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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마녀의 서고

에이든은 오늘도 용사를 만나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집필마녀
작품등록일 :
2023.05.14 01:16
최근연재일 :
2023.08.20 12:00
연재수 :
10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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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수 :
54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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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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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0장. 이블린(6)

DUMMY

역시.

하고는 이블린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녀는 방금 접촉으로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의사가 담긴 육체로는 알 수 없는 정보를 자신의 본체와 접촉함으로서 알게 되었다.

로레타와 서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그저 기억을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는 느낌이었다.

이블린이 로레타였고 로레타가 이블린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짙게 연결된 탓에 그런 착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착각을 한 것인가?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그녀를 살려줬기 때문이겠지.’


로레타의 병은 틀림없이 죽을병이었다. 정말로 뛰어난 마법사나 연금술사가 오더라도 살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블린은 그녀를 살렸다.

어떻게?

이블린은 제가 품은 것에 의해 지식을 얻었고 그 지식으로 인해 자신이 품은 것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본래라면 길어봤자 5년이면 수명이 다 되어 죽을 거미가 200년을 살아남은 것이 그 증거였다. 그래서 로레타에게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개연성을 부여했다.

훗날 인간들은 그걸 운명을 비틀었다라고 말들을 할 것이다.

그래, 로레타의 운명을 이블린은 비틀어 꼬아 붙잡은 것이다.


‘그나저나 신이라······.’


인간은 늘 그랬다.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고 고차원적인 존재라고 판단하면 그걸 경외시하고 숭배한다. 이블린은 그 감각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달랐다.


‘이게 이해?’


자신의 것처럼 공유된 생각과 감정을 양식으로 삼아 이블린은 무언가를 얻었다. 그리고 그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고개를 숙이고 경배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로레타를 보며 이블린은 한숨을 쉬었다.

이해와는 별개로 그리 달갑진 않았다.

자신이 신이라는 존재가 되었단 사실이 아니꼬운 것이 아니었고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조차 않았기에 생긴 불편함에서 기인한 혐오감이었다.

어째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건지는 모르나 적어도 그 이유가 이블린 본인의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었음을 알고는 있었다.


‘네가 거부하는 거로구나.’


찬란한 빛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저를 품고 이렇게 만든 본질이 그렇게 느끼도록 하였다.


‘사명.’


그걸 깨닫는 동시에 사명이라는 단어가 이블린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명이라는 것이 뭘까?

이블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명이라는 것은 책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좀 더 깊이 가자면 운명과 직접적으로 얽히는 것.

목적이 분명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이라도 필요한 것이 곧 사명이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블린의 생에서 그러한 것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아니, 여유 이전에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녀는 거미이고 거미는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생물이다. 운명이니 뭐니에 휘둘리는 입장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제가 품은 빛은 사명을 다하라고 계속해서 속삭인다.


“······.”


생각을 정리한다. 격동치는 감정을, 본질에 대한 것을 애써 죽이고 외면한다.

이블린은 스스로 정리한 생각을 점차 받아들였고 이내 차분한 얼굴로 다시 돌아와 로제타를 대면했다.


“아가씨, 일어나세요.”


선뜻 내민 손.

로레타는 떨었다. 어깨로부터 등까지 소름이 타고 흐르는 느낌으로 파르르하고 떨고 있었다.

중추신경계를 거친 듯한 그 감각은 지금 이블린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두려움, 공포, 불안, 분노.


“······.”


그런 감정이 아니다.

이건 ‘희열’이었다.


‘인간은 역시 이런 면에서 이해가 되질 않네.’


연결된 본질은 그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이블린의 이성은 그걸 자꾸만 거부했다. 거북하고 꺼림칙했다.

그래도 내민 손을 거둘 순 없었기에 이블린은 좀 더 깊이 손을 내밀었다.


“자요.”


사근사근하고 요염한 목소리가 이끄는대로 로레타는 이블린의 손을 잡았다. 여전히 파르르 떨고 있었다.


“······위대한 존재이시여. 제가, 무얼하면 되나요?”


로레타는 이전에 보았던 귀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보다 굴종한 자세로 이블린에게 저의를 물었다. 그런 태도를 보자니 이블린의 얼굴은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아가씨.”


이블린은 잡은 손 위로 손을 하나 더 포개었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하죠. 전 위대한 존재가 아닙니다.”


딱 잘라 말하니 로레타의 낯빛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럴 리가 없어요. 당신은 그 누구보다 위대한 존재에요. 전 알 수 있어요.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전 지금도 느끼고 있으니까요!”


로레타는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블린은 로레타를 살리고자 자신의 빛을 로레타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렇기에 본질은 그 빛에 가까워진 로레타는 근원과 접촉한 이후로 지금도 그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기적을 본 인간의 믿음.

로레타의 얼굴과 생각, 감정에는 그 굳은 믿음이 묻어나 있었다.


“당신의 위대한 육신에 닿자 모든 걸 알았어요. 당신은 위대한 분이세요. 마치 저의 어머니와도 같이 따뜻하고······, 또 밀려 들어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어요. 오랫동안 찾아 헤맨 사랑처럼요.”


“······.”


이블린은 알았다.

왜 자신의 이성이 스스로가 신이라는 걸 거부하는지를 말이다.

지금 한 명의 인간의 운명이 자신으로 인해 뒤틀려졌다.

눈이 돌았다라는 말처럼 로레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지경에 이른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그 감정으로 인해 제 본질이 충족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오랜 공복 속에서 단디 단 양식을 받아들인 것처럼 충족되었다. 기분이 좋아졌고 로레타가 채워준 것을 더욱 탐식하고 싶은 기분으로 가득 메워졌다.


‘아니야. 이건 좋지 않아.’


이블린은 애써 끊어내려고 했다. 그녀의 이성이, 땅거미로서의 정체성이 그 본질을 계속해서 거부했다. 혈관이 울긋불긋 튀어나올 때처럼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헛구역질이 밀려오고 몸은 격렬하게 아파왔다. 그러면서도 머리는 더 차갑게 본질을 받아들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이성의 끈을 놓기 직전이었다.


‘이블린.’


하지만 이블린은 결국엔 그 본질을 밀어내는데에 성공했다.

자신이 돌보던 작은 소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자신에게 처음으로 내려온 작은 아이, 한낱 거미에게 책임을 지게 만든 한낱 아기.

이블린은 ‘이블린’으로 만들어준 소년에 대해 떠올리자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로레타 아가씨.”


이블린은 차분해진 머리로 차분한 생각을 담은 목소리로 로레타를 불렀다. 지금도 서로 연결된 탓에 로레타는 이블린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블린이 본질을 밀어냈다는 걸 느낀 로레타는 흠칫 떨었다.


“전 위대한 존재가 아니에요. 그건 제가 아니거든요. 그것만은 명심하면 좋겠어요.”


단호하게 그은 경계에 의해 서서히 로레타와 이블린의 연결된 감정이 끊어지고 있었다. 다발로 연결된 운명의 가닥은 이내 하나의 얇은 실선처럼 되었고 로레타의 흥분된 감정이 사라지고 이성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 그럼······, 어떻게 불러드려야 하는 건가요?”


발작과도 같은 믿음이 사라지자 떨리는 목소리로 로레타는 이블린에게 물었다.


‘눈은 돌아왔군.’


그래도 아까와는 달랐다. 지금 로레타의 눈에는 조금이지만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열망이 가득 찬 희열과 행복과는 다른 인간의 본능이 담겨 있는 모습을 본 이블린은 겨우 안도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블린.”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제 자신을 정확하게 정의하기에 이른다.


“전 예나 지금이나 이블린이에요. 몸집이 조금 거대한 거미이고 개암나무 열매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낱 미물.”


“이블린······.”


그 이름엔 힘이 담겨 있었다. 인간은 이름에 큰 의미를 둔다는 것을 이블린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위대한 존재에게 붙일 위대한 이름을 찾는다.

이명이 붙는다거나 아니면 부모와 같은 호칭을 인간은 신에게 부여한다. 하지만 이블린은 딱 잘라 자신을 정의했다.


‘이블린’


카인의 이름을 지은 후 카인을 키워내기 위해 지어낸 보잘 것 없는 이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기에 이블린은 카인을 더욱 잘 키워낼 수 있었다. 그렇잖은가? 거미일 뿐인 그녀가 인간 아이를 8년씩이나 키워냈다.

크나큰 성과였고 보람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지낼 세월이 조금 더 있었기에 먼길이라고도 할 수 있었으나 딱히 이블린에게 부담되는 것은 아니었다.


“로레타 아가씨, 전 아가씨를 도울 거예요. 제가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제가 그러기로 마음 먹었으니까요.”


“카인, 때문이죠?”


지금은 그녀와 연결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을 본 것을 토대로 느낀 생각과 감정은 여전히 로레타의 안에서 체류하고 있었다.


“카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 아이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를······.”


“······.”


“살짝 질투가 나네요.”


로레타는 살짝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금도 말했듯이 로레타와의 연결은 끊어졌다. 즉, 이건 기억에 의한 것. 그리움이었다.


‘어머니인가······.’


거미에게도 부모가 있고 가족은 있었다.

정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로레타의 지금 기분을 납득할 수는 있었다.


‘내가 카인을 소중히 한다고······?’


상상도 못한 일이다.

그저 주워온 아이에 불과했을 텐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세상이 막막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런 걸 두고······.”


이블린은 굉장히 인간적인 측면에서 제 감정을 해석했고 답을 도출해냈다.


“······난감하다고 하는 건가?”


그리고 그 답은 정확히 딱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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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12장. 추억과 악몽(4) 23.08.08 1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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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11장. 성흔(6) 23.08.03 18 2 13쪽
86 11장. 성흔(5) 23.08.02 19 1 11쪽
85 11장. 성흔(4) 23.07.30 24 2 11쪽
84 11장. 성흔(3) 23.07.29 23 1 13쪽
83 11장. 성흔(2) 23.07.28 23 1 10쪽
82 11장. 성흔(1) 23.07.27 2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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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장. 이블린(6) 23.07.26 23 0 10쪽
79 10장. 이블린(5) 23.07.24 23 0 10쪽
78 10장. 이블린(4) 23.07.22 24 0 11쪽
77 10장. 이블린(3) 23.07.20 24 1 10쪽
76 10장. 이블린(2) 23.07.19 24 1 12쪽
75 10장. 이블린(1) 23.07.17 2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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