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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졸리다

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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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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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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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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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49. 오목과 오목(4)

DUMMY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빛깔이었다. 푸르스름한 옥빛이 유리병 속에 흔들거린다. 케이드린. 신묘한 광석.

그 반짝거리는 빛 너머로 빠알간 눈동자가 어른거렸다.


"믿고 있었다고?"


글리 캐스트는 그 특유의 송곳니가 훤히 보일만큼 히죽 웃었다.

뭘 믿었다는 거야.


짓눌린 팔이 아프다. 녀석은 무릎으로 내 팔과 몸통을 눌러 앉아 있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다. 그보다, 움직이려고 하면 이 녀석이 가만히 있지도 않겠지.


글리의 입가는 아무 생각 없이 키득거리는 체 했지만 그 눈동자는 유심히, 그리고 기분 나쁠 정도로 찌릿하게 움직였다.

경계심이 깊은 녀석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뭐야 대체.


이해가 안 되었다. 아니 이해보다도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만큼 믿기지 않았다. 헛것인 것만 같다. 그런데 정작 저 녀석은 나를 믿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슴에서 울리는 박동이 귀 안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질만큼 주변은 조용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목소리는 침착하게 나왔다. 너무 놀라서 그런 걸까,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어우... 그렇게 무섭게 노려볼 거 없잖아."


글리는 내 가슴 한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담요 너머로도 뾰족한 손가락 끝이 잘 느껴졌다.


"글리는, 지금. 레이크를 칭찬하고 있는 거라고? 좀 더 솔직하게 기뻐해도 되는데."


"사람을 깔고 앉고선 칭찬하고 있다고?"


난 그 손가락을 치워낼 수가 없다는 게 몹시도 기분 나빴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며어언? 고마워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아.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글리는, 그냥... 레이크가 글리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거뿐이니까."


"고마운 사람에게 이렇게 하라고 배웠어?"


"안 그러면 레이크는 글리를 쫓아내려고 할 거잖아?"


"애초에 안 왔으면 그럴 일도 없었겠지."


"어우... 그건 정말 마음 아픈 얘기야. 글리는 지금 상처 받았어. 어떻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이렇게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레이크는 참... 짓궂다니까."


상처받은 녀석 치고, 글리의 눈매는 가늘게 휘어졌다.


"혹시 부끄러워서 그런 거야? 슐리체는 가끔 그래. 부끄러우면 부끄러울수록. 더어...! 글리에게 화를 내거든."


"헛소리하지 말고 왜 왔는지나 얘기해."


"여태까지 열심히 말했는데 대체 뭘 들었담? 으우."


글리는 답답한 듯, 그러나 너그럽게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에게 어쩔 수 없는 녀석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전에도 알려줬잖아. 글리는 얘기하는 건 좋아해도 같은 말을 계속하는 건 싫어해. 그건 재미없잖아. 레이크도 그렇지? 글리만 그런 거 아니지?"


시답잖은 말장난이었다.


"그럼 뭐가 고마운데."


나는 반쯤 포기한 체로 대강 물었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 녀석은 계속 저 좋을 대로 떠들어댈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소리를 지르지 않아준 거? 착한 아이는 소란을 피우지는 않는 거니까. 글리를 나쁜 아이로 만들지 않은 레이크에게 고맙지?"


결국은 쓰잘데기 없는 소리였다.


"언제부터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오는 게 착한 아이의 행동이었는데?"


"어우... 친구네 집은 예외인줄 알았는데... 글리가 잘못 알고 있었나 보네. 그렇다고 이미 들어온 걸 나갈 수도 없고, 괜찮지?"


글리는 날 놀리며 쿡쿡 거렸다.

나가게 해줄 수는 있었다. 글리는 체구가 크지 않았다. 키도 덩치도 나보다 작고, 작은 체구를 큰 옷을 덧입어 감추고 있었다.

감추고 하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렇다는 거다.


한 번만 뒤집으면 역전하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덮여 있는 담요 탓에 밟힌 팔을 제외하고도 움직이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저릿저릿한 양팔의 주먹을 살짝 쥐어보았다.


"어우!"


그와 동시에 글리가 와락 달려들어 내 어깨를 손으로 눌렀다.

녀석은 얼굴을 정말 코앞까지 들이밀고선 여유롭게 키득키득 거렸다.


"크히히힛... 그럼 안 되지, 레이크..."


그리고는 고개를 내 귓가로 돌려 속삭였다.


"레이크가 움직이면...? 글리도 움직여야하고? 글리가 움직이면? 이 고요한 밤, 옆집 사람들을 다 깨우고 말 거야. 그럼 레이크는 이 여관에서 쫓겨날 거고, 차가운 길바닥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되겠지? 글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장난스런 목소리가 왠지 소름끼쳐 난 목을 움츠렸다.


"레이크도 그렇지? 무사히 내일 아침을 맞는 게 좋지 않겠어?"


글리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되물으며 내 귓불을 깨물었다.

그것도 아주 세게.


"윽."


갑자기 그런 짓을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터라 난 고개를 털었다.

몸을 일으킨 글리는 그런 날 아주 재미있게 내려다보았다.


"뭐하는 짓이야...!"


"오우. 그냥 장난이었다구?"


글리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양손을 번쩍 들었다.

이제와 무안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동자를 굴리며 어색히 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곧 눈을 번뜩이며 씩 웃었다.


"그럼 사과하는 의미로 레이크가 말하는 건 뭐든 한 가지 들어줄게. 어때? 그럼 글리를 용서해줄 거야?"


한 가지라.

어차피 헛소리인 건 알고 있다.

뭘 물을까. 괜스레 찌푸려지는 눈살을 억지로 펴가며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녀석에게 다시 물었다.


"여긴 왜 왔어."


"어우... 레이크는 의지가 강한 편이구나? 어쩔 수 없네. 특별히 알려줄게."


알려주겠다고?

비웃거나 말을 돌릴 줄 알았는데 녀석은 갑자기 또 순순하게 굴었다. 했던 말을 또 하는 건 싫다고 지 입으로 말한 녀석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면 이번엔 다른 이야기를 하겠지.


글리는 곧 입을 열었다.


"실은 말이야, 레이크? 글리는 굉장히 곤란했어. 레이크도 알다시피 글리는 상인이잖아. 물건을 줬으면 대가를 받아야해. 그 대가를 받지 못 하며어언... 글리는 도둑질을 당한 거야. 근데 그럴 수는 없지. 왜냐면, 글리는 어엿한 상인이니까. 훌륭한 상인은 돈을 떼이지 않는다구?"


"그래서."


"그래서라니. 레이크도 알잖아. 프리실라가 글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역시... 라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예상하고 있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글리가 프리실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놀랍지 않았다.

그저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다 듣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살벌해 보일정도로 눈을 희번뜩하게 떴던 글리는 이내 다시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물론 글리는 프리실라를 미워하지 않아. 장사와 사업은 시원하면서도 차분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들었거든. 완벽한 상인은 자기감정을 이익에 개입시키지 않는 법이라고... 레이크는 들어봤어? 냉담은 낭만과는 반대되는 것 같지만... 그래서 때로는 더 가까운 거지."


아득한 것을 이야기하듯 먼 곳, 저 아래를 내려다보던 글리의 눈동자가 다시 나에게로 향했다.


"그러니 글리는 레이크에게 고마워 해야해. 글리는 프리실라를 찾아도 만날 수가 없었거든. 경비대 안에서 사는 사람을 무슨 수로 만나겠어? 글리는 경비대를 아주 싫어해. 그 사람들에겐 낭만이 없어. 글리 같이 허약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도둑이라고 몰아붙인다고. 글리는 상인인데 말이야."


근데 말이야, 라며 글리는 아주 환히 웃었다.


"마침내 레이크가 글리를 위해 프리실라를 바깥으로 빼내준 거야. 그것도 이런 허름한 여관에. 세상에...!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야? 우후후훗...!"


글리는 새어나오려는 웃음소리를 참으려는 듯 목에 두른 머플러를 당겨 입을 둘러막았다.


"하... 알고 보면 글리랑 레이크는 천생연분인 게 아닐까? 어때, 레이크 생각은? 글리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하늘이 점지해준 파트너라는 거. 낭만적이잖아."


그래. 이 녀석은 프리실라를 만나고 싶어 했던 거였다. 만나서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게 뭐든 간에 우선 만나야 진행될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내가 나도 모르게 그걸 도왔다고?


"너... 이번만큼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게 좋을 걸. 진짜로."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또 그렇게 말했다.


지금의 프리실라는 아르헤타 경에게 주시 받고 있었다.

이런 어줍잖은 녀석이 멋대로 건드렸다간 뭔가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붙잡힐 것이다.

그렇다면 애시당초 그럴 일이 생기지 편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나.


"어우, 걱정해주는 거야? 이래서... 레이크를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다니까? 특별히, 레이크가 부순 미력의 돌은 글리가 잊어버려줄게. 어쩔 수 없었잖아? 글리는 합리적인 상인이라구."


"거참 고맙네."


"후훗,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찜이다, 이 자식아.

난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엇, 벌써 시간이....?"


글리 녀석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차분히 가라앉았다. 물론 저 녀석이 차분해졌다봐야 어디까지 상대적인 것이지 여유 있는 채 하며 상대방을 조롱하는 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글리는 레이크랑 더 놀고 싶지만? 더 늦으면 슐리체가 화를 낼 거야. 그건 싫어. 그럼, 조금 아쉬워도 다음에 또 같이 놀자. 안녕, 레이크?"


그와 동시에 글리는 담요자락을 내 얼굴에 덮어 뒤집어 씌웠다. 팔을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지는 즉시, 난 벌떡 일어나 거치적거리는 담요를 치워냈다.

그러나 글리는 이미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버린 후였다.


팔에 소름이 오를 만큼 찬 밤바람만 열린 창문으로 스멀스멀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찬찬히 방 안을 살폈다. 숨을만한 곳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단순한 기분의 문제였다. 광구를 만들어 침대 밑까지 확인해본 후엔 없어진 물건이 있나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특히, 전에 샀던 책, 멀쩡했다. 아저씨가 준 검, 멀쩡했다. 그 외의 것은 가져갈 이유도 없었고 없어지더라도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이미 전례가 있는 토큰은 평소엔 장정본 표지 사이에 끼워놓으니 알아채지 못 할 것이다.

방의 문 또한 여전히 잠겨있었다.


창가로 가 열린 창문도 닫았다.

창틀에 손을 대는데 여태까지 눌려있던 손이 찌릿찌릿 했다.


확, 그냥 엎어버릴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그래도 역시 그러지 않았던 게 옳은 선택이었다.

어찌되었건 글리가 왜 날 찾아왔는지는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팔이 저린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바깥에도 글리 캐스트나 슬리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사라지겠다고 마음먹으면 바람처럼 사라지는 놈들이었다. 여기서 밍기적 거릴 이유도 없고 순서도 아주 잘 짜 맞출 놈들.


그런 다음엔 맞은 편, 프리실라의 방으로 가 노크했다.

똑똑똑.

아주 작게. 꽤 오래 대답을 기다렸으나 대꾸는 넘어오지 않았다.

하여 좀 더 크게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설마 없는 건가? 싶을 때쯤 문은 열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은 열려 그 틈사이로 프리실라의 새카만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보였다.

날 보자 눈이 삽시간에 크게 벌어졌다.

문도 마찬가지였다.


"허어...! 레이크잖아...! 들어와."


프리실라는 아주 반갑게 웃으며 문을 열고 손을 안쪽으로 까닥여 흔들었다.

너무 아무 것도 없이 일단 들어오라고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와보니 처음 봤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방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짐도 하나도 풀지 않았고, 여러가지의 배치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딱 하나 프리실라의 옷만은 바뀌어있었다.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우아한 드레스에서 그냥 하얀 잠옷으로. 딱 그것뿐이었다.


그 외엔 아무리 봐도 누군가 들어왔던 흔적이 없었다.


"혹시 누구 온 적 있어요?"


그래도 재차 확인하는 겸 프리실라에게 물었다.


"어... 레이크?"


프리실라는 다섯 손가락의 끝만을 살살 마주치며 조심스레 말했다.


"저 말고요..."


"그럼 없는데. 왜. 누나가 뭘 잘못했니?"


"아니요. 그냥..."


나에게는 왔는데, 정작 프리실라한테는 가지 않았다고? 대체 무슨 꿍꿍이지.


그 때도 프리실라는 여전히 영문 모를 손가락 끝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저게 박수이긴 한 건지도 헷갈린다. 다만 웃고 있었으므로 프리실라의 기분이 좋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내가 알기로 누나라는 존재는 자다가 깨면 없던 화도 생겨나는 지옥의 화신인데.


"그야. 여태까지는 누나가 불러야 왔었는데 지금은 레이크가 먼저 왔으니까. 왜? 잠이 안 와서 그러니? 누나랑 같이 잘까?"


프리실라는 기대해 마다 않는 눈빛으로 권유해왔다.


"아뇨."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왜? 싫으니?"


그게 그토록 충격적인 걸까. 프리실라는, 아아, 하고 공허한 숨을 뱉었다.


"그래... 레이크는 다 컸으니까... 누나랑 자는 건 싫을 수도 있지... 그래... 이해해..."


아니. 그러니까 뭐라고 해줘야 할까.

의기소침하게 그리 중얼거리니 나름의 변명을 고민해야했다.


"아니 싫은 게 아니라... 그, 음... 안 되는 거예요."


"안 돼? 왜...?"


그런데 그게 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 어... 여기 법도 상 그래요."


나는 아무렇게나 말했다.

따져보자. 사실 누나랑 동생이 같이 자는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부분은 프리실라와 내가 남매가 아니라는 거였다.


"그래...? 그렇구나... 이 여관에선 누나랑 동생이 같이 자면 안 되는 구나. 누나는 몰랐어..."


저 별처럼 수 많은 오점 가운데 어디서부터 정정해야 하는 걸까.


...


깔끔한 답이 떠올랐다.

뭐, 저 정도는 잘못 알고 있어도 아무 일 없겠지.


어쨌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려고 드는 건 끝없는 수렁에 발을 담그는 것과 같았으므로 적당히 화젯거리를 바꿔야만 했다.


"근데, 프리실라는 왜 깨어있던 거예요?"


"아아... 사실, 누나는 낯선 방에선 잠이 잘 안 오거든. 그래서 앉아 있었어."


프리실라는 기꺼이 그 이유도 나에게 알려주었다.


"...앉아 있었다고요?"


"응."


재차 물어도 프리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두우니 달리 뭘 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였다.


"그래도 그냥 누워있어요. 누워 있다 보면 졸리고, 그럼 자겠죠."


"그래. 그래야겠다. 레이크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프리실라는 그게 웃기기라도 한지 하하하하, 하고 개미만한 소리로 웃으며 침대로가 누웠다. 그리고는 옆으로 누워 날 빤히 쳐다봤다. 전혀 졸리거나, 잘 것 같지는 않은 기색이었다.

적어도 내가 있는 한은 계속 그렇겠지..


"어... 전 이제 갈게요? 잘 자요, 프리실라."


"아, 잠깐만."


내가 나가려고 하자 프리실라는 여전히 누운 채 침대 밖으로 손을 내밀어 뻗었다.

또 무슨 일인가 우선 그 자리에 멈춰 서자 프리실라가 말했다.


"저기 누나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될까?"


"뭔데요?"


난 들어줄 생각으로 되물었다.

같이 자자는 말을 이미 한 번 거절했으니 웬만한 건 들어주고 싶을 만큼 너그러워져 있었다.


"내일 누나랑 반짇고리 사러 가지 않을래? 전에 쓰던 건 경비대 거라 두고 왔거든... 여기서도 바느질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반짇고리.

반짇고리라.


외출의 권유였다.

그 순간, 글리 캐스트의 익살 맞은 면상이 환영처럼 스쳤다.


프리실라에게도 말할까?

아니 말하면 뭐가 달라지지?

그저 감옥 대신인 여관방에 갇혀 누군가 바깥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불안에 벌벌 떠는 것밖에 할 수 없지 않나.


그럴 바엔 차라리 경비대에 먼저 말하는 게 나았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쳐도 그 쪽엔 뭐라고 설명하지?

야밤에 여자애가 방에 쳐들어와서 날 깔아뭉개고 예고 협박을 했어요, 라고 할까.

골치 아프다.

애초에 녀석이 원하는 건 프리실라가 치러야할 대금이었다.

괜찮을 것이다.


"그거. 그럴 거 없이 제가 내일 사다드릴게요."


그래도 이 사람을 밖에 데리고 나가기는 불안하다는 것이 솔직한 감정이었다.


내가 사양의 의사를 보이자 날 부르는 것처럼 흔들리던 프리실라의 손이 뚝 멈추었다. 그리고는 스윽 다시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알았어. 고마워, 레이크..."


잘 생각이 있긴 한가보구나.


"잘 자요, 프리실라... 아, 근데."


자연스럽게 나가려고 했던 나는 문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문 잠그고 자요...!"


뭘 당연한 것처럼 누워있는 거야.

내가 짜증 비슷하게 역정을 내자 프리실라는 침대에서 일어나 내가 있는 문가를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어떻게 잠그는데?"


아니.

아니아니아니!

나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낮에 있던 그 사람들은 대체 뭘 가르쳐 줬어요?"


"어... 서로 이름이랑... 이것저것?"


그래 그랬겠지.

애초에 문 잠그는 법을 모를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나는 별 수 없이 프리실라에게 손을 까닥였다.


"일로 잠깐만 와봐요. 여기는 자물쇠가 두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열쇠 구멍을 쓰는 거고요. 또 하나는 걸쇠를 쓰는 건데..."


결국 오밤 중의 모험은 프리실라에게 문 잠그는 법을 알려주는데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작가의말

긴급 퀘스트 - 프리실라의 반짇고리 (0/1)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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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8 李神
    작성일
    20.03.01 04:50
    No. 1

    자는 사람 위에 올라타서 귓볼을 깨무는 행위와 한밤에 남녀가 같은 방에서 조용히 문을 걸어 잠그는 일 중에 어떤게 더 심의에 저촉되는 내용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전직 용사 지망생이 주인공인 소설이 바로 여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6 밤까
    작성일
    20.03.01 14:56
    No. 2

    그렇게 말하고 보니 내용이..... 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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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51. 찰박찰박 해(3) +4 20.04.13 153 3 20쪽
291 51. 찰박찰박 해(2) +3 20.04.07 156 3 16쪽
290 51. 찰박찰박 해(1) 20.04.07 146 3 12쪽
289 P.S 푹 익혔어 +4 20.04.02 159 3 10쪽
288 50. 삼월의 토끼(5) 20.04.01 151 2 12쪽
287 50. 삼월의 토끼(4) 20.03.27 139 3 14쪽
286 50. 삼월의 토끼(3) +4 20.03.25 154 3 20쪽
285 50. 삼월의 토끼(2) +2 20.03.22 180 3 22쪽
284 50. 삼월의 토끼(1) +2 20.03.17 142 2 15쪽
283 49. 오목과 오목(5) 20.03.13 153 2 16쪽
» 49. 오목과 오목(4) +2 20.03.01 176 2 18쪽
281 49. 오목과 오목(3) +6 20.02.27 157 2 22쪽
280 49. 오목과 오목(2) +4 20.02.21 159 3 23쪽
279 49. 오목과 오목(1) 20.02.19 166 2 26쪽
278 48. 볼록과 볼록(5) 20.02.13 156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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