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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오브덕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의 몸은 꽃을 피우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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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덕
작품등록일 :
2023.04.02 23:26
최근연재일 :
2023.04.10 01:29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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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추천수 :
2
글자수 :
39,600

작성
23.04.02 23:37
조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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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4쪽

01. 흑장미

DUMMY

01. 고든


항상 짙은 안개가 깔려있던 웰링턴 가. 눈을 뜨고도 앞이 제대로 분간이 안되는 영국의 안개는 한 달이 돼서야 적응이 된 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탐정이 되고 싶었던 그였지만, 어째서인지 면접을 보는 족족 닥치는 불행들에 아쉽게 붙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꼭 곁에 두고 있던 셜록 홈즈의 첫 이야기를 다시 첫 장부터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게 그의 취미였다.


몇 번이고 읽은 터라 헤지고 찢어져 남들은 읽을 수도 없는 고물이 되어있었지만, 고든에게는 그런 건 신경 외의 일이었다. 오히려 나만 읽을 수 있는 비밀 수첩이 생긴 기분이라며 좋아하던 그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짙게 낀 안개를 10파운드의 월세를 내며 살고 있는 좁은 단칸방의 창문을 통해 바라보며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이던 고든은, 우두커니 앉아 멍하니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거의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족과 함께 살던 원래 집을 잠시 떠나 어렸을 때의 꿈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지만, 한 달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의 적응기에서부터 그의 몸은 너무나 지쳐있었다.


어느새 노신사들의 수염처럼 자란 콧수염은 누가보면 영국에서 살던 사람처럼 보였으나, 엄연한 벨기에의 사람이었다.


= ...유난히 안개가 짙군.


그렇게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아침을 맞이한 고든이었지만, 그는 곧 오늘이 다른 날과 같은 평범한 날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살던 단칸방의 입구에 쓰러져있던 한 구의 시체. 검은색 장미가 몸을 엉성하게 감은 체 몸통이 난자되어 피를 뚝뚝 흘리고 있던 한 여성의 시체였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듯 환부에서 계속 흐르는 피는 웰링턴 가의 자갈 도로의 빈틈을 메워가며 빨간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그 시체의 첫 발견자는 아침 이른 산책을 즐기려 밖을 나온 고든이었다.


그는 그 시체를 보고는 놀라워하기보다는 시체를 보고 사건의 전체적인 틀을 짜고 있었다. 그렇게 3분 정도의 사색을 즐긴 고든은 그제서야 옆 파출소로 걸어가 경찰들을 끌고 자신의 집 앞으로 데려왔다.


경찰들은 이상하고도 괴이한 시체의 상태에 놀라며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그 후, 용의자를 찾기 위해 웰링턴 가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딱 하나,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시체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는 증언을 한 고든이었다.


= 서로 가시죠.


그는 자신의 결백을 알았기에 순순히 조사에 임했고, 조사의 결과는 다행히 용의자가 되기에는 부적합. 이라는 결과였다.


단칸방으로 내려오는 층계의 CCTV에서 고든이 밖으로 나온 시각이 피해자의 사망 추정시간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단칸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계단을 올라야만 했고, 어딜 봐도 다른 출입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시간 정도의 짧은 조사를 마친 고든은 폴리스 라인을 넘어 유유히 자신의 단칸방이 있는 낡은 건물의 정문을 열고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5분정도의 침묵이 이어지던 순간에, 그는 자신이 앉아있던 목재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서로 가기 전에 몰래 찍어뒀던 사진을 휴대폰의 사진첩에서 꺼내 확인했다. 그러고는, 끝내 이 사건은 살인 사건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02. 바이올렛


유럽의 변두리의 무슨 나라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출신지를 밝히는 10대 소녀는, 여느때와 다름없는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로웠던 그녀의 일상은 곧, 그녀의 친구가 장미꽃으로 묶여 난자되어 죽은 시체가 되어있었다는 말과 함께 끝나버렸다.


경찰은 사건 발생으로부터 8시간이 다 되어가는 데에도 용의자 하나가 나오지 않자 이번에는 시신이 된 여성의 친구였던 바이올렛을 찾아갔다.


허나, 그들은 그들의 말에 조심하지 않았다.


고작 18살밖에 안 된 소녀에게는 너무나 참혹했던 진실을, 그들은 별 감정 없이 그대로 서술했다.


마음을 추스를 새 없이 몰아쳤던 진실들은, 원래부터 불안정했던 그녀의 정신을 무너뜨렸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정신이 허약했다.


만화 속에서 보는 죽음에도 혼절하고는 했다. 그런 소녀에게 실제로 다가온, 그녀의 친구의 잔인한 죽음은 그녀의 정신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일주일간 의식이 없는 채로 입원해있었다.


- 왜, 어째서..


그녀는 의식이 없던 일주일간, 자신의 내면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죽은 친구, 코니가 있었다.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던 둘 간의 대화에서, 소녀는 사건의 진상을 듣게 되었다.


그녀가 유난히 허약한 정신을 가졌던 이유, 그녀는 다른 이들의 영혼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그들의 마지막 모습으로 그녀의 눈에 비쳤다.


비록 그것이 매체에서 만들어진 캐릭터이건 상관 없이 대부분 어딘가에서 피를 흘리며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웰링턴 가를 걷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그녀가 걷는 웰링턴 가에서 보이는 죽은 이들은, 모두 젊은 사람들이었으니까.



03. 가비


고든이 살던 단칸방의 맞은 편에는 도넛 가게가 하나 있었다. 유명한 브랜드의 도넛이 아닌지라 이용하는 사람은 적었지만, 조용한 곳에서 돈을 벌고 싶어하던 가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자리였다.


그녀는 사람이 많은 장소를 싫어했다. 혹여나 번화가를 지나칠 일이 생길 때면, 검정색 후드티 위에 커다란 헤드셋을 겹쳐 귀를 완전히 막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래만 보며 걸었다.


웰링턴 가는 사는 사람이 원체 적었던지라 그런 차림을 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웰링턴 가에서 보냈다.


평일에는 손님이 거의 없는 도넛 가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가판대를 지켰고, 주말에는 집에서 기르는 검은 고양이를 끌어안으며 보냈다.


기분 좋은 듯 가르랑대는 고양이를 보고있자면, 그녀는 평일 간 받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고양이와 함께 일광욕을 즐기곤 했다. 노곤해지는 낮에, 커다란 유리창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느끼며 낮잠을 자는 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모두 좋아했다.


- 야옹.


그녀는 고양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고양이의 동공에서, 그녀는 노랗게 피어나는 개나리의 색을 보았다.


나른하게 울리는 음악이 귀에 맴돌았다.


그녀는 생명의 감정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번화가를 싫어하는 이유도 이에 기반했다. 모두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색들이 어지럽게 섞이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이유 모를 환멸을 느꼈다.


되도록 그 모습들을 피하려 눈을 바닥에 내리 꽂고 다녀도, 그들의 감정은 그녀의 귀로 한 번에 흘러들어왔다.


각각의 감정마다 울리는 음정들은 그녀가 어디선가 들어본 음악들에 기반했으나, 이들이 한 번에 흘러들어왔을 때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런 현상은 그녀가 5살 때쯤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19년 전 웰링턴 가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유일하게 눈으로 목격한 목격자였다.


다행히 범인은 현장에서 달아나느라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범인을 동그랗게 뜨인 그녀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순간, 칙칙한 보랏빛이 달아나고 있는 범인의 주위를 꽉 매웠다.


귀에는 평소에 그녀가 무섭다고 느꼈던 음악이 흘러들어왔다.


그녀는 처음 느껴보는 경험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소리에 찾아온 주변 사람들은 그녀 앞에 있는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모두 공포의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살의 가비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새빨간 풍경들을 눈으로 맞이했다.


귀에서는 차마 듣지 못할 끔찍한 소리들이 울렸다. 그 이후로 가비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았다.






04. 데이빗


가비가 일하는 도넛 가게의 바로 옆에는 기념품점이 하나 들어서있었다.


가게 밖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건 한 눈에 봐도 잘 만들어진, 낚싯줄로 천장에 매달려있는 비행기 모형들이었다.


본래 웰링턴 가에 관광 목적으로 온 외부인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두어 개 만들어 달았던 판매하지 않는 모형들이었지만, 이제는 이 가게의 주 상품이 되었다.


비록 웰링턴 가에서 보이는 비행기라고는 아이들이 접어 날리는 종이비행기였지만, 짙은 안개를 피하기 위해 잠시 들어온 손님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잘 만들어진 모형 비행기가 제격이었다.


그렇게 웰링턴 가 한 켠에 자리잡은 기념품점의 주력 상품이 되어있었다.


비록 가격은 사악했지만, 원재료 값은 매우 저렴했기에, 기념품점의 주인인 데이빗에게는 남는 장사였다.


원래 그는 손재주가 좋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던지라 그런 모형들을 만들어내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꽤 괜찮은 매출을 올리고 있던 데이빗에게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최악의 날이 다가왔다.


= 어서 오세요.


갑작스레 찾아온 사복 차림의 두 남성은, 데이빗에게 그가 여학생 살해 사건의 용의자라며 조사 명령을 내렸다.


자신을 형사라 소개하며 그의 양팔을 잡아 끌고가려는 형사들을 본 데이빗의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비록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런 범죄까지 저지르는 질 나쁜 사람은 아니라 자부할 수 있었기에 형사들에게 거칠게 대응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건 거친 욕설과 폭력이었다. 그렇게 야심한 밤에, 한 명의 범인이 만들어졌다.


어느새 데이빗의 얼굴은 전 세계 방송에 보도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 여학생의 복부를 칼로 수차례 찌르고 주변에서 구해온 장미 넝쿨로 묶었다며 범행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 순탄한 검거 과정은, 오렌지 색 죄수복이 가리고 있는 그의 몸에 퍼렇게 핀 멍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30년형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형벌을 받은 그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질타를 받으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교도소에 있던, 창살이 드리운 창문 바로 밑의 빨간 피안화가 심긴 화분을 바라봤다. 그는 이 말도 안되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유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날마다 창밖만 바라봤다.


수감자들의 폭언과 폭행이 수차례 있었던 그 날에도 그저 창가에 자리잡아 하늘을 바라봤다. 그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고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었다.



05. 휴고


웰링턴 가에 드리운 짙은 안개만큼이나 이 거리를 어둡게 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터스크라는 이름을 가진 범죄 조직은, 이 거리를 본거지 삼아 이 웰링턴 가의 밤을 더럽게 물들이고 있었다.


다행히 옛날에 비해 조금 사그라들었다고 해도, 터스크는 여전히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거리의 병적인 존재들이었다. 휴고는 터스크의 보스인 마셔의 아들이었다.


마셔는 휴고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길 원했다. 매체에서 묘사되는 수많은 깡패들이 느끼는, 자신의 자식들은 범죄에 몸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그 또한 가지고 있었다.


마셔의 아들인 휴고는 다행히 마셔의 염원대로 아주 올곧은 아이가 되어있었지만, 그의 주변 환경은 밝은 성격의 휴고와 대비되게 어두웠다.


마셔의 몸에서는 항상 피 냄새와 화약 냄새가 났고, 휴고는 그런 아빠를 보며 자신도 저런 사람이 될까 두려워했다.


= 아들, 커서는 이 아빠처럼 되지 말아라.


마셔는 이 말을 휴고에게 전하고 집 문을 나섰다.


그 이후, 마셔는 누군가의 총에 맞아 돌아오지 못했고, 결국 이 말은 휴고에게 있어 아빠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마셔가 죽자 그의 최측근들은 각자가 품었던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마셔의 아내가 휘말리게 되었다.


자신이 조직의 보스가 되지 못할 상황이 오자 그들이 존경했던 마셔의 가족을 건드리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터스크의 모두가 그를 욕하며 휴고를 감쌌지만, 이는 아주 잠깐의 일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마셔의 아들인 휴고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술수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은 마셔 부인의 생사에는 철저하게 관심이 없었으니까. 결국 마셔 부인은 자신의 남편이 이끌던 조직의 사람에게 총을 맞아 죽었다.


어렸던 휴고는 큰 충격에 빠졌다. 다른 걸 탓할 순 없었다. 다른 요인들을 탓하기에는 그는 너무 어리고 여렸다.


그렇게 그 책임의 소재는 휴고 본인에게로 온전히 돌아갔다. 휴고의 이모가 그를 맡게 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그는 자신의 팔을 그었다.


그와 그녀를 지키지 못한 자에게 행하는 꼬마의 차디찬 복수이자 뉘우침이었다.


그렇게 그는 2년 동안 정신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원을 나오고 나서는 큰 문제 없이 사회에 적응하며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터스크는, 이제 그의 정상적인 삶까지 앗으려 그에게 접근했다.


= 도련님.


터스크의 보스가 한 번 더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조직원들은 적임자를 물색했고, 초대 보스의 아들이었던 휴고에게까지 그 손이 닿았다.


휴고는 검은 양복을 입고 우산을 어깨에 걸친 이들을 보고는 어렸을 때 보았던 헛것들이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혼자만 감내했던 고통은 그에게 뚜렷한 선악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자신에게 악의를 품고 다가오는 이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동반했다.


당장이라도 휴고는 그들을 죽일 마음의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그렇게, 웰링턴 가에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살인 하나가 뒷산 깊숙이 묻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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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6. 해바라기 23.04.10 13 0 16쪽
5 05. 대나무 23.04.03 17 0 20쪽
4 04. 로벨리아 23.04.02 16 0 9쪽
3 03. 미스틸테인 23.04.02 17 0 12쪽
2 02. 물망초 23.04.02 13 0 16쪽
» 01. 흑장미 23.04.02 29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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