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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시의 집필공방

은퇴한 킬러는 지킬 게 생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다비시
작품등록일 :
2023.05.10 17:17
최근연재일 :
2023.05.18 18:4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218
추천수 :
5
글자수 :
41,382

작성
23.05.1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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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4)

DUMMY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4)



남자는 쇼핑백들을 한 손에 옮기고 다른 한 손으로 소녀를 안아 들었다.


“그래도 네가 이쪽 세계로 완전히 넘어오는 건 반대다.”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하지만 전 이미······.”

“한 발은 실수로 내디딜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 발까지 디딘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어.”


소녀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그래도 만약 필요한 일이 생기면, 그때는 내게 말해라.”


한두 발도 아닌 자그마치 1만 번의 걸음을 반복한 남자에게 이곳은 지옥이었다.

그리고 지옥이란 본디 끝이 없는 법이다.


이곳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고, 남자는 소녀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랐다.


“너무 얘기가 무거워졌군. 먹고 싶은 거라도 있나?”


남자가 시선을 소녀에게로 옮기자 소녀의 표정이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갔다.

결벽시는 찰나 동안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모조리 잡아내었다.


“음······. 저는 피자요!”

“피자?”

“네. 책으로만 봤었는데 되게 맛있어 보였어요. 하얀 게 엄청 막 늘어나던데.”


주변에 피자 가게가······ 있었다.


소녀를 안고 도시를 걸으니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분명 소녀의 빼어난 외모 때문일 터.


“······아저씨? 그런데 왜 사람들이 다들 이쪽을 쳐다보죠?”


소녀가 남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행색이 초라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포장지가 달라지니 열광하기 시작한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안의 내용물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바보들이다. 선물을 감싼 포장지만 보고 좋아하는 어린아이와 같지. 무시하면 된다.”

“음······. 잘 이해는 안 되지만, 그럴게요.”


남자와 소녀는 피자 가게로 향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피자는 꽤 먹을 만했다.

소녀는 기뻐했고, 감자튀김과 콜라도 맛있게 먹었다.


호텔로 돌아온 남자와 소녀는 체크인 후 네 시간 만에 방에 들어갔다.


큼지막한 침대가 두 개 있었고, 거실과 인테리어 또한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소녀에게 실내를 구경할 틈 따위는 없었다.

바로 침대에 몸을 던지려는 걸 설득해서 양치만 겨우 시켰다.


‘잘 자는군.’


제이크의 말마따나 새벽부터 그곳까지 걸어온 거라면 무려 이틀을 뜬눈으로 지새웠던 셈.


게다가 활동량도 급증했을 테니 진즉 곯아떨어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


남자는 룸에서 나와 비상계단에 들어섰다.

어두웠던 실내가 움직임을 인식했는지 환한 조명이 켜졌다.


전화기를 열고 버튼을 누르자 곧 신호음이 이어졌다.


“제이크.”


[웬일로 먼저 전화를 거네. 호텔 생활이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 하여튼, 신분은 이미 준비됐어. 경찰 측에서 좀 거들어주긴 했는데, 하필 그쪽 매물이 별로 없더라고. 아무래도 바로 들어가려면 작은 빌라에서 살아야 할 것 같아. 그래도 다행히 신축이긴 하지만.]


“그건 상관없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뭔데?]


오랜 시간 가만히 있자 조명이 저절로 꺼지며 사위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 애. 지금 연기를 하는 중이야.”


[뭐?]


전화기 너머로 당황스러운 감정이 전해져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 과거는 이미 다 조사해봤다고. 건질 것 없이 깨끗했어. 스파이는 절대 아냐.]


“오해가 있군.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야. 내게 마음을 완전히 연 척하고 있다는 거지. 속으로는 불안을 달래면서.”


[엉? 에이, 난 또.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 그만큼 네가 마음에 든 거겠지. 시간이 다 해결해 주지 않겠어?]


“날 닮고 싶어 해.”


[······.]


제이크가 처음으로 침묵을 지켰다.


“동경일 수도, 단순한 존경일 수도 있지. 어쩌면 처음으로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내가 평범한 삶을 살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애의 표정을 봤다.”


남자는 그 찰나를 회상했다.

수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공통적으로 그것들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의문. 이해하지 못했던 거지. 나와 같으면서, 왜 나처럼 행동하면 안 되는지.”


[······비틀렸군.]


단단히 비틀렸지.


“그런 환경이었으니까.”


[마치 네 과거처럼 말이지.]


킬러의 삶.

그 자취를 밟고 싶어 한다는 건 도시에 도착하기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 본 그 순간부터.


하지만 평범한 삶을 경험하면 곧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남자의 물음에 제이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방법이야 찾으면 나오겠지. 그런데······ 왜 뭘 하려고 해?]


“······뭐?”


[처음에는 후계자라도 만들려고 그 애를 데려간 줄 알았어. 너보다 영특하고, 시작이 제일 어려운 일을 홀로 해냈으니까. 뭐, 힘이나 기술은 좀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널 닮고 싶어 한다는 말에 같이 기뻐해 주려고 했지. 비틀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말투가 좀······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네.]


“비틀림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야. 비정상적인 거지.”


[하지만 일반인이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지. 원래 세상은 특별한 자들에게 조명을 비추는 법이잖아. 그 소녀는 특별한 삶을 살게 될 거야.]


전화기를 쥔 남자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난 그 애가 나와 같은 길을 걷는 걸 바라지 않아.”


[······의외네. 네 성격상 스스로도 아직 이유는 모르겠지. 뭐, 난 이쪽이 더 좋다고 생각해. 그래도 이미 비틀린 걸 고치려고 하는 건 오히려 독이라는 거 알지?]


“다루는 법을 알려줘야지.”


[푸핫! 너조차도 20년이나 걸려서야 가능했던 일이야. 그래도 그 애는 옆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있으니 너보다는 빠르겠네.]


그렇게 말하며 제이크는 소녀가 남자보다 몇 배는 더 똑똑하니 가능할 거라고 덧붙였다.

달리 반박할 말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내가 킬러를 시킬 거라고 생각한 거지?”


남자가 물었다.

제이크는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네가 타인과의 교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했고. 음, 솔직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 이유는 없네. 과거의 네 모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려나?]


남자는 오른 눈썹을 반으로 가른 흉터를 매만졌다.

킬러로 활동한 이후 남자에게 새겨진 낙인은 전무.


이건 지금의 소녀보다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큰돈을 빌리고 잠적한 탓에 대부업자들에게 납치당했을 때 생겼던 상처였다.


“그렇지. 과거는 지울 수 없으니.”


소녀에게 후회할 과거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어······. 딱히 널 폄하하려고 한 말은 아니다. 알지?]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덕분에 좀 개운해졌군. 어차피 너도 경험은 없을 테니 방법은 내가 찾아보지.”


[그래. ‘어차피 너도 경험은 없을 테니’라는 말은 뺐어도 됐을 텐데. 아무튼 준비가 끝나면 부를게. 너도 한번 새로운 일상을 살아보라고. 파이팅이다!]


전화를 끊고, 남자는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

소녀는 아까 누운 모습 그대로 자고 있었다.


남자는 소녀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반대쪽 침대에 다가가 몸을 뉘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지만, 남자는 눈을 감았다.


무방비한 시간.

누군가의 옆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그 사람을 완전히 믿고 있다는 말과 같다.


‘마음을 열지 않은 것은 나였나?’


소녀는 이렇게나 마음 놓고 자고 있는데.

나란 놈은 정말이지.


아무래도 오늘 밤은 좀 길어질─


“─저씨! 아저씨? 아직도 주무세요?”


소녀의 말에 남자는 번쩍 눈을 떴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따스한 햇살이 시야를 방해했고, 소녀는 언제 씻었는지 몸단장까지 이미 끝낸 상태였다.


‘몸이······ 개운하군.’


실로 오랜만의 숙면이었다.

남자는 목을 좌우로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고는 소녀를 쳐다봤다.


“어딜 가려고 아침부터 그렇게 차려입은 거냐.”

“어······. 글쎄요? 오늘도 어제처럼 어딘가엔 갈 줄 알아서요. 혹시 오늘은 방 안에만 있을 예정이에요?”


사실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어제, 정말로 부담스럽진 않았나?”

“······그건 왜요?”

“그냥 물어보는 거다.”


소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아저씨 성의인데 괜히 빼면 저만 이상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돈도 엄청 많고, 도와달라고 한 사람이 또 저이기도 하고······.”


남자를 힐긋 곁눈질한 소녀가 넌지시 물었다.


“제가 부담스럽다고 하면 좀 조절해주실 생각이에요?”

“딱히.”

“에? 그, 그럼 왜 물어보신 거예요!”


소녀의 얼굴에 허무가 깃들자 남자가 벗어놓은 재킷을 걸치며 말했다.


“부담스러워하며 받는 것과 아예 감정 자체를 숨기는 건 다르니까.”


남자의 말에 소녀가 눈을 깜빡거렸다.

그런 소녀의 머리를 약하게 헝클였다.


“으읏.”

“감정을 숨기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지 마라. 분명 그게 필요한 순간도 있겠지만, 습관이 되면 어느 순간 자신의 감정도 파악하지 못하는 날이 올 거다.”


남자가 그랬다.

그렇기에 아직도 제 행동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음, 네. 노력해볼게요.”


하지만 노력할 것이다.

소녀가 그와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게 할 것이고, 비틀린 사고를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칠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평범한 삶이 일상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나 또한.’


꼬르륵.

소녀의 배에서 소리가 들렸다.


“일단 나가지. 아침은 먹어야 하니까.”

“네! 아, 혹시 메뉴는 제가 골라도 돼요? 어제 다시 호텔로 돌아올 때 되게 맛있어 보이는 거 있던데. 그거 한번 먹어보고 싶어요.”


천연덕스러운 소녀의 모습에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음 보는 남자의 미소에 잠시 놀란 소녀는 이내 빙그레 웃었다.


“그래. 원하는 대로.”


남자와 소녀는 그날 영화를 한 편 봤다.


새로 개봉한 영화였는데, 우연하게도 킬러와 단발머리 소녀가 나왔다.


킬러는 소녀를 위협으로부터 지켜줬고, 소녀는 킬러에게 감정을 알려줬다.


절대로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어갔다.


마지막에 킬러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소녀를 구하는 장면에서, 팝콘을 입에 물고 있던 소녀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감성적인 면도 꽤 있군.’


좋은 징조다.

눈물을 흘릴 수 없게 된 남자와는 달리 소녀에겐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호텔에서의 1주일은 빠르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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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킬러는 지킬 게 생겼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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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9) 23.05.18 10 0 10쪽
8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8) 23.05.17 11 0 10쪽
7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7) 23.05.16 15 0 11쪽
6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6) 23.05.15 17 0 10쪽
5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5) 23.05.14 19 0 11쪽
»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4) +1 23.05.13 24 1 11쪽
3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3) 23.05.12 27 1 10쪽
2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2) 23.05.11 29 1 11쪽
1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1) +1 23.05.10 6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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