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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졸리다

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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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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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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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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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49. 오목과 오목(2)

DUMMY

이후 부총관... 아르헤타 경은 하늘그림으로 이동했다.


정말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그럴만한 흐름이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라고 말할 수 없는. 의미 그대로의 갑작스러운 변덕이었다.


대뜸 단 게 먹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 자리에 있는 기사들이 전부 굳어버리는 게 정말 멋진 장관이었다.


물론 나라고 해서 편하게 구경할 처지는 아니었다. 안내인이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고 책임이 무거운 직책이었던 것이다.


어디로 갈지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냐고.

단 것이라고 하면 디저트를 말하는 거겠지. 그런데 내가 어디 디저트나 먹으러 다닐 것 같이 생겼나.


태어나서 여태껏 섬세하고 여성스럽단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느닷없이 그런 걸 물어봐야 제대로 된 답이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나온 결론이 하늘그림이었다.

디저트라고 한다면 티에뤼인지 뭐시긴지가 더 나을 법도 하지만, 난 커피라는 쓴 물 말고는 거기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먹어본 적도 없는 걸 괜찮다며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것도 귀족 양반을.

뭐 아무튼 무슨 유서 깊은 가문의 사람이라는데!


그러니 배려심이란 간혹 사람을 바보 같이 만드는 것이다.

가면서 생각하고, 도착해서 생각하고, 하늘그림을 둘러보면서도 생각해봤지만, 난 아무리 그래도 여긴 아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평생 가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가게들, 이른바 간판이 반짝반짝하고 테라스의 테이블이 하늘하늘한 그런 가게를 가는 편이 나았을지 않을까...

하다못해 나스 경한테 몰래 물어보기라도 할 걸.


이제와선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았고 떠오르는 답안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갑자기 평소엔 못 보던 손님이 나타나자 클로에는 아주 크게 놀란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쟤는 우리가 못 보던 사람과 등장하면 그걸 매우 꺼려했다.


이미 움찔 거리는 입술이 너희들 대체 무슨 장난을 치고 다닌 거냐고 묻는 것 같다.


굉장히 억울한 부분은, 우리는 장난을 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매상에 도움이 되었다면 된 거지 해가 될 부분은 아마 없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관이군?"


묻는 건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아르헤타 경은 허공에 물었다.

확실히, 그 사람 눈에 찰 곳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식사를 하러 온 게 아닌데."


아르헤타 경은 왠지 한탄하듯이 말했다.

아까 전에 포기했다고 말했던가, 그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았다. 내가 데려갈 곳이 변변찮을 거라고 이미 예상을 했다는 이야기다.


"아, 어서 오세요? 한 분이시죠? 이 쪽으로 오세요."


클로에는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방문한 손님을 안내했다. 주인장의 관록에서 오는 침착함이란...

나는 앉을 자리를 안내해주고 오는 클로에의 옆으로 슬쩍 다가갔다.

이래저래 해둘 말이 많았다.


"하나가 아니라 셋. 아, 레샤 넌 이제 갈래?"


나는 존재감 지우고 조용히 따라다니고 있던 레샤에게도 물었다.


겨우 찾아온 해방의 순간일테지만, 그 애는 우물쭈물 대꾸를 하지 못 했다. 망설이는 낯빛이 딱, 진짜 가도 되나? 하는 것 같다.


글쎄 레샤가 딱히 내 짐을 덜어줬던 것 같지는 않은데 이제 와 새삼 눈치를 왜 보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선뜻 가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해줘야 할까?


"아님 뭐 얻어먹고 갈래? 저 사람이 사주지 않을까?"


기왕 따라 다닌 거 얻어가는 것도 있어야하지 않겠냐고, 나는 그렇게 물었다.

정작 레샤는 긴가민가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되나, 괜찮은 건가, 정말 얻어먹을 수는 건가, 나중에 혼자 바보 되는 건 아닌가.


"저 사람이 누군데 사준다는 거야. 너 또 무슨 엉뚱한 짓 하고 다니는 거 아니야?"


레샤가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클로에가 쟁반을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나로서는 억울한 처사였다.


아르헤타 경이 겉보기에 그다지 친절하고 손이 큰 사람인 것 같지는 않지만, 지위도 그렇고 지위가 그러니 재산도 그러할 테고, 재산이 그러하다면 으레 뽐내기도 좋아할 테니 동네 애들한테 먹을 것을 조금 뿌리는 것 정도야 아주 간단한 일 아닐까 싶었다.


모로가도 많이만 팔리면 좋은거 아니냐고.


"엉뚱한 짓이라니. 우리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손님을 데려온 건데."


게다가 귀족에게 대접을 해본 여관이라면 평판도 조금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어마어마...?"


클로에는 아주 못 미더운 눈으로 날 노려봤다.


"그래. 저 사람, 귀족이래."


난 그게 무슨 내 자랑이라도 되는 양 말했다.

원래 밀어붙일 때는 아무튼 자신 있고 뻔뻔해야 한다고 이 근처 사는 귀 길고 시끄러운 애가 그랬다.


"귀족한테 한 번 좋은 인생을 남기면 금방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난 클로에 네가 요리를 엄청 잘하는 거 같은데. 이건 그거지... 그... 맞아. 데뷔."


나는 그럴듯하게 말해보았다.

얼추 들어맞는 것 같지 않은가.


"뭐?!"


그런데 정작 클로에는 사색이 되서 소리쳤다.


"귀조옥...?!"


하지만 아직은 테이블의 그 손님을 의식하는 듯 목소리를 줄였다.


"너희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클로에는 정말 길길이 화를 냈다.

아랫입술까지 꾹 깨물고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리는 게 꿀밤이라도 한 방 먹일 기세인데, 참는 것처럼 보였다.


"왜... 안 돼...?"


난 조심히 되물었다.

덮어놓고 칭찬받기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클로에가 난처하고 화가 나기를 바랐던 것도 아니다.

그것도 나한테 화를 내는 건 더더욱 아니었고.


"여기서 어떻게 귀족을 대접한다는 거냐고...!"


"난 너 잘 하는 거 같은데..."


나는 재빠른 눈짓으로 레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어떻게든 클로에를 진정시켜 보려 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잘 한다고 잘 한다고 하다보면 언젠가는...


"아니야...! 귀족은 요리법은 둘째 치고 먹는 재료부터 다르다고, 재료부터...! 이, 진짯...!"


"아니. 그 왜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잖아. 재료가 도구는 아니지만... 아, 맞아. 그, 저 사람. 디저트를 먹으러 온 거 거든? 그런 과자 같은 건 설탕이 많이 들어가니까. 재료가 좀 떨어져도 잘 모르지 않을까?"


수습을 하든, 변명을 하든. 무언가를 해야 하긴 했으므로 되는대로 말해본 거였는데 그게 실수였나 보다.


"디이저어트으...?"


그래, 하늘그림은 여관이지.

그것도 꽤 저렴한 여관. 후식이라고 해봐야 별 게 없었다. 과일이라던가, 파이라던가, 설탕을 녹여 굳힌 거라던가 그 외에 뭐가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세간에 익히 알려지다시피 난 그런 걸 특별히 따져 먹지 않았고, 자연히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그렇대도 마냥 대책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 그래도 괜찮아. 나름대로 생각해둔 게 있거든?"


"뭘!"


클로에는 만약 형편없는 소리를 할 경우엔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것처럼 다그쳤다.


"그, 저 사람. 민트가 들어간 초콜릿을 좋아한데."


"그래서."


되묻는 말이 가차 없다.

나는 점점 자신감이 죽었다.


"그걸 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몰라?"


"내가 어떻게 알겠니, 그걸!"


클로에는 기가 차다 못해 속이 터진 것처럼 바람을 뱉었다.

그건 생각 못했는데.

언제부터일까, 클로에는 뭐든 만들 줄 알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게.

우리는 이 붉은 머리 용사님에게 너무 많이 의존하며 지내고 있었다.

가끔은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게 오늘, 그리고 지금은 아니었다.


"그거... 어떻게 안 돼?"


저지른 일은 저지른 일이지 않은가.


"그럼. 사오긴 했어?"


클로에는 세세히 따져보자는 듯, 한 숨을 훅 쉬곤 물었다.


"뭘...?"


글쎄 뭔가 심부름 부탁 같은 걸 받은 기억은 없는데.


"민트 말이야."


"...없어?"


"어후... 그럼 초콜릿은?"


"그것도 없어?"


"그게 여기 왜 있겠니."


"뭐... 가끔 먹고 싶을 때 먹으려고...?"


왜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나중에 먹으려고 치즈를 만들어 집구석에 쌓아두듯이...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치즈와 허브, 초콜릿을 비교하는 건 큰 실례였다.

심지어 클로에 본인조차 그런 사치품은 가끔이나 사먹을 것이다. 정말로 가끔.


"어후... 어후우!"


클로에는 가슴팍을 퍽퍽 두드리며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저 곡소리는 우리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내는 거겠지.


"어떻게... 안 되나?"


"되겠니! 그럴싸한 디저트를 갑자기 내놓으라고 하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그렇다고 하시니 나는 퍼뜩 입부터 다물었다. 무안함에 입술 아래가 괜히 간질간질했다. 혹시나 떠오른 해결책이 없나 도움을 구해보았지만 레샤 역시 클로에의 눈치를 살살 보며 그 클로에를 화나게 만든 날 째려보고만 있었다.


그래 내 잘못이지. 반론의 여지도 변론의 여지도 아무것도 없는 명백한 내 실수였다.

근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너무 급작스러웠고 준비할 시간도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


"아. 거기."


우리가 중대한 대책회의를 벌일 동안 오래토록 기다린 아르헤타 경이 처음으로 손짓 했다.


"네에에."


방금 전까지 화를 내고 있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 할 정도로, 클로에는 그럴 정도로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내며 아르헤타 경에게 갔다.


여기선 좀처럼 꺼내는 모습을 볼 수 없는 메뉴판도 알아서 들고 가니, 난 자격 없는 아니꼬움마저 느꼈다.


"우우우! 꼴좋다."


그리고 그 아니꼬움을 배가 시켜 줄 야유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자 저 한 구석 테이블에 앉은 야우라가 주먹까지 흔들어가며 날 조롱하고 있었다.


"그러게나 말이야. 우리를 그렇게 쫓아내고선 자기 혼자서 잘 될 줄 알았나 봐. 그지?"


뿐만 아니라 레아 아주머니도 나에게 엄지를 내려가며 조롱해대고 있었다.

에반젤린만 어쩐지 난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었을 뿐이다.


"그래요. 그건 좀 너무하셨어요."


그 부분에 대해선 그 애도 서운했던 것 같다.


다들 어디로 갔나 했더니 특별할 것도 없이 여기 모여서 간식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바구니에 쌓여있는 바삭 과자가 맛있어 보인다.


"그 꼴 보고 있으면 타들어가는 내 속은 어쩌고요."


나는 어쩔 수 없었노라고, 당연한 처사였다고, 당당히 굴었다.


"어이구, 아주 세상 근심 걱정은 다 자기가 짊어지고 있어."


그 한 마디 했다고 아주머니가 껄렁껄렁 비꼬았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이 아줌마, 되게 불량해보일 때가 있다. 말투나, 비죽 거리는 입 꼬리 같은 것들이 말이다.


"그러니까. 누가 보면 아주 전설의 용사님인 줄 알겠네. 아주!"


거기에 야우라도 실실 웃으며 그에 맞장구 쳤다.

아주 밉상이다. 아주.


하긴 나 놀리는 맛에 사는 사람들한테 무엇을 바라겠나.

대신 유희의 요금은 받아야겠으므로 나는 바구니에 손을 넣었다.


"어허."


그런 내 손을 레아 아주머니가 잽싸게 쳐냈다.


"안 되지. 안 돼."


"아니, 이거 하나도 못 줘요?"


"난 배신자한텐 국물도 없는 주의야."


"...좀 줘요."


"나중에 그 과자 하나 값을 지불할 용기가 있으면 먹어도 되고."


아주머니는 날 지긋이 올려다보며 불길하게 웃었다.

대체 뭔 짓을 계획하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아이... 됐어요. 됐어. 안 먹어."


내가 더러워서 안 먹고 말지.

하여간에...


어차피 내가 여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아니까 저런 소리들을 하는 것이다. 행여나 에반젤린이 한 조각 건네주기라도 할까 붙잡고 있는 모습이 악랄하다면 악랄하기까지 하다.

점점 이런 눈치만 는다니까.


"그래. 힘내라 레이크. 열심히 해, 열심히. 농땡이 피우지 말고."


그 와중에 야우라는 격려까지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그렇고.


"넌 언제 거 가서 앉아있는 거냐? 배신이 빠르다?"


나는 알게 모르게 옆에 합류해 있던 레샤에게 물었다.

그 애는 과자 한 조각을 입에 홀랑 넣고는 웃을까 말까 쿡쿡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 뭐 언제는 안 이랬나.


"이봐, 자네."


"아, 네!"


그렇다하더라도 놀림은 놀림이고 일은 일이었으니 나는 아르헤타 경의 부름에 재빨리 달려갔다.

내 빠릿한 대답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가 꼬리처럼 따라왔다.


무언가 주문을 하긴 한 것인지 자리에 클로에는 없었고 아르헤타 경 혼자서 앉아있었다.


"소란스럽게 굴지 말고 거기 앉게."


아르헤타 경은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아, 네."


그러니 나는 앉는 수밖에 없었다.

마주 앉는 자리가 생각보다, 꽤, 많이, 불편하다.


"저기. 그..."


뭐라고 하더라. 아 그래.


"시찰은 끝나셨나요?"


만약 그렇다면 이 다음 행선지는 성당이었으므로 나는 또 어떻게하면 무사히 거기까지 갈수 있을지 고민해둬야만 했다.


"자네는. 자네가 그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아르헤타 경은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유로이 입 꼬리를 올렸다.

물론 저 사람이 나에게 자기 일정을 알려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난 그냥 시키는 대로 길 안내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말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난 달궈진 돌에 손을 잘못 얹었다 여기기로 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아, 뭔가 착각했나보군. 난 자네에게 신경 끄라고 한 게 아니야. 물은 거지."


아르헤타 경은 꼭 삐지지 말라는 것처럼 말했다.


물었다라.

그럼 아르헤타 경은 내가 경의 행선지를 미리 알아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지를 묻는 것 같았다.


"뭐... 알아두면 나쁠 건 없으니까요. 어딜 가든 가장 빠른 길을 생각해둘 수도 있는 거고... 최단거리요, 최단거리. 아르헤타 경이 효율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효율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 느닷없이 디저트 먹으러 오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까 프리실라 핸드메인을 알고 있다고 했지?"


직전의 질문은 아무래도 좋았던 것인지 아르헤타 경은 갑자기 경비대에서의 일을 물었다.


"네."


대답하면서도 바짝 경계심이 들었다.

이미 한 번 당해보지 않았던가, 이 사람은 나를 통해서 스우렌우나에 대해 알아내려 했다. 실제로 알아내기도 했고.


영감님이야 그런 것에 대해 특별히 숨기는 눈치는 아니었으니 아무래도 좋을 테지만 프리실라는 달랐다.


프리실라의 얘기를 하다보면 꽤나 여러 가지 말이 나올 것이다. 어쩌면 레샤의 스태프나 반 랜드레이, 미력의 돌, 그리고 글리 캐스트와 슬리체까지 어떤 식으로 흘릴지는 모른다.

자신 없었다. 저 사람은 감찰부 부총관.

남을 들추는 일을 시시하다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뭐, 글리 캐스트 녀석이야 어찌되던 알 바 아니었지만 그 녀석 때문에 이래저래 휘말리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그 얘기가 좀 듣고 싶군."


아르헤타 경은 묶어놓은 타이의 자리를 다시 정위치로 가져다 놓았다.


"어... 뭐, 별 거 없어요. 그냥 전에 사고 쳤다가 경비대에 가서 본 적 있는 것뿐이거든요. 거기서 대화 조금 해본 게 다죠."


"사고?"


"아, 그게... 도서관에서 싸운 적이 있거든요."


"어어, 누구랑?"


아르헤타 경은 내가 싸웠다는 게 의외라는 것처럼 눈썹을 들썩였다.


"그냥 동네 아는 애요. 보는 책 가지고 시비가 붙어서..."


"그럼 자네는 프리실라 핸드메인이 경비대에 오기 전엔 만나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다는 거군."


"네. 그렇죠... 애초에 그 사람, 다른 도시에서 왔다고 하던데요?"


"아아, 클리펜즈."


"네. 거기요. 뭐... 뭐하는 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난 거기가 뭐하는 동네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과거엔 이 미크로셀처럼 다른 도시들을 잇는 시장의 역할을 했던 곳이지."


"아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네? 뭘요?"


클리펜즈가 어떤 도시인지 묻는 건가?

그럼 할 말이 좀 있었다. 되게 음산하고 텅 빈 도시 같다고. 딱 명확한 감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말해선 안 된다. 난 가본 적 없는 사람이니까.


"프리실라가 왜 경비대에 있는지 말이야."


정작 내 고민과 달리 아르헤타 경은 다른 것을 물어왔다.


"글쎄요. 거기 취직한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왜, 일을 배우는 도제 중에는 거기 얹혀사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경비대는 그렇게 함부로 드나들 곳이 아니지. 특히나 외부인을 들여 살게 한다는 건 더 말도 안 되는 거고."


"당번들도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죠..."


"듣자하니 프리실라는 일상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다더군."


"네?"


그런 것치고는.


"바느질 잘 하던데요? 그림도 그린다고 하고. 그리고..."


"그리고?"


내가 말꼬리를 흐리자 아르헤타 경은 확실히 하라고 짓눌렀다.

실수할 뻔 했다.


"아니, 본인이 그렇다더라고요."


"그래. 그리고 그 외의 것은 모른다더군. 아주 사소한 것부터 아주 큰일까지. 더러워지면 청소를 해야 한단 것도. 때가 되면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도. 방을 빌리면 세를 내야한다는 것도. 전부 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르헤타 경은 그게 재미있는 일인 것처럼 이빨을 보였다.


"잠시 다른 집에 살적에 참다못한 주인이 신고를 해서 나스 나이시가 찾아갔을 때, 그 여자는 그 동안 머리 한 번 빗지 않은 모습으로 의자에 혼자 앉아있었다더군. 학대를 받은 흔적 같은 건 없었어. 오히려 주인장이 밀린 세는 안 받아도 되니까 데리고 나가달라고 부탁했다던데. 식사도 줄 때만 먹어서 주인장이 챙겨줬었다 하더라고."


그런...

나는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내가 아는 프리실라는 귀족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정한 사람이었으니까.

경비대에서 본 프리실라의 모습 역시 그렇게 흐트러지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아르헤타 경이 굳이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까.

그것도 진짜 거짓이라면 기분 나쁠 내용의 그런 농담을.


"좋은... 사람이네요... 그, 주인장..."


나는 조심히 말했다.


"자네는 그런 사람이 실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르헤타 경이 그렇게 들었다면 그런 거겠죠."


"그러니까 그럴 수 있겠느냐고 묻는 거지."


"그거 혹시... 나스 경이랑 기옌 경이 거짓말을 한다고 말씀 하시는 건가요?"


설령 그런 걸 의심하고 있다고 해도 대체 왜 나에게 그런 걸 묻는 거지.

나는 이 대머리 예정인 아저씨의 생각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자네도 봤다시피, 프리실라 핸드메인은 꽤 미인이야."


또 그 얘기였다.

특별취급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런 걸로 의심을 하기에는 좀..."


"아니. 그러니까 더더욱 조심해야한다는 거지. 감찰부는 문제를 들추기도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그걸 교정이라고 부르지."


"그러니까, 교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 잘 알아들었군. 레이크 아이힐데른."


그 때 무슨 영문인지 아르헤타 경은 처음으로 날 자네가 아니라 이름으로 불렀다.

무엇 때문일까, 그게 그렇게 께름칙한 것은.

갑자기 남자가 징그럽게 목소리 깔고 불러서일까. 아니면 저 사람 깔보는 듯한 미소 때문일까.


"주문하신 것 나왔습니다."


내 결론을 채 내기도 전에 팔이 불쑥 튀어나와 아르헤타 경을 가렸다. 클로에의 팔이었다. 테이블 위엔 곧 앙증맞다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작은 접시가 올려졌다.

저것도 웬만해선 꺼내지 않는 색이 입혀진 도자기 접시였다.


접시에 올려진 건 그보다도 더 작은... 빵 같기도 하고 케이크 같기도 하고 아니, 겉 부분에 허연 가루가 있는 걸 보니 케이크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클로에는 살가운 미소로 분위기를 살피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헤타 경으로부터의 대답 말이다. 코앞에서 듣기는 무서운지, 그 애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쟁반을 안고 반응을 기다렸다.


아르헤타 경은 포크를 들고 옆으로 세워 그 케이크의 한 면을 눌러 잘랐다.

그러자 동시에 안에서 묽은 크림 같은 것이 풀렁 쏟아져 접시를 메웠다.


덜 익었나.


나는 눈동자를 굴려 클로에를 보았다. 그 애는 쟁반을 안은 손이 조금 떨릴 정도로 긴장한 채로 아르헤타 경을 보고 있었다.

다시 그 아르헤타 경을 보자, 경은 조금 놀란 것처럼, 입은 다문 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역시 망한 건가?

다들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없다.


"...이건 수플레군."


아르헤타 경이 말했다.

수플레? 그 카라멜 자이언트... 얼티메이트... 그거?

나는 요상한 크림을 피처럼 줄줄 흘리는 케이크를 보며 소리 없이 경악했다.


그 난리를 쳐가며 만들려고 했던 게 저거야?

그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추앙했던 게 저거냐고.

론데미르쯤이나 되는 부자 아가씨들은 저런 거에 감탄하는 거냐고.


"아가씨, 실력이 대단하군. 이런 곳에서 이걸 볼 줄은 몰랐어."


에엥?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아르헤타 경은 아주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클로에를 칭찬했다.


"아, 감사합니다."


클로에는 마다하지 않고 고개까지 숙여가며 인사했다.


"운이 좋은데. 괜히 이런 곳을 데려온 게 아니었군, 그래?"


뒤이어 아르헤타 경은 여길 추천한 날 칭찬하기도 했다.

뭐, 좋은 소리 들었으니까 마다할 건 없는데...

어쨌거나 아르헤타 경은 그 수플레를 맛있게 다 먹었다.

그게 그닥 깔끔하게 먹어지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옷 품 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아낸 아르헤타 경은 그걸 반듯이 접어 다시 안으로 넣었다.


"여긴, 여관이군. 그렇지?"


생각이 많고 복잡한 사람들이 그렇듯, 아르헤타 경은 불쑥 꺼내어 말했다.


"네."


하늘그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여관이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여기서 지내나?"


"네? 아, 네."


"마침 잘 됐어. 프리실라 핸드메인의 거처는 이쪽으로 옮기도록 하지."


"네? 갑자기요?"


설마 수플레 때문에?

그거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교정이 필요하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뭐, 그렇게 말씀하시긴 했죠..."


"게다가 이미 알고지내는 사이인 자네도 있으니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없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는 프리실라를 거의 모른다시피 하고 두어 번밖에 만난 적이 없는데요..."


왜 사람한테 귀찮을 일을 떠맡기려고 하는 걸까.


"하하... 하하하하하..."


사람 귀찮게 할 생각에 신이 난 건지 아르헤타 경이 끅끅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흐.... 하하하...!"


웃음을 멈추고 모자란 숨을 크게 들이켠 후, 아르헤타 경은 말했다.


"과연, 기옌이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을 내쫓기는 커녕, 나에게 묻지도 않고서 프리실라를 만나게 해줬을까? 그 녀석은 실수한 거야. 자네에겐 억울한 일일 수도 있지. 뭐, 별 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아르헤타 경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는 여기서 프리실라 핸드메인을 맞을 준비를 해. 난 경비대로 돌아갈 테니."


그 사람은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접시에 남은 수플레의 흔적을 보았다. 질척한 크림. 아니 크림이 아니라 뭐라고 했더라. 클로에가 말했었는데.


꼭 뒤통수에 망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작가의말

동네청년은 하루에 세 번 생각합니다.

당신들 나한테 왜 그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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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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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56. 또 손가락 걸고(7) +2 23.06.27 51 1 17쪽
326 56. 또 손가락 걸고(6) +2 23.06.22 49 1 15쪽
325 56. 또 손가락 걸고(5) 23.06.16 44 2 16쪽
324 56. 또 손가락 걸고(4) +2 23.06.08 51 1 14쪽
323 56. 또 손가락 걸고(3) +2 23.06.05 50 2 19쪽
322 56. 또 손가락 걸고(2) +4 23.05.05 52 2 14쪽
321 56. 또 손가락 걸고(1) +2 23.04.26 62 2 16쪽
320 55. 기우면 될까(5) 23.02.15 63 2 14쪽
319 55. 기우면 될까(4) +2 23.02.09 68 2 14쪽
318 55. 기우면 될까(3) +2 23.02.03 64 2 18쪽
317 55. 기우면 될까(2) +2 23.01.30 68 2 13쪽
316 55. 기우면 될까(1) +2 23.01.28 64 2 16쪽
315 P.S 옛날 옛날 어느 옛날에 23.01.25 87 2 7쪽
314 54. 조각조각 사각사각(8) 23.01.18 63 2 12쪽
313 54. 조각조각 사각사각(7) +2 23.01.13 84 2 14쪽
312 54. 조각조각 사각사각(6) +1 21.11.06 128 1 16쪽
311 54. 조각조각 사각사각(5) +2 21.10.24 109 2 20쪽
310 54. 조각조각 사각사각(4) 21.10.19 112 2 20쪽
309 54. 조각조각 사각사각(3) +1 21.10.13 125 1 17쪽
308 54. 조각조각 사각사각(2) +2 21.10.05 205 2 12쪽
307 54. 조각조각 사각사각(1) +1 21.10.02 125 3 17쪽
306 드리는 말씀 21.10.02 147 4 2쪽
305 53. 파편의 편파(5) +2 21.01.26 166 3 20쪽
304 53. 파편의 편파(4) +2 21.01.07 137 2 13쪽
303 53. 파편의 편파(3) +2 20.12.31 140 4 27쪽
302 53. 파편의 편파(2) +2 20.12.21 153 4 19쪽
301 53. 파편의 편파(1) +2 20.12.15 136 3 20쪽
300 52. 편파의 파편(6) +2 20.09.19 176 6 24쪽
299 52. 편파의 파편(5) +2 20.09.09 170 3 16쪽
298 52. 편파의 파편(4) +2 20.09.05 141 5 19쪽
297 52. 편파의 파편(3) 20.08.20 138 4 19쪽
296 52. 편파의 파편(2) 20.08.13 144 3 20쪽
295 52. 편파의 파편(1) +8 20.08.07 170 5 17쪽
294 51. 찰박찰박 해(5) +3 20.04.24 187 2 17쪽
293 51. 찰박찰박 해(4) +2 20.04.21 154 2 19쪽
292 51. 찰박찰박 해(3) +4 20.04.13 153 3 20쪽
291 51. 찰박찰박 해(2) +3 20.04.07 156 3 16쪽
290 51. 찰박찰박 해(1) 20.04.07 146 3 12쪽
289 P.S 푹 익혔어 +4 20.04.02 159 3 10쪽
288 50. 삼월의 토끼(5) 20.04.01 151 2 12쪽
287 50. 삼월의 토끼(4) 20.03.27 139 3 14쪽
286 50. 삼월의 토끼(3) +4 20.03.25 154 3 20쪽
285 50. 삼월의 토끼(2) +2 20.03.22 180 3 22쪽
284 50. 삼월의 토끼(1) +2 20.03.17 142 2 15쪽
283 49. 오목과 오목(5) 20.03.13 153 2 16쪽
282 49. 오목과 오목(4) +2 20.03.01 176 2 18쪽
281 49. 오목과 오목(3) +6 20.02.27 157 2 22쪽
» 49. 오목과 오목(2) +4 20.02.21 160 3 23쪽
279 49. 오목과 오목(1) 20.02.19 166 2 26쪽
278 48. 볼록과 볼록(5) 20.02.13 156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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