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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오브덕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의 몸은 꽃을 피우기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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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덕
작품등록일 :
2023.04.02 23:26
최근연재일 :
2023.04.10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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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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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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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미스틸테인

DUMMY

미스틸테인이라 불렸던 나무들은, 아서의 죽음 이후로 웰링턴 가 곳곳에서 자라났다.


대상을 특정할 수 없이 광범위한 사람들의 몸에서, 그들의 살갗을 뚫고 나무들이 자라났다. 미스틸테인은 잎도, 꽃도, 열매도 자라나지 않았다.


그저 칙칙한 흑갈색의 외피만을 두르고, 웰링턴 가의 사람들을 양분으로 삼아 그들의 몸에서 뿌리내려 자라났다.


미스틸테인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수였다.


웰링턴 가의 사람들은 혹시 자신의 몸에서도 가지가 돋아나지는 않을까, 라는 두려움에 그들의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휴고만은 웰링턴 가의 텅 빈 거리를 거닐었다.


휴고는 죽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전보다 칙칙한 색감으로 드리운 안개 속을 걸었다. 공허한 표정으로,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으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체 걷기만을 반복했다.


그러다, 그의 눈에 환하게 불이 들어온 도넛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 도우 도넛. 정상영업합니다.


휴고는 가게 안을 빤히 바라봤다.


그 안에는 갈색 피부에 점원 복장을 입고 헤드셋을 눌러쓴 사람이 있었다.


그가 본 점원의 이름은 가비였다.


가비는 가게 밖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휴고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선반 밑으로 몸을 숙여 숨었다.


그런 가비를 보고 휴고는 가던 길을 마저 걸었다. 가비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선반에 진열되어있던 스트로베리 도넛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물론, 도넛 값은 계산대에 넣고서 말이다.


가비는 도넛의 반을 뜯어 한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러다, 눈 앞에 누군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짙은 보랏빛 색감의 감정을 띄고 있던 사람, 휴고였다. 가비는 그렇게 짙은 보라색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휴고에게서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휴고는 그런 가비의 반응에 의문을 가지며 계산대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가비에게 다가갈 수록, 그녀의 귀에서는 괴기한 소리가 들렸다.


끽끽대며 웃는 듯한 금속음. 귀를 막아본다 한들 막을 수 없이 뇌에서 울리는 소리에 그녀는 아래위로 떨리는 검은자위를 숨기려 눈을 아래로 폭 내리깔 뿐이었다.


휴고는 작게 떨고있는 그녀를 보며 짧은 인사를 하고선 가게를 나왔다. 그를 두려워한단걸 깨달은 그의 배려이리라.


휴고가 가게로 들어왔던 것은 사소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행인 없는 거리를 앞에두고 문을 연 대담한 가게의 생각이 궁금했을 뿐이었으니. 물론 이는 병원에 있다 일주일을 집에서 쉬느라 바깥 소식을 듣지 못한 가비의 독단이었다.


휴고가 떠난 뒤, 가비는 마음을 추스르고 가게 정리를 계속했다.


거리에 지나는 것이라고는 안개들 뿐이었기에, 그녀는 원래 굽던 양의 1/4 분량의 도넛만 준비해 채워놓았다.


느끼한 기름 냄새가 주방에서 바깥으로 퍼져나가 거리로 스며들며 주변 고양이들이 도넛 가게의 환풍구에 나란히 모이게 되었다.


 고양이들이 나란히 모인 자리 바로 아래서, 마음을 겨우 추스른 가비가 머리를 털며 일어났다.


아직도 그녀의 표정은 겁에 질린 듯 보였지만, 그래도 다시 계산대 앞에 꼿꼿이 서 올 손님을 기다렸다.


물론 손님은 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바깥의 안개를 보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같은 시각, 휴고는 밖에 나와 도넛 가게를 바라봤다.


도넛 가게의 위에서는 약간의 기름 냄새와 그 앞에 나란히 앉아있는 고양이들이 보였다.


검은 빛깔의 털을 가진 고양이는 휴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을 부라리며, 그의 걸음을 눈으로 쫓았다. 휴고는 고양이들을 잠시 바라보다 갈 길을 걸었다.



그가 떠나고 얼마 뒤, 검은 고양이의 등에서 자그마한 한 쌍의 이파리가 돋아났다.



  가비와 휴고는, 어찌 보면 자의로 뛰쳐나온 거의 유이한 사람이자, 후에 있을 격동의 전조 가운데 서 있던 사람들이었다.


나무들이 자라나는 웰링턴 가에서, 그들은 그 나무에 둘러싸일 운명이었다. 지금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다시 시간이 지나 해가 안개를 어느정도 걷어낸 지금, 가비는 여전히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리며 창밖만을 보고 있었다.


바깥은 햇빛이 비쳐 보이지 않던 반대편 건물까지 훤했지만, 반대편 역시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되는 기다림에 지쳐 잠시 몸을 의자에 앉혔다.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해봤다. 아까 들어왔던 그 남자에 대해, 그가 둘렀던 감정의 색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두운 자줏빛이 기억을 뒤덮으며 퍼져나가자, 가비는 다시 떠올린 기억을 집어넣으려 힘썼다.


잠시였지만, 그 광경은 너무나 무서운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비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이제는 밝아진 창문 밖의 거리를 보며 한숨을 돌렸다.


그때, 창문을 타고 검은 무언가가 긴 형체를 내비치며 내려오고 있음을, 그녀의 습한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것은 검은 털과 붉은 피로 뒤덮인 십수개의 넝쿨 가닥이었다.


넝쿨들은 그녀가 있는 건물의 위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검은 고양이의 꼬리를 억지로 늘려놓은 모양새로, 이리저리 뒤틀고 비틀어 곧게 뻗도록 만든 것처럼.


수북이 달린 털들 사이로 녹색의 잎들이 고개를 내밀었고, 그 아래에는 세로로 난 동공이 새겨진 눈들이 열매인 양 달려 위아래로 흔들렸다.


개중 몇몇은 갈라져 속의 투명한 액체들을 아래로 쏟고 있었다. 넝쿨은 도넛 가게의 유리창을 서서히 감았다.


마치 근육에 힘이 들어가듯, 넝쿨이 수축하며 건물을 죄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느새 유리창은 넝쿨에서 묻어나온 벌건 피로 뒤덮였다.


가비는 그 자리서 가만히 있었다. 동그랗게 뜨여 감기지 않는 눈을 어디로 돌리지도 못하고 기이한 광경에 압도되어, 공황에서 오는 발작만을 제자리서 반복했다. 벌겋게 얼룩진 흰자위에서 격한 떨림이 느껴졌다.


눈을 파내버리고 귀를 뜯어내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가며, 가비는 살면서 들어볼 기회조차 없을 괴성을 듣고, 괴이한 색채를 눈에 비쳤다.


살을 찢어 그 속을 보여주듯이 빨간 적색과 그 새로 보이는 동맥의 청색. 썩어가는 살갗의 황색. 그 모든 색들이 섞이지 않고 넝쿨을 둘러가며 부유하는 기묘한 광경.


녹슨 쇳조각을 문지르는 듯 날카로운 쇳소리와 살점을 썰어대는 듯 공포에 가득찬 비명, 그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피 튀기는 소리. 그녀가 버틸 리 없을.


헛구역질, 비명, 흐느끼듯 울리는 음성.


십수개의 다발들이 마치 쇠창살처럼 감긴 하나의 감옥.


여기저기서 흘러대는 피와 안구의 유리체. 고서에 서사된 지옥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가비는 그 지옥 속에 있었다.



.

.

.



그들이 알던 웰링턴의 거리의 분위기가 서서히 일그러졌다.


종일 드리웠던 안개는 이제 보고도 믿지 못할 것들을 가려주는 차폐막이 되었고, 분주하진 않았으나 사람들이 오가던 거리는 어느샌가 자라난 풀꽃들이 뒤덮어갔다.


여기저기 찍혀있던 발자국은 민들레가 덮고, 아이들이 묻힌 벽의 얼룩둘은 작약꽃이 뒤덮었다.


약하게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을 따라 날리는 민들레의 종자는 도로에 자취를 찍어대던 사내의 뒤를 따랐다.


그가 발을 딛고 떼기를 반복할 때마다, 한 송이의 민들레가 그의 뒤를 따라 피었다가 씨앗을 맺고는 시들기를 계속했다.


그러다, 한 무더기의 씨앗이 그의 뒤꿈치에 닿았다.


그러자 그 씨앗들은 순식간에 바스라져 사라졌다. 휴고는 그것을 알지 못한 체 앞만 보며 걸었다.


그의 앞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각색의 풀꽃들이 자신의 종자와 꽃가루들을 휘날리는 모습이었다. 그는 날아드는 입자들을 오른손으로 입과 코를 가려 막으며 나아갔다.


그가 지금 이 길을 걷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있다 해봤자 약간의 기분 전환용일 뿐, 일상 속에서 반복했던 산책이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양 웰링턴 가를 걸었다. 이윽고, 가비에게 닥쳤던 혼돈과 공포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가 도우 도넛을 나온 지 15분 정도 뒤에, 밝은 빛이 웰링턴 가로 쏟아졌다. 그렇게 일순간이었지만, 안개들이 모두 걷히며 흔치않은 화창한 광경이 이어졌다.


아무 생각없이 걷던 휴고도 일순의 광명에 무심코 하늘을 바라봤다. 흔치 않은 태양광에 언제나 어두웠던 그의 표정도 조금 풀어졌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옆에 있던 건물의 창문들이 하나 둘 열리며 사람들이 창틀에 걸쳐 햇빛을 받으려 몸을 바깥으로 뻗었다.


그러다, 작은 체구의 남성이 건물의 5층에서 창문 바깥으로 떨어졌다.


그는 떨어지는 와중에도 태양을 직시하며 팔다리를 벌렸다.


마치 이 순간을 즐기는 이처럼 미소지으며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휴고는 그의 옆에서 그의 낙하를 시작과 끝을 직시했다.


떨어진 충격으로 조각나 흩어진 남성의 머리 파편을 잇는 혈흔은 그물의 형상이었다.


산산히 부숴진 얼굴에도 그의 입만은 미소를 띄었다.


휴고는 머리가 조각난 시체를 보며, 잊있던 두려움 하나를 떠올렸다.


그는 그의 부친의 죽음 이후로 악몽만을 꿨으니, 그 꿈들은 죽은 그의 아버지를 묘사했다. 팔다리가 뒤틀리고, 머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 얼굴이 담고 있던 눈 코 입은 서로 떨어져있으며, 복부는 찢어져 안의 창자를 내놓아둔 끔찍한 참상.


그는 오랫동안 꾸지 않은 꿈을 현실에서 꾸었다.


휴고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억지로 묻어놓고 꺼내지 않았던, 자신이 만들어낸 아버지의 모습을 현실에서 보았으니, 아무리 무뚝뚝한 그라도 버티기 힘든 모습이리라.


그러나 해가 다시금 구름에 가려져갈 때, 마치 나무에 달린 꽃들이 떨어지듯 열린 창문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낙하했다.


그 풍경은 마치, 하나의 낙화였다.


이윽고 둔탁한 파열음이 거리를 가득 매웠다. 대자로 누운 채 피를 쏟는 열 몇구의 시체들은 도로를 벌겋게 물들였다.


휴고는 그들 사이에 둘러싸인 체 움직일 수 없었다. 당장 그의 눈에 비친 건 열 한 명의 아버지와 어머니였으니까.


부모의 널부러진 시체들을 보며 휴고는 환멸을 느꼈다.


어지럽고 불안한 느낌이 그의 몸 전체에 감돌았다. 곧, 그는 눈을 꼭 감고 뒤로 걸었다. 그는 부친의 혈흔을 밟고, 모친의 시체를 걷으며 자리에서 도망쳤다.


휴고의 무뚝뚝한 표정에도 공포가 짙게 서렸다.


그가 조심히 내딛는 걸음마다 그에게 밟힌 피에서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자그맣고 푸른 열 한개의 싹은 주변의 피를 마시며 굉장한 속도로 돋아났다.


휴고의 뒤에서도 어느새 자란 작은 나무가 그의 뒤를 막아섰다. 등에서 느껴지는 꺼끌한 감촉에 그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의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은 시체 위에서 자라난 커다란 수목들이었다.


그는 작은 숲 가운데 홀로 서있었다. 붉은 잎의 나무들 사이에서 핏빛 발자국들을 찍어가며 거리를 위태롭게 거닐고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공포를 느꼈다. 물론 겉으로 심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내면에는 거친 울림이 퍼져갔다. 그 파형은 심히 일그러져 있었기에, 그의 속에서 난잡하고 시끄럽게 울렸다.


그는 언제까지나 그저 한 ‘사람’에 불과했다. 다만, 남들은 볼 수 없는 악의를 통찰하는 눈을 가진 이었기에 오직 그만이 기이하게 뻗은 나무에서 오는 순수한 악의를 볼 수 있었다.


비일상의 가운데에서, 그는 그를 둘러싼 살의에 묻혀 가만히 떨었다.


공포는, 언제 어디서나 그것의 싹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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