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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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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dap
작품등록일 :
2020.03.09 00:15
최근연재일 :
2022.05.27 17:16
연재수 :
61 회
조회수 :
11,378
추천수 :
438
글자수 :
285,379

작성
21.02.02 00:04
조회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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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0쪽

8.사냥.(5)

DUMMY

“마물이다!”


동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새카만 마물이었다. 섬에서 이때껏 본 적 없던 마물의 등장에 하셀이 먼저 검을 뽑아 올렸고 유리는 세이를 뒤로 물렸다. 세이는 알아서 안전해보이는 바위 뒤로 숨었다. 작은 마물 하나를 해치워봤다고 기세 등등하기에는 이 놈은 보통과 달라보였다.


“하앗!”

“아, 안 돼!”


하셀이 마물을 향하여 칼을 휘두르는 순간 소녀가 외쳤다. 동시에 마물은 뒤로 물러섰다. 하셀은 주춤했다. 마물이 뒤로 물러선 것이 아니었기에. 소녀가 뒤로 물러섰고, 마물이 뒤로 물러섰기에. 아니, 그것이 아니었다.


“몸에······붙어 있어?”


마물은 소녀의 등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마물이 솟아오르며 소녀의 너덜거리는 옷을 찢었고, 마물에서 나온 잔뿌리 같은 것들이 소녀의 등을 뒤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셀은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은 정말로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이었다.


“유리!”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유리가 훨씬 더 잘 아는 법. 하셀은 유리를 불렀고 유리의 손 근처에서는 황금빛 문자가 떠올랐다.


“오빠는 뒤로 가!”


사냥으로 익숙해진 신호로 하셀이 익숙하게 유리의 곁으로 뛰어올랐다.


“카아아악!”


소녀가 말하는지, 아니면 소녀의 등에서 튀어나온 마물이 지르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유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자를 읽었다. 인간에게만 허락된 문자의 힘. 고대부터 내려오던 마법의 힘이 담긴 문자. 유리의 빠른 낭독이 마쳐지자마자 황금색의 빛이 마물을 향해 날아갔다.


“카아아악!”


그러나 마물은 그 빛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냈다. 유리는 이를 짓씹었다.


“너는 허락되지 않은 존재로다.”


유리는 문자가 떠오르지도 않았는데도 먼저 읽기부터 했다. 급한 마음에서야 했다.


“누가, 존재를 허락하는가.”


그러하기에, 마물의 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마물은 인간의 언어를 할 줄 몰라야 했다. 유리는 손을 올리다 멈칫하고 말았다. 소녀와 마물 역시 움직임을 멈추고 오로지 소리만 내었다.


“너는 무엇이기에 우리의 존재의 가부를 결정하는가.”


인간의 언어를 또박또박 말하는 마물. 소녀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있기만 하고, 입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마물이 말을 잇는다.


“존재는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 인간 따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마물이 선언한다. 그 선언에 유리는 픽 웃고 말았다. 그러하다, 존재를 결정하는 인간 따위가 아니다. 그리고 하물며 자신도 아니다. 인간인지 아닐지 모르는 나라는 존재가. 그러하나.


“누가, 존재가 아니라서 없앤대?”


황금빛 문자가 떠오른다. 문자의 뜻은, 존재하면 아니 될 것은 존재 하지 말아야 한다.


“존재의 의미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야수족도 천족도 인어도 ‘존재’가 아닌 도구일 뿐. 생명이 아니라 도구일 뿐. 삶이 아니라 도구일뿐. 그 ‘존재’가 얼마나 ‘인간’의 삶에 유용한지 아닌지만 판단할 뿐. 그러나 그러한 ‘존재’를 가족으로 둔 자신이 무엇을 판단하겠는가.


“문자는 문자, 문자는 마법의 도구.”


애초에 ‘인간’을 기준으로.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고 교육 받아온 자신의 ‘존재’는 천족도 야수족도 인어족도 가족으로 받아들였거늘, 만일 그 험악한 도망 길에 자신을 아비라 소개하던 ‘존재’가 마물이었다면, 마물 아비 역시 마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너는 ‘마물’이라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위협이 되어서 사라지는 것이다!”


유리의 손에서 튀어나간 황금빛이 다시 한번 날아갔으나 소녀와 마물은 몸을 던져 그 빛을 피했다. 유리의 문자가 다시 한번 떠오르는 순간.


“자, 자자자잔깜!”


마물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거래를 하면, 정당한 거래이고, 거래가 적당하지 않아서 내가 물러나면 너는 떠날 것이냐?”


이미 먹을 수 있는 마물 고기도 구해놓았다. 그 말의 핵도 팔지는 않았지만, 세이가 만족했다. 인간족의 말을 할 줄 아는 마물 따위 죽여도 입맛 떨어져서 먹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나가는 마물 따위 억지로 외어두었던 문자를 쓰면서까지 쫓아가 죽일 여력도, 이유도 없었다.


“우리는 핵을 사고 싶다.”


유리가 멈추자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리’라고 한다. 마물과 그 마물이 탐하는 인간 육체를 합하여 ‘우리’라 한다.


“네가 용도, 구매자를 판단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팔아라.”


유리 손에서 빛나던 빛이 사그라들었다. 소녀도 마물도 그 자리에 서서 말을 할 뿐이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로 협상을 원했다.


“해. 핵을 먹이로 사용한다면, 팔 것이냐?”


다소 절박하게 들리는 마물의 목소리에 유리는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나 마물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상상도 못 한 하셀과 세이만큼은 아니었다.


“값은 시세만큼 쳐주마.”


마물은 핵이 혼이 되지 못한 존재이며, 핵은 돈이, 고기는 식량이 되지 못할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 존재가 인간의 말로 흥정을 한다. 인간의 상식에 맞추어서. 그러하다면, 지금까지 먹은 고기는 무엇인가. 속이 메슥거렸다.

그러나.

인간이 야수족을, 인어족을, 그리고 세상에 수많은 ‘존재’들을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것과 마물의 고기를 먹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 노예를 팔아 산 돈으로 쇠고기를 사 먹는 것과, 마물을 직접 먹는 것은 무슨 차이인가.


“요새······. 핵 값이 오른 것은 알고 있어?”


그리하여 하셀의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억지로, 생각을 구겨 눌러 소리로 만든 듯한 말을. 기존의 상식 따위 억지로 쓰레기통에 쳐넣은 듯한 목소리가.


“어어어! 알아! 알아! 핵은, 내가 먹어야 하는 거야! 그래서 사는 거야! 그런데 요새 마물들이 안 보여서.”


마물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을 따져보면 그 마물은 마물을 먹고 산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인간은 다른 종족을 착취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도 인간을 착취해 살아간다. 그렇다면 저 마물의 말은 우리가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거 없는가, 하셀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판단은,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늘.

그리하여 하셀은 유리를 돌아보았고 유리는, 세이를 돌아보았다.


“핵은, 내 것이 아니야.”


그런 말과 함께. 세이는 바위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다 언니의 말에 움찔했다. 언니는, 항상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는 듯하면서도 정말로 누군가의 판단이 필요할 때, 그 판단이 필요한 존재에게 판단을 맡겼다. 그래서 좋았다.


“어······. 그, 그그그, 그럼 핵을 먹으실 건가요?”


핵의 주인이 말하자 마물은 재빨리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핵을 먹으신 다음에 무얼 하신 건가요?”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판단할 수 없었는지 눈을 끔뻑였다. 그것이 눈이라면.


“그러니까, 어, 음, 이걸 먹고 천족을 공격한다든가?”


세이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다지 타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유리였으나 소녀의 몸짓만큼은 신뢰할 수 있었다. 마물이 보통의 마물보다 강하다 한들, 자신이 맞붙기도 힘들었던 천족 전사와 싸울 만큼은 되겠는가. 심지어, 지금 집단행동을 하고 있다는 천족에게 대항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나는 먹이가 ‘핵’일 뿐이다.”


마물은 제 몸을 뿌리로 삼고 있던 소녀의 몸에 툭툭 두드리듯 건드렸다.


“누나의 생명력으로는 버티기 힘들어서, 핵을 먹으면 나아진다.”


마물의 목소리는 지금까지와 달리 유쾌함까지 묻어났다.


“누나랑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핵을 팔아. 먹고 그냥 꺼질게.”


세이는 가만히 마물과 소녀를 바라보다 핵을 내려다보았다.


-너희는 가족이 아니잖아.

-야수족 따위가 인간과 무슨 가족이라고.


언니나 오빠와 달리 자신이 섬에 온 것은 갓난아기 때였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아빠는 헤르나이고 엄마는 천족이었다. 그러나 섬의 인간들에게 아빠인 척하는 천족과 엄마인 척하는 에이나나를 가진 야수족 꼬마였다. 심지어 엄마는 인간 앞에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레이 할머니와 파셀 할아버지가 정도가 아니면 물속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저 인간 아이는 마물과 가족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마물이 먹는 것은 핵이라고 한다.


“팔······아도 돼? 언니?”


아마, 언니나 오빠가 이상한 걸 먹겠다고 나선다면, 그걸 먹을 수밖에 없다면, 자신도, 아빠도, 엄마도 고생이 되더라도 어떻게든 구하려고 나서리라. 지금 아빠를 구하기 위하여 온 가족이 나선 것처럼. 그러니,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


유리는 세이의 질문에 한숨처럼 내뱉었다. 유리는 세이를 대신해 흥정에 나섰다. 마지막에 들렸던 가게에서 팔았던 가격을 이야기했고, 마물은 조금 깎았지만, 그래도 모자라지 않는 가격을 지급한다고 약속했다.


“돈을 다섯 발자국 앞에서 내려놔.”


일반적인 가게에서 행하는 거래가 아니기에, 암시장이나 쓸 법한 방법을 꺼내는 유리였다. 유배자의 섬에서는 시장이 아닌 곳에서 하는 거래에서 흔히 쓰는 방법이기도 했다. 소녀가 입은 옷이나 인상 따위가 그만한 돈을 모으지 못할 것처럼 보였기에. 마물 역시 위험하고. 마물은 소녀의 볼에 제 몸을 비볐다. 무언가, 말을 하는 걸까? 소녀는 마물과 조금 안심한 얼굴로 말을 나누었다. 얼굴이 파랗게 질렸음에도 소녀는 다정한 눈빛을 반짝였다.


“자, 여기.”


소녀가 다섯 발자국 앞에 돈을 내려놓았고, 유리 역시 제 다섯 걸음 앞에 세이에게서 받은 핵을 내려두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각자를 스쳐 지나갔고, 소녀가 먼저 핵을 잡았다. 그리고, 유리 역시 돈을 집었다.


“야!”


부족한 돈을. 캬아아악! 소녀와 마물이 저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제가 이렇게 바쁠 줄 몰랐습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해 다음편을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들고 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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