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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마녀의 서고

에이든은 오늘도 용사를 만나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집필마녀
작품등록일 :
2023.05.14 01:16
최근연재일 :
2023.08.20 12:00
연재수 :
10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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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수 :
5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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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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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추억과 악몽(10)

DUMMY

오래된 첨탐.

산토스가 말한 이 첨탑은 시계탑보다 조금 떨어진 거리, 빛에 가려 그림자가 진 어둑한 곳에 있었다.

과거, 시계탑이 세워지기 전에 마을 광장의 역할을 한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건 빌헬름도 알지 못한다.

그저 아버지인 산토스가 말했고 그가 자신을 보냈기에 헐레벌떡 달려왔을 뿐이었다.


드득, 드드득.


관리되지 않은 문은 열기 힘들었다.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바람이 통했고 으스스한 기분이 덩달아 들었다.


“······.”


내부는 말할 필요도 없이 엉망이었고 쌓여 있는 통이나 상자들은 썩어 매캐한 냄새를 풍겼다.


“지하실이라고 했지?”


내부에 마땅한 문은 보이지 않았다. 위로 올라가는 낡은 돌계단, 거미줄이 전부였다.

이제 빌헬름이 생각할 수 있는 건 1층에 깔린 물건들 아래에 문이 있을 거라는 약간의 기대.


쿵, 쿵.


“······.”


빌헬름은 물건을 치우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지금 자신이 치우고 있는 물건의 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계속해서 저 밖에서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아버지는 무엇을 알아채신 걸까?’


산토스의 그런 얼굴은 살면서 처음 봤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의 말을 따랐지만, 과연 자신이 이곳에 계속 있어야 했던 것일까?

아버지인 그를 따라 그를 도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불확실하고 불안한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그런 생각과 그런 말을 해서.”


한편으론 자신이 세상에 대해 변화에 중요한 것들이란 같잖은 생각을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불쾌감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들 소용없었다. 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자신은 이곳에 있었고 이 탑에 들어온 순간 바깥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덜컹.


“아, 있다.”


불안한 생각 중에 아버지가 말했던 지하실로 가는 문을 찾고 말았다.


끼익.


바닥의 문은 썩었지만 부서질 정도는 아니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또 다른 계단이었고 그 속은 깊고도 깊은 심연으로 가는 길처럼 보였다.


“꿀꺽.”


빌헬름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숨을 삼켰다.

불빛 한 점 없는 곳으로 한 발자국씩 내딛자 공포는 한 단계씩 커져갔다.

문을 닫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벽을 짚어가며 계단을 내려가자 조금씩이었지만 불빛이 보였다.


‘누가 있나?’


인위적인 불빛을 본 빌헬름은 긴장했다.

낡은 첨탑 아래에 있는 지하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깊었고 또 컸기에 어딘가 들어가면 안 될 장소에 발을 들인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빌헬름의 걱정과는 달리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불빛은 있었으나 사람은커녕 생물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뜨겁지, 않아?”


인위적인 불꽃은 자세히 보니 인공적인 불꽃이었다. 불빛은 환했으나 열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빌헬름이 살면서 처음으로 본 마법의 흔적이었다.

불꽃 너머에 보이는 장소는 제법 큰 홀이었고 책과 오래된 연구의 흔적들이 보였다. 다른 걸 제쳐두고 제법 설비가 갖춰져 있었으니 어째서 이런 곳이 이 첨탑 아래에 있는 것인지 빌헬름으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쿠구궁.


또다.

빌헬름은 큰 소리에 절로 어깨를 움츠렸다.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고 또 무서웠다.


“아버지······.”


빌헬름은 아무것도 건들지 않고 빛이 있는 곳에 딱 붙어 온몸을 움츠렸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


성전 기사단 거점.


“1번 대기조는 나와 함께하고 2번 대기조는 사람들을 대피시켜라!”


이 거대한 도시는 예로부터 성전 기사단의 거점 중 하나였다. 다른 거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기사단 정규보단 양성을 위한 견습들이 즐비해 있었다.

지금 명령을 내리는 기사 또한 갓 견습 딱지를 뗀 기사였으니 사실상 다른 이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


“아직도 벨라라와는 통신이 되지 않나?”


“여전히 먹통입니다. 이제 어떡해야······? 저, 전령을 다시 보내심이······.”


“젠장, 마물뿐만 아니라 마족까지 도시 곳곳에서 솟아나고 있다. 이 상황에 어떻게 전령을 보낸단 말이냐? 하물며 누가 갈 것이냐?”


이 성전 기사의 말처럼 도시는 고립되어가고 있었다. 정말 언제 어디서 끌어온 건지 모를 무수한 마족과 마물 떼가 말 그래도 도시 전체를 유린하고 있는 것이었다.


“최대한 높은 탑에 불을 지펴라. 근처에 수많은 전초기지가 있다. 누군가는 볼 테지.”


하지만 적의 수는 상당했다. 이 도시에 쳐들어오기 전까지 근처는 쑽대밭으로 만들어놨을 가능성이 컸다.

결국 그의 말은 희망고문과도 같았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으니 일단 아군을 다독여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크나큰 효용은 없었다.


“대장! 5번, 8번 방어선이 뚫리기 직전입니다!”


“결계를 치는 기도사들은?”


“3명은 실신했고 나머지 두 명도 버티고 있으나 온 얼굴에서 피를 쏟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단의 거점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못해도 백 이상은 되었다.

만약 이곳이 뚫린다면 이곳 사람들은 전부 저 괴물들의 한 끼 식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성전 기사로서 겨우 한솥밥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기사로서, 사람을 지키고 신의 뜻을 행하는 신성한 자로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


“대장, 아셰르티가 팔을 먹혔어!”


“아파, 아파!”


“저, 저리 떨어져, 이 괴물 새끼들아!!”


“엄마, 엄마아!! 아아아아악!!!”


할 수 있을 리가······.

이런 걸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 겨우 기사 직책을 물려받은 자신이 이 거점을 지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벨라라의 신성한 기운을 받는 이들이 온다고 해도 이 사태를 해결하기 벅찰 텐데 기사를 양성하는 거점의 갓 서훈받은 기사가 무엇을 책임지고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하하······.”


그저 웃음이 나왔다.

눈앞에서 미약한 결계가 괴물들의 의해 물어뜯기고 부서지고 깨져간다.

작게 구멍이 난 결계 사이로 손발 이빨 뿔을 들이미는 괴물들에 의해 어리고 젊은 생도들의 순백색 정복은 새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래, 이건 꿈이야.’


지독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위대하신 레이나 여신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견디게 하고자 지독한 악몽을 꾸게 하시는 거다. 우리의 정신을 시험하시고 우리를 어떤 길로 이끌어야 할지 지표를 살피시는 것이다. 그것만 알게 된다면 여느 때와 똑같이 침상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래, 꿈이야. 이건······.”


대장 노릇을 하던 기사는 그렇게 믿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마물 개에게 머리를 물어뜯기면서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콰직!!!



·········


“아아, 좋은 소리다. 인간들의 비명, 그들이 쌓아놓은 위대한 문명들이 무너지는 소리.”


화신은 벽에 올라 불타고 피가 흩뿌려지는 도시를 보며 황홀함을 느꼈다.


“우리를 핍박해온 가증스런 인간들, 저들이 숭고하고 신성하다고 믿는 어리석고 미천한 성전 기사들.”


그는 광소를 내비치며 비웃었다.


“꼴 좋다!! 그래, 죽여라! 놈들의 피로 오늘 축배를 들자꾸나! 먹어라! 뼈부터 창자까지 남겨두지 말고, 어린 것이건 늙은 것이건 여자건 상관없이 전부!!”


불꽃은 증오로 일그러져 그가 서 있던 벽을 불태웠다. 악마의 형상 하늘 위로 펼쳐져 올라왔고 먼 거리에서도 그것을 알아보기 쉬울 정도로 선명해져갔다.

그렇게 한참을 몸을 불태운 화신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후후, 이제 곧이다. 곧 있으면 화신을 이어 뇌신도 내 것이 된다.”


화신은 제 변화되고 강화된 몸을 보며 흡족한 듯 웃었다.


‘마계에서 몸을 숨기던 엘프들, 라타토스크랬던가? 그 놈들 덕분에 이 화신을 얻었다.’


음산하고 불쾌한 엘프들이었지만 그를 흔쾌히 도와준 작자들이었다.

비록 그 속을 파낼 수 없어 어떠한 목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당장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은 같았기에 아무래도 좋았다. 적어도 화신의 입장에선 지금은 그러했다.

어찌됐든 이 마족들을 이끌 수 있는 4대 마인의 힘은 가히 굉장했다.

인간들 틈 속에 숨어 겨우 목숨만 연명하던 마인으로서의 삶을 청산할 정도로 말이다.


“······.”


하지만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분명히 이 힘을 얻기 전에 그 라타토스크의 수장이 말했었다.


‘적당히 드십시오, 저희가 식사를 도와드릴 순 있지만 소화까진 도와드리진 못하거든요. 수틀리면 저희는 아무것도 책임져 줄 수 없습니다.’


그건 도대체 무슨 말이었을까?

과욕을 부리진 말란 소리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으니 눈치껏 행동하란 말이었을까?


“······.”


무슨 뜻이든 좋은 뜻으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조언을 한다기엔 너무 의미심장했으니.


‘선택은 언제나 자신이 하는 겁니다. 신으로 살지, 그냥 약해빠지고 흔한 마인인 ‘세바스티안 이졸탄’으로 살지는······.’


세바스티안 이졸탄

그의 이름이었다. 한 없이 약하고 핍박 받았던 마인이 세상 속에 몸을 숨기기 위해 정한 이름. 살기 위해서 발버둥쳤고 힘을 갈구했다.

그리고 힘을 얻었다. 화신의 힘을 말이다.

지금 화신이 된 이졸탄의 귀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말들이 귓가에 계속해서 맴돌았지만, 힘에 대한 갈망은 그를 멈춰 세울 수 없었다.


“곧이다.”


그런 말에 의구심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얻기까지 단 한 발자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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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12장. 추억과 악몽(11) 23.08.17 13 0 10쪽
» 12장. 추억과 악몽(10) 23.08.17 11 0 10쪽
97 12장. 추억과 악몽(9) 23.08.13 12 0 10쪽
96 12장. 추억과 악몽(8) 23.08.13 12 0 12쪽
95 12장. 추억과 악몽(7) 23.08.13 14 0 10쪽
94 12장. 추억과 악몽(6) 23.08.10 19 1 10쪽
93 12장. 추억과 악몽(5) 23.08.09 18 2 10쪽
92 12장. 추억과 악몽(4) 23.08.08 17 1 10쪽
91 12장. 추억과 악몽(3) 23.08.07 18 0 10쪽
90 12장. 추억과 악몽(2) 23.08.07 17 0 10쪽
89 12장. 추억과 악몽(1) 23.08.05 19 2 11쪽
88 11장. 성흔(7) 23.08.05 17 1 10쪽
87 11장. 성흔(6) 23.08.03 18 2 13쪽
86 11장. 성흔(5) 23.08.02 19 1 11쪽
85 11장. 성흔(4) 23.07.30 24 2 11쪽
84 11장. 성흔(3) 23.07.29 23 1 13쪽
83 11장. 성흔(2) 23.07.28 23 1 10쪽
82 11장. 성흔(1) 23.07.27 23 0 10쪽
81 10장. 이블린(7) 23.07.26 25 0 13쪽
80 10장. 이블린(6) 23.07.26 23 0 10쪽
79 10장. 이블린(5) 23.07.24 23 0 10쪽
78 10장. 이블린(4) 23.07.22 24 0 11쪽
77 10장. 이블린(3) 23.07.20 24 1 10쪽
76 10장. 이블린(2) 23.07.19 24 1 12쪽
75 10장. 이블린(1) 23.07.17 25 1 10쪽
74 9장. 힘이 전부다(11) 23.07.16 27 1 12쪽
73 9장. 힘이 전부다(10) 23.07.16 2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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