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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졸리다

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판타지

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최근연재일 :
2023.06.27 01:06
연재수 :
3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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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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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5
글자수 :
2,515,552

작성
21.01.26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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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추천
3
글자
20쪽

53. 파편의 편파(5)

DUMMY

소음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슬리체가 깨어난 것일 수도 있었다.

차분한 체하는 겉모습과 달리 의외로 과격한 면이 많은 녀석이니 어처구니없게 날 놓쳤단 걸 깨달으면 돌무더기 따위 단번에 전부 날려버리고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향도 그렇고 소리의 종류도 그렇고 슬리체는 아닌 것 같았다.


저건 마법으로 벽돌을 부수거나 하는 것보다는 뭔가 깨지는 소리에 더 가까웠다, 또 작기도 했고. 그렇다고 세워뒀던 책이 혼자 넘어지는 것 같은 그런 사소한 소리도 아니었다.


마치 방 안에 도사리는 어떤 짐승이 심심해 흔든 꼬리가 잡동사니를 넘어뜨리는 것처럼 그런 소리가 계속해서는 아니고 짧게, 되풀이 되는 식으로 들렸다.


확인해보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지나치는 게 더 안전할까.


그런 고민 같은 걸 할 시간은 없었다. 야우라는 행동력이 강한 애였고 이미 소리를 쫓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남은 것은 날 기다리는 일 뿐이다.


실은 그것도 이미 제멋대로 결정을 내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답은 정해져있고 나는 그대로 목소리를 내기만 하면 된다.


글쎄, 그런 와중에 굳이 가보자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나는 야우라에게 물었다.

그 애는 그 질문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날 보며 코끝을 찡그렸다.


"너. 내가 전에도 그랬지. 그걸 알면 진기명기지. 그걸 알면 괜히 가보겠냐? 괜히 가보겠냐고. 응?"


꼭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 같았다.


"너는 내가 한 말 고개 돌리면 바로 까먹어버리면서, 나는 네가 한 말 다 기억해야 돼?"


"당연하지."


야우라는 잊지 말라고 당부하듯 어깨로 툭 부딪쳐왔다.

하여튼 말이 안 통한다.


우리는 소리를 쫓아 계속 복도를 걸었다. 그렇게 멀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천천히 가는 것뿐이다. 가는 중에 무언가 바뀌어 소리가 달라질 수도 있고 그걸 통해 정체를 미리 예상해볼 수도 있는 거였다.


실제로 가까이 갈수록 소리는 더 잦아졌고 더 소란스러워졌다. 그 덕에 방은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그 문을 열어야 할지는 다시 고민해볼 문제였다.

상황이 바뀌지 않았는가.

야우라에게 생각이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그 순간에 네가 안을 샤샥 보고 나온 다음 재빠르게 다시 닫는 거야. 알았지?"


그렇다는 거다.


"아니. 내가 봐야 돼...?"


내가 이견을 내밀 세도 없이 야우라는 당장 열 기세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재촉했다. 나는 별 수 없이 문틈 사이에 자리 잡고 서는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이 문틈 사이에 목이 낄 것 같은 그런 기분은 뭘까.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작전이 완벽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 눈빛이 옆에서 쏘아지는데 어떻게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연다!"


야우라가 말했다.

동시에 문이 열렸다. 나는 예정대로 문틈 사이로 방 안을 보았다. 그런데 뭘 보기도 전에 눈이 아래로 향했다. 방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뭔가 작고 잽싼 것이 발치에 뛰어든 것이다.

난 깜짝 놀라 발을 들어 피하고 말았다.

실수였다. 아니, 그 상황에선 누구라도 피했을 거다.


그게 무엇인지 뒤늦게나마 눈으로 쫓으려 했으나 그것은 내 발아래에도 뒤에도 없었다. 그것의 정체를 찾아 완전히 돌아서고 나서야 야우라가 웬 고양이의 뒷덜미를 잡고 선 것이 보였다.


크기도 작은 주제에 사나운 녀석이었다. 황갈색과 하얀 털이 반반 덮인 평범한 길고양이처럼 보였는데 야우라에게 붙잡혔음에도 벗어나보겠다고 이리저리 앞발과 뒷발을 휘둘러댔다. 하지만 잡힌 것은 뒷덜미였기에 그건 무의미한 저항에 불과했다.


"이야. 레이크 이거 봐. 우왓, 우와...!"


어찌나 극성인지 고양이를 든 야우라의 팔이 좌우로 흔들렸다.

고양이라, 그보다 먼저 따질 게 있었다.


"너, 문은."


약속과 다르지 않느냐, 나는 그렇게 말했다.

고작 고양이에게 놀라 펄떡인 것에 대한 얼버무림이라고 해도 좋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소리 말고 얘 좀 어떻게 해 봐!"


슬슬 떨어뜨릴 것 같은지 야우라는 그 고양이를 대뜸 나에게 들이밀었다.

눈먼 발톱이 눈앞에서 휘둘러졌다.


"야!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나는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그것보다 안에 있던 게 저것뿐이었던가.

그게 고작 고양이가 사고를 치는 소리에 불과했다는 건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더 이상 방 안에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야우라가 난폭한 고양이를 어쩔 줄 몰라 녀석의 뒷덜미를 잡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이, 나는 방 안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완전 아수라장이었다.

이것저것 떨어지고 쓰러지고 그럴듯하게 꾸며진 방이란 그럴듯한 물건이 많아서 어지럽히려고 하면 평범하게 어지럽혀졌다.


책, 꽃병, 할퀴어진 커튼. 상상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상상대로의 것이 아닌 게 있었다.


사람. 어지럽혀진 것 중엔 사람도 있었다.

긴 치맛자락에 먼지가 묻고 올려 묶은 머리가 핀에서 삐져나오고 땀도 흘리는데다가 이제야 겨우 숨을 고르는 그런 사람.


"아..."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난 결정적일 때 뭔가 한 박자씩 느렸다.

생각하는 중이었다.

처음은 왜, 하는 거였고 그 다음은 어떻게, 였다.


"뭐 해? 그러다 지갑 도둑맞는다, 레이크?"


내가 제대로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레아는 스윽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어! 레아! 여깄었구나!"


야우라의 목소리.


"잡았어? 언니가 잡았구나! 다행이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뒤통수를 통해 들렸다.


그러니까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이해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인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스럽게 성공했니, 실패했니, 하면서 이야기가 이어질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물을 것도 많고 물어질 것도 많고...

어쨌거나 저렇게 태평하게 굴 것만은 아닌 거 같았다.


"아니 지금 그게 아니라!"


나는 회까닥 돌아섰다.

그리고 눈앞의 고양이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레이크! 얘가 모크인가 봐. 그지?! 맞지!"


어느 샌가 잡는 법을 바꾼 야우라는 고양이의 앞다리와 몸통 사이에 손을 끼워 넣고선 나에게 들이밀었다.

자세히 보라는 것 같은데 이렇게 바짝 들이대면 자세히 볼 수가 없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나마 녀석이 지쳐 얌전해진 것이 다행이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일라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나?"


나는 고양이를 옆으로 치워내며 되물었다.

솔직히 나는 일라이가 말했던 모크의 생김새가 기억나지 않았다. 애초에 들었던 적이 있나 싶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이건 모크가 확실해."


야우라는 거듭 확신하듯 응, 맞아, 하며 연거푸 긍정했다.

확실하다면 물을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난 그렇게 대꾸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레아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모크로 추정되는 고양이의 미간을 엄지로 꾹 누르는 아줌마에게 말했다.

실수였다. 잘못 말했다.


"아니,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아주머니는... 우리가 이 저택을 알아보기 전에, 그러니까 일라이를 만나기 전에 이 곳 클리펜즈의 경비대와 함께 가버렸다. 우릴 들키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 후로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레샤의 말도 있고 그럴 여유도 없어서 잊다시피 하고 있었다.

반성해야 할 부분이긴 해도... 역시 멀쩡하게 다시 만나고 보니 그런 건가 보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요는, 그렇게 훌쩍 사라졌던 사람이 다시 이렇게 훌쩍 나타나 놀랐다는 것이다.


"어떻게는. 서로의 운명 겹친 거지. 오솔길이 서로 가로지르는 것처럼. 어느 날 다시 만나도 이상할 게 뭐 있어?"


가끔씩 그러듯 레아는 편리한 이야기로 대충 넘겼다.


"아니... 그것도 있지만... 경비대한테 붙잡혀 간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요?"


뭔가 질문이 이상했을까, 레아는 날 보며 비식 웃었다.

도움 받아놓고선 까먹어 버려놓고 이제 와 뒷이야기가 알고 싶다니 좀 어린애 같았나.


"하하, 잡혀가다니."


아주머니는 가벼이 말했다.


"얼마나 정중하게 에스코트 받았는데.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걸 떼어내기가 더 힘들었다니까?"


그건 곤란했겠지, 레아가 여기에 집을 가졌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몰래 들어온 거라고 아예 사실대로 말해버렸거든. 그랬더니 아주 열의를 불태우면서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 그 뒤로는 괜찮은 여관도 소개 받고 신원도 보장 받고 두 다리 쭉 펴고 편하게 자고 일어나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니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뭔가, 많은 것이 생략되었지만 별 탈 없이 지내다가 우리와 비슷하게 조사를 통해 여기에 오게 되었다는 것 같았다.

아 우리는 헛간에서 잤는데, 라는 야우라의 흘러가는 투덜거림이 묘하게 잘 들렸다.


"그보단 여기가 오죽 눈에 띄어야지?"


잘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여긴 좀 큰 집일 뿐이다. 하지만 팔렌팔라인 레아에겐 다르게 보이는 걸까.


"근데, 이 녀석 이름이 모크였구나?"


하며, 레아는 고양이의 뒷목을 늘어지도록 잡아 야우라에게서 건네받았다.


"응. 일라이가 찾아달라고 했었어."


야우라가 말했다.


"그건 다행이네."


꿩 먹고 알 먹게 되었다고, 레아는 그렇게 웃었다.

일라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걸까.


"그건 그렇고..."


모크의 얼굴을 살펴보던 레아의 얼굴이 갑자기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모크를 도로 야우라에게 돌려주었다. 그 다음, 그 얼음장 같은 시선은 나에게 닿았다. 미인 특유의 굉장히 고혹적인 미소와 함께.

긴장하게 된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켕기는 것이 있었다.


"레샤는?"


그 한 마디가 날 얼어붙게 만들었다.



죄인의 심정이란-


그만큼이나 무겁디무거운 것이었다. 우리가 그랬듯이 레아는 어디론가 걸어가며 그간의 일들을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겹쳐져 있었구나, 라고 아주머니는 말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많은 것들이 겹쳐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겹쳐져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가늠 따위는 되지 않았다. 실제론 별 거 없었다고 해도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나에게는 기묘하고 기이한 사건이었다.


"레이크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 거잖아? 그치?"


레아는 아주 자비롭게 말했다.


"뭐, 믿음을 배신당했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아닌가?


"레샤는 괜찮을 거야. 스스로 잘 하겠지."


위로인지 비꼬는 것인지 레아는 어중간하게 말하며 내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당연하지. 레샤가 레이크보다 훨씬 침착하고 정령도 부릴 줄 알고 잘 숨고... 또 음..."


야우라는 적극적으로 동의하는바 같았다.

나도 이래저래 할 말 많았지만, 할 처지가 못 되어서 적당히 어색한 웃음만 짓게 되었다.

저 나불대는 입은 아무리 째려봐도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 그래서... 아주머니는 그 고양이를 왜 잡고 있던 거예요...?"


아무튼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아, 이거?"


레아는 야우라와 비슷하게 모크를 내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왜 사람들이 이렇게 조심성이란 게 없을까.


이대로 가다간 내 뛰어난 반응으로 인해 허리뼈가 나가버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레이크에게 들었던 이야기의 대부분을 얘한테 들으려고 했었지."


레아가 내보인 건 고양이 모크였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 집에 사는 애 같아서 뭐 좀 물어보려고."


아... 고양이한테...


"...그것도 운명이가 뭐, 그런 거예요?"


"아니이. 고양이는 앙심이 깊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아니? 기억력이 좋다는 거야. 자기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꼼꼼히 기억하고 있다가 마음에 안 드는 걸 만나면 할퀴어 버리지."


"그럼 지금 레아가 하는 행동도 꼼꼼히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요?"


나는 쭉 늘어져버린 녀석의 뒷덜미를 가리켜 말했다.


"뭐... 여간 골탕을 먹였어야지."


라고 하면서도, 레아는 모크를 팔로 받쳐주는 식으로 편하게 안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고양이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건, 좋은 마법도 아니고 별로 잘하는 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잖아. 궁금한데, 이 정도는 용서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지, 모크?"


글쎄, 정작 그 모크는 이제 포기한 듯 얌전히 레아의 품 안에 안겨있었다.


"봐, 길고양이는 이름만 알면 쉽다니까?"


그러신 분이 못 잡아서 그 소란이었느냐고, 나는 말하지 못 했다.


고양이의 기억을 읽는다, 라.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듣고 보니 고양이도 살다보면 보고 듣는 것이 있겠구나 싶은 정도였다.


문득 개가 왜 꼬리를 흔드는지 궁금하다던 사제님이 떠올랐다. 이 마법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레아가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줌마는 단지 모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 뿐이었다.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때로는 협상을 하기도 했다. 당장은 줄만한 간식거리가 없어서 잘 안 풀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모든 건 레아의 입에서 나온 말로 추측하는 것에 불과했다. 고양이는 고양이답게 가끔씩 울어대기만 했고 그 동안 내가 한 일은 끼어들고 싶어 하는 야우라를 억누르는 것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 걸까, 아주 큰일이라도 하나 해치운 것 같은 한숨과 함께 레아는 고양이와의 담화를 끝내었다.


"어때요?"


약간은 멀찍이 있었던 나는 얼른 그 쪽에 다가갔다. 그러자 레아는 우선 고양이를 내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모크를 품에 안고나자 대꾸는 그 다음에 돌아왔다.


"이 애, 이 집 아이가 아니었네."


레아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꼭, 아이고 실수해 버렸네, 같은 투였지만 난 기가 막혔다.


"처음부터 일라이가 돌봐주는 고양이라고 했었잖아요."


"남자아이들은 다 그렇게 말 해. 먹이 한 번만 주면 다 자기 개고, 자기 고양이인줄 안다니까?"


"아니..."


그게 지금 필요한 이야기냐고 묻고 싶었다. 게다가 미묘하게 꼭 나를 탓하는 것 같아서 찜찜한 기분이었다.

내가 그랬냐고. 아니었다.


"그래도 꽤 괜찮은 애인가 본데. 좋은 기억뿐이야."


"일라이는 우리한테도 친절했으니까요."


나는 모크를 다시 야우라에게 넘겨주었다.

그 애는 고양이를 넘겨받자마자 뭔가 알 수 없는 장난을 쳐가며 녀석을 놀렸다.

동물을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 기억을 봤다는 게, 그냥 물어보는 게 다인 거예요?"


"글쎄...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까."


"제가 잘 못 알아들을 얘기면 나중에 들어도 괜찮고요."


왠지 또 놀리는 것 같아, 나는 대충 넘어가고자 했다.


"아주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마법이야."


거 봐.

레아는 아이에게 무시무시한 이야기라도 해주듯 목소리를 스산하게 깔고 말했다.


"그런 걸 그렇게 쉽게 쉽게 써도 되는 거예요?"


그에 대한 반발이랄까 나는 비아냥거렸다.


"꼭 알고 싶은 게 있었거든."


똑같이 농담을 할 줄 알았는데, 레아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선 진중히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괜스레 그 얼굴을 살피게 되었다.

역시 정색하는 체 하며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다.


"오래 살지 않은 아이라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진 않았어. 세 번째 생 정도 될까?"


되게 오래 살았네.

그보다 그 환고양이라는 거 특별한 것처럼 말하더니 흔한 모양이었다.

난 그렇게 딴죽 걸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그 중에서도 이 집과 관련된 기억은 더 적어서 말이야. 복도를 홀로 거닐었던 기억이 많네. 그래서 별로 남지 않은 거야."


즐겁지 않았던 텅 빈 기억은 빨리 잊어버린다는 건가, 고양이도 사람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거구나.

그 이야기가 야우라에겐 실망스럽게 들렸던 것 같다.


"뭐야. 너 하나도 도움이 안 되잖아아아."


그 애는 모크를 혼내기라도 하듯 높이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뭐 아예 그런 것도 아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고, 아주머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니 야우라는 모크를 다시 곱게 안아주었다.


"사람을 봤어. 매일 같이 책을 보는 사람. 이상한 냄새가 나는 물을 섞고 혼자 웃었다가 우는 그런 사람."


파블로의 이야기였다.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여자아이와 조용한 남자애."


글리와 슬리체도 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늘 투덜거리며 먼지구덩이를 뒤지는 사람."


모르겠다. 무언가를 찾는다는 걸 보니 오닐인가 싶다. 그 사람은 부랑자라는 이름에 딱 걸맞게 지저분했으니까. 고양이를 잡으러 다녔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검은 여자."


프리실라였다.


"레이크, 전에 아줌마랑 프리실라에 대해 얘기한 적 있지?"


레아는 대뜸 그렇게 물어왔다.

언제?

내 기억엔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절대 잊어먹을 리도 없었고 잊어먹어서도 안 되는 거였다.

그 때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런 것이다!


"아, 맞아. 그 때 잔다 그래서 그냥 넘어갔지."


깜빡 했노라고, 레아는 웃으며 대충 넘어가려 했다.


"아줌마가 이러니까 레샤가 화를 내죠!"


그래도 난 한 소리 해야겠다 싶었다.


"아이, 그건 그 애가 좀 예민한 거고. 가끔은 나도 내가 어떻게 그런 똘똘한 애를 낳았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러니까 걔는 그런 농담을 싫어한다고, 라고 나는 덧붙일 수 없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프리실라는 왜요? 혹시 뭔가 알고 있어요?"


"그건 아니야. 아줌마도 그 때 레이크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거라."


"뭘요?"


"아니야, 이제와선 됐어. 레이크 너도 몰랐던 것 같고. 나도 기분 탓인가 싶어서 그냥 넘어갈 만큼 별 것 아니었으니까. 그저 약간의 느낌이었을 뿐이거든."


"무슨 느낌인데요...?"


"약간의 위화감이랄까... 모크가 본 프리실라도 그다지 위험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어.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아무도 없는 창고에서 먹을 걸 훔치거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수를 놓는 모습밖에 없어. 그런데..."


그런데?


"레이크 너는 고양이가 어떻게 사람의 성별을 구별하는지 아니?"


"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고양이도 아니고... 그것도 얘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내가 고개를 까닥여 가리키자 야우라가 다시 모크를 높게 들어 내밀었다.


"냄새로 알지 않을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고양이에겐 사람과 다른 육감이 있어. 사람보다도 더 사람에 대해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이 많지. 아까는 기억 속의 검은 여자라고 했지만, 그건 모크의 기억을 보는 내 입장에서의 얘기고 그 때 모크의 기분은 혼란이었어."


"혼란이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나는 다시 물었다.

고양이에게 혼란?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린다는 거야."


"네? 아니 그럴 리가요.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경비대에서 먼저 알았겠죠."


심지어 프리실라는 나스 경과도 친분이 있어보였으니 이제와 사실은 남자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외견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니야, 레이크. 고양이는 사람을 보고서 좀 더 많은 걸 느껴. 다가가도 될지, 먹을 것을 기대해도 될지, 피해야 할지. 첫인상만으로 알아내야해. 그 사람 자체를 느끼는 거지."


그 사람 자체를 느낀다, 라...


"프리실라는 그게 힘들만큼 무언가가 불안정한 거야."


그런 거라고, 레아는 그렇다고만 말했다.

이제야 비셔스 경이 팔렌팔라의 말은 알아듣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갑자기 고양이 얘기를 할 줄이야.


"뭐?! 프리실라가 남자라고?"


야우라가 소리쳤다.

그래도 얘보단 낫겠지.

난 찌릿찌릿한 귀를 문지르며 생각했다.

아주 목소리가 귓구멍으로 들어와 반대편으로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얘기를 할 땐 딴 생각하면서 듣지 말고 제대로 집중 좀 해줬으면 좋으련만.


"그런 게 아니라..."


다시 설명해주려고 하는데도 야우라는 홀로 깊은 미궁에 빠져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아닌데...? 내가 만져봤는데...?"


이어지는 이야기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후 더 말 하는 것에 대해선 그냥 못들은 채 하기로 했다.


작가의말

본래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선 한 가지 시선으로만 전달해드렸는데요. 그 방법에 꽤 긴 고민을 해봤습니다만, 이번에는 그 원칙을 좀 깨야할 것 같습니다.

다음엔 잠시 흐름이 바뀜을 일찌감치 말씀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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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8 李神
    작성일
    21.01.26 12:50
    No. 1

    시점 변경 예고... 두근두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6 밤까
    작성일
    21.01.26 22:42
    No. 2

    전에 했던 p.s편과 같습니다만 이번엔 같은 사건 내에서의 시점이 잠깐 변하는거라 헷갈리실까 미리 공지를...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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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55. 기우면 될까(4) +2 23.02.09 68 2 14쪽
318 55. 기우면 될까(3) +2 23.02.03 64 2 18쪽
317 55. 기우면 될까(2) +2 23.01.30 68 2 13쪽
316 55. 기우면 될까(1) +2 23.01.28 64 2 16쪽
315 P.S 옛날 옛날 어느 옛날에 23.01.25 87 2 7쪽
314 54. 조각조각 사각사각(8) 23.01.18 63 2 12쪽
313 54. 조각조각 사각사각(7) +2 23.01.13 84 2 14쪽
312 54. 조각조각 사각사각(6) +1 21.11.06 128 1 16쪽
311 54. 조각조각 사각사각(5) +2 21.10.24 109 2 20쪽
310 54. 조각조각 사각사각(4) 21.10.19 112 2 20쪽
309 54. 조각조각 사각사각(3) +1 21.10.13 125 1 17쪽
308 54. 조각조각 사각사각(2) +2 21.10.05 205 2 12쪽
307 54. 조각조각 사각사각(1) +1 21.10.02 125 3 17쪽
306 드리는 말씀 21.10.02 147 4 2쪽
» 53. 파편의 편파(5) +2 21.01.26 166 3 20쪽
304 53. 파편의 편파(4) +2 21.01.07 137 2 13쪽
303 53. 파편의 편파(3) +2 20.12.31 140 4 27쪽
302 53. 파편의 편파(2) +2 20.12.21 153 4 19쪽
301 53. 파편의 편파(1) +2 20.12.15 136 3 20쪽
300 52. 편파의 파편(6) +2 20.09.19 176 6 24쪽
299 52. 편파의 파편(5) +2 20.09.09 170 3 16쪽
298 52. 편파의 파편(4) +2 20.09.05 141 5 19쪽
297 52. 편파의 파편(3) 20.08.20 138 4 19쪽
296 52. 편파의 파편(2) 20.08.13 144 3 20쪽
295 52. 편파의 파편(1) +8 20.08.07 170 5 17쪽
294 51. 찰박찰박 해(5) +3 20.04.24 187 2 17쪽
293 51. 찰박찰박 해(4) +2 20.04.21 154 2 19쪽
292 51. 찰박찰박 해(3) +4 20.04.13 153 3 20쪽
291 51. 찰박찰박 해(2) +3 20.04.07 156 3 16쪽
290 51. 찰박찰박 해(1) 20.04.07 146 3 12쪽
289 P.S 푹 익혔어 +4 20.04.02 159 3 10쪽
288 50. 삼월의 토끼(5) 20.04.01 151 2 12쪽
287 50. 삼월의 토끼(4) 20.03.27 139 3 14쪽
286 50. 삼월의 토끼(3) +4 20.03.25 154 3 20쪽
285 50. 삼월의 토끼(2) +2 20.03.22 180 3 22쪽
284 50. 삼월의 토끼(1) +2 20.03.17 142 2 15쪽
283 49. 오목과 오목(5) 20.03.13 152 2 16쪽
282 49. 오목과 오목(4) +2 20.03.01 175 2 18쪽
281 49. 오목과 오목(3) +6 20.02.27 157 2 22쪽
280 49. 오목과 오목(2) +4 20.02.21 159 3 23쪽
279 49. 오목과 오목(1) 20.02.19 166 2 26쪽
278 48. 볼록과 볼록(5) 20.02.13 156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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