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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마녀의 서고

에이든은 오늘도 용사를 만나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집필마녀
작품등록일 :
2023.05.14 01:16
최근연재일 :
2023.08.20 12:00
연재수 :
102 회
조회수 :
3,627
추천수 :
74
글자수 :
540,615

작성
23.07.1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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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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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9장. 힘이 전부다(11)

DUMMY

“호세······.”


바넬라는 그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정말이지, 오랜만이네.”


그의 머리카락을 손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기억나? 네가 내게 손을 내밀면서 했던 말.”


“······.”


호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그 모습을 본 바넬라는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쓸쓸해지기도 했다.


“나는 한때 궁중 마법사였지만, 전 영주에게 있어 나는 쓰기 좋은 노예와 다를 바가 없었지. 그때 네가 내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지.”


“평화롭고 아름다운 고향을 만들어가자, 모든 게 끝나면 네게 모든 걸 넘겨주겠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그 말에 괜히 울컥해진 나머지 바넬라는 손을 멈추었다.


“······그게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처음부터 호세에게 정을 주진 않았다. 그녀가 처음 본 그는 사내라기 보단 그저 치기 어린 소년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기대도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가 뻗은 손을 바넬라는 잡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전에 살던 그녀의 세상은 온통 회색과 붉은색으로 점철된 악몽과도 같았으니까.

그래서 한때 작았던 그의 등에라도 기대고 싶었다.

알고 있다. 그게 얼마나 비열하고 옹졸한 기대이고 희망인지를.

흑자는 부질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암울한 시절이었다.

그녀에게 자유는 없었다. 영주가 시키는 모든 일을 해내야 했고 영주가 바란다면 잠자리마저 함께 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필요하다면 그녀의 마법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마저 서슴없이 해내야 했으니.


“······.”


그럼에도 바넬라는 전 영주의 횡포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었다.

그녀가 그 악인을 거부했을 때 올 후폭풍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전 영주를 쳐죽이고 라크타의 영주가 되고 난 후 네가 가장 먼저 한 건 호만과의 전쟁이었지.”


전 영주의 뒷배가 호만이었기에, 그것도 가장 권모술수에 능하며 악독하기로 유명한 자의 줄이었으니 바넬라는 뛰어난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 두려움과 편견을 호세가 깨트려 주었다.

바로 압도적인 힘으로 말이다.


“그래, 자그마치 2년을 허비했지. 나와 에르일라, 그리고 고작 500이 될까 말까한 병력으로 그 거대한 제국과 전쟁을 했다.”


그리고 이겼다.

전략 전술적인 측면이 아닌, 압도적인 힘으로 그 제국을 꺾어버린 것이다.

라크타를 잃는 건 호만 제국의 입장에서도 뼈 아픈 선택이었지만 그정도로 호세가 만만치 않았기에 하는 수 없이 라크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튜링튼과도 동맹을 맺지 않는단 호세의 결정을 듣고서야 제국과 호세의 소모전을 끝을 맺었다.


“그 후로 용을 잡아 내 명성과 위용은 널리 퍼졌지. 제국에 홀몸으로 나선 새로운 영주, 용을 잡은 사내, 최강의 영웅 중 하나로서.”


신만 안 죽였다 뿐이지 신이 적이었다면 기꺼이 그 신을 죽였으리라.


“짧은 시간이었다곤 하나 라크타는 이제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 되었다. 내가 없다고 해도 괜찮을 거다.”


호세의 눈은 푸르다. 마치 새로운 꿈이라도 찾은 소년처럼 맑기만 하다.

바넬라가 어찌 이길 수 있을까?

새로운 꿈과 목적이 생긴 남자를 감히 잡을 수 없었다.


“그래, 이젠 내가 맡을게. 호세······, 네가 다시 돌아오는 그날까지.”


“고맙다, 바넬라. 약속하마,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그리고 부탁한다. 우리들이 일궈낸 라크타를.”


“맡겨만 줘.”


바넬라는 쓰게 웃으면서 다시 호세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권위적인 모습과는 당분간 이별이겠네.”


그의 머리를 적당히 쓰다듬어 고르게 만든 그녀는 가위와 면도칼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의 머리와 수염을 다듬었다.


·········



그로부터 시간이 좀 더 흘렀다.

이른 아침, 수분기가 잎사귀 끝에 흐르고 뭉쳐 물방울 저 떨어질때즘, 풀벌레가 울음을 할 때쯤 나와 에이실은 번래 입었던 옷을 입고 멀찍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는군.”


“나온 지 10분도 안 됐어.”


늘 느끼는 거지만 에이실은 호불호가 갈릴 땐 상당히 인색한 면이 도드라진다.

닐리에 같은 사람들에겐 더할나위없이 사근사근하지만 나는 경계했고 호세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게 눈에 뻔히 보인다.


“앞으로 같이 다닐 건데 그렇게 이빨 세울 필요는 없지 않아?”


“아둔한 소리로군. 네가 들인 동료라 그 뜻을 따르지만 그렇다 하여도 경계는 필수다.”


“삶의 지혜냐?”


“흠, 그렇게 이해하면 될거다.”


담백하네.

아마도 그녀의 편집증 같은 이 경계심이 도움이 될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장 으르렁거려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처음부터 신뢰를 갖는 사람이 어디겠냐만은, 아무튼 시간이 필요했다.


“아, 저기 인영이 보이는군.”


“오래 기다리게 했군, 형님.”


굵직하고 남성스러운 목소리는 분명 호세였다. 아직 해가 미처 뜨기 전이라 그의 모습이 흐릿했으나 호세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진 않았어. 호······.”


호······.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이름을 부르다 말고 입으로도 마음 속으로도 그의 이름을 끝맺지 못하고 말았다.


‘이상해.’


분명 저기서 나를 부르는 인물은 호세가 분명할진데 무언가 실루엣이 다른 기분이 들었다.

그림자처럼 흐릿한 그의 모습이 가까워질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들었고 이윽고 그가 가까워지자 이상함은 무슨 확신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 걸어오는 호세는 내가 아는 모습과 다르다고 말이다.


“······.”


“형님?”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에이실도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저······.”


나는 떨리는 입술로 겨우 입을 열었다.


“형님, 갑자기 왜 그래?”


“아니, 그게······.”


목소리는 틀림없이 호세다. 반박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그런데······.


“그, 누구신지요?”


웬 상큼한 미청년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하하하하핫.”


호세가 배를 부여잡고 호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아니, 호쾌하긴 한데, 상큼함이 추가되었다. 지나치게 상큼하다.


“······에이든, 사족이지만 이 놈, 그 사내가 맞나?”


내 귓가에다 대고 살짝 말하는 에이실처럼 나 또한 믿기지 않았다.


“일단, 맞는 것 같은데······.”


“정말인가? 내가 봤을 땐 가죽만 뒤집어 쓴 다른 무언가로 보인다만.”


이 엘프는 무슨 또 살벌한 소리를.


“저, 호세?”


“예, 형님.”


그가 나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투기장에서 불렀을 땐 웬 아저씨가 나를 형님이라 했을 땐 곤란해서 어쩔 줄 몰랐는데 지금의 그가 날 그리 부르니 왠지 모르게 심장이 간지러웠다.


‘남자가 봐도 상큼하고 이쁜 미소네.’


지금 호세는 수염은 몽땅 밀었다. 그뿐이랴, 옆머리 뒷머리까지 시원하게 밀고 딱 보기 이뻐야 할 머리카락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턱선은 날카로우면서 섬세하게 조각한 듯하니, 투지 어린 눈과 몸만 아니었다면 착각할 수 있는 외양이었다.


“놀라운가? 이래 봬도 많은 여자들이 내게 구애를 하곤 했지. 내 얼굴에 생채기 하나라도 났다 하면 난리들인 여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네.”


그런 뜻으로 한 것이 아님을 알지만 재수 없었다. 나는 지난 12년 동안 이 얼굴을 꽁꽁 숨기고 다녔는데 이 호쾌하고 상큼한 라크타의 영주는 본인의 인기를 주저리 떠든다.

솔직한 성격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왠지 모르게 알게 된 기분이다.


“크흠, 아무튼 이 얼굴은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고 바넬라와 세스티나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해서 어떻게든 있어 보이려고 수염과 머리를 길렀다. 덧붙여 주름을 만드는 화장도 곁들였지.”


“허어, 에이실 진짜 네 말대로네.”


“음?”


“놀랄 노자야······.”


내가 이 상큼남을 보며 뻣뻣하게 굳어 있으니 괜히 에이실이 한숨을 푹 쉬었다.


“뭘, 넋을 놓나? 인간치곤 아름다운 미형의 얼굴이나 샹그리아엔 널리고 널렸다. 네가 주눅 들 필요는 없단 말이다.”


“······.”


이거 위로 맞아?

나는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곰곰이 한 가지를 생각했다. 어느 샌가 손에 들린 거울로 내 얼굴도 들여다보며 말이다.



에이실 – 엘프(이쁨)


호세 – 인간(잘생쁨)


나 – 인간(그럭저럭 잘생······.)


“······.”


아냐, 이새끼들, 둘 다 재수 없어.

나도 잘 생겼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하며 자부했었는데 이 둘 사이에 끼니 쭈글쭈글 오징어가 된 것만 같다.

내가 너무 특색 없이 평범해 보인다. 과연 이게 천상계 사이에 낀 진짜 O징어 게임이란 말인가?


“하하, 뭐, 어쨌든 수염이나 머리, 잘 어울리네.”


“과찬이야, 형님.”


“하하.”


내가 여전히 넋이 나가 있으니 에이실이 나섰다.


“호세, 라고 부르면 되겠는가? 말해두겠지만 나는 네놈과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다. 어디까지나 길이 같은 것일 뿐이니 착각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팔짱을 끼며 제법 강하게 선을 긋는 에이실은 단호한 몸짓과 얼굴, 말로서 호세에게 경고와 비슷한 일침을 가했다.


“······.”


이에 호세가 에이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갑자기 무거운 분위기가 조성될 것만 같아 마른침을 나도 모르게 삼켰다.


“분명······.”


그리고 호세가 입을 열었다.


“에르일라를 쓰러트린 걸 난 기억한다.”


호세가 나를 제치고 에이실 앞에 섰다. 나와 비교했을 때도 머리가 하나 정도 차이 나는 호세였다. 에이실 앞에 서니 머리 두 개는 더 차이가 났으니 그 위압감은 더 대단하리라.


“······.”


“거기다 장수종인 엘프라······.”


에이실은 그 기에 죽지 않고 태연하게 호세를 올려다봤다.

당장이라도 싸울 것만 같이 보이니 내가 나서야 할까 했지만 그것보다 호세가 손을 들어올리는 게 빨랐다.

이런 행동을 에이실도 경계했기에 검쪽으로 손이 갔지만, 한 발 늦은 듯 보였다.


“잘 부탁하네, 누님.”


“······?!”


“엥?”


그가 들어올린 손은 공격하고자 하는 자세가 아닌 그저 악수를 청하는 손에 불과했다. 나도 에이실도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있자 의아해진 호세가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


그녀도 얼떨떨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호세와 악수를 나누고 말았다.


“음, 음······.”


에이실도 답지 않게 제법 당황한 기색이었다.


“에르일라는 나보다 약하지만 그래도 강한 녀석인데 아주 손쉽게 상대하는 걸 보고 반해버렸어. 존경스러울 정도야.”


“그, 그런가?”


“물론이지. 이런 강자가 엘프 중에서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그보다, 아까 나를 무어라 지칭해 부른 거지?”


“음······? 아아, 그거야 누님은 나보다 오래 살았지 않은가? 그러니 아우인 자로서 당연히 존경하는 마음에서 ‘누님’이라 부르는 게 맞지 않나?”


“누, 님인가······.”


어라?

기분이 썩 나빠 보이지 않은 표정인데?

오히려 뭔가 기분 좋은 부분을 긁어준 듯한 얼굴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엘프, 나보고 경계라느니 뭐라느니 한 주제에 경계가 풀렸다.

‘누님’이라는 말 한 마디에······.


‘쉬운 여자다······.’


생각보다 쉬운 면을 본 나는 그녀와 정강이 차기 하던 시절을 아무도 모르게 떠올렸다.

그때 차였던 부분이 어째선지 무진장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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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12장. 추억과 악몽(9) 23.08.13 12 0 10쪽
96 12장. 추억과 악몽(8) 23.08.13 12 0 12쪽
95 12장. 추억과 악몽(7) 23.08.13 14 0 10쪽
94 12장. 추억과 악몽(6) 23.08.10 19 1 10쪽
93 12장. 추억과 악몽(5) 23.08.09 18 2 10쪽
92 12장. 추억과 악몽(4) 23.08.08 17 1 10쪽
91 12장. 추억과 악몽(3) 23.08.07 18 0 10쪽
90 12장. 추억과 악몽(2) 23.08.07 17 0 10쪽
89 12장. 추억과 악몽(1) 23.08.05 19 2 11쪽
88 11장. 성흔(7) 23.08.05 17 1 10쪽
87 11장. 성흔(6) 23.08.03 18 2 13쪽
86 11장. 성흔(5) 23.08.02 19 1 11쪽
85 11장. 성흔(4) 23.07.30 24 2 11쪽
84 11장. 성흔(3) 23.07.29 23 1 13쪽
83 11장. 성흔(2) 23.07.28 23 1 10쪽
82 11장. 성흔(1) 23.07.27 23 0 10쪽
81 10장. 이블린(7) 23.07.26 24 0 13쪽
80 10장. 이블린(6) 23.07.26 22 0 10쪽
79 10장. 이블린(5) 23.07.24 23 0 10쪽
78 10장. 이블린(4) 23.07.22 24 0 11쪽
77 10장. 이블린(3) 23.07.20 24 1 10쪽
76 10장. 이블린(2) 23.07.19 24 1 12쪽
75 10장. 이블린(1) 23.07.17 25 1 10쪽
» 9장. 힘이 전부다(11) 23.07.16 27 1 12쪽
73 9장. 힘이 전부다(10) 23.07.16 2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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