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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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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dap
작품등록일 :
2020.03.09 00:15
최근연재일 :
2022.05.27 17:16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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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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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
글자수 :
28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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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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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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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10.수도.(3)

DUMMY

“자네 이름이 키레이라고 했던가?”


소개장 봉투에 쓰인 이름으로 부르자 여자는 그러하다 답하며 허리를 숙였다.


“키레이, 내가 불쌍하여 도와주라 하던가?”

“감히 자매님께 말씀 올리기 송구하나 그러합니다.”


무엇이 불쌍할 것이 있을까.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동생, 짧은 평생 가장 원하는 것을 얻은 삶인데. 하기야 그이 눈에는 이것이 모두 가짜였으니. 유리는 코웃음을 쳤다.


“허상을 끌어안아 불쌍하다 하던가?”


유리의 말에 묻어있는 가시에 키레이는 편지에 시선을 잠시 던졌다가 입을 열었다. 고레이가 또 사람 하나 화나게 했군. 그러나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비난의 대상은 고레이지 자신이 아닐 테니.


“가진 것이 많은데 허상에 얽매여 있어 불쌍하다 합니다.”


유리의 침묵을 불쾌라 이해했는지 키레이는 가만히 웃었다.


“그 노인네가 할 만한 소리니 마음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시는 키레이의 말에도 솟아 있었으니.


“그대는 고레이와 무슨 정확히 무슨 관계인가?”


말을 돌리기 위해서만 물은 것은 아니었다. 그이가 자신을 무엇이라 생각하든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그리하여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있는 사람인지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글쎄요. 개나 고양이 쯤 되지 않겠습니까?”

“개, 고양이?”


가시만 솟아있는게 아니라 한탄이나 한숨도 묻어있다.


“길가의 굶주리던 개, 고양이처럼 주워서 기르고 씻기고 입히고 가르쳐주신 관계이지요.”


길에서 죽을 뻔한 아이 셋을 주워 기른 이가 있더랬다. 그리고 그이를 자신은 아비라고 불렀다. 그렇게 만난 같은 신세의 개, 고양이 같은 이들을 형제자매라고 했다.


“가족같은 관계였나?”


키레이의 눈썹이 올라갔다. 목소리 역시.


“길에서 굶주리던 개 고양이를 주워 기른다고 그것이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개 고양이를 길러서 그것도 가족이라 하는 이들이 있네.”


유배자의 섬에서도 홀로 살던 죄인이 자그마한 짐승을 거두어 길러 같이 먹고 자며 그네들에 이름 붙여주며 자식이라 불렀다. 자식 기르듯 길렀다. 제가 굶는 한이 있어도 한 수저라도 먹였다.


“아니요. 개, 고양이를 거두어 기른다 하여 모두가 자식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을 거둔다고 가족이라 생각하지는 않지요.”


고레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은 철저하게 혈연관계에 한했던 것일까. 가족, 또는 가족같은 이라는 표현도 합당하지 않은 관계. 그것은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그대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군.”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길러놓고 정주고도 묶어두지 않았으니 그저 아무 관계가 아닐 뿐입니다.”


유리는 이 자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저 필요한 것은 천족 거주지로 통과할 수 있는 문을 열어야 하는 것뿐인데.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소식을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인데.


“자, 제게 필요한 것을 말씀하시지요. 그것으로 충분할지니, 일개 인간의 인연에 대하여 아실 필요가 어디있겠습니까?”

“난 알아야 하지. 자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 하거든.”


유리는 가만히 키레이의 눈을 보지만, 그녀는 살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유리의 한쪽 입술이 비죽이 올라갔다. 문 앞을 지키던 병사와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있고, 자신의 눈이 있었으며, 또한 생각이 있는 존재였다. 그리하여 쉬이 통하지는 않을 것이니. 유리가 어떤 의도로 자신의 눈을 보고 있는지 알고 있는 키레이는 작게 미소 지었다.


“저를 믿지 못하신다면, 고레이를 믿으시지요. 스승님께 받은 은혜를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고레이는 믿을 수 있을까? 그럼.


“가족도 아니고, 외려 미워하는 것 같은데 내 어찌 자네가 은혜를 갚을지 배신을 할지 알겠는가?”

“가족이라 배신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단호하게 자르는 말에 유리는 움찔했다. 가족. 늘 꿈꾸던 것. 그리하여 얻은 것.


-우리 집에는 아빠, 엄마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동생과 예쁜 누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차라리 은원이 믿을 만한 것입니다.”

“자네는 원한만 있는 것 같은데?”


유리의 말에 키레이는 저도 모르게 크게 미소지었다가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유리는 그 미소에 기분이 나빠졌다. 고레이의 비소와 너무나도 닮았기에. 하물며 이어 꺼낸 말투 역시 저를 달래던 고레이와 다를바가 없었다.


“원한만 있는 관계란 외려 드뭅니다. 은혜만 있는 관계 역시. 우정이 있으면 다툼이 있고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는 법입니다.”


키레이는 허리를 펴고 유리의 눈을 바라보았다. 알겠다, 왜 스승이 이 사람을 불쌍하다 했는지.


“그것은 가족이라도 마찬가지고 가족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리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키레이는 다시 웃었다.


“그리고 제가 그 노인네라면 짜증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겪어 보셨잖습니까?”

“아.”

“자매 님을 제자로 두었다고 특별히 조심스럽게 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그 미친 노인네는?”


유리는 결국 픽 웃고 말았다.


“필요하신 것을 이르시지요. 망할 노인네에게 받은 은혜가 있으니 자매님께 갚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믿거나 말거나 얻어낼 것은 얻어내야 한다.


“신궁의 뒤편으로 통하는 길을 가야 하네.”


그 말에 키레이는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유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궁중에서 마법사로 일하고 있다는데. 신궁의 비밀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사람이겠지. 키레이의 눈이 재빠르게 유리의 뒤에 서 있는 일행을 훑는다. 유리는 그 시선을 알았다. 어깨쪽을 살펴보고 있다. 날개가 있는지 없는지. 루안이 알려준 것이 틀리지는 않았군.


“이 시기에 말입니까?”


키레이는 기민하게 유리의 시선을 눈치채고 반문했다.


“이유는 알 필요 없고······. 가야 하네.”


단호하고 절박한 목소리에 키레이는 유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책상을 뒤적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후에, 궁성 뒤편에서 틈이 있을 겁니다. 그때 안내해드리지요.”


너무나도 쉽게 답하기에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았다. 유리는 다시 한번 묻는다.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가?”


픽, 웃는 모습이 고레이와 또 닮았구나.


“때때로 어떤 관계에서는 목숨을 걸 가치가 있긴 하지요.”


고레이가 처음 소개장을 주었을 때 가볍게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키레이는 한 없이 무겁게 말한다.


“가족이든, 가족이 아니든.”


그러나 세상 보는 눈은 두 스승과 제자가 다를바는 없는 듯했다. 그래서 유리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사흘, 기다릴 동안 쉴 곳이 있겠는가?”

“여기, 방을 하나 내 드리지요. 쉬십시오.”


말 돌리려는 뻔한 수작인 걸 알면서도 키레이는 적당히 맞장구 치며 제 방 앞의 커다란 방 하나를 내줬다. 탑이라 다른 생활할만한 공간은 없다면서. 어차피 편하게 지내기는 포기한 입장이었기에 환대가 어색할 지경이었다. 특히나, 지금 모자를 벗어내리는 세 명의 야수족은 더더욱. 어색하게 우물거리는 세명의 정체를 알게 된 키레이는 적잖이 놀란듯했다.


“어디······. 노예 해방군이라도 이끄시는 겁니까?”


그래도 노예냐 묻지 않고 노예 해방군 대장이냐고 묻는 것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 하겠다.


“그런 일 따위 상관하지 않아.”


짤막하고 성의 없는 답이 나름 익숙했던 키레이는 고개를 숙이고 방 밖으로 나갔다.


“일단 여기서 머물다가, 방법을 찾으면 그때 가도록 하지요.”


유리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일행을 돌아보았다. 뻔하다. 놀란 얼굴들. 수도에 돌아온 이래로 다들 놀라기는 했다만, 이만큼은 아니었는데. 제법 높아 보이는 인간 마법사가 제 앞에서 굽실거리며 모든 것을 시키는 대로 하는 듯한 광경에, 어쩔 수 없었겠지. 그중 역시 가장 놀란 것은 하셀인 듯했다.


“진짜 였구나······. 여기서 꽤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거······.”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 내가 오빠한테 거짓말했겠어?”

“많이 했어, 거짓말.”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는데?”

“사냥하다 다쳐도 안 다쳤다고 그랬고, 뭐 모른다고 했는데도 다 알고 있고.”

“그건 별로 안 중요한 거고.”

“아니 뭐······.”


평소처럼 대화를 이끌어가려다 멈칫멈칫, 이상한 기분에 멈추고 만다. 그러나 유리는 일부러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분명히 또 가족이니 허상이니 하는 것에 사로잡혀 흔들리지 않을 마음에 생채기만 날 터였으니.


“좀 쉬자.”

“어······. 그래요.”


그리고 하셀은 '친모'와 ‘짝짓기 상대’를 향해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숙였다.


“두 분도 쉬세요.”

“그래, 그러마.”


바바하네와 베이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주저앉았다. 바바하네가 짐에서 약초 따위를 꺼내 발에 붙이자 베이셰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발목에 붕대 따위를 감아주었다. 아무래도 여정이 무리일 수 밖에 없었던 늙고 약한 바바하네의 시중을 들어주는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유리는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건 마치, 채집을 끝내고 돌아온 헤르나의 날개 깃털을 다듬어주는 에이나나의 모습과도 같았고, 사냥에서 피범벅이 되어 돌아온 둘의 모습에 기겁하며 물 수건으로 박박 닦아주던 헤르나와도 같았으며, 발이 아프다고 징징 거리는 세이 발바닥의 물집을 터트려주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유리는 눈을 감아야 했다.


저들과 우리는 달라.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야. 우리는 가족이야. 허상이 아니야. 끊어질 관계가 아니야. 영원히. 이 세상에 영원히 남을 관계야. 유리는 들리지 않게 제 자신에게 속삭였지만, 질문은 끊을 수 없었다.


행위가 동일한들, 행위의 원인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하니, 저들과 우리가 같을 수는 없지만. 저 둘의 관계는 무엇일까. 뭐야. 오빠와 결혼이라도 하면, 에이나나 다음 시어머니가 될 사이니 가족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족 같은’은 되겠네. 아니지, 어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가족이야. 유리는 심술 궂게 생각했다.


“유리? 이것 좀 먹을 래?”

“아. 어. 고마워.”

“그리고 어머······니께 연락.”

“아, 그래야지.”


유리는 하셀이 내민 말린 과일을 입에 넣으며 똑바로 자리에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세이를 통한 연락 마법, 에이나나와 세이가 걱정하고 있을 테니 안심시켜야지. 유리는 세이에게 마법을 시전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어?”


안 된다. 몇 번인가 사용하여 바로 익숙하게 쓸 수 있는 법인데, 안 된다. 유리는 문자를 썼다. 힘을 강조했다.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마법은 실패했다.




***




“언니한테 연락이 없어.”


에이나나가 잡아다 준 작은 민물고기를 손아귀 속 물에 넣고 장난치던 세이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뱃전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던 에이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쯤 되면 연락이 와야 하는데, 걱정돼요.”


세이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종알거리자, 에이나나가 꼬리를 파닥거리며 수면을 쳤다.


“여긴 너무 컴컴하기도 하고.”


인어가 미는 배, 그리고 그 배 위에 있는 어린 야수족. 누구의 눈에나 띌 수 있는 존재이기에 최대한 숲속 나무 그늘이 잔뜩 끼인 곳 근처에 배를 세운 채였다.


“기다리자아아아.”

“응, 네.”


어쨌든 제 잘못으로 아버지가 납치된 것이며, 제가 짐인 것은 알기에 세이는 더 투정부리지 않았다. 기다리면 연락오겠지 뭐. 그렇게 강한 언니와 오빠인데. 그리고 그 야수족들도.


“세이.”


그때, 에이나나가 속삭이듯 말하며 세이의 몸을 붙들어 낮추게 했다. 세이는 순간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에이나나가 입을 틀어 막았다. 저기 숲 근처에서 인간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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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11.자매.(1) 21.06.21 118 3 10쪽
57 10.수도.(7) 21.06.12 126 1 12쪽
56 10.수도.(6) 21.06.05 107 2 10쪽
55 10.수도.(5) 21.05.29 109 4 10쪽
54 10.수도.(4) 21.05.24 136 5 11쪽
» 10.수도.(3) 21.05.19 141 3 12쪽
52 10.수도.(2) +1 21.05.09 124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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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9.재회.(1) 21.02.14 195 3 11쪽
45 8.사냥.(6) 21.02.08 131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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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7.비상.(5) 20.11.23 15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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