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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시의 집필공방

은퇴한 킬러는 지킬 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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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시
작품등록일 :
2023.05.10 17:17
최근연재일 :
2023.05.18 18:4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210
추천수 :
5
글자수 :
41,382

작성
23.05.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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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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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1)

DUMMY

Prologue.



은퇴한 지 5년하고도 8개월.

남자는 전처럼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혹독한 훈련은 하지 않았다.


“흐읍, 후우.”


아침 일과이자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기초 운동.

그것만이 단련의 전부였다.


“그래, 제이크. 가면서 한 번 들르지.”


수화기를 내려놓고 식탁에 앉는다.

식사는 단출했다.

검게 그을린 토스트 하나, 그리고 약간의 채소.


가끔은 참치 통조림을 따기도 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


음식을 모두 씹어 삼키면 재킷을 두르고 나갈 채비를 마친다.

일자리를 구할 필요는 없다.


싸구려 집에 산다고는 하나, 킬러로 활동할 당시 벌어들인 금액은 가히 천문학적.

그저 평소와 같이 길을 떠돌며 세상을 구경할 뿐이다.


‘그토록 험악했던 도시가.’


이렇게까지 평화로울 수 있구나─ 하고.


그 말인즉슨.

이 고요하고도 단조로운 평화가 깨진 건······ 아마 5년하고도 8개월 만일 거라는 거다.


“아저씨, 저 좀 숨겨주세요.”


허리춤에나 겨우 머리가 닿을 듯한 앳되어 보이는 소녀.

의연한 척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무리 어두운 골목이라 해도 그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상처투성이 손, 너덜너덜한 옷, 부산스러운 머리카락.

그리고 결정적으로.


‘······피 냄새.’


남자는 몸을 낮춰 소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소녀에게 지어줄 표정은 없었다.


그저 평생 등에 짊어져야 할 숙제를.

너무도 어린 나이에 떠안게 된 사실에.

아주 조금, 안타까워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사람을 죽였구나.”


어리석게도.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1)



누굴 죽였는지도 모르고,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시신 뒤처리 또한 남자의 알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들어와라.”


국가는 법적으로 성인의 지문과 DNA만을 수집한다.

후미진 동네, 특히나 이런 골목 같은 경우 모형 CCTV가 전부였고, 평화에 찌든 경찰들은 더없이 나태했다.


시신이야 발견하면 알아서 조용히 처리하겠지.

사고든, 자살이든.

그런 위장 하나만큼은 탁월한 자들이니까.


“감사합니다.”


고로, 소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눠도 문제 되는 것은 없다.

반복되는 일상 속 있을 수 있는 작은 해프닝.

단지 그것에 불과했다.


철컥.


소녀가 들어오고, 문이 닫혔다.

겁도 없이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무방비하게 들어오다니─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소녀는 사람을 죽였고,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무려 살인이란 중범을 저지르고 모르는 이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날 알고 있군.”


남자가 사망으로 위장하여 은퇴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 없다.

일부 부패한 경찰, 총포사 주인 제이크.


‘그리고 개장수.’


가녀린 소녀와는 전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


침묵은 곧 긍정.

정보의 경로는 모르겠으나, 지금 당장은 결과로도 충분했다.


“사람은 왜 죽인 거냐.”


뜸을 들이던 소녀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죽어야 하는 사람이었어요.”

“내가 죽여왔던 사람들도 모두 그랬지.”


남자의 말에 소녀가 조막만 한 얼굴을 들었다.

그는 소녀의 시선을 본능적으로 회피했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기며 이마를 쓸어넘겼다.


‘어째서 변명을······.’


부끄러움인가.

생각해 보면 그렇다.


1만의 생명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이가 과연 누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미치겠군.’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애를 이곳에 데려온 거지?

외로웠나?

아니면 미쳐버린 건가?

그것도 아니면─


꼬르륵.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에 뒤를 도니 소녀가 배에 손 하나를 올린 채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또한 예의 무표정.


‘겁도 없이. 뭐가 이렇게 당당한 건지.’


밥 한 끼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건가.

어쨌든 곧 점심시간이긴 했다.


냉장고에 남은 음식을 어림해보던 남자가 소녀에게 말했다.


“뭐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군. 식탁에 앉아라.”


달그락.


점심은 아침과 같았다.

검게 그을린 토스트에 약간의 샐러드.


“잘 먹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 치운다.

토스트의 탄 부분은 약간 머뭇거렸으나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블러핑. 혹은 포커페이스. 어쨌거나 확실히 평범한 아이는 아니다.’


적어도 사흘은 굶은 것 같은데, 이런 과감한 전략이라.

조직에서 길러진 건가?

만약 배신하고 도주한 거라면 입장이 좀 곤란해지는데.


‘그럴 확률은······ 없겠지.’


작게 숨을 내뱉는다.

확실히 그가 생각해도 과대망상이었다.


설령 길러졌다 한들, 유약한 소녀가 빠져나올 구멍은 그 어떤 조직에도 없을 테니까.


달그락.


그릇 소리에 고개를 들자 남자의 식사에 손을 뻗던 소녀가 덜컥 몸을 멈췄다.

마주친 눈동자가 데구르르 아래로 굴러간다.


“죄송합니다. 안 드시는 줄 알고······.”


거참 뻔뻔한 소녀로군.

하지만 나름 신선하다.

남자의 세계에 어린아이는 오랜만이었다.


“괜찮다. 더 먹어도 된다.”


그렇기에 마음도 조금 약해졌다.

그래서는 안 됐는데.

설마 저걸 다 먹을 줄이야.


‘참······ 잘 먹는군.’


오늘 저녁에는 참치 통조림을 따야겠다.


“저기, 아저씨.”


포크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소녀가 불현듯 입을 떼었다.


“저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있어요.”


느닷없는 말에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남자의 의문 어린 눈초리에 소녀가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제가 예전에 아저씨께 의뢰를 넣은 남자예요.”

“의뢰를?”


남자가 짐짓 놀라 되물었다.

킬러에게 의뢰라 하면 그것밖에 없다.


청부 살인.


‘······이런 미친. 그 사람은 생각이 있는 건가? 이런 어린아이의 의뢰를 받았었다니.’


살해 청부는 모두 그녀를 통해 받은 터라 의뢰자의 신변은 아는 게 없었다.

청부를 맡긴 이유만 들었을 뿐.

그에 수긍하고 의뢰를 받아들였다면 이유는 나름 타당했나 보다.


뭐, 가정이 불우하면 자식이 의뢰를 넣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그런 환경을 모르는 건 아니니까.


‘잠깐. 그런데 살아있다고?’


남자의 눈이 순식간에 크게 뜨였다.


덜컹.


화들짝 놀라 일어서자 부딪친 식탁이 작게 흔들렸다.

잔 속 요동치는 물이 흘러넘쳐 손의 일부를 덮는다.


이 액체의 감각처럼 선명했다.

순식간에 식어버려 아릴 정도로 차가운 자극을 선사하는 뜨뜻한 핏물.


항상 그는 마지막에 직접 타깃의 목을 나이프로 그어 확인 사살을 해왔다.

그럼에도 타겟이 살아있다면, 짚이는 사람은 단 하나뿐이었다.


“······미안하군. 설마 살아있을 줄이야. 의뢰금을 원한다면 세 배로 돌려주지.”


몸 곳곳에 총상을 입은 채 4층 건물에서 추락한 사내.

남자가 유일하게 직접 마무리 짓지 못한 타깃이었다.


소녀의 말이 진실인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굳이 사실관계를 따지지는 않았다.

신빙성이 높기도 했고, 어차피 돈은 썩어 넘치도록 많았으니까.


그러나 소녀는 고개를 내젓더니 일어나 당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저랑 거래 하나만 하실래요? 후회하시진 않을 거예요.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요. 저나, 아저씨나.”


오호.

감히 킬러 앞에서 목숨을 운운하다니.


비록 은퇴했지만, 킬러란 목숨에 관련하여 가장 민감한 직업이다.

어쩌면 군인이나 의사보다도.


만약 소녀의 말이 꾸밈없는 진실이라면 소녀가 제시할 정보 정도는 가볍게 추리할 수 있다.


우선 소녀는 남자의 정체를 알고 있다.

의뢰를 넣었다고 하더라도 의뢰인에게 킬러에 대한 정보는 절대 비밀에 부친다.


아무런 힘도 없는 소녀가 남자의 정보를 얻을 길은 제한적이고, 특히나 거주지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결국 알아낸 거로군. 내 존재를.’


조직 데이먼(Damon).

작지도, 그렇게 크지도 않은 갱단이었지만, 그쪽 의뢰가 자주 잡혀 이래저래 원한을 좀 많이 샀다.


‘죽다 살아난 그 사내라면 상당히 뛰어난 추적자였으니. 내 얼굴을 알고 있기도 하고.’


즉 아버지가 모아놓은 정보에 몰래 손을 대고는 곧장 이곳으로 찾아왔다, 이건가.


하지만 아직 확실한 건 없다.

그러니 이제 사실을 확인할 차례다.


“혹시 네 아버지가 데이먼이라는 조직과 결탁을 했고, 나에 대한 정보를 모아 곧 습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건가?”


딸꾹.

소녀의 어깨가 간헐적으로 들썩였다.


“그, 그게······.”


소녀의 두 동공이 갈 곳을 잃은 채 허공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아무래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


추측성 질문이었는데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리기까지 한다.


다름 아닌 의뢰 실패로 인한 피해자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건 아니다 싶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 이러면 안 되는데······.”


휘청.

소녀의 다리에 힘이 풀리자 남자가 신속히 다가가 부축했다.

하지만 소녀는 이미 정신을 잃은 뒤였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한계까지 내몰린 상태를 지금까지 전혀 내색하지 않고 버텨온 것이다.


‘짓궂었군.’


첫 살인의 기억은 자극이 크다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날씨가 추우니 일단 따뜻한 곳에 눕히려 소녀를 가로로 안은 순간.


철컥.


문이 열리고, 제이크가 투덜거리며 들어왔다.


“어이, 급한 일이라고 했으면 빨리 올 것이지. 왜 지금까지 집에······. 어? 웬 꼬마 여자애를······. 기절까지 시켜놓고······?!”


제이크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자 엉거주춤 서 있던 남자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일단 작은 오해부터 풀도록 하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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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9) 23.05.18 10 0 10쪽
8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8) 23.05.17 10 0 10쪽
7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7) 23.05.16 14 0 11쪽
6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6) 23.05.15 17 0 10쪽
5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5) 23.05.14 18 0 11쪽
4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4) +1 23.05.13 23 1 11쪽
3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3) 23.05.12 26 1 10쪽
2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2) 23.05.11 29 1 11쪽
» Chapter 1.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1) +1 23.05.10 64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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