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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영JY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머리 영국 절대고수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현대판타지

잔영JY
작품등록일 :
2024.03.21 09:22
최근연재일 :
2024.04.1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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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6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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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7. 전쟁(2) (수정)

DUMMY

7. 전쟁(2)




부산해룡 민용식.

극동해남파(極東海南派)의 전전대 전승자이자 무인으로서는 드문 바다 사나이였다.

소말리아, 말라카, 카리브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을 자신의 선단으로 누비면서 해적들에 맞서 싸운 초인이자 대한민국 해상 물류의 거물.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전 대한민국이 들끓었다.


설악신검 같은 정도맹의 주요 인사들이 문상을 위해 다급히 부산으로 내려갔을 때,수한은 서울에 남았고, 홀로 서울에 남게 된 수한은 자연스럽게 영국 대사 관저로 돌아왔다.

거기에서, 수한은 생각에 잠겼다.


지옥(地獄).

테러리스트, 혹은 카르텔과의 전쟁을 두 글자로 요약한다면 저 단어가 될 거라고, 수한은 장담할 수 있었다.

신념과 돈이 엮인 곳에 무력(武力)은 자연스럽게 결부된다.


중동의 초인들은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쳐 수한에게 덤벼들었으며, 카르텔의 초인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온갖 더러운 수작을 부렸다.


천마신교는 저 둘이 결합된 형태의 조직이었다.

신념도 존재했으며, 이권을 위한 수작도 부렸다.

그런 이들을 상대하면서,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록산나.”

“네, 숙부님.”

“본국에 연락해서, 아무나 여유 되는 기사단원이 있으면 세 명만 급파해달라고 요청하렴. 최대한 빠르게.”

“네? 사유는...”

“한국 무림의 치안 악화로 인한 주한영국대사관 경호 인력 일시 증원. 필요하다면 홉킨스 대사에게 정식 공문을 부탁해도 된다. 그에게 이야기는 해 두었으니까.”

“알겠어요.”


기사단원들이라면 충분히 강하면서도, 수한이 믿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

아무리 영국 대사 관저라고 해도 수한이 부재중일 때의 안전은 걱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영국 최고의 무력 집단인 기사단원 셋이라면 상황에 따라서는 초인도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빙백마존의 행방은 찾았니?”

“아직 오리무중이에요. 이거, 확실해요. 100% 프로의 손이 개입했어요. 아니면 정말 화물선 타고 중공으로 도망쳤거나. 뭐, 그건 숙부님이 아니라니까...”


아무리 빙백마존이 초인이라고 해도, 맨몸으로 탈옥해서 부산까지 갔는데 행적이 아예 드러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특히 영국 최고의 슈퍼컴퓨터까지 동원해가면서 검색하는 록산나의 해킹 추적을 단기로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행적을 지우거나, 잠입, 혹은 파괴 작전에 특화된 세력이 붙은 게 틀림없어요. 중공에서 어떤 세력이 유명하려나요.”

“인민해방군 중부전구 81집단군 엽표여단도 있고, 국가정보국 산하 특작부대들도 꽤 있지만, 가장 유명한 건 역시 천마신교의 세력이다.”

“그냥 천마신교 세력이요? 조직 이름도 없이요?”

“아직 조직의 정체나 이름조차 노출된 적이 없다. 중공 내부나 중화민국에서 벌어진 몇몇 작전들을 통해 천마신교의 소행이라는 것만 추정할 뿐이지.”

“누군지는 몰라도 그 정도는 되어야 말이 맞겠어요. 이거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흔한 블랙박스 하나까지 피했어요.”

“아마 한국 정보부와 대한정도맹 특임대에서도 수사를 진행 중일 거다. 거기에서 안 나왔으면 쉽지 않겠지.”


동네 개도 제 앞마당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는 이야기처럼, 한국 정보부 역시 한국 내 정보망은 확실히 꽉 잡고 있었다.

거기에서 나온 단서가 없다면, 상대가 정말 모든 흔적을 지우는 프로들이라는 뜻이었다.


“응? 숙부.”


수한의 옆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록산나가 화면을 돌리며 말했다.


“복마군자검이 이 근처에 있는데요?”


라이브로 재생되는 뉴스 방송.

거기에는, 광화문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복마군자검과 무인들의 모습이 있었다.

덕수궁 근처의 영국 대사 관저였으니, 광화문까지는 걸어서 20분이면 가는 근처였다.


“잠깐 다녀오마.”

“네, 내용은 제가 다 모니터링 중이에요.”


수한이 풀쩍 뛰어 순식간에 덕수궁의 전각 지붕으로 올라갔다.

거기에서 몇 번 더 뛰자, 하늘로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불과 2분도 채 되지 않아, 광화문 인근에 있는 고층 빌딩 옥상에 안착한 수한이 안력(眼力)과 청력(聽力)을 집중하여 복마군자검을 바라보았다.


“무림 동도 여러분! 작금의 상황을 누가 초래한 것입니까? 흑도입니까? 사파입니까? 예, 아니지요! 아랍의 테러리스트들과 중공의 초인. 이 아무런 연관조차 없어 보이는 둘 사이에는 연관점이 있습니다. 바로 한 사람의 실책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현 맹주가 사파몰이에 애쓰는 동안, 무림 안보는 바닥을 찍었습니다! 아랍 종자들이 날뛰며, 종신형을 선고받은 죄수는 탈옥에 성공했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위대한 초인도 삶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옳소! 옳소!

그의 주변에 서 있는 몇몇 무인들이 옹호하여 외쳤다.

록산나가 바로 안면인식대조를 돌렸는지, 수한에게 말했다.


[서울의 주요 정도 문파들의 문주들인데, 특이사항은 정도맹에 가입은 해 있지만, 정사지간(正邪之間)에 가까운 인물들이라는 거예요. 특히 사파들이 영위하는 사업 분야에 발을 조금씩 걸치고 있는 이들이 다수에요. 반쯤 사파라고 해야 하나?]


복마군자검이 그들의 옹호를 손을 몇 번 저어 멈추고는 다시금 연설을 이어갔다.


“사파나 흑도가 잘했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선 순위를 생각하자 이겁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자원을 제대로 된 무림 안보에 투입하는 것이 우선 아닙니까? 그런데 현 맹주는, 아직도 비상사태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 합니다! 이 얼마나 추악한 권력욕입니까!”


그의 이야기를 듣던 수한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맹주 선거는 누가 나와도 힘들겠는걸.”


설악신검은 재출마를 포기했지만, 그의 라인에 있는 다른 후보들이 복마군자검에 턱없이 밀리는 추세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지금 저기에 반박했다가는 완전히 개새... 아니 나쁜놈이 되겠는데요?]


수한의 앞이라는 걸 자각했는지, 상스러운 소리를 교정한 록산나가 머쓱하게 되어 말을 이어갔다.


[인터넷 여론을 살피고 있는데, 복마군자검에 대한 여론이 확실히 좋아요. 몇몇 여론 조사에서는 복마군자검의 차기 맹주 선거 승리 확률을 95% 이상으로 점칠 정도예요. 물론 복마군자검의 정묘사묘론(正猫邪猫論)이 젊은 층에 인기가 많은 것도 고려해야 해요.]


정파 고양이건 사파 고양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처럼.

마찬가지로, 정파건 사파건, 대한민국과 무림에 도움만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 정묘사묘론이었다.

이는 정파의 고루함에 질린 젊은 무인들 사이에서 각광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인이 많아 보이는데.”

[네, 복마군자검이 사전에 집회 신청을 했나 봐요. 그리고 경호 인력 요청도 다섯 배로 늘려달라고 따로 요청했네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도맹 주요 인사인 복마군자검은 경호 인력을 요청할 수 있었는데, 상황에 따라서 그 숫자를 늘릴 수도 있었다.


“저게 다 경호 인력이라고? 정도맹 소속?”

[네, 그런데요?]

“정도맹 현재 상황 체크해봐.”

[갑자기 무슨 일이신데 그래요?]

“서울지역 당직 위수초인(衛戍超人)이 누구인지도 함께.”


위수초인제도는 서울 방어를 위해서 서울 지역에 반드시 한 명 이상의 정도맹 소속 초인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제도였다.

현재 다수의 정도맹 인원들이 부산으로 내려간 상황이었기에 발동된 제도.

수한은 정식 정도맹 상임 맹도가 아니라 임시 맹도였기에 위수초인제도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서, 추가로 한 명이 남게 된 것이었다.


[당직... 당직... 그 사람인데요? 적화염도인가 뭔가.]

“정도맹 상황은?”

[어... 어? 이거 왜 이러지? 정도맹 인근 CCTV 신호 중에 잡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Bloody hell.”


수한의 입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던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록산나, 그 작전 기억나니?”

[그 작전이요? 어떤 작전요?]

“오퍼레이션 썬더스톰.”

[멕시코시티에서 펼쳤던 작전요?]

“그래.”

[저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는데, 그게 멕시코의 나르코(거대 마약상) 거물을 잡는다고 눈을 돌려놓고 정작 카르텔의 마약 생산 기반들을 다 파괴했던 작전이죠?]


수한이 자리를 다급히 뜨며 대답했다.


“그래, 놈들도 부산으로 시선을 돌려놓고 정도맹 본부를 치려는 거다.”


정도맹 본부에는 뇌옥에 갇힌 죄인들도 있고, 현금성 자산은 많지 않았지만, 귀한 비급을 포함한 서적들도 있었다.


게다가, 상징성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테러리스트의 손에 대한민국 정파 무인들의 심장이 유린당한다면, 실제 그 피해 규모와는 관계없이 여론은 들끓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무리 초인들이 자리를 비웠다고 해도 서울에서 정도맹 본부를 직접 친다는 건 너무 미친 발상 아니에요?]

“아니, 역발상이다. 한 명의 초인만 남아있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서울이 그 한 명의 초인을 사냥하기 좋은 곳이 된 거다.”


수한이 굳은 표정으로 광화문의 고층 빌딩 옥상을 뛰면서 말했다.


“이놈들, 각개격파다. 적화염도랑 정도맹 자체를 노리고 있다.”



**



“아아, 진짜... 그깟 위수초인이 뭐라고...”


적화염도 장세린은 우울했다.

대한민국의 초인끼리야 다들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지만, 부산해룡 민용식은 그녀와 친분이 아주 깊은 초인이었다.

해남염화문과 극동해남파.

둘 모두 중국 해남성 출신의, 중공을 탈출한 망명 2세들이었다.

그런 사람이 사문의 원수에 가까운 대설빙백문의 초인에게 살해당한 것도 화가 나는데, 더 화가 나는 건 이번이 그녀의 위수초인 순번이라는 것이었다.


“개 같은 늙은이들 같으니.”


사실 위수초인 제도라는 게 별건 아니었다.

그냥 서울에만 있으면 되고, 그럴 일 없는 유사시에 정도맹 수호를 위해 싸우면 되는 정도였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위수초인 순번은 쉽게 바뀌곤 했다.

애초에 이 제도 자체가 발동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정도맹 본부에는 맹주인 설악신검이 있었으니, 주로 맹주의 장기 외유 시에나 가끔 발동되었다.


문제는 부산해룡 민용식이 워낙 무림계에 발이 넓은 유명 인사라는 것.

심지어 그가 보유한 SD해운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 해상 물류 업계에서도 수위권에 드는 굴지의 해운그룹.

그의 문상에 불참하려는 이는 따로 없었다.


그래서 장세린의 요청에도 결국 운 나쁘게 그녀가 서울에 남게 된 것이었다.


정도맹주의 안락의자에 앉아 빙빙 돌면서 한숨을 내쉬는 적화염도.

평소에도 정도맹이 시끄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주요 인사들과 무인들까지 전부 빠져나간 정도맹은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조용했다.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낸 그녀가 떠오른 누군가의 이름을 연락처에 검색했지만, 검색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쳇, 그 정도 했으면 번호 정도는 줘도 되는 거 아닌가.”


결국, 적화염도는 수한에게 번호 하나 받아내지 못했다.

물론 추적 등의 여러 문제 때문에 휴대전화 번호를 노출하는 걸 극히 꺼리는 수한이었기에 그런 것이었지만, 적화염도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사람에게 메신저 하나 보내지 못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었다.


“맹주한테 좀 달라고 해 볼까. 맹주는 알려나... 아니야, 아니야... 세린아 그게 무슨 소리니... 너 자존심도 없니?”


얼굴을 감싼 채 자신에게 한참이나 중얼거리던 적화염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차라도 마셔야겠네.”


거침없이 맹주 전용의 초고급 차(茶)들이 잔뜩 들어 있는 찬장을 열어 그램에 몇 만원은 하는 초고급 차를 듬뿍듬뿍 담았다.


“감히 나를 부려 먹으니, 나도 정도맹 재산을 잔뜩 탕진하겠어. 밥도 두 번 먹어야지. 좋아.”


물을 따르고 잔을 붙잡자마자, 이미 그녀의 열양지기가 거의 차 반 물 반인 잔을 펄펄 끓였다.

농축액 수준으로 진하게 우려난 금침(金針)을 생수처럼 목에 털어 넣으면서 중얼거리던 적화염도.

바로 그때, 그녀의 기감에서 한 명이 사람이 순간 사라졌다.


“응?”


동시에 잠깐 내려둔 차에 끼기 시작하는 성에.

오뉴월, 그것도 집무실 안에 성에라니.

적화염도가 굳은 표정으로 집무실 입구를 바라보았을 때, 원목으로 된 문이 새하얗게 얼어붙다가, 그대로 퍽! 하고 가루가 되어 허물어졌다.


“누구... 냐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겠네. 부산에서는 또 언제 올라왔나?”


지금 한국에 이 정도 음한지기를 그녀 앞에서 내뿜을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빙백마존.”


허물어진 문 옆에서, 천천히 걸어 맹주 집무실로 들어오는 백발 백미의 남자.

잘 쳐줘도 삼십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나이였지만, 그가 오십이 넘은 초인이라는 사실을 적화염도는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해남의 애송이.”

“좆까.”


문답무용.

원수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적화염도가 발도(拔刀)와 동시에 빙백마존을 향해 염화강기를 흩뿌렸다.


그녀의 강기가 완숙의 경지에 달하지 못한 건 사실.

하지만, 그로 인한 장점도 있었다.

마치 불꽃과 같은, 정형(定型)되지 않은 일렁이는 강기는 투사형 공격에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강기는 강기.


방위를 완벽히 점하고 날아드는 적화염도의 강기 세례에 빙백마존이 자신의 오른손을 뻗자 그의 손에서 고드름이라도 자라듯, 얼음의 송곳 몇 개가 자라났다.

거기에 강기를 담아, 적화염도가 뿌린 강기를 향해 휙휙 던지는 빙백마존.

적화염도가 흩뿌린 강기들이 순식간에 고드름과 맞닿아 소멸했다.

그걸 본 적화염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맞닿자 자신의 강기는 소멸되었는데, 고드름은 녹지 않고 그녀의 강기를 소멸시킨 후 벽까지 날아가 틀어박혔다.

강기의 질이 다르다는 뜻이었다.

수한이 강기조차 사용하지 않고 튕겨냈던 것보다는 덜 충격적이었지만, 대설빙백문의 후예에게 밀리고 있다는 건 그녀에게 새삼 충격이었다.


‘그래도... 놈은 전투감각이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을 거야.’


아무리 초인이라고 해도, 몸을 쓰지 않고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내면 당연히 전투감각은 무뎌진다.

탈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빙백마존의 무뎌진 감각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으로 애도(愛刀)를 불끈 움켜쥐는 적화염도.

그녀의 시선에, 빙백마존의 뒤에서 일렁이며 나타난 흑의인이 들어왔다.

눈을 휘둥그레 뜨는 적화염도.

명색이 초인에 근접한 경지에 달한 그녀가, 먼저 흑의인이 모습을 나타내기 전에는 기척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빙백마존과 싸울 때 저런 존재가 접근한다면, 과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장세린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시간이 없다. 마존. 빨리 정리하고 떠야 한다.”

“알고 있소... 그래도 5분은 줄 수 있겠지.”


우둑, 목을 한 번 풀면서. 빙백마존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그 노인네는 당신과 합공해서 그런지 손맛 볼 시간도 없었거든. 나도 오랜만에 실전 감각은 좀 되찾아야 할 것 아닌가?”


그 노인네가 누굴 지칭하는 것인지, 적화염도는 알았다.


‘해룡 아저씨가 합공에 손쓸 틈도 없이 당했구나.’


자신의 죽음을 내심 직감한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도를 쥔 손에 힘을 더 불끈 주었다.

그녀에게 여전히 미소를 걸어둔 채, 빙백마존이 말했다.


“해남의 애송아, 날 즐겁게 만들어준다면 시체만은 온전히 남겨주도록 하마. 네 아비 같은 꼴은 조금 그렇잖나?”


해남염화문의 염화(炎火)를 진원까지 고갈하고, 빙백마존의 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가 가루조차 남기지 못하고 전신이 부스러져 버린, 그녀의 아버지, 전대 해남염화문주.


“이... 씨발... 좆 같은... 새끼가...!”


그를 언급하는 빙백마존 앞에서, 적화염도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온몸을 불태우며 덤벼드는 적화염도.


“허어억!”


그녀가 날아갔던 이성을 찾았을 때는, 이미 그녀의 단전어림에 빙백마존이 찌른 얼음의 창이 틀어박힌 이후였다.

다행히 몸을 전력으로 뒤틀어 단전이 파괴되는 것까진 피했지만, 엄청난 격통이 제정신을 불러왔다.

쓰러진 채로,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빙백마존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죽음인가.

죽더라도, 다시 태어나서라도 네 놈에게 복수하겠다.

여러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적화염도가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바로 미간 사이로, 빙백마존이 내지르는 빙창(氷槍)의 끝이 점차 가까워져 왔다.

그렇게 머리가 꿰뚫리기 직전.

파스스스! 눈앞에 아름다운 빛으로 산란(散亂)하면서, 얼음의 창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당황한 그녀가 앞을 보았을 때.


“방... 패... ?”


무언가 고색창연해 보이는 고대(古代)의 원형 방패 형상.

그것이 적화염도의 앞에 떠올라 있었다.

동시에, 그녀의 앞에 무언가 풀썩, 착지했다.

낯이 익은 등이었다.


대체 누굴까.

생각을 이어갈 겨를도 없이, 너무 많이 실혈(失血)한 탓일까.


그녀는 점차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그 등이, 그녀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추천과 댓글, 선작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작가의말

뒷부분에 일부 내용 추가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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