼내 한 구석에 대충 널어놓았다.


"혹시 모르니까. 돌 양동이 중 하나에 불씨를 만들어드릴게요."


"그래..."


내가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이자 헷갈리게 된 것인지 쿤투아마 씨는 얌전히 내가 하는 일을 지켜봤다.


여기가 목탄석은 많이 나오는 곳인 건지 아저씨가 쌓아놓을 만큼 모아놔서 다행이다.

나는 그 중 하나를 몇 개를 집어 돌 양동이에 넣었다. 그리고 점화 마법으로 아주 작게 불을 만들었다.

흑목석은 아주 천천히 타들어가는 돌이기 때문에 이정도 불이라면 오래 갈 것이다. 원래 아저씨도 그런 방법으로 불씨를 유지해 왔던 것이고.


"자 됐죠?"


깔끔하게 불씨를 되살려준 날 보는 쿤투아마 씨의 눈썹이 살짝 꿈틀대었다.


"너 마법도 쓸 줄 아냐?"


"예, 뭐...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네요."


"참 신기하네. 똑똑한가 싶다보면 멍청하고 아무것도 모른다 싶다가도 마법을 휙 써버리니... 너 밖에선 뭐하던 녀석이냐?"


"예? 아 그죠, 밖에서 뭔가 했겠죠. 저도."


나왔다. 거북한 질문.

일단 가장 최근에 했던 일을 말하기로 했다.


"음... 밖에선 그러니까... 삽질...? 을 했죠."


"뭐, 삽질? 너 같은 애한테 삽질을 시키다니 왕국도 참... 기이하다고 해야 하나."


아뇨, 그게 딱히 왕국 잘못은 아닐걸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불도 살려내었으니 우리는 스튜를 무사히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형편없이 묽고 조미료라고는 소금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그만큼이나 고생하고 먹어서 그런지 맛있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냐?"


쿤투아마 씨가 예의 그 '음료'를 마시며 말했다.


"글쎄요. 아무래도 나갈 길을 찾아봐야겠죠. 일단은 떨어진 곳부터 볼 생각이에요. 혹시 알아요, 거꾸로 올라갈 수 있을지?"


"그래, 나도 힘 닿는 데까지 도와주마."


먹은걸 정리하고 난 다음 우리는 처음 내가 떨어졌던 구멍으로 갔다.

벽에 뚫린 구멍은 비탈처럼 위쪽으로 이어져 안에선 약간의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서도 빛이 보이는 걸로 봐선 천장의 높이를 감안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깊이 떨어진 거 같지는 않았지만 굴을 거슬러 오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물 때문에 외벽이 미끄러운 건 둘째 치고 닿는 데까지 본 바로는 경사가 급격히 높아져 맨손으로 오르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검은 구멍을 바로보고 있노라니...

의외로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약간 짜증이 치미는 정도.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것일 수도 있다.


쿤투아마 씨에게 부탁해서 갈고리 같은 걸 만들어 올라가볼까?

만약 비탈이 잔가지 없이 곧게 뻗어있다면 가능할 법도 했다. 다만 갈고리가 미끄러져 떨어질 경우엔 두 번 연속 곱게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겠지.

하여 가능성이 높을 법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보던 중 한 순간 빛이 보였다.


번뜩이는 재치와 영감이 아니라 진짜 빛이.


작은 불꽃처럼 생긴 주먹만 한 주홍빛 불빛은 천천히 가까워져 이내 비탈을 빠져나왔다.


"야, 그건 뭐냐."


적잖이 놀란 쿤투아마 씨가 나에게 물었다.

어 이건...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 분야지만 분명히 레샤의 셀라임이 꼭 저런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령... 같은데요?"


"너 정령도 부리냐?"


"아니요. 저는 아닌데요. 어, 간다. 그냥 가는데요?"


유유히 허공을 떠다니던 그 녀석은 이내 다시 거꾸로 비탈을 올라 사라져버렸다.


"야! 나도 데려가주면 안 되냐?!"


라고 외쳤을 땐 이미 녀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뭐야, 약 올리는 거야 뭐야. 넌 이런 거 못하지 뭐 이런 거야?

접시닦이 꼬맹이에게 당한 이후로 이런 건 처음이었다.

악이 바득바득 오른 나는 일단 비탈의 구멍을 잡고 다리를 걸쳤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저 놈은 잡고 만다."


"야, 레이크 어디서 이상한 소리 나지 않냐?"


뒤에서 혹시나 받아줄 준비를 하던 쿤투아마 씨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난 이상한 소리라고 하면 이제 진절머리가 나니까 얘기하지 마요!"


하고 소리치긴 했지만 확실히 뭔가 들려오긴 했다.

꺄아아아...! 하며 멀리서 들려오는.


"끄억!"


그게 비명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몸통을 가격하는 충격에 뒤로 나자빠졌다. 뒤에서 대기하던 쿤투아마 씨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돌바닥에 직행이었다.

비록 아저씨는 충격에 나가떨어져 버렸지만.


"아야야야야..."


나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짓누르고 있는 물체를 보았다.

잔뜩 움츠린 소녀는 흐트러 져린 은빛 머리칼과 수도복을 입고 있는.


"에, 에반젤린?"


"레이크님!"


몸을 일으키려고 했던 나는 와락 안겨드는 에반젤린 탓에 도로 바닥에 쓰러졌다.


오... 야... 뒤통수가...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에반젤린은 거듭 나를 끌어안으며 얼굴을 부비었다.

갑작스런 사태에 어쩔 줄 몰라 붕 떠버렸던 나도 역시 계속 바닥에 엎어져있는 건 아닌 듯싶어서 어깨를 잡고 떨어뜨렸다.

푸른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당연히 레이크님을 구하러 내려온 거죠. 보세요. 밧줄도 가지고 내려온 거예요."


과연 비탈에는 두꺼운 밧줄이 내려져 있었다. 아마도 위쪽에 묶어놓고 천천히 풀며 내려온 모양이다.

밧줄이 있어도 쉽지 않았을 텐데.


"오하... 진짜······. 반갑다."


그 외에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미묘한 침묵과 서로의 시선이 교차되는 와중에.


"야...! 니들만 사람이냐, 나도 좀 살려줘라...!"


잊고 있었던 쿤투아마 씨의 죽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하여 강습 복부타격으로 돌바닥에 나뒹굴었던 아저씨를 치료하고 짧게 인사를 나누고 난 뒤, 나하고 에반젤린은 다시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여기서 뭐 얼마나 대단한 걸 했다고 떠나려니 뭔가 아쉽다.


"아저씨는 안 올라가세요?"


내가 묻자, 쿤투아마 씨는 고개를 저었다.


"난 됐다. 너나 올라가서 재밌게 살아라. 난 여기서 연구나 계속 할 테니."


"알았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올라가도 밧줄은 남겨둘게요."


"그래, 어여 가봐라."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저씨에게 살짝 목례를 해보인 나는 에반젤린을 먼저 올려 보내고 그 후에 비탈을 따라 올랐다.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증오를 불러일으켰던 구멍은 중간중간 턱과 굴곡이 심하긴 해도 대체로 미끄럼틀처럼 곧게 뻗어있어 오르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바깥... 은 아니고 동굴.


"으잉? 뭔가요. 왜 레이크가 사제님보다 밑에서 올라오는 겁니까, 혹시...?"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레샤였다.


"왜긴 왜야 에반젤린이 미끄러지면 내가 받아줘야 하니까 그렇지!"


"아아... 뭐... 그러시겠죠..."


아니, 왜 보자마자 시비야.


"그런데 레샤 넌 여기 뭐 하러 왔어?"


내 질문에 레샤는 기분이 팍 상한 듯 보였다.


"뭔가요...? 도와주러 온 거잖습니까...! 내려가는 길을 찾은 건 우리 셀라임이거든요?!"


아, 그 불덩이?


"아 그래그래,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다고."


나는 레샤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그것 또한 마음에 안 든 눈치지만 그건 의도한 바다.


"죄송해요, 레이크님... 제가 이런 곳에 오자고 해서..."


고개를 떨어뜨린 에반젤린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 애가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야 이해하지만...


"아하, 뭐... 네 말대로 훨씬 재밌더라."


나는 에반젤린에게 웃어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유익하다면 유익하기도 했고. 말 그대로 결 세는 것보단 훨씬 재미났다. 여러모로 말이다.


그 후 우리는 사이좋게 하늘그림으로 돌아갔고 레이크 아이힐데른의 기묘한 지하탐험은 그렇게 일단락 된 것이다.


작가의말

정신이 어디로 나자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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