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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기갑 탄 모브캐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3
최근연재일 :
2022.08.01 11:30
연재수 :
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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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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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
글자수 :
481,525

작성
22.05.16 14:49
조회
1,100
추천
58
글자
12쪽

2. 튜토리얼 (4)

DUMMY

수동개폐장치를 이용해 강제로 비집고 들어간 조종석은 굉장히 익숙한 모습이었다.

무장전선 아케이드 부스트의 기판과 상당히 흡사한 형태였기에 더더욱 마음이 편해졌다.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돌아온다면 이런 기분일까?

튜토리얼이라는 죽음을 앞두고서도 굉장히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상반신 쪽 레버와 핸들이고, 아래에는 하반신 쪽 페달. 좋아, 정면으로는 3면 모니터······.”


그 외에도 내가 직접 조작해야하는 수십개의 패널과 스위치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무리 아케이드 부스트의 플레이어라고 해도 이런 복잡한 컨트롤러들을 보고 있자면 어지럽다고 느낄 게 분명했다.


허나, 이 조종석의 환경은 내게 있어서 굉장히 특별했다.

이 레니게이드의 콕핏만이 그 세계에 내가 존재했다는 유일한 증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원랜 ID카드를 삽입하고 동전을 넣어 실행시켰지만, 여기서는 손수 시동을 걸어줘야하고. 이거 진짜 귀찮은데?”


세세한 부분들은 조금씩 달랐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동일한 것 같았다.

조종석에 탑승하기 전에 챙겨두었던 열쇠를 꽂아넣고 그대로 시동을 걸었다.


드드드드득.

차가운 강철의 고동이 조종석을 통해 온 몸에 전해지기 시작한다.


키이이이이잉─.

이내 터빈이 돌아가며 동력을 레니게이드 곳곳에 전달한다.


카메라 모듈이 작동하며 3면 모니터엔 격납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훈련기 자체에도 안테나가 달려있기 때문에 온라인 상태였던 통신 모듈을 모두 오프라인으로 전환했다.


“바깥에서 연락이 들어오면 상당히 귀찮아지니까.”


아직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허가없이 임의로 탈취 및 탑승한 상황이었기에 외부에서의 모든 통신을 차단하는 쪽을 선택했다.

어차피 연락이 와봐야, ‘거기 생도, 당장 동작을 멈추고 레니게이드에서 하차할 수 있도록!’같은 소리겠지.


쿠웅!


컨트롤러를 조작하여 앞으로 한 발 내딛자, 격납고 내부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이런 인간형 이족보행병기를 첫 탑승부터 어느누가 잘 다룰 수 있겠나 싶지만, 내게 있어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밥 먹고 하던 게 이 짓거리였으니까.

기판이 동일한 이상, 이곳에서 나보다 익숙하게 레니게이드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키이이이잉─.


핸들 레버를 통해 전해지는 기분 좋은 고동.

야수마냥 울부짖는 엔진의 굉음.

강철의 거인이 잠에서 깨어난다.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몸체가 단단히 고정되어었다.


꽈드드드드득─!


그러나, 그건 방해조차 되지 않았다.

움직임을 가로막는 고정대를 그대로 뜯어내며 한 발자국 내딛었다.


레니게이드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실제로 레니게이드를 타보면 어떤 기분일까? 프로생활이 좌절된 이후, 매일같이 이런 쓸데없는 공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덧없는 공상은 현실이 되었다.


죽음의 공포는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진다. 그 자리에는 더 없을 기쁨과 희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길수, 훈련깡통, 갑니다!”


출격을 보조해줄 정비반 따윈 존재하지 않음에도, 오퍼레이팅을 해주는 요원이 없음에도.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한 번쯤은 외쳐보고 싶었던 그 대사를 내뱉었다.


* * *


“저, 저 녀석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레니게이드를 움직인다고?”


한가람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저 남자가 격납고에서 무슨 짓을 할 지가 궁금해 몰래 따라들어왔을 뿐인데.


남자는 갑작스러운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플레이어의 주력기인 데모닉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타야 할 주역기를 뺏기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으나, 이내 시선을 돌려 훈련깡통을 향해 탑승했다.

단순히 탑승만 해보는 줄 알았으나, 시동을 걸더니 고정대까지 뜯어내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도대체 왜? 영문을 모르겠다.

튜토리얼까진 아직 이틀이나 남았다. 그걸 차치하더라도 NPC가 튜토리얼의 존재를 알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더욱이 저 남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저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인다고?”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구동하는지 모르겠다만,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는 레니게이드를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 없었다.

처음엔 몇 발자국 걸어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자리에 멈추었다.


그것만해도 상당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딱딱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몸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부드럽게 여러 동작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앉았다 일어나기, 팔굽혀펴기, 점프 기동 같은 단순 동작을 거쳐 갑작스럽게 춤을 추다가, 문워크를 시도했고 지금 와서는 강철의 몸을 삐걱거리며 트월킹을 하기 시작했다.


“······미친, 저걸로 트월킹을 춘다고? 또라이 아냐?”


그러더니 이제는 격납고를 자기집 안방마냥 뒤지기 시작했다.


그 내부 조종석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모르는 NPC가 레니게이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보고 있자니 환장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토리를 스킵하지 말 걸 그랬다.

이 게임은 디펜스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가람은 깨닫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게임의 정체성은 텍스트 어드벤처다.

교류를 통해 NPC들을 동료로 삼고, 세계의 멸망을 막아내는 게임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같은 NPC, 상위 난이도에만 등장하는 특수 NPC인진 모르겠지만, 이 녀석을 무조건 손에 넣고 말것이다.


쿵─!

드드드득─.


“어, 어어!?”


뭔가 이상하다.

동시에 한가람은 떠올렸다. 분명 시작부에서 갑작스러운 지진과 함께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이 있었다.

그 이후, 게이트가 열리고 안에서부터 괴수들이 쏟아져나와서······.


“설마······! 말도 안 돼!”


반파된 격납고 사이로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더 가까이에서 확인해야한다. 한가람은 겁이 났지만, 어떻게든 무너진 벽으로 다가갔다.


쩌저적─!


아무것도 없던 푸른 하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단순한 유리라도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허나,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쨍그랑─!


푸른 하늘에 생긴 크랙들이 점점 번져나가더니 이내 산산조각나며 파편들이 별가루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곳에 자리잡은 건 시커먼 구멍이다.

그 구멍에서부터 거대한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팔 하나가 겨우 나올 것 같은 작은 사이즈라고 생각했다.


허나 또 다른 팔 하나가 그 좁은 틈을 비집으며 튀어나오더니 이내 그 공간을 잡아, 어거지로 찢으며 육중한 몸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괴수.

그리고 게이트 브레이크.


“마, 말도 안 돼. 어째서, 왜 지금 튜토리얼이······?”


한가람은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그 거대한 괴수를 직접 마주하는 공포에 다리가 풀리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했다면 실금을 해버렸을지도 모르는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빠진 것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튜토리얼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씁, 진짜 튀어나오네, 저 새끼들은?”


하늘에선 괴수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아카데미 자체가 거대한 혼란에 빠질 것을 생각하면, 미리 대비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피난 행렬에 섞여서 격납고로 가기엔 보는 눈도 많고, 교관들에게 제재당할 게 분명하니까.


이제 교관들도 슬슬 격납고로 뛰어와 레니게이드에 탑승할 것 같으니 빨리 격납고를 벗어나자.

기동확인까지 끝낸 나는 몇 가지 무장을 챙겨 격납고 밖으로 나섰다.


만약 이게 디펜스 게임이었다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강한 출력의 무장들을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해야할 것은 원작이 아닌 ‘아케이드 부스트.’ 즉 대전 게임이었다.


“일단 주무장으로는 HAR-11.”


호넷 인스피레이션에서 11번째로 만들어낸 돌격소총.

커스텀의 끝은 순정이 아닌, 마개조라고 했던가.

커스텀 슬롯이 다른 화기에 비해 배는 많기 때문에 마개조의 희생양으로 쓰여지던 범용성 끝판왕의 화기였다. 거기에 대 괴수용 40mm탄환 30발이 들어있는 탄창 4개.

부무장으로는 대 괴수용 크레모아 3개.

근접용 무장으로는 초진동 단분자 나이프와 대 괴수용 파일벙커를 채택했다.


“······진짜 내가 해야하는 거지?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안 온거지?”


이미 이곳은 내가 알던 무장전선의 세계가 아니었다. 인지하고 있던 게임의 진행과는 상당히 다르게 진행되는 상황.

어쩔 수 없다.

내가 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손이 덜덜 떨렸다.


게임을 하는 감각으로 이 튜토리얼을 마주하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이건 현실이었다.

실제 목숨을 걸고 싸워야하는 전장이었다.


“한 번 해보자.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나는 여기서 죽을텐데. ······지금 아니면 언제 레니게이드를 몰아보겠냐. 씁, 한 번 가보자고.”


훈련깡통을 그대로 출격시켰다.

그와 동시에 일단 한 놈.

아카데미의 지상에 완전히 착지하기 직전의 놈에게 사격을 시도했다.


탕─!

타다당!


용과 거인이 섞인듯한 기괴한 모습을 한 괴수의 머리에 한 발을 박아넣어 저지를 시도했다.

하지만, 헤드샷이 터지진 않았나보다.

거대한 몸체가 기우뚱거리며 흔들렸으나, 전진을 멈추지 않았기에 곧바로 코어를 향해 세 발을 추가로 박아넣었다.


머리를 맞췄음에도 저지가 되지 않는 것은 40mm탄환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

섬유질같은 갑각을 뚫어내기 위해 관통력을 억지로 끌어올린 탄환이었기에 저지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투두둑─!


다시 세발을 코어에 박아넣자, 그때서야 육중한 몸이 쓰러진다.

괴수는 코어를 맞춰 무력화시켜야 하는 존재들.

허나, 코어의 위치가 심장부근에 달려 있는 튜토리얼 몹은 그저 거대한 표적에 불과하다.

아무렇게나 쏴도 그 거대한 몸집 덕분에 총알이 모두 명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구성은 어느정도 강한 편이었는지, 6발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나서야 그 동작을 완전히 멈추었다.


철컥, 쿵! 쿵! 쿵쿵쿵쿵!


고작 한 마리 죽였다고 멈춰 서서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저 놈들이 완전히 바닥에 착지하기 전에 끝장낼 기세로 달려나가며 지향사격을 시도했다.


투두두─! 투두둑─!


탄피가 튀어오르고 화약냄새가 풍겨오른다.

콕핏에 있는 내게도 전해질 정도로 매캐한 내음이 사방에 진동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 상황은 너무나도 자극적이다.

아드레날린이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이정도 난리를 치고 있자, 상황을 파악한 교관들이 이제서야 한 두명씩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게이트 브레이크······! 지금 괴수들과 대치하고 있는 훈련용 레니게이드는 누가 조종하고 있는 거지? 빨리 무전 때려봐!”

“무전을 받지 않습니다! 아마 통신을 끈 거 같은데요!?”

“······그렇다면 우리도 격납고로 간다! 각자 레니게이드 탑승 후 합류할 수 있도록! 상대는 C급 대형종! 당황하지 마라!”


그럴 줄 알고 통신 모듈을 오프라인으로 전환했다.

1학년 짜리가 몰래 레니게이드에 탑승해서 싸우고 있단 게 알려지면, 단순 페널티로 끝나지 않는 걸 알고 있으니까.


탕─! 타탕!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 교관들을 죽게 할 수는 없었다.

곧장 교관들을 엄호하기 위해 그 앞으로 훈련깡통을 이동시켰고, 떨어지는 괴수들을 향해 사격을 시도했다.


“훈련기, 저거 우리를 엄호하는데요!? 서둘러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 틈에 이동한다! 서둘러! 어서! 이동간에 내부의 교관들에게 무전을 취해, 생도들을 안전히 대피시킬 수 있도록!”


투두두두두두두─!


교관들을 지키는 것은 단순한 이유에서 였다.

사람들이 내 눈 앞에서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숭고한 신념같은 게 아니다.

그저 그것 뿐인 이유였음에도, 자연스럽게 내 몸은 그들을 엄호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수호!”


그러니까, 서로 경례같은 거 하지말고, 빨리 지원이나 오라고! 이 미친 교관들아!


지켜주려고 먹은 마음, 싹 사라지기 전에!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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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7. 후보생 실습 (2) +2 22.06.01 536 30 13쪽
23 7. 후보생 실습 (1) +3 22.05.31 596 28 13쪽
22 6. 이지수 (2) +3 22.05.30 618 32 13쪽
21 6. 이지수 (1) +2 22.05.29 685 33 13쪽
20 5. 호라이던 (2) +1 22.05.28 690 30 13쪽
19 5. 호라이던 (1) +2 22.05.27 686 31 13쪽
18 4. 신병기 개발부서 (5) 22.05.26 716 38 13쪽
17 4. 신병기 개발부서 (4) 22.05.25 748 35 13쪽
16 4. 신병기 개발부서 (3) +4 22.05.24 797 40 13쪽
15 4. 신병기 개발부서 (2) +2 22.05.23 849 42 13쪽
14 4. 신병기 개발부서 (1) +3 22.05.22 952 41 13쪽
13 3. 한가람 (3) +1 22.05.21 1,028 44 13쪽
12 3. 한가람 (2) +2 22.05.20 1,075 45 13쪽
11 3. 한가람 (1) +2 22.05.19 1,089 50 13쪽
10 2. 튜토리얼 (6) +3 22.05.18 1,105 56 12쪽
9 2. 튜토리얼 (5) +3 22.05.17 1,070 52 12쪽
» 2. 튜토리얼 (4) +1 22.05.16 1,101 58 12쪽
7 2. 튜토리얼 (3) +3 22.05.15 1,136 55 12쪽
6 2. 튜토리얼 (2) +2 22.05.14 1,213 57 12쪽
5 2. 튜토리얼 (1) +1 22.05.13 1,288 55 12쪽
4 1. 모브 캐릭터 (3) +2 22.05.12 1,340 55 12쪽
3 1. 모브 캐릭터 (2) +1 22.05.11 1,496 55 12쪽
2 1. 모브 캐릭터 (1) +1 22.05.11 1,724 66 12쪽
1 0. 무장전선: 레니게이드 +2 22.05.11 2,118 7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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