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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오브덕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의 몸은 꽃을 피우기에 적합하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오브덕
작품등록일 :
2023.04.02 23:26
최근연재일 :
2023.04.10 01:29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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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추천수 :
2
글자수 :
39,600

작성
23.04.0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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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04. 로벨리아

DUMMY

“아.”


무심코 내뱉은 작은 단말마.


“왜지?”


무겁게 내뱉은 의문사.


“···그래. 원래 그랬던거야.”


눈 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두고 뱉은 혼잣말.


“원래부터 내 삶은 지옥이었으니까.”


열한 개의 수목 아래 피어난 로벨리아는 휴고의 음성 아래 위치했다.


“오늘따라 더 뭣같을 뿐이야.”


두려움의 빈자리에 가득찬 날카로운 혐오와 부정은 무거운 그의 목소리를 제런했다. 그의 목소리를 이뤘던 쇳소리를 갈아 날을 세운다. 눈의 공막에 독기를 들이붓는다. 이윽고, 그의 떨림이 멈췄다.


“이깟 나무가 뭔데? 내가 벌벌댈 이유가 대체 어디있는데? 사람 몇 죽었다고 왜 떨고있는데. 대체.”


10시에 가깝게 기운 해는 얇게 트인 구름의 틈으로 빛을 방사했다. 그 아래엔 휴고 또한 서 있었다. 진한 혐오감에 자신을 푹 적신 체로.


휴고는 주름진 외투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후에 그가 손을 밖으로 냈을 땐 황갈색 녹이 슨 주머니칼이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 숨겨진 칼날이 모습을 비친다.


칼끝의 방향은 임의로 두고 나무를 향해 휘둘렀다.


칼이 그리는 궤가 나무토막과 겹칠때면, 탁 하는 소리와 나무에서 베어나온 피가 칼끝에 묻어 아치를 그렸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검은 악의의 색이 조금 진해졌다. 그와 동시에, 거리에 자라난 풀꽃들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열려있던 건물의 창에서 잔가지들이 피와 함께 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두서없이 나열되는 상황들에 파묻혀가며, 휴고는 비처럼 떨어지는 피를 묵묵히 받았다.


발목에 감긴 풀꽃의 줄기들을 끊어낼 때마다, 여인의 비명이 환청으로 들렸다. 환각과 감각이 혼재하는 거리에서, 휴고는 어지럼을 짓누르며, 풀줄기를 짓밟으며 그의 집으로 향했다.


거리에는 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집에 돋아난 식물들에 소스라치며 튀쳐나온 이들도 휴고와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


수많은 인파들이 몰렸다. 피로 둘러져 미끄러운 도로에서 몇몇이 넘어졌으나, 공포가 이성을 앗은 이들에겐 보이지 않았다.


족히 수백명의 족적을 몸에 받은 이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허나 그러한 곡성도 이내 멎었다.


휴고는 인파에 밀려 그들과 함께 대피소로 향했다. 거스를 수 없었다. 그가 서 있던 거리에서 대피소까지, 붉고 검은 발자국들이 혼란스레 찍혔다.


.

.

.


‘야··· 옹···’


본래 검은 짐승이 내는 음성은 어느새 탁한 소리가 섞여 건물 전부를 울렸다.


꼬이고, 얽히고, 설킨 넝쿨 다발들은 유리를 박살낸 체, 유리 파편이 박혀 피를 뚝뚝 흘리며 자신의 말단부를 뻗어간다.


검은 고양이가 앞발을 뻗듯, 가시돋친 넝쿨은 가비에게로 향해간다.


“···우리 미루···도.”


수분기 없이 쩍 갈라진 입술 사이에서, 불안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우리 미루도···저렇게···”


그녀는 그녀의 고양이를 떠올렸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녀의 품에서 아양을 떨었던, 그녀의 가장 소중한 가족을 떠올렸다.


“아닐거야.”


그녀는 그녀의 불안한 상상에 부정으로 확답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믿었다.


‘아···옹···’


의자에 주저앉듯 걸쳐있는 그녀에게로, 검은 넝쿨 다발들이 다가왔다.


여전히 끔찍한 색들을 두른 체, 그녀에게 닿으려 애썼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몸의 힘이 풀린 지는 꽤 되었으니까. 피하지 못한 게 맞으리라.


넝쿨의 말단부는, 열 갈래로 갈라져 속의 이뺠을 드러냈다. 그 꼴이 먹이를 삼키려는 커다란 뱀의 입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녀의 머리를 씹으려 안달나 있는 한 체의 괴물이었다.


그것의 입에서 침 같은 액체가 떨어졌다. 그 속은 끔찍이도 벌겋다. 수십 개의 가시와 이빨이 그 속에서 돋아났다.


이윽고 그것은, 삶의 의욕을 잃은 그녀에게로 천천히 전진했다.


“착하지, 야옹아.”


그녀는 그 넝쿨에게로 손을 뻗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 보이던 색들이 전부 섞여 검게 보였다. 그녀는 그 색에서 그녀의 고양이를 겹쳤다.


“착하지, 이리-”


- 정신 차려요.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딘가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반쯤 미쳐있던 그녀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서야, 그녀의 눈에는 자신을 삼키려 입을 벌린 괴물을 목도했다.


재빨리 몸을 숙여 몸을 숨긴 그녀는, 아까보다 더 크게 뜨인 눈을 한 체 숨을 헐떡였다. 넝쿨의 수액은 먹이에 침을 떨구듯 그녀의 빳빳한 머리 위로 떨어졌다.


기분 나쁜 끈적함과 숨막히는 가게 안의 공기 속에서, 가비는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고 새어 나오는 음성을 억지로 가렸다. 괴물로부터 자신을 감추려 안간힘을 다했다.


넝쿨은 자신의 몸을 휘적이며 그녀를 찾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것이 얼마나 격했던지, 휘두르는 궤적에 놓인 물체들은 줄기에 치여 깨지고 부숴졌다.


흩날리는 유리파편이 허공에서 빛을 반사하며 빛났다.


그녀는 그 빛 아래서 몸을 떨었고, 괴물 역시 그녀의 위에서 몸을 떨었다. 어지러운 공간 속에서, 청아하게 울리는 대여번의 음성이 울렸다.


그제서야 그녀는 넝쿨을 흔든 이유가 자신을 찾기 위함이 아니었음을, 바닥에 떨어진 고양이의 안구들을 보고서 깨달았다.


눈들은 또록히 구르며 그녀를 시야 안으로 몰았다. 앞치마를 던져 가려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옷자락을 쥐었을 때는 이미 입을 벌리고 서있는 넝쿨의 그림자 아래 있었으니까.


벌어진 적색의 틈은, 먹이를 앞에 두고 침을 흘렸다. 식물로 보임에도 본질은 식물이 아닌, 말 그대로 괴생명체는 또 다른 생물을 앞에 두고 그것의 식욕을 흘려댔다.


가비는 그런 포식자를 앞에 두고서, 피식자로써 위치해있었다.


제대로 된 저항조차 공포라는 감정에 에둘려 행하지 못하고 다가오는 운명을 보고만 있었다. 괴물은 천천히 전진했다.


새빨간 입을 벌리고서, 멈추지 않고 앞을 향하고는, 가비의 앞에 달하자 벌렸던 입을 그녀의 얼굴 앞에 대고서.


콰직-


한 번의 강렬한 음성 끝에 바작거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며, 선홍색의 피가 바닥에 적나라하게 흩뿌려졌다.


쫙 늘어놓은 도넛의 위는 빨갛게 물들었고,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간 지폐 위에는 또 다른 흔적이 남았다.


힘 없이 축 늘어져있는 팔과, 그 주위에 튄 피는 가비의 주변을 에워싸며 시체 외곽에 붙여두는 테이프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하나의 반전이라 함은, 선혈의 주인이 가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지러이 튄 피의 출처는, 가비를 잡으려 다가왔던 넝쿨의 것. 가비는 넝쿨의 조각을 맞으며 그 괴물의 사체 아래서 격하게 떨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 그녀의 눈 앞에서 갑자기 터져버린 식물과 뜻밖의 구원 아래 삶을 부지한 그녀는, 떨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진정시키고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손으로 잡아 들며 가게 밖으로 몸을 피했다.


바깥으로 나온 그녀는 얼굴에는 검을 정도로 진한 피와 유니폼에 붙어있는 고양이의 검은 털, 공포에 젖어 빳빳해진 머리털과 깨진 유리 조각이 박혀 군데군데가 찢어진 팔을 아래로 축 늘어놓은 몰골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짓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상태는 심각해보였다.


그러나 애써가며 나온 밖의 상황 또한 그리 좋지 않았다.


건물과 도로를 가득 메운 들꽃과 또 다른 넝쿨들, 그리고 그녀의 발 앞에 피어난 수백 송이의 로벨리아.


거리에 부유하는 꽃가루들은 본래 이 곳에 머무르던 안개의 자리를 꿰차고 대신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가비는 꺼끌거리는 입자들을 마셔가며,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채, 그저 발을 움직이기만 했다.


마치 어떠한 이유로 되살아난 시체처럼, 눈의 초점을 잃은 체로 앞의 로벨리아 꽃들을 짖밟으며 걸어가다 결국 중심을 잃고 그 꽃송이의 위로 툭 쓰러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는 몸을 그저 놓아두고서, 꽃들 주변을 감도는 보라색의 감정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광활히 펼쳐진 꽃밭의 위, 넝쿨이 뒤덮은 건물들의 그림자 아래서 그녀는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위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그녀를 향해 졌다.


짙은 청색과 보라색의 꽃 위에서, 파란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가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 몸의 절반 정도 크기의 배낭을 매고서, 손에는 피묻은 쇠파이프를 쥔 고등학생 나잇대의 여자였다.


그녀는 가비를 발견하고 의식을 확인한 뒤, 일어나지 않는 가비를 부축하고서 대피소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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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3. 미스틸테인 23.04.02 18 0 12쪽
2 02. 물망초 23.04.02 13 0 16쪽
1 01. 흑장미 23.04.02 32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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